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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79)

명나라 방상붕1)은 일찍이,
“사람을 만나면 3부만 이야기하고 마음 전부를 내던지지 마라.”(『增廣賢文』)
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사람 만나면 말을 조심스레 삼가고 모든 마음을 내보이지 말라는 말이다. 이것은 옛사람이 말이 재앙이 되는 것을 삼간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거나 경솔하게 지껄이거나 웃지 않는 사람에게는 잠시 진심이나 본뜻을 표출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의견만 고집하거나 오로지 이기려고만 하는 사람에게는 실언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사귄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 어리석게도 깊은 얘기를 나누면 당신이 토로한 성심성의가 오히려 흑백이 전도된 비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상황을 알면서도 숨겨 말하지 않는 것은 충실하지 못하다.

 

마땅히 침묵하여야 할 때에 말하는 것은 내뱉은 말 모두 더러운 때와 같게 된다. 반드시 말해야 할 때에 침묵하고 말하지 않으면 그 침묵은 먼지와 같다. 말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을 벌이는 사람은 다른 뜻이 있기에 그러하다. 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무는 것은 어리석음의 표현이다.

 

친구를 사귈 때에는 반드시 좋은 사람을 선택하여야 한다.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남을 믿고 성의를 가지고 교제할 수는 없지 않는가.

 

지음이 말하고 지음이 듣는 것이다. 진정한 사람 앞에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말하는 데에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 것은 피해야 한다.

 

어떤 것이 명석한 것일까? 모든 것을 노출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 좋은 것 모두 가질 수 있을까? 없다. 좋은 일은 자신이 다 가질 수 없다. 여지를 남겨 놓지 않으면 주변 사람이 반목질시한다.

 

타인을 논할 때 상대의 장점을 칭찬하자. 타인의 단점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자. 절대 타인의 과실을 떠벌려서는 안 된다. 신심을 닦고 덕을 쌓는 일이다. 원한을 적게 맺게 된다. 재앙을 없앨 수 있다. 타인에게 권할 생각이 있다면 그저 완곡하게 얘기하자. 너무 과하면 화가 되어 돌아온다.

 

1898년, 강유위2), 양계초3)가 중심이 된 유신파가 변법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들의 활동은 광서제(光緖帝, 1875~1908 재위)의 지지를 얻었다. 그런데 광서제는 실권 없는 황제였다. 자희태후(慈禧太后, 1835~1908)가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광서제는 변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을 확대하고 통치 지위를 공고히 하여 자희태후 세력을 공격하려 했다.

 

그렇다면 자희태후는 어땠을까? 자기 권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유신변법에 간섭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자 변법운동은 광서제와 자희태후의 권력투쟁으로 변해버렸다. 그 투쟁에서 광서제는 자신의 처지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사권과 병권 모두 자희태후 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깊은 수심에 잠긴 광서제는 유신파 인사 양예4)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 황위를 보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대들이 방도를 마련해 보라.”

 

유신파는 급해졌다.

 

바로 그때, 영록5)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신건육군 수령 원세개6)가 북경으로 갔다. 원세개는 강유위, 양계초의 유신변법을 펴는 중에 변법운동을 지지한다는 태도를 명확히 표명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강유위는 광서제에게 원세개를 추천하였다. 원세개를 양무운동을 이해하고 변법을 주장하는 신파(新派) 군인이라 소개하였다. 그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자희태후의 중요한 조력자인 영록의 힘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광서제도 변법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군인의 지지를 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북경에서 원세개를 소견해 시랑이라는 관직을 하사하였다. 원세개를 끌어들여 자신에게 충성하도록 만들 속셈이었다.

 

당시에 강유위 같은 인물도 변법을 성공시키고 황제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영록을 죽여야만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 일을 완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원세개밖에 없다고 여겼다. 담사동7)이 깊은 밤에 몰래 원세개를 찾아가 말했다.

 

“현재 영록의 무리가 황제를 폐하려 하고 있소. 당신이 병력을 동원하여 영록을 없애고 군사로 이화원을 포위하여야 하오. 일이 성공하면 황상이 대권을 장악해 늙다리 수구 대신을 철저히 제거할 것이오. 그때가 되면 당신은 일등공신이 되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방상붕(龐尙鵬, 1524~1580), 자는 소남(少南), 광동 광주(廣州)부 남해(南海)현〔현 불산(佛山)시 남해(南海)구 첩공향(叠滘鄕)〕 사람이다. 명 왕조 명신으로 명나라 중기의 유명한 경제 개혁가이다.

 

2) 강유위(康有爲, 1858~1927), 원명 조이(祖詒), 자는 광하(廣厦), 호는 장소(長素), 명이(明夷). 갱신(更甡), 서초산인(西樵山人), 유존수(游存叟), 천유화인(天游化人), 광동성 광주(廣州)부 남해(南海)현 단조소촌(丹竈蘇村) 사람이라 강남해(康南海)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 만청(晚清)시기 중요한 정치가, 사상가, 교육가이다.

 

3) 양계초(梁啓超, 1873~1929), 자는 탁여(卓如), 임보(任甫), 호는 임공(任公), 음빙실주인(飮冰室主人), 음빙자(飮冰子), 애시객(哀時客), 중국의 신민(中国之新民), 자유재주인(自由齋主人)이다. 청나라 광서 연간의 거인, 중국 근대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 사학가, 문학가, 무술변법(戊戌變法), 백일유신(百日維新) 영수 중 한 명, 중국 근대 유신파, 신법가의 대표 인물이다.

 

4) 양예(楊銳, 1857~1898), 자는 숙교(叔嶠), 사천 면죽(綿竹) 사람으로 만청(晚清) 유신변법 시기 중심인물이며 ‘무술육군자(戊戌六君子)’ 중 한 명이다. 광서 21년(1895)에 강학회(强學會)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광서 24년(1898)에 촉학회(蜀學會)를 창립해 무술변법 운동에 참여하였다.

 

5) 영록(榮禄, 1836~1903), 자는 중화(仲華), 호는 약원(略園), 구왈갸(瓜爾佳) 씨, 만주(滿洲) 정백기(正白旗) 사람으로 청나라 대신, 정치가이다.

 

6) 원세개(袁世凯, 1859~1916), 근대의 정치가, 군사전문가, 북양(北洋)군벌 영수다. 자는 위정(慰亭), 위정(慰廷), 호는 용암(容庵), 세심정주인(洗心亭主人), 하남 항성(項城)사람이라 원항성(袁項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7) 담사동(譚嗣同, 1865~1898), 자는 부생(復生), 호는 장비(壯飛), 호남성 장사(長沙)부 유양(瀏陽)현(현 호남성 유양시) 사람이다. 순천부(順天府, 현 북경시)에서 태어났다. 중국 근대 유명한 정치가, 사상가, 유신파 인물이다. 그의 저서인 『인학(仁學)』은 유신파의 첫 번째 철학 저술이며 중국 근대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저작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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