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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83)

10월 말에 직예파 장군 풍옥상1)이 갑자기 오패부를 등지고 고북구(古北口)에서 회군하였다. 북경경비사령관 손악(孫岳)과 결탁하여 북경을 점령하였다. 풍옥상과 손부방은 휴전을 제안하고 조곤에게 압력을 가했다. 오패부를 면직한 후 조곤의 퇴위를 선언하였다. 산해관에서 회군한 오패부는 풍옥상과 맞섰지만 장작림의 가세로 대패하고 한구(漢口)로 도주하였다.

 

제2차 봉직전쟁이 끝나고 조곤이 뇌물로 세웠던 정부도 무너졌다. 장작림과 풍옥상은 일부 직예파 군인과 함께 단기서2)를 총통으로 추대하였다.

 

이 전쟁에서 봉군총참(奉軍總參) 양우정3)은 장작림의 명령을 받고 산해관으로 진입하였다. 양우정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었지만 나름대로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병권을 잡게 되자 안하무인인 본성을 드러냈다. 득의양양하게 심양(沈陽)을 출발할 때부터 평소에 신임하던 장신선(張神仙), 마신선(馬神仙) 등 4명의 술사를 대동하였다.

 

양우정은 장작림 못지않게 신도(神道)를 믿고 있었다. 작전을 펼치기 전에 항상 4명의 신선에게 점치게 하여 날자와 시간을 정한 후에 행동하였다. 당시 장작림 아들인 제3군단장 장학량4)이 양우정과 함께 있었다.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였던 장학량은 아버지나 양우정과는 달리 미신을 믿지 않았다. 장학량은 양우정에게 충고하였다.

 

“군사작전은 신속한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망언 따위는 믿지 마십시오.”

 

그러나 양우정은 평소에 장학량을 풋내기로 여기고 있었다. 신선에게 깊이 빠져있던 양우정은 장학량뿐 아니라 다른 부하가 충고하였을 때에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신도는 대단히 영험하다.”

 

어느 날, 양우정이 탄 차가 경한선 마두진(馬頭鎭)에 멈췄다. 양우정은 신선 4명과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 하얀 토끼가 갑자기 뛰어들었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토끼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후였다. 입에 머금었던 차를 삼킨 양우정은 시가에 불붙이고는 현색 도포를 입은 얼굴이 기다란 마신선에게 물었다.

 

“무슨 징조요?”

 

마신선은 짐직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괘를 짓더니 조용히 눈을 뜨면서 말했다.

 

“토끼는 묘(卯)이고 말은 오(午)입니다. 차가 마두진에 섰을 때 토끼가 들어왔으니 묘와 우가 상충(相沖)한 것입니다. 오늘 하오인 우시에 반드시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토끼는 신령스러운 토끼입니다. 총참의께서는 고귀한 신분이므로 신선이 토끼를 시켜 미리 알려준 것입니다. 적의 음모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으니 차를 마두진에서 철수하십시오.”

 

양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면서 다른 신선 3명에게도 물었다. 강호의 술사 중 바람을 쫓아 돛을 조종하듯 정세 변화를 보면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던가. 4명은 평상시에 누군가가 무슨 말하면 거기에 맞장구치기로 입을 맞춰둔 상태였다. 지금 마신선이 한 말을 듣고 총참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으니 누가 거기에 찬성하지 않겠는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형은 대단하십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양우정은 즉시 마두진에서 차를 빼라고 명했다.

 

점쟁이들의 그런 치켜세우는 말도 때로는 ‘눈 먼 고양이가 쥐 잡듯이’ 요행으로 적중할 때도 있었다. 오후가 되자 진짜로 직군(直軍) 기병대가 마두진을 공격해 방화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양우정은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장학량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떻소, 아우님. 신선들의 신묘한 해석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됐겠나? 흉이 많았지 않았겠나.”

 

장학량은 중얼거리며 대충 그렇다고 대답은 했지만 속으로 공교롭게 걸린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 사건 이후로 양우정은 더 시건방져졌다. 신선과 다름없는 신묘한 술사를 좌우에 데리고 있으니 자신은 결코 화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것이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양우정의 야심을 부추겼다. 권력을 장악하여 동북의 패자가 되려다가 죽임을 당하는 화근을 심어주고 말았다.

 

허무맹랑한 부추김은, 특히 약간의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게 만든다. 동서남북을 잃고 자기 능력 밖의 일을 하면 결국 자기에게 해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풍옥상(馮玉祥, 1882~1948), 자는 환장(焕章), 원명은 기선(基善), 원적은 안휘성 소현(巢縣)〔현 안휘성 소호(巢湖)시〕, 직예(直隶) 청현(青縣)〔현 하북성 창주(滄州)시〕에서 태어났다. 국민혁명군 육군 일급상장, 서북 군벌이다. ‘기독장군(基督將軍)’, ‘도과장군(倒戈將軍)’, ‘포의장군(布衣將軍)’이라는 별칭이 있다.

 

2) 단기서(段祺瑞, 1865~1936), 원명 계서(啓瑞), 자는 지천(芝泉), 안휘성 합비(현 비서肥西현) 사람이다. 중화민국 정치가, 환계(皖系) 군벌 수령으로 세 차례나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1916부터 1920년까지 북양정부에서 실권을 장악하였다. 1924부터 1926년까지 임시 집권하였다.

 

3) 양우정(杨宇霆, 1886~1929), 자는 능각(凌閣), 혹은 인각(麟閣), 인갈(麟葛), 봉천(奉天)성 법고(法庫)현(현 요녕성 법고현) 사람이다. 북양군벌이 집권할 때에 봉계 군벌의 중요한 장수였다. 대권 투쟁 과정에서 장학량(張學良)이 고기의(高紀毅)를 몰래 보내 처결하였다.

 

4) 장학량(張學良, 1901~2001), 자는 한경(漢卿), 호는 의암(毅庵), 어릴 적 이름은 쌍희(雙喜), 소육자(小六子), 요녕성 안산(鞍山)시 태안(台安)현 환동(桓洞)진 악가(鄂家)촌 장가와보둔(張家窝堡屯)에서 태어났다. 국민혁명군 장수요 봉계군벌 장작림(張作霖)의 장자다. 서안사변(西安事變) 후 장개석(蔣介石)에게 오랫동안 연금된 상태로 대북(臺北)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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