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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평생 일로 살아오신 어머니 ... 일이 복이다

 

“나가 복시러운 할망이여, 똘네 집에 살앙 ...." 요즘들어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아니우다게, 어머니! 나가 복시러운 거주. 육십이 넘도록 어머니영 고치 사는 똘이, 이 세상에 몇이나 이시쿠과?”. 요즘들어 하루에 한 두 번은 주고받는 어머니와의 대화다. 내가 특별히 어머니에게 잘 하는 것도 없건만... “고맙다, 이! 이 백 설 난 어멍을 제게 죽어불랜 안 해영...”이라는 어머니가, 참으로 송구스럽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미국의 공원묘지에 장사지내던 날, 마치 혼자 된 어린 아이처럼 멍~ 해진 어머니를 모시고 온 지, 어느새 20년이다. “정옥아, 고맙다, 이! 니네 아방을 미국 땅 골충에 묻어 부난, 난 어떵 허코 허멍 우는디..., 이제부터 어머닌 나영 고치 살게 마씸 허멍, 얼른 나 손 심엉 이디로 와 줜...”

 

요즘들어 어머니가 자주 옛날 말씀을 하신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시면서, 어렸을 적 홀어머니와 같이 살 던 얘기까지 꺼내신다. “나 두릴 땐, 아방이 죽어부렁 두불 시집을 가게 되민, 똘 하나 이신 거 돌앙 강, ‘야이는 아기업개우다’ 허멍 체면을 살려신예! 경 헌디, 우리 어멍은 아방이 일본에 돈 벌레 가당 오꼬시 죽어부러도, 나영 족은 오라방이여 고치 돌앙 살멍, 죽을 때꼬지 고생고생 허단 아방한티로 갔져...(나 어릴 때는, 남편이 돌아가셔서 재혼을 하게 되면, 딸 하나 있는 걸 데리고 가서, ‘이 애는 아기를 돌볼 아이우다”라고 했단다.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본에 돈 벌러 가다가 그만 돌아가셨어도, 나랑 작은 오빠를 같이 데리고 살면서, 죽을 때까지 고생 고생하시다 남편에게로 갔다)라면서, 먼 하늘을 우러르신다. “호마터민(하마터면), 나도 놈의 집 아기업개로 가실 건디, 어머니 덕분에 좋은 아방 만난, 이추룩 백설을 살아점수다. 어머니, 고맙수다, 예!”라고, 마치 어머니에게 이야기하듯이...

 

그리고 마당을 바라보시면서 “보름 혼 점 어시, 잎상구리 호나토 꼬딱 안 허는 날이여, 이!(바람 한 점 없이, 잎사귀 하나도 까딱 안 하는 날이구나)”라는 말을 몇 번씩이나 하신다. 아니나 다를까. 언니가 어머니를 위해 마당의 잔디를 파내고 만든 콩밭의 잎사귀들도, 연일 내리쬐는 불볕더위에 타는 목마름으로 하늘을 바라보다 고개를 꺾었다. 저 무정한 된장콩마저 기운 없이 늘어지게 만드는, 이 여름은 어디서 날아 온 불한당인가. 참 야속도 하지.

 

“비 혼 주재만 해줘도 살 건디....”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원에도, 도통 들은 척도 안 한다. 아침 일찍, 몇 그루 고추에만 물을 주다가, 요즘은 콩밭에도 몇 바가지를 퍼부어준다. 땅의 기운과 양분이 다 빠져서 도무지 다른 농작물이 자랄 수 없는 토양에서도, 신통하게 고개를 내밀고서 씩씩하게 자라주는 콩들이 저렇게 헉헉거릴 정도면, 다른 식물들은 얼마나 목이 탈까. ‘내일 모레쯤 비구름이 몰려 온다’는 일기예보가 약속대로 비를 데려와주길 바랄 뿐이다.

 

아침 점심으로 몇 개씩 뜯어다 드리면 마치 추억의 음식을 대하듯 반가워하시던 어머니도, 요즘은 아예 콩잎에 손을 대지 않으신다. 가뭄에 뻣뻣해진 탓도 있지만, 목이 말라서 비틀어진 그 잎상구리를 차마 입에 넣지 못하시는 게다.

 

요즘은 이상스레 어머니의 활력이 좋아지셨다. 지난 번 변비로 고생을 하시고서 며칠을 기운 없이 누워 지내신 이후로, 마치 작정이라도 하신 듯 무더위를 잘 버텨내신다. 노인이 되면 마치 사이클을 그리듯, 일상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엮으면서 흘러간다. 마치 삼한사온의 겨울날씨처럼 말이다. 이렇게 기운이 없으시면 어떻하나 걱정하고 있으면, 어느날 아침 문득, 언제 그랬냐 싶게 ‘괜찮다’는 얼굴로 말갛게 웃으신다. 아, 사람의 목숨이란 게 우리의 기도처럼, 보이지 않는 손의 은혜가 있구나 싶다. 어머니의 꾸중을 심히 걱정하면, 이상스레 어머니가 관대해지시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처럼.

 

어머니는 일생을 통해 어떤 복을 누리셨을까? 어머니 말로는 좋은 남편 만나서 매 한 번 안 맞아보고, 오히려 ‘고생만 시켜서 미안허다’는 말을 들으셨다니..., 남편 복이 있으셨던 걸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리라. 아버지로 치면 아버지가 둘째 부인을 두시는 바람에 할아버지 손에서 고아처럼 자라서, 학벌도 재산도 명예도 없으셨는데... 그저 황무지를 개간하듯이 빈 손으로 밤낮 일과 땅에 온 마음을 기울여서 버텨온 삶인데...

 

분명한 것은, 내가 보기에도 두 분이 일에 관한한은 손발이, 호흡이, 생각이 참으로 잘 맞아서, 동네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높았던 사실이다. 기운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남제주군에서 보리·유채 수매에 해마다 등, 3등을 독차지하셨다니... 고구마 절간은 또 얼마나 많이 하셨던가. 달밤에도 마른 고구마를 주워야 할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일부자였던 셈이다. 한 동네에서 이 사람도 ‘우리 밭을 벌어 달라’, 저 사람도 ‘우리 논을 맡아 달라’ 하므로, 땅 한 평 없이도 병작을 두 배로 할 수 있었단다. 그러니, 남 만큼 살 수 있었으리라.

 

이것이 ‘부지런만 허민 하늘이 도와준다!’라는 어머니의 믿음을 낳게 된 배경인 듯 하다. 2014년에 발간된 ‘숨비질 배왕 놈주지 아녀“라는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보고서에서, 어머니는 ’조냥허곡 부진런허민 하늘이 도와‘라는 제목으로 무려 5페이지에 달하는 해녀의 삶을 풀어놓고 있다. 3페이지가 보통인 이 책에서, 어머니의 특별히 긴 생애사가 관계자의 주목을 받아서, 제주해녀박물관 영상실에도 어머니가 올라가는 이유가 될 정도로...

 

이 책의 341쪽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김성춘씨는 대포에서 태어나 일찍 물질을 배웠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한 사람 몫을 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함경환 사건의 희생자였다. 1928년 1월 28일, 함경환까지 승객을 실어 나르던 거룻배가 돌풍에 뒤집혀, 일본으로 가려던 중문면 주민 32명이 익사한 것이다. 김씨의 아버지는 43세의 건장한 몸이라 헤엄을 쳐서 배에 오를 수가 있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기를 업고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커다란 파도가 덮쳐서 그 아주머니와 함께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포는 수십 명의 장례식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어머니는 빈 상여로 장례를 치렀고, ‘어떤 사람은 복도 많아서 시신이 있는 장례를 치르는가’ 하며 평생 상여가 나가는 장례행렬에 눈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안 계신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남보다 일을 더 많이 해야 했던 어머니는, ‘가시덤불도 속도 해메 보곡, 내창질 푸더지멍 댕기당(하천길 넘어지면서 다니다가), 물도 기리곡 배도 고파 봐사 시상 물정 아느네, 발바닥 붕물게(물집 생기게) 나상 댕겨보곡, 손바닥 굉이지게(못박히게) 살아 봐사 어려움도 알곡, 고마운 줄도 아느네(김종두, 사는 게 뭣 산디,p. 38)’라는 시처럼, 고되고 외로운 어린 시절을 감내해야만 하였다. 남보다 더 부지런하고, 절약하면서, 예의바르고,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던 삶이, 이웃집 할아버지의 주목을 받게 되어, 마침내 그 집의 손자며느리가 되었으니, 그 야말로 하늘이 도와준 셈이 되었다.

 

복이란 무엇일까? “헐 일만 이시민, 난 좋다게! 경 허난, 손톱 너무 깎지 말라 이. 고매기 까젠 허민 손콥이 아프다...”라는 어머니에게는 일이 복이다. 평생을 일로 살아 오신 어머니는, 마당에 잔디를 심어서 한가롭게 사는 것보다 콩이라도 갈아서 일을 하시는 게 마음이 편하시다. 그러니, 물 때가 되면 바닷가에 나가서 썰물로 마른 밭이 된 바다를 바라보시면서 애타게 나를 부르신다. “정옥아, 이리 와보라! 바당 혼 착이 다 몰랐져게. 제게 나강 고매기 홑썰만 잡아오라. 나가 그거라도 까멍 일을 해야 살 거 아니냐!”

 

 

해녀 출신인 어머니는, 요새 바다는 어촌계에 가입된 해녀들만의 바다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신다. ‘해녀들의 허락 없이 바다에 들어가서 보말을 잡다가 붙잡히면, 크게 벌금을 물게 되어 있다’라고 쓰여진 경고판을 읽어드려도 막무가내, 변함이 없으시다. “미신 말이고? 바당에 임재 이시냐? 저추룩 너른 디, 고매기만썩 헌 것사, 아무나 강, 지만씩 잡아당 먹으민 되는 거주! 아명 세상이 변했젠 호여도, 바당이 공꺼 아니민 누게네 꺼랜 해여니? 하늘 아래 바당 아니냐! 하늘이영 바당이영 혼짝인디, 어떵 그뭇을 그엉 니꺼 나꺼 허느니?”라고 하시며 집 앞의 돌 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가리키신다.

 

다행히 그 시간이 저녁 무렵이면, 바당이 마당인 우리집의 위치를 핑계 삼아 바가지 하나 들고서 바다로 나간다. 어머니께는 ‘돌의자에 앉아서, 딸이 보말 잡는 모습을 단단히 지켜보아야 한다’고, ‘그래야, 해녀님들이 백세 어머니 얼굴을 보고서 못 본 척 넘어가 주실 거라’고 신신당부를 해놓는다. 게무로사 백 세 어머니가 보말 좀 먹고 싶다고 저렇게 다그치시는데, 그걸 ‘불법’이라고 못하게 할 야속한 사람이 있으랴.... 하는 베짱을 바가지 속에 담고서.

 

보목마을 해녀님들은 인심이 좋아서, 아직까지는 어머니의 투정에 눈을 감아주신다. 생각해 보면, 해녀출신인 어머니가 섶섬 앞 바닷가에 살면서 보말을 잡을 수 있었던 게 장수의 비결이지 싶다. 그게 바로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즐겨하셨던 물질의 연속이었을 테니까. 바로 당신이 하고 싶은 일, 평생을 두고서 가장 잘 했던 일이 아닌가. 바다에만 나가면 가슴이 벅차오르게 밀려드는 물결과 바람. ‘숨비소리 허민 다 풀어지고, 돈도 나오는 비밀’을 안겨주는 바다. 그 바다 덕분에 이 보목마을에 이사온 지 10년 동안은 즐겁게 신나게 일을 하면서 남편을 보낸 슬픔도 잊고, 혼자 된 외로움도 파도에 실어 보내버릴 수가 있었으리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우리나라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20.3%인 약 1000만명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노인빈곤율은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제일 높다. 노인 인구 비율이 많아지는 만큼 노인 일자리 수요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신노년세대(1955~1963년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 인구에 편입되면서 2035년에는 158만명의 노인 일자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2004년부터 보건복지부 주관으로 노인 일자리 창출과 사회활동지원 사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1661억200만원을 투입한 올해 사업은 △공익형 △사회서비스형 △시장형 △취업알선형 등으로 유형을 나눠 시니어클럽, 노인종합복지관, 대한노인회 등 236개 기관이 수행한다(머니 투데이, 2021.3.6.).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노인인구 비율 20%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2070년에는 65살 이상 노인 인구가 46.4%(1747만 명)로 15~64살인 생산연령인구 비율 46.1%(1737만 명)보다 높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2020년 합계출산율이 0.84명에 이르는 등 출산율은 급격하게 낮아지고 기대수명(2020년 기준, 83.5살)은 늘어나는 등의 상황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김미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원장은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빠르게 늘어나는 노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김 원장은 “유럽 등 대부분 나라에서 ‘인생 행복 그래프’는 부양 의무 등이 많은 40대를 저점으로 한유(U)자형”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유아·청소년기에 행복지수가 높았다가 이후 행복지수가 반등 없이 낮아지는 사선(\)형”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그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2018년 기준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15.7%의 2.7배 수준”인 점을 꼽고 있다.

 

제주도의 노인들은 특히 일에 익숙하신 분들이다. 80대 이상의 제주도 토박이 어르신들은, 어쩌면 평생을 일만 하면 살아오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세 이상을 사시는 노인들의 장수비결이 ‘일’이고 보면, ‘일은 고생’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일이 행복’이라는 사회의식을 심어 갈 필요가 있다.

 

백세를 사시는 어머니가, 내일도 일할 것을 생각하시면서 ‘손콥(손톱 부분)을 아끼시는 자세’야 말로, 일에 대한 자세이자 예의가 아닐까. “난 꿈 보멍 좀 자멍 살아보지 안허난 몰라. 잠깐 자민 피딱 깨나가지고 돌가남 벨가남 허멍 살아서”. 달이 어느 만큼 가면 몇 시가 됐구나, 별이 이만큼 하니 날씨가 좋겠구나, ‘물이 쌌져, 물이 들었져’를 달과 별로 가늠하면서 일생을 살아 온 해녀 어머니의 삶이, 오늘 따라 가슴을 서늘케 한다.

 

일을 많이 해서 드러누운 것이 아니라, 일을 많이 하다 보니 백 살이 되신 어머니의 장수비결이, 어디 ‘일’뿐이야만은, 오늘은 어머니의 일생을 복되게 만들어 준 일을 찬양하고 싶다. 마치 우리가 국어교과서에서 배웠던 민태원의 ‘청춘 예찬’처럼, 일이란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라고, 일에게 속삭여주고 싶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와 일의 즐거움’이라고.

 

오늘은 우리 어머니에게 어떤 즐거운 일을 안겨 드릴까. 오늘은 조금이라, 바다는 하루 종일 밀물이 가득해서 바당밭이 온통 잠겨버릴텐데...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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