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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늙을 수록 더 탐스러운 호박, 우리네 인생도 이같이 ...

어머니가 내 얼굴을 고즈넉이 바라보신다. 얼마나 부드럽고 다정스런 표정인지, 어머니가 ‘참 곱게 늙으셨구나’ 싶다. 내 가슴으로 싸〜아 하니 밀려드는 물결에, 지난 20년의 세월이 순간처럼 파도친다. 아버지를 미국의 공원묘지에 장례하고서, 어머니 손을 붙잡고 돌아온 게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고, 어머니도 두 세 차례 죽음의 강가를 헤매셨다. 하지만 내 어머니만 예외인 듯, ‘어머니는 영원히 내 곁에서 어머니가 되시겠거니...’ 하고, 연약해지는 늙음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 어머니가, 새삼스레 내 손을 가만히 붙잡아서 당신의 가슴에 대신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어 하시는 말씀. “정옥아, 고맙다, 고맙다, 촘말로 고맙다 이!” “아니 미신 말이우꽈게! 나가 고맙주, 어떵 어머니가 나한티 고마울 수 이시우꽈?”라면서, 어머니를 부둥켜 안는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면서 커다랗게 밀려온 파도가 가슴을 친다. 가슴이 아프게, 심장이 저리게.... 아 이토록 고맙고 귀한 어머니를 제대로 돌봐드리지 못하였구나.

 

그런데, 어머니가 전에 없이 왜 이러실까? 불길한 예감에 정색을 하고, 다짐을 받는다. “어머니,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허랜 헤수게, 예! 어머니가 도와주시난 나가 밖으로 나간 뛰어 다니멍 열심히 살아져수게. 어머니 어서시민 어떵 아이들 놔 뒁, 육지로 미국으로 하근디(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이서시쿠과? 어머니, 고맙수다 예! 경 허난, 밥 잘 드시곡, 마당에 나강 오몽허시멍(움직이시면서), 어디 아프지 마랑, 나영 곹이 오래오래 살아사 됩니다, 예! 아직은 어머니가 이 집 지키멍 날 도와줘사, 내일도 서울 강 일 하영 행 올 거 아니우꽈(서울 가서 일 많이 해서 올 거 아니겠어요)?” “게무로사, 이 백설 난 어멍이 니한티 도움이 된댄 허난, 고맙다만은..., 이젠 기운이 엇다. 다 살아진 거 닮다...”

 

그런 어머니를 놔두고 서울에 다녀온 저녁, 어머니는 주무시고 계신다. 거의 잠에 취한 듯이 아무리 부르고 밀치고, 심지어 때리고 꼬집어도 여간 눈을 뜨지 않으신다. “어머니, 눈을 틉서, 한 번만 눈을 텅 날 뵈려봅서게!”라며 눈을 억지로 뜨게 하려고 뒤집으려는데, 얼른 손을 들어 내 손을 밀쳐내신다. 아, 다행이다. 아직 정신은 있으신 게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는 어머니를 보내드릴 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덜컥 든다. 노인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나타내는 신호 중에는 ‘수면 증가, 즉 수면의 양이 늘고 반응이 없다’라는 항목이 1순위로 뜬다. 한 가지 연구 사례를 살펴보면, 2018년 연세의료원과 가천대 길병원 연구팀이 말기 암환자 80명의 임종 48시간 전 특징이, 1)수면 시간 증가(53.8%), 2)의식혼탁 및 섬망(50%), 3)안정시 호흡곤란(28.8%) 순이다.

 

다행히 어머니의 경우는 말기암처럼 특정된 질병이 아니라서, 충분히 주무시고서 기운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다시 일어나시지 싶은 기대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거실에서 작업을 하는데, 어머니 방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난다. 얼른 문을 열어보니, 요강에서 용변을 보신다. 어머니의 소변 소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햇볕을 받아서 반짝이며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과장된 표현이지 싶지만, 기실로 나의 진심이요 사실이다.

 

어머니는 아무데나 침을 뱉는 게 대표적인 치매증세이긴 하지만, 대소변은 반드시 당신이 가리신다. 어쩌면 치매하는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모시면서, ‘결코 대소변으로 며느리를 어렵게 하지는 말아야지’하고 결심을 하셨지 싶다. 한 겨울에 시어머니의 대소변이 엉겨붙은 이부자리를 짊어지고서 바닷가 용천수로 내려가시면서, 벌겋게 얼어서 손등이 부풀어오른 손으로 막개(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어느새 얼어서 버석거리는 빨래의 무게를 의식하시면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다행히 그 어머니를 하늘에서 바라보신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고 약속하신대로, 장수의 축복을 주시고, 심각한 치매를 막아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시계를 보니 작은 침이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아, 천만다행이다.

 

참, ‘잠이 보약’이라고 하지만, 잠이 독약이 되는 사람들도 많다. 단적인 예로, 노인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이 경우 보통 ‘자연사’라고들 하며, 80〜90이 넘은 경우에는 소위 ‘호상’이라고 한다. 자연사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편안함, 곧 편안한 죽음이다. 편하게 그냥 자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은 잠을 자다가 죽은 사람은 대부분이 ‘혼자서 자는 사람’이란 사실이다. 아마도 망자는 숨을 들이쉬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인데, 누군가 같이 있었다면 당연히 흔들어 깨웠을 터. 그러면, 죽을 목숨을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수면 중에 급사할 경우, 대부분 심장마비나 심근경색으로 진단된다. 심장마비는 격한 운동이나 극도의 스트레스 등으로 심장에 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심장이 멈추게 되는 결과다.

 

한편 치매노인의 수면과 관련해서 참으로 놓치기 쉬운 중대사가 가족부양자의 수면장애 문제이다. 수면건강연구소 황청풍 소장의 연구에 의하면, 치매노인 가족부양자 중 많은 수가 수면장애를 경험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부양자가 배우자이고, 치매노인의 일상생활동작(ADL:Active Daily Living)이 좋지 않을수록, 주관적인 건강이 좋지 않다고 여길수록 수면장애를 더 많이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역시 치매노인 가족부양자에게 중요한 부담이 되는 만큼 남모르는 불편으로 덮어두기보다 공개적으로 나누고 개선해 나가는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

 

이 점에서 고백하자면, 어머니와 함께 한 방에서 10년을 자는 동안, 내게 벌어진 불편이 기억력 저하의 문제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연구팀이 워싱턴 하이츠에 거주하는 여성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수면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수면 부족은 기억력을 포함한 뇌 기능의 저하, 즉 인지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매우 높다.

 

뇌의 측면에 위치한 해마는 단기 기억을 저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루 종일 전두엽에 기억이 저장되는데, 밤에 자는 동안에는 해마에 옮겨진 후 전두엽에 다시 옮겨져 영구적으로 저장된다. 그런데 수면이 부족할 경우, 해마의 기능에 영향을 미쳐, 일시적인 기억이 영구적인 기억으로 통합되는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출처: https://kormedi.com/1628482).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이 수면부족과 기억력 저하의 문제는 일전에 이미 본 지면을 통해 고백한 바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서 여기까지 쓰고 나서야 문득 떠오르니, 그야말로 내 기억력 저하의 문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게다가 수면부족은 치매위험을 증가시킨다니, 하루 7〜8시간은 잠에게 독점적 소유권을 내줘야만 하리라.

 

연구자료에 의하면, 많은 노인 치매 환자들이 만성적인 수면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기억력 저장에 영향을 미치고 뇌가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란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또한 뇌 위축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뇌 기능의 퇴화를 악화시킬 수 있으며, 비만 위험 또한 증가시킨단다. 신체의 신진대사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 더 원활하게 작동하는 반면, 부족한 수면은 체중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의 경우는, 어머니와 함께 밤을 지내면서 부족한 수면으로 인해 식욕이 저하돼서 그런지, 체중이 자꾸만 감소해서 고민이다. 게다가 수면장애는 고혈당·고혈압·비만과 같은 대사 장애를 유발할 수 있고, 심할 경우 심장병과 뇌졸중을 포함한 심혈관 질환의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니..., 고혈압이 있는 내게는 이 또한 문제이지 않을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불충분한 수면은 신체의 호르몬·내분비계·신경계를 방해할 수 있고, 이것은 면역력 약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니, 더 이상 방치하면 아니 될 사안이다.

 

사실은, 기억력 문제에 직면한 이후로는 약 6개월 정도 어머니와 다른 방을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주무시면 살그머니 나와서 다른 방에서 자기로 한 것이다. 정작은 어머니가 가장 나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 말이다. “정옥아, 이디 왕(여기 와서), 나 옆이 누우라 이. 막 또똣허고 펜안허다(아주 따뜻하고 편안하다).”라는 어머니 권유에, 어제 저녁부터 다시 어머니와 같은 방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하룻밤을 자면서 깨달은 것은, 어머니가 많이 쇠약해지셨다는 사실이다. 그전처럼 하룻밤에 두 세 차례 요강을 사용하는 소음도 없으시고, 그저 죽은 듯이 고요하니, 혹시나 싶어서 어머니 코에 귀를 갖다 댈 정도다. 아, 내 삶의 강은 왜 이리도 거꾸로 흐르는가?

 

이웃집에서 호박 하나를 주었다. 어머니에게 죽을 쒀서 드리란다. 보기가 너무 좋아서 수많은 호박들이 놓여 있는 사진을 찾아, 어머니 방에 붙여 드렸다. “아고, 우리집에 호박이 풍년이로구나!” 하며 좋아하시는 어머니. 호박은 늙을수록 더 탐스럽고 달콤하다. 우리네 인생도 이 호박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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