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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가장 아름다운 귤림추색(橘林秋色)의 계절을 바라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무엇일까?

 

지난밤엔 흙을 적실 만큼 비가 내려서 밤사이에 기온이 서늘해졌다. 저녁에 열어둔 창문 사이로 가을바람이 들어와 이불을 비집고서 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나 보다. 그 기운에 눈을 떠서 창문을 닫으려는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혹시나 해서 얼른 나가보니, 세상에!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계신다.

 

“어머니, 이 밤 중에 여기서 미신 거 햄수과?”라고 묻는데, 입가에 거무스름한 가루가 묻어 있다. ‘배고프다’ 하시면서 반찬통에서 김을 꺼내든 어머니의 손등이 앙상하니 뼈가 드러나 보인다. 푸른 빛깔의 정맥도 눈에 띄게 선명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얼른 어머니를 부둥켜 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 어머니의 치매가 깊어지셨구나. 이를 어쩌나.

 

‘102세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깊은 동정심을 표시한다. 얼마나 힘이 들겠냐고. ‘아직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으면, ‘그럴리가 있나, 보지 않아도 당근이지!’라며 내 손을 부여잡는다.

 

사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라고 하면 침을 아무 데나 수시로 뱉는 거,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아드려야 하는 거, 화장실 출입이 여의치 않으니 뒷처리를 일일이 챙겨야 하는 거,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면 혹시나 넘어지실까 뒤따라가며 부축하는 거, 휴지를 접어서 모든 주머니마다 보관해 놓는 거, 방의 구석구석에 휴지를 말아서 감춰두는 거, 그 휴지를 꺼내서 조각조각 뜯으며 무심코 날리는 거, 가끔은 휴지 속에 음식물을 고이 싸서 여기저기 감춰두는 거, 하루 세 끼를 일일이 먹여드려야 하는 거, 식탁에 앉아서 생선이 보이면 손으로 허겁지겁 뜯어 먹는 거, 식사하시면서 동시에 식탁 위의 부스러기들을 부지런히 부엌 바닥으로 날려 보내는 거, 옷을 겹겹이 껴입는 거, 모자도 서너 개씩 포개 쓰는 거, 마당 에서 흙투성이 된 발로 돌아다니다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거....

 

한 번은 어머니가 혼자서 현관 밖으로 나갔는데,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얼른 되돌아섰는데, 아무리 애써도 문을 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끙끙 대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하고 뛰쳐나가 보니, 비에 홀딱 젖은 어머니가 두려운 얼굴로 떨고 있었다. 이제는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리는 방법마저 잊어버리신 게다. 얼른 어머니를 끌어안고서 집 안으로 들어오자 ‘잘못했다’면서 손을 싹싹 비비신다.

 

“어머니, 나우다. 나 정옥이라 마씸. 어머니 여섯번째 똘 정옥이! 이제랑 걱정허지 맙서! 어머니 잘못이 아니라 나가 잘못해수게. 어머니를 잘 챙겨봐야 헐 건디, 오꼬시 잠들어부런.... 앞으로랑 무신 일이 이시민, 우선 나 이름을 부릅서 예. 혹시 누게가 물어도 나 이름을 고르곡(말하고)... 우리 똘이 허정옥이랜, 허정옥 촞아도랜 헙서, 양!”

 

이렇게 어머니의 흉을 보고 나니, 엄청 미안하고 죄스럽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약을 잘 드시고, 미안한 웃음도 고맙다는 표정도 참으로 고우시다. 양치질도 잘하셔서 어금니 하나 빼고는 건재하시다. 이빨이 좋으시니 밥도 잘 드시고, 생선만 있으면 반찬 걱정도 하나 없다. 요양원 목욕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 없이 목욕할 때도 당신의 역할을 알아서 하신다.

 

하루 종일 정해진 의자-어머니의 자리에 앉아서 끄덕끄덕 조시지만, 식사 때가 되면 깨우자마자 일어나서 입을 크게 벌리신다. 마치 어미 제비가 물어다 준 음식을 받아먹으려고 입을 쩌억 벌리는 새끼 제비 마냥 귀여운 모습이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하시는 말씀이,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다.

 

“고맙다, 정옥아. 고맙다 이! 니가 아니라시민 이 어멍 벌써 골충(무덤에서 살이 다 썩어서 뼈만 남은 상태 혹은 오래 돼서 형태가 다소 문드러진 보잘것 없는 무덤)이 다 되어부러실 건디. 니 덕분에 이추룩 오래오래 살멍 니만 저둘려점저게(걱정스럽게 하면서 괴로움을 끼친다)....”

 

어디 고마운 게 이뿐이랴. 무엇보다도 가슴 저린 것은 어떻게든 딸을 도와주시려고 저렇게 견뎌내시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딸을 위해 드리는 어머니의 기도가 있어, 오늘도 나는 하루를 버텨낸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변경된 어머니의 ‘장기요양인정서’가 도착했는데, 가슴이 쿵 하니 내려앉는다. 장기요양등급은 4급에서 3급으로 심화되었는데, 장기요양인정계획서는 가족이 어머니를 돌보는 데 적용되는 시간이 90분에서 60분으로 줄어들어 있다. 102세 어머니가 그전보다 상태가 좋아져서 가족의 돌봄 시간이 줄어들었다니..., 이게 왠 말인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근거하여 2008년 7월 1일부터 시행한 제도로 대한민국의 노인 인구 증가, 노인성 질환(치매, 관절염 등) 및 비용의 증가, 가족 구조의 변화와 생활 양식의 변화(현대 사회는 기본이 3인 가족으로, 노인의 수발을 옆에서 계속 들어줄 여유가 없는데다 무작정 효(孝)를 바라기에는 사회 구조와 문화가 급격히 변화됨), 소득의 양극화 현상 등을 반영하여 실시되었다.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면 관할지역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방문 조사 후 국민건강보험공단 내 지역별로 구성된 장기요양보험등급판정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등급을 받게 된다. 등급은 점수에 따라 달라지며 등급에 따라 서비스도 달라지게 된다.

 

장기요양보험은 1~5등급, 인지지원등급으로 시설등급과 재가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1~2등급은 시설등급으로 요양원,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9인 이하 요양원) 같은 시설에 입소할 수 있다(시설급여). 3~5등급은 재가급여 혜택만 주어지므로 시설입소가 불가능하고 집에서만 돌봄이 가능하다.

 

어머니의 장기요양인정서는 2024년 10월 6일부터 2027년 10월 5일까지 3년간 적용된다. 어머니가 만 105세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증서인 셈이다. 지금 상태로 보면 어머니가 올 한 해를 무사히 넘기기만 하셔도 감사하지 싶다. ‘이렇게 장기간을 보증해주지 않더라도, 보호자의 요양보호 적용 시간을 하루 90분에서 60분으로 깎지는 말았어야지....’ 하는 서운함이 솟구친다. 용심이 난다. 그래도 어쩌랴. 내 어머니인 것을.....

 

 

오늘 아침 어머니는 11시쯤 일어나셨다. 밖에는 부슬거리는 가을비가 땅을 적실 정도로 내린다. 늦잠을 자기 좋은 날씨다. 그런데 어머니의 얼굴이 썩 편안치가 않으시다. 방안에 들여놓은 이동변기에 소변을 하신 후에도 계속 고개를 숙이고 끄덕끄덕 조신다. 기운이 없으신 게다. 얼른 기저귀와 옷을 갈아입히고 식탁에 앉혀드린다.

 

가시 없는 고등어가 노릇하게 구워졌다. 밥 한 숟갈에 기름진 고등어 살을 두툼하게 발라서 얹혀놓자 얼른 입을 벌리신다. 하지만 네번째 숟가락부터는 입에 있는 것을 다시 뱉어버린다. 입맛이 없으신 게다. 어느덧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서 끄덕끄덕 조신다. “어머니, 살려줍서 살려줍서 허지 말고, 이 밥을 다 드십서! 그게 어머니 소원대로 오래오래 사는 길이라 마씸!” 하며 흔들어 깨운다. 하지만 별로 반응이 없으신 어머니를, 하는 수 없이 당신의 의자에 앉혀드린다. 오늘은 비가 오는 게 밥보다 잠에 좋은 날인가 보다. 이렇게 가을비가 부슬거리는 때는 마냥 졸아도 좋으리라.

 

어쩌면 ‘배가 고프다’ 하면서 아무 때나 무작정 무언가를 드시려는 게 슬프긴 하지만, 몸의 상태는 괜찮은지 모른다. 잠이 보약이라 해도 102세 어머니가 주무실 때는 자주 코에다 귀를 대보게 된다. 깊은 잠에 빠진 어머니는 혹시나 하는 불안을 자아내기도 한다. 오히려 코를 골거나 이불을 차시면 안심이 된다. 그 이불을 덮어드리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쓰다듬을 땐 참으로 가슴 저 밑에서 감사함이 솟구친다. 행복한 시간이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으려나....

 

올가을은 우리 어머니가 살아온 시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귤림추색(橘林秋色)의 계절이기를 소원해 본다. 그리고 매그네스 요양병원의 한원주 원장님께서 선물로 주고 가신 말씀처럼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라는 시간을 가슴 따뜻하게 누리시길 빌어도 본다. 그런데 왠지 불안한 이 느낌은 어디서 불어오는 한기인가? ‘배가 고프다’는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자꾸만 목이 메이게 슬퍼진다. 부디 말도 포동포동 살이 찌는 천고마비의 이 가을에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도 밥 잘 드시고 잠도 잘 주무셔서, 저 고운 얼굴에 꽃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하시기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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