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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사흘 동안 '잠자는 공주'가 된 어머니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라는 말은 매그너스 재활 요양병원, 한원주 원장님의 마지막 인사말이다.

 

아침마다 이 병원 2층에서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라는 노래가 나지막이 울려퍼진다. 그러면, 중증환자부터 치매 노인까지 모두 자신만의 그리운 누군가, 가고 싶은 어딘가를 떠올리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노래가 끝나면 한 원장님은 병실을 순례하며 아침 진료를 시작한다.

 

한원주 원장님은 1982년, 국내 최초로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과 환경까지 함께 치료하는 '전인치유소'를 열었다. 그리고 가난한 환자들의 생활비, 장학금을 지원하며 온전한 자립을 돕는 무료 의료봉사에 전념하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아흔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환자를 돌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가족들도 힘겨워하는 치매 노인들을 위해 의술을 펼쳤다.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하며 주말이면 외국인 무료 진료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해외 의료봉사도 다녔다. 90이 넘은 고령에도 주 5일을 병원에서 숙식하며 환자들과 동고동락을 하였다. 2020년 9월 30일, 9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별세 직전인 8월 7일까지도 직접 회진을 돌며 하루 1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셨던 원장님은 갑작스레 노환이 악화돼, 하늘의 별이 되셨다. ‘사랑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남기고서(따뜻한 하루 SNS에서 발췌하여 요약).

 

절기상 가을이다.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따갑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하다. 가을을 담은 바람이 고마움을 안겨준다. 지난 여름 동안, 어머니가 힘들어하실 때마다 애타게 소리치던 가을이 아닌가. “어머니, 홑썰만 더 힘내십서! 곧 가을이 오민 시원해지곡, 추석맹질도 올거난, 온 식구들 다 모이민 사진 혼 판을 크게 찍게 마씸. 어머니 좋아허는 저 섶섬도 뒤에 나오게 해영, 예!”

 

그런데 어머니가 지난 주말까지 3일 동안 주무시기만 하셨다. 아무리 깨워도 눈을 뜨지 않으시고, 심지어 눈꺼풀을 뒤집어 보아도 꼼짝 않으신다. 덜컥 겁이 났다. 문득 그 때 그 시절의 어떤 대사가 떠올랐다. “우리 어머니, 팔십이신데, 1년 정도 사실 것 같습니다. 이 막내 아들이 장가만 가면 여한이 없으시다는데...., 좀 부탁합니다. 그냥, 저희 집에 들려서 저희 어머니께 인사만 한 번 드려주세요. 그 이상의 부담은 드리지 않겠습니다.”라는.

 

그 노총각의 간청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왜 들었을까? 자동차도 갈 수 없는 부산의 대청동 산복도로를 걸어걸어 올라갔다가, 층층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오니 조그만 집들이 일렬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조그만 대문을 밀고 들어갔더니 마당이 나오고, 한 발을 내딛으니 난간, 그리고 한 걸음을 더 옮기자 방이 나왔다. 내가 들어서자 마자, 머리가 허연 할머니가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시는 거였다. 꼭 그 총각을 빼닮은 할머니가 내 손을 붙잡으시면서 하시는 말씀, “우리 아들이 너를 만나려고 그 무수한 처자들을 마다했구나. 고맙다! 이렇게 우리 식구가 돼 주어서...”.

 

그렇게 당신의 아들을 면총각시키신, 대장부같은 나의 시어머니는 말 그대로 딱 1년을 사시고선, 어느날 자리에 누우셨다. 그리고 계속 3일을 꼼짝 없이 주무시기만 하시더니, 숨쉬기를 내려놓으시고 천국으로 떠나셨다. 이제는 어머니가 바로 그 형국이었다. 평생 동안 못 다 잔 잠을 다 자야겠다는 듯이, 정말 잠에 취하신 듯 내쳐 주무시니.... 애가 타도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언니들은 다 ‘그대로 두고, 네 마음이나 추스르라’는 의미심장한 얘기들을 하였다.

 

일요일 아침. “어머니 눈 떠봅서게. 오늘은 교회 가는 날인디..., 제발 눈 한 번만 떵 날 뵈려봅서. 어머니가 경 곧지 안헙디강? 죽어도 교회 강 죽으키여! 경헌디 어머니만 놔두곡, 어떵 나 혼자 갑니까게...” 그러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눈을 뜨셨다. 그러더니 평소처럼 일어나셔서, 방안에 들여놓은 좌변기로 가셨다. 일상 그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볼 일을 보시고, 거실로 나와서 당신의 자리에 앉으신다. 평소의 편안한 얼굴로.

 

그 유명한 동화 속의 잠자는 공주가 일어나서도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어머니, 괜찮으시꽈?”라고 묻는 내가 무색할 정도로,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마당을 바라보셨다. “어머니, 마당에 나가보카 마씸. 걸어질 건가 예?”라고 부추기자, 얼른 일어나신다. 지팡이를 드리자 아무렇지도 않으신 듯 마당으로 나가신다. “아고, 정심이가 심은 씨들이 배롱배롱 눈을 텄져 이. 거 보라. 심은대로 거둔 댄 안 해냐? 이 노물로 김치 해영 추석 맹질을 보내도 되키여!”라며 좋아하신다. 세상에! 이게 기적이구나....

 

어머니를 모시고 대문 앞의 ‘섶섬이 보이는 자리’로 갔다. 어머니가 즐겨 앉으시는 돌의자에 앉으시더니, “우리 집은 남향이난 좋고, 섶섬이 씨원하게 보이난 더 좋다 이! 니네 아방이 늘 경 고라신예. ‘집은 남향이라야 된다’고. 이 집을 봐시민, 바로 이런 집에 살아야 헌댄 헐꺼여 만은...” “이 집도 다 어머니 덕분이우다. 어머니가 서귀포 시내는 갑갑허댄, 어디 씨원헌 디로 이사가겐 하도 허난, 이디로 와수게!”라고 답하는 내 손을, 어머니가 꼬옥 붙잡으신다. “고맙다 이! 나가 이 집에 완 미국서 산 17년보다 더 오래 20년을 살았져. 경허난, 정옥아. 이제랑 나가 솔짝 가부러도 너무 울지 말라 이! 사름은 다 때가 되민 갈디로 가사 허는예. 니네 아방 이신 디로 나도 갈 날이 멀지 안 헌 거 닮다.....”

 

 

어머니는 마치 거짓말처럼 정정해지셨다. 다만 식사만 더 소식으로 바뀌었을 뿐. 오히려 더 가볍게 몸을 움직이신다. 하기야 체중이 많이 빠져서 몸이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다. 얼굴의 볼살도 수척해지고 주름도 많이 생겼다. 목에 돋아난 검은 반점이 보기 싫다고 청테이프를 꺼내서 붙이시려 하신다. 하는 수 없이 동전같이 생긴 파스를 붙여드렸다. 만족스럽지 않으신지, 다시 청테이프를 꺼내드신다. 아하, 스카프는 어떨까? 서랍에서 작은 스카프를 꺼내서 목을 가려드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으시면 만족해 하신다. 아하, 할머니도 여자이시지! 남은 세월은 더 고운 색, 더 예쁜 옷으로 입혀드리고, 브로치도 화사하게 달아드려야지 싶다.

 

요즘들어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하였다. 8시 반쯤, 사회복지사 실습을 위해 집을 나서려면 어머니가 물으신다. “어디 감시니? 나도 고치 가카?” “어머니가 하도 사름은 일을 해야 산댄 해연 기도허시난, 일 자리가 생겨수게. 경 허난, 어머니는 점심 때꼬지, 혼자서 이 집 잘 지킵서 예! 이땅 왕 점심 차려 드리쿠다 예!”

 

“알았져. 잘 되신게! 사름은 오몽을 해지는 한 일을 해야 하는 거여! 아프지 말앙 펜안허게 다녀오라 이!”

 

101세 어머니의 격려를 받으며 일터로 나가는 64세 딸. 이 시대의 아침풍경 중 하나가 아닐까. 부디 우리 어머니, 오늘도 펜안하게 잘 지내시기를... 빌면서, 일을 배우러 나간다. 오늘은 사회복지사 실습을 위해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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