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새 소나기와 숨바꼭질을 하였다. 텁텁해도 에어컨 바람이 싫은 어머니와 그러면 잠을 설치는 내가 벌인 전쟁이다.
초저녁에는 에어컨을 켰다가도 밤 중이 되면 꺼드려야 단잠을 주무시는 어머니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니, 잠자리에 들면서 에어컨을 끄는 대신 열어 놓은 거실의 통창으로 소나기가 쳐들어 온 탓이 더 크다. 부리나케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켜니, 얼마 없어 어머니가 뒤척이며 불편해하시는 눈치다.
어떻게 알았는지 때마침 소나기가 그쳐 주길래, 다시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올여름 동안 실종됐던 시원해진 밤공기가 창틈으로 스며들어 왔다. 그 사이를 뚫고 풀벌레 소린지, 매미 소린지가 귓가를 간질인다. 문득 어린 시절의 여름밤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쇠막을 개량해서 지붕을 콘크리트로 발랐다. 70평 터에 집, 창고, 변소, 수도, 화단, 눌(마소의 꼴을 저장하는 낫가리), 쇠막까지 꽉 들어찬 집에 새로 생긴 공간이었다. 그 시멘트 지붕에는 필요에 따라 곡식이나 빼때기(고구마를 썰어서 말린 절간)를 널기도 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아버지가 어촌계장 하시던 시절에 일본 수출용으로 말리던 염장 전복이다. 해녀들이 잡아 온 전복을 어촌계가 수매해서 내장은 게우젓으로 팔고, 몸통은 햇볕에 말렸다. 일본 사람들이 비싼 값에 사 먹는 것이니 얼마나 맛있을까?
궁금증에 그만 어머니 몰래 꼬들꼬들해진 전복 말랭이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 그 짠 맛밖에 없는 건전복의 배신이여! ‘이렇게 맛 없는 것을 일본 사람들은 왜 사서 먹을까?’ 싶은데, ‘전복은 바다의 산삼과 같아서 아픈 사람도 먹으면 벌떡 일어난다’라고 하시는 어머니 얼굴에는 전복에 대한 신뢰와 긍지가 해처럼 빛났다.
그런데 그 콘크리트 지붕은 낮보다 밤에 더 빛나는 역할을 수행했다. 저녁을 먹고 부채로 더위를 내쫓던 아버지가 지붕으로 올라가시면, 우리도 따라 올라가서 거적(매트)을 깔고, 그 위에 각자의 이부자리를 펼쳤다. 어머니는 여름이 되면 이불을 해체한 후, 솜은 말려서 벽장에 들여놓고, 호청(껍질)은 여름 이불로 나눠주셨다.
우리는 각자의 이불 껍데기를 품에 안고서 지붕으로 올라갔다. 잠자리 선택은 자유였지만, 혹시나 떨어질까 봐, 다들 아버지 곁으로 모여들었다. 지붕의 중심부에 모여들어서 이부자리를 펼치면, 아, 그곳은 어느새 천국이 되었다. 선선한 바람, 쏟아지는 별빛, 풀벌레 소리, 아버지의 고른 숨소리.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침이 되고 보면 아버지는 언제나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어머니는 한여름에도 안방을 고수하셨다.
어머니가 요즘 많이 쇠약해지셨다. 어제도 이틀 만에 정확히 36시간에 일어나신 어머니는 당신의 의자에 앉아서 하루 종일 졸음을 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나 김광협 시인(서귀포 호근동 출신)의 ‘유자꽃 피는 마을’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툇 마루 위에 유자꽃 꽃잎인 듯 백발을 인 조모님은 조을고, 내 소년도 오롯이 잠이 들면, 보오보오 연락선의 노래조차도 갈매기들의 나래에 묻어 이 마을에 오더이다’에서 섶섬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기가 되신다. 그 어머니가 지금 살포시 눈을 뜨시더니 뜬금 없이 한 말씀을 뱉으신다.
“오늘은 잘도 폭 허게 또똣헌 날이여 이! 낭 잎사구리가 호나토 꼬딱 안 허게(나무 잎사귀가 하나도 까딱 안 하게) 보름(바람)이 혼 점 엇다......” 그러곤 다시 졸음을 이시고서 고개를 끄덕이신다. 지난밤의 한 바탕 소란은 ‘꿈에도 모르겠다’는 듯이.
어제는 오랜만에 바다가 썰물에 밀려나면서, 동네 사람들이 보말을 잡으러 모여들었다. 아니 실상은 서귀포 등 인근에 사는 다른 동네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왠 일인지 보목동 사람들은 일요일에도 밭으로 일하러 나가시는가, 해녀님들의 물질이 없는 날에는 바다가 다른 사람들 세상이 되고 만다.
언제부터인가 바다를 지키던 해녀님도 사라지고(동부, 중부, 서부로 나뉜 보목동 바다에서도 섶섬 앞을 차지한 중부 바다로 대부분의 외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전에는 보말 채취도 당번을 정해서 엄중하게 지키시던 해녀님들이, 요즘은 웬일인지 간섭을 안 하신다. 이러다가 바다의 보말들이 씨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리면 어떻 하나 싶은 걱정이, 이제는 내 차지가 되었다), 바다는 외지인들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바다가 짚 앞이라 비교적 구체적인 자원의 분포 상황을 잘 아는 나는 보말이 많이 포진해 있는 곳으로 앞장서 간다. 그러면 안면이 있는 분들이 따라서 들어오고, 우리는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면서 이따금 물이나 간식을 나누기도 한다. 어쩌다가 낯선 이들이 와서 소라를 채취하는 낌새가 보이면, 심각하게 경고를 날려 준다. ‘소라를 잡은 게 발각되면, 벌금이 5백만원이우다’라고).
오늘도 이 글은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정작은 어머니의 일상에 대한 공유가 목적인데 말이다. 어쨌든 내가 잡아 온 보말을 보면서 환호성을 지르신 어머니는 삶아낸 보말을 까시면서 계속 당신의 입으로 넣으셨다. 게다가 보말이라도 많이 드시면 다행이라 여긴 나도 맛있어 보이는 큰 보말이 나타나면 얼른 입에 넣어 드렸다.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한 채.
한밤중에 어머니 방에서 이동변기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요즘은 차가운 에어컨이 싫은 어머니와 텁텁한 공기가 싫은 내가 밤 중에는 별거를 하고 있다. 어머니는 안방에, 나는 거실에 따로 떨어져서 각자의 이불을 편다.
무슨 난리인가 싶어서 화다닥 어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가 보니, 어머니의 방이, 옷이, 이불이 분뇨로 칠갑 되어 고약한 냄새를 내지르고 있다. 보말을 많이 드신 게 설사로 이어진 어머니가, 스스로 대변을 처리해 보려다가 변기통을 엎지르신 거다.
정작 일이 커지면 의외로 더 냉정해지는 법. 나는 차분하게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이부자리를 바꾸고, 변기를 씻고, 물걸레로 방을 닦았다. 그러면서 이러한 밤을 무수하게 보낸 어머니의 지난 날들을 떠올렸다.
그 추운 겨울의 새벽에, 어머니가 시어머니의 난장판 잠자리와 똥 묻은 옷을 짊어지고 바다로 나가시던 발걸음을. 벽에 묻은 오물을 닦는데,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어머니의 꿈은 이후에 천국에 올라가면 첫걸음에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다. ‘허태행씨는 날 버리고 어디로 갔나?’라고 무시로 내뱉는 혼잣말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스며 있다. 다행히 80세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천국에서 103세 어머니를 만나더라도, 그곳은 나이도 신분도 외모도 구별이 없다니, 그럴 수 있으리라. 아버지는 한눈에 어머니를 알아보시고, 덥석 얼싸안으시곤, ‘오래 기다렸노라고, 참 보고 싶었노라고, 아주 잘 왔다’라며 어부바를 해주시리라.
그동안 어머니의 백세 일기를 기록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미움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가 있었다. 특히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데 대한 일상의 개인사들을 허심탄회하게 쏟아놓고 나면, 우선은 어머니에게 미안해져서, 삐뚤어졌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였다.
하루 종일 주무시기만 하거나, 무얼 드려도 입을 꾹 다물거나, 병원을 오가며 진이 빠지는 날은 ‘나 혼자 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도 백세 일기에 마음을 옮겨놓고 나면, 우선은 반성이 되고, 다음은 미안해져서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내 마음과 일상이 어머니와 어우러져서, ‘이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살아감은, 더 없는 축복입니다’라는 기도가 고백이 된다.

<제이누리> 덕분에 서너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어머니와의 동행이 4년째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 글을 맺는 시간, 어머니께서 한 말씀을 하신다. “우리 정옥이 귀는 꼭 나영 닮았져 이! 복시락(복스러운) 헌 게...”.
어머니의 마음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가을 하늘을 닮았다. 어머니가 시인이라면, 요즘의 나에게 이런 시 한 편쯤 들려주실 것 같다. 인생이 산산조각 난 사람처럼 보이는 요즘의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고즈넉이 읊어주실 것이다.
어부(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끝>
** 지금까지 '어머니의 100세 일기'를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제이누리>는 앞으로도 장수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년을 위한 동행기획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더 나은 기획으로 다시 만나겠습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