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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삶이란 ... "싸는 물 이시민 드는 물 이신 거" (3)

제주특별자치도가 수행하는 ‘제주해녀 생애사 조사’를 맡은 연구원이 보목마을을 찾아왔다. 어머니를 선정한 이유는 제주해녀로서 외국에 가서 살다가 돌아온 점이 돋보인다는 거였다.

 

어머니의 물질 생애는 ‘ᄌᆞ냥허곡 부지런허민 하늘이 도와’라는 제목으로 연구보고서에 실렸다. ‘숨비질 베왕 ᄂᆞᆷ주지 아녀’라는 제목의 책에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가장 길게 게재됐다. 그 때문에 어머니는 다시 해녀박물관 영상실의 주목을 받았다. 해녀들의 물질경험을 방문객들에게 들려주려는 프로그램의 취재대상이 된 것이다.

 

집으로 찾아온 취재진에게 어머니는, 어떻게 2남7녀를 낳으면서 물질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실감나게 얘기했다. “아기를 배여도 열 달 동안은 굳짝 물질을 해서. 아기가 나오민 사흘만이 다시 물에 들어가곡 허멍. 경헌디 아기가 빠져불민 배가 너무 허전해영 자꾸 허천디레 자빠지곡 히엿뜩 히엿뜩 허는 거라. 허는 수 어시 수건으로 존둥이를 졸끈 졸라매영 물질을 했주. ᄒᆞ루는 물질허는디 애깃배를 맞췅 배가 막 아파오는 거라. 촘당 버천 물에서 나완 집으로 서둘렁 내돌았주. 경헌디, 오꼬시 아기가 막 털어짐직 허는 거라 이. ‘아이고, 설운 아기야. 홑썰만 촘았당 나와도라 게. 질 바닥에 털어지민 니도 고생, 나도 허주 아니냐’ 허멍 달랬주. 홈마 마당에서 나왐직 핸게마는, 가이가 효잔고라 저녁밥 먹언 홑썰 더 있단 나와 줜. 아이덜이 그추룩 다 착해연, 몬딱덜 저녁에 나온 거 닮은게. 생각해 보민, 나 혼자 물질ᄒᆞᆫ 게 아니라. 우리 아이덜이 모다들엉 다 ᄀᆞᇀ이 도와주난 ᄒᆞᆫ 거주. 경 안해시민 물질을 못해실 거난, 우리 집은 동녕바치 추룩 살아실 거여(임신을 해도 열 달 동안 계속 물질을 했어. 아기가 나오면 사흘 만에 물에 들고 하면서. 그런데 아기가 빠져나오면 배가 너무 허전해서 자꾸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어지러운 거야. 하는 수 없이 수건으로 허리를 질끈 졸라매고 물질을 했지. 하루는 물질하는데 산기가 일어서 배가 막 아파오는 거야. 참다 못해서 물에서 나와 집으로 서둘러 내달렸지. 그런데, 그만 아기가 막 떨어지려는 거야. ‘아이고 서러운 아기야, 조금만 참았다가 나와 주렴. 길 바닥에 떨어지면 너도 고생, 나도 창피 아니냐’ 하면서 달랬지. 하마터면 마당에서 나올 듯하더니, 그애가 효자인지 저녁밥 먹고 나서 좀 있다가 나와 주대. 아이들이 그렇게 다 착해서, 모두들 저녁에 나온 것 같아. 생각해보면 나 혼자 물질한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모여들어서 다 같이 도와주니까 한거지. 그러지 않았다면 물질을 못했을 테고, 우리 집은 거지처럼 살았을 거야)!”

 

 

어머니는 육지에서 난바르 갈 때 노를 저으며 부르던 노래도 신바람 나게 부르셨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하면서 힘차게 두 팔로 노를 저으면서. 그렇게 한 두 시간을 찍은 것 같은데, 정작 영상은 2∼3분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어머니 덕택에 온 형제들이 버스를 대절해서 해녀박물관을 구경하지 않았던가. 어머니는 박물관 1층의 영상실에서 아이를 낳던 때의 상기된 얼굴로 관람객들에게 당신의 물질시대를 얘기하고 있었다. 91세의 대포동 김성춘 할머니는 제주의 어머니인 해녀의 위대함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하루 종일이 처음처럼 기운차고 씩씩했다.

 

보목마을로 이사를 가고 나서부터 동생도 그렇게 해녀가 되고 싶어 하였다. 해녀들이 물에 드는 날은 몇 시간이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물질을 갈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도 해녀가 될 수 있다면서, 한립읍 귀덕리에 문을 연 한수풀해녀학교를 부지런히 다녔다. 대학생처럼 한 학기 동안 열심히 물질을 배우는 눈치였다.

 

정작은 입학식 날부터 해녀선생님이, ‘닌 이제라도 우리영 ᄀᆞᇀ이 물질해도 되키여. 어디서 하영 ᄒᆞ여 본 솜씬게(넌 이제부터 우리와 같이 물질해도 되겠어. 어디서 많이 해 본 솜씨네.)’라며 동생의 물질기량을 인정해 주었단다. 그럼에도 동생은 물질이 좋아서, 그리고 졸업하고 나면 해녀가 될 수 있을까 하여 개근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학교는 새로운 해녀를 훈련시키고 배출하기보다는 제주해녀를 홍보하는 게 목적이었다. 해녀가 되고 싶었던 동생의 간절한 꿈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정녕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일까? 어머니의 입버릇처럼 동생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생겼다. 이번에는 서귀포시 법환동에 좀녀마을 해녀학교가 개교한 것이다. 실제로 해녀를 양성하고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을 띄고서 말이다. 이번에도 동생은 열심히 해녀학교를 다녔다. 자기가 반장을 맡았다며, 온갖 부지런을 다 떨었다. 해녀축제도 참가하고, 해녀 영화도 출연하고, 해녀를 주제로 한 TV도 찍었다.

 

그리고 졸업을 한 후에는 보목 포구에서 현지 해녀의 멘토링을 받으며 인턴십도 마쳤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어촌계의 만장일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오래 된 동생의 해녀꿈은 순식간에 좌절되고 말았다. 보목마을은 바다 면적에 비해 해녀수가 많아서 해녀의 1인당 소득이 적은 편이다. 그런데 동생이 새로 들어오면 기존해녀의 몫이 더 떨어진다는 게 거절의 이유였다. 보목바다는 하수처리장과 양식장, 하천물로 인해 오수가 많이 유입되는 편이다. 동생은 바다가 오염돼서 잡을 물건이 별로 없다며 예전의 대포 바다를 그리워하였다. 보목바다가 이전처럼 풍요로워진다면, 동생도 언젠가 해녀가 될 수 있을까?

 

 

동생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쓴다. 제주해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려면 새내기 해녀들이 계속 배출되어서 ‘해녀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애기 좀수를 키우고 할망바당을 배려하던 과거의 아름다운 해녀문화가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미래세대로 계승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동생처럼 해녀를 해보았던 세대들, 해녀가 되고 싶은 이들이 가슴팍에 태왁을 안고서 마음껏 숨비소리를 내지를 수 있는 바다, 딸을 키워낸 그 바다에서 어머니의 숨비질이 그 딸들에게 대물림되는 바당밭, 그런 풍경이야 말로 제주바다가 창조된 태초의 진면목이 아닐까?

 

 

이 글을 맺으면서, 올해로 94세가 된 어머니를 추억의 바다로 초대하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도 어언 13년이다. 어머니의 일생은 어떠한 바다일까? ‘어머니,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요?’라고 묻는다. “물질. 물질이 젤로 힘들었주. 물질은 목숨을 내놓고 허는 일이 아니냐.” 그래, 어머니 인생의 파도는 물질이었구나. 물밀듯이 밀려오는 파도를 등지고서 두발로 하늘을 박차고 머리를 물속으로 처박으며 숨쉬기를 멈추고 들어가는 물질,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노동이 아니겠는가.

 

그럼, ‘어머니 생애에서 가장 보람되었던 일은 무엇이었어요?’ “그거사 9남매를 물질로 공부시킨 거주게. 니네들 공부는 순전히 물질 덕분인 줄 알라 이! 바당, 참 고마운 거여. 귀인이 따로 없주.” 그렇구나, 저 바다 덕택에 우리 2남7여가 학교 마당을 밟을 수 있었구나. 정녕 고마운 바다, 기실로 거룩한 물질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한평생은 어떠했나요?’라고 물어본다. “ᄒᆞᆫ 시상 사는 거, ᄒᆞᆫ 순간이여. 바당 어서시민 어떵 살아시코 이? 싸는 물 이시민 드는 물 이신 거. 아명 죽어점직 해도 ᄎᆞᆷ으멍 살암시믄 살아지는 거. 우리 어멍이 살아온 거추룩 ‘ᄌᆞ식 ᄒᆞ나 믿엉 살아 온 세월’이고나.(한 세상 사는 것, 한 순간이란다. 바다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썰물이 있으면 밀물이 있는 거다. 아무리 죽어질 것 같아도 참으면서 살다보면 살아지는 것. 우리 어머니가 살아온 것처럼 ‘자식 하나 믿고 살아온 세월’이구나)!”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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