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9 (화)

  • 맑음동두천 32.0℃
  • 맑음강릉 33.9℃
  • 맑음서울 32.7℃
  • 맑음대전 32.8℃
  • 맑음대구 31.6℃
  • 맑음울산 31.0℃
  • 맑음광주 32.3℃
  • 구름조금부산 31.5℃
  • 맑음고창 33.1℃
  • 구름조금제주 29.9℃
  • 맑음강화 30.8℃
  • 맑음보은 30.5℃
  • 맑음금산 30.8℃
  • 맑음강진군 33.3℃
  • 맑음경주시 31.9℃
  • 구름조금거제 29.1℃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어머니의 100세 일기] 나 영장은 니가 책임져주라 이!

 

이러다가 온 세상이 소멸해 버리는 건 아닐까? 무서움이 솟구칠 정도로 덮쳐오는 무더위가 연일 기세를 더한다. 마당의 잔디는 아침마다 물을 주는데도 군데군데 누렇게 죽었다. '여름 더위에 가장 약한 게 노인'이라더니, 장례식 소식도 간간이 날아든다. 주로 90세가 넘어서 요양원에 가 계신 어머니들이다. 제주에서 장수하는 노인들의 평균 수명은 할아버지가 86세, 할머니가 92세로, 약 6살 정도 차이가 난다.

 

103세 우리 어머니도 예외가 아니신지, 오늘 아침에는 정색을 하시고서 한 말씀을 하신다. "정옥아, 나, 영장(장례식)은 니가 책임져주라 이! 누가 책임져 주느니게. 깨끗허게 책임져, 이!"

 

"알아수다, 어머니! 나가 어머니랑 23년을 같이 살아신디, 당연허주 마씸. 홑썰도(조금도) 걱정허지 맙서, 예!"

 

"돈은 경 하영 안 들 거여(돈은 그렇게 많이 안 들 거다).... 니네는 비채도 경 하지 안 허고(너희는 부채도 그렇게 많지 않고). 아버지도 죽언 책임해 줘시난. 속는 사름이 속주(수고하는 사람이 수고하지), 아무나 안 해준다. 아무리 애삭허고(억울하고) 속상허곡 가슴이 아파도, 니가 책임져 도라, 이!".

 

그러시곤 아예 노래를 부르신다. "정옥아, 이 어멍을 책임져, 책임져, 책임져....!)

‘나 살려줍서’를 기도처럼 되뇌던 어머니가, 처음으로 내뱉는 죽음의 예고가 정작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아직은 그런대로 식사를 잘하시는 편이므로. 요양보호사 표준교재가 말하는 ‘임종 징후’는 다음과 같다; ⓵대부분 누워 있게 되며 음식 및 음료 섭취에 무관심해진다. ⓶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⓷맥박이 약해지고 혈압이 떨어진다. ⓸숨을 가쁘게 깊이 몰아쉬며 가래가 끓다가 점차 숨을 깊고 천천히 쉬게 된다. ⓹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점차 피부색이 파랗게 변한다. ⓺대소변을 의식하지 못하고 실금하게 되며 항문이 열린다.

 

또한 ‘아버지를 책임졌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23년 전,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언니 부부와 함께 미국으로 갔으니, 언니네 수고가 한결 더 많았다. 미국의 장례식은 우리와 달리, 망자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얼굴에도 곱게 화장을 한 후 관에 눕혀서 조객들이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쇼잉(showing)’이 특색이었다.

 

그 덕분에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며 비통에 잠겨서 장례식에 도착한 우리는 통곡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앞섰다. 아버지는 평소처럼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서, 눈에 익은 양복을 입으시고, 주무시듯 평온하게 누워 계셨다.

 

언젠가 한국에 오셨을 때 우리가 사드린 단팥색의 넥타이를 친숙하게 매시고, 마치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처럼.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 하고 엎드려서 껴안은 순간, 그 딱딱한 감촉의 생경함이 가슴을 서늘케 하였다.

 

‘아, 우리 아버지는 여기에 계시지 않구나.....’ 하는 인식이 머리를 스치면서, 한 번 더 차가운 기운이 가슴속을 후벼파고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는 왠지 모를 평안함이 요동치는 심장을 감싸며 따스하게 온몸을 안아주었다. 어쩌면 천국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음 앞에서 샘물처럼 솟구쳐야 할 울음이, 아니 마른 얼굴을 가만히 만져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담담하게 슬픔을 머금고 계신 어머니의 표정이,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어머니는 한결같은 표정으로 조객들을 마주했고, 슬픔을 표하는 교우들에게 오히려 위로를 전했다. "우리 장로님은 천국으로 가셨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라고.

 

그 뚜렷한 표준어가 제주도 어머니를 미국의 시민으로 다시 보게 하였다. 17년을 미국에서 살아오신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한 어머니의 절제된 모습에, 우리는 장례식을 ‘천국 환송식’이라 부르는 교우들의 인사를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두 아들이 장례식 전반을 주장하였으므로, 상주 같은 느낌도 그다지 생기지 않았다. 그야말로 미국 영화 속에 펼쳐지는 장례식 장면처럼 평안하고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어쨌든 어머니는 이 여름을 잘 지나시는 듯 하다. 그럼에도 백 세 어머니를 모시고 사노라면 뜻밖의 일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어느 날은 에어컨 리모컨이 실종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법석을 치르기도 하였다. 에어컨을 처음 켤 때 온도가 24도로 시작되는 탓에, 처음 10분이 지나면 다소 공기가 차게 느껴진다. ‘이제는 온도를 높여야지’ 하고 리모컨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보통 탁자 위에 던져놓는데 말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따로 없다. 마침내 전기 코드를 뽑아서 에어컨을 멈추고서 탁자 위의 물건들을 하나 둘 치워본다. 세상에! 당신의 부채 밑에 얌전히 숨겨놓았다. 요즘 들어 온 식구가 겪는 우리 집의 일상사다.

 

어느 날은 마당으로 나가시더니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으신다. 무슨 일인가 해서 나가보니, 세상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접시꽃을 마구 꺾고 계신다. 고추와 상추 사이에 심기운 꽃이 무슨 죄가 있으랴만, 어머니 눈에는 채소가 아닌 것은 모두가 잡초다. 다행히 힘에 부쳐서 뽑아내지는 못하고 꺾어 놓은 꽃들이 사력을 다해 고개를 들며 꽃을 피워냈으니 망정이지. 나의 사철 중에 초여름이 그토록 눈부신 이유는, 평범한 접시꽃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뜻밖의 화사함을 드러내는 연유다. 그 은밀한 사연을 103세 어머니가 꿈엔들 헤아릴 수 있으랴.

 

요즘 들어 어머니가 일으킨 사건 중의 압권은, ‘고요한 아침의 오줌 홍수’이다. 밤새 어머니가 채워놓은 이동 변기의 소변을 비우려고 변기통을 들고 나간, 그 눈 깜짝할 사이에, 어머니가 일어나서 밤새 축적한 소변을 시원하게 방출하신 것이다. 방으로 들어와 보니, 아뿔싸, 오줌이 바다의 용천수처럼 흘러서 바닥을 지나 요를 적시고, 이불속으로 스며들었다. 졸지에 방바닥을 차지하고 있던 섬유 소재들이 일제히 세탁기로 소환되고, 방은 대청소를 맞아 한바탕 난리를 거친 후에 방향제로 마무리되었다. 어찌 보면 전화위복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한나절을 소비하며 깨져버린 하루는, 언젠가 불한당처럼 떠올라서 내 마음을 후려칠 일이었다. 추억이 아닌 후회로 말이다.

 

오늘도 어머니의 103세 여름이 숨 막히도록 무겁게 지나간다. 2025년 여름, 유례없는 무더위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단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제주도를 포함한 중부 이남 지역에서는 7월 26일(토)부터 29일(화)까지 낮 최고기온이 33~34°C를 기록하며 더위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행히 7월 31일(목)부터는 흐린 날씨와 함께 비나 소나기가 예보되므로 일부 지역에서는 무더위가 다소 누그러질 가능성이 있다. 그때까지 노약자들, 특히 집에 머물고 계시는 연로한 어르신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기록적인 무더위를 잘 견뎌 내야 하리라. 노인은 체온조절 능력과 갈증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가 만성질환과 약물 복용으로 인해 폭염에 특히 취약한 연령층이다.

 

게다가 사회적 고립과 정보 접근의 한계, 실외 작업 또는 외출 시 대응력 부족 등이 문제다. 그러므로 1)수분 섭취: 갈증이 느껴지기 전에 하루 6~8컵의 물을 나눠서 자주 마실 것, 2) 식사는 가볍게, 자주: 기름지거나 짠 음식은 피하고, 죽‧국수‧채소 위주의 식단이 좋음, 3) 실내 온도는 26~28도 유지: 에어컨을 무조건 참지 말고, 적절한 냉방을 실시하고, 하루 2회 이상 환기를 통해 실내 공기를 순환시킴, 4) 외출은 오전과 저녁 시간으로 낮 12시~4시는 외출을 피하고, 외출 시에는 모자‧양산‧통풍 잘 되는 복장이 필수다.

 

참고로 기상청의 폭염 특보 기준은, ‘일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되는 경우’로 정의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87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