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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 아직은 그 강을 건너지 마세요 (2)

노인들은 여름에 많이 돌아가시는 듯 하다. 어제는 고향마을에서 어머니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교회 권사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93세의 권사님은 기력이 다하신 듯, 사진 속에서도 더 바랄 게 없으신 표정으로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계신다.

 

상사(祥事)이신 듯, 상복을 입은 자손들의 표정 또한 평안해 보인다. 복을 누리고 오래 산 사람의 장례를 ‘상사’라 하는데, 보통 별 다른 지병 없이 평균수명 이상 장수하다가 잠 자듯이 죽은 경우에 쓰는 용어다.

 

장수의 기준은 별도로 없지만, 요즘은 80~90대 이상을 살다가 자연사했다면 호상으로 보는 편이다. 통계청의 생명표에 의하면, 2020년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남자가 80.5, 여자가 86.5이다.

 

하지만 장례식장이 너무 슬픔에 차 있는 것을 원치 않아서 고인이 생전에 '내가 지금 죽어도 호상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거나, 유족이 '그래도 괴롭지 않게 평안히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다'라고 당사자들이 말하지 않는 한, 조문객 쪽에서 먼저 ‘호상’이라 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러운 말이다. 아무리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더라도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 표현되지 않는 슬픔을 공감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호상인 경우, 장례식을 축제처럼 떠들썩한 분위기로 치루는 곳들도 세계적으로 많다. 가나의 경우, 관짝밈(Coffin Dance)이 잘 알려져 있듯이, 호상일 경우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축제같은 장례식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비교적 크게 아프지 않고 평안히 가셨다면 일가친척들이 마치 좋은 일을 보내듯이 음식을 잘 차려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보낸다.

 

또한 기독교식의 장례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고인이 천국으로 가셨다’는 의미에서 ‘소천(召天)’이라 하며, 비교적 편안하게 장례를 치룬다. 참고로 죽음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영면(永眠)은 ‘영원히 잠들다’라는 뜻이고, ‘영서(永逝)’라고도 한다. 그리고 별세(別世)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난 경우에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인데, ‘하세(下世)’, ‘타계(他界)’라고 보다 완곡하게 부르기도 한다.

 

한편 우리나라 보험개발원이 월별 사망통계(2006~2010년)를 기초로 계절에 따른 연령별·원인별 사망자 수 차이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고연령일수록 겨울에, 저연령일수록 여름에 사망하는 비중이 높다. 이를테면 70세 이상 고연령층은 12월의 사망자 수가 4605명으로 월평균 대비 13% 높은데 반해, 29세 이하 저연령층은 8월의 사망자 수가 1343명으로 월평균보다 11% 많다. 그러므로 노인들이 여름에 많이 돌아가시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해 가능한 오해다.

 

요즘처럼 병원의 영안시설이나 조문환경이 여의치 않았던 시절에 여름 장례, 특히 집안의 어르신인 노인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온 동네의 행사였다. 그러다 보니, ‘여름에 노인들이 많이 돌아가신다’라는 생각이 고정관념화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겨울철 고연령층의 주된 사망 원인은 암(26.0%), 심장질환(15.9%), 뇌혈관질환(8.4%), 폐렴(6.7%), 당뇨병(2.3%) 등과 같은 질병들이다. 특히 12월에는 심장질환·뇌혈관질환·폐렴의 사망자 수가 1460명으로, 8월(1150명)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반면에 여름철 저연령층의 주된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다. 휴가철 놀이문화의 여파가 아닌가 싶다. 교통사고(21.4%)에 이어 자살(18.8%), 암(13.1%), 심장질환(5.9%), 추락사고(4.4%) 순으로 사망의 원인이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통과하게 되면 드디어 장수의 지대에 이르게 된다. 이제 100세가 되신 우리 어머니의 경우에도, 되돌아보면 대략 세 번의 고비를 넘기셨다. 첫 번째는 93세에 폐렴으로, 두 번째는 96세에 대퇴부 골절로, 세 번째는 100세에 기력이 다해서 돌아가실 뻔 하였다.

 

물론 1923년생이시니 온갖 전염병, 전쟁, 재난, 기아, 출산 등이 진을 친 죽음의 계곡을 무수히 지나셨겠지만 말이다. 더욱이 17세부터 본격적인 해녀가 되어 60이 넘도록 물질을 하셨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요즘들어 어머니는 기력이 다하신 듯 소파에 기대어 조시거나 등이 구부러지도록 고개를 수그려서 조신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젖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저 새근새근 자는 게 삶의 전부인 것처럼. 어머니는 아기에서 출발해서 소년, 청년, 장년, 노년을 지나 다시 아기가 되신 듯 하다. 어머니처럼 장수하신 경우를 보면, 인생이란 아기로 태어나서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동심원처럼 생각된다.

 

요즘은 드시는 것도 마치 아기때처럼 숟가락으로 일일이 떠먹여야 한다. 식탁을 차려놓고 어머니 자리에 앉으시도록 해도, 음식을 물끄러미 쳐다보시기만 하신다. 예전처럼 많이 드시지도 않는다. ‘맛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이유다. 아기처럼 삼키기 쉬운 유동식도 조금 드시곤 고개를 돌려버린다.

 

아기라면 ‘도리도리’라도 하면서 얼르고 다시 먹이기를 시도해보겠지만, 어머니는 일단 고개를 돌리면 도무지 방법이 없다. 입을 굳게 잠그고서 조금도 틈새를 벌리지 않으신다. 그러니 점점 기력이 약해질 수밖에. 감기가 들거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람앞의 촛불처럼 힘없이 꺼져버릴 것만 같다.

 

그러니, 식사 시간마다 먹이기와 안먹기의 식탁 싸움은 무한한 인내와 시간, 눈치, 요령이 요구된다. 먹기만 하면 살텐데...,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을텐데 싶어서, 오늘도 전쟁을 벌인다.

 

요양보호사책에 의하면, 임종에 임박한 노인들은 우선 음식 및 음료 섭취에 무관심해진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임종징후들을 보인다; ①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② 맥박이 약해지고 혈압이 떨어진다. ③ 숨을 가쁘고 깊게 몰아쉬며 가래가 끓다가 점차 숨을 깊고 천전히 쉬게 된다. ④ 손발이 차가와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점차 피부색이 파랗게 변한다.⑤ 대소변을 의식하지 못하고 실금하게 되며 항문이 열린다. 다행히 이중에서 어머니에게 전적으로 해당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숨쉬기가 어렵다거나, ‘날 아프지 안 허게 해도라’고 하소연을 하시니, 마음이 아프고 급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요양병원 간호사의 노인 환자 임종간호 경험’에 대한 연구를 보면, 임종을 준비하는 간호행위를 통해 노인들의 ‘죽음을 예고하는 태도와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요컨대, 젊은 환자들에 비해 예고치 않은 죽음(sudden death)이 많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노인들의 임종은 그 태도와 행동을 통해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반적인 허약감이 점차 진행되면서 의식도 서서히 저하되고 활력증후도 조금씩 변해가는 걸 볼 수 있다. 대부분 깊은 수면처럼 주무시다가 서서히 호흡이 느려지면서 어느 순간 호흡이 멎는 걸 관찰하게 된다. 젊은 환자들에 비해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느낌이다.

 

올해들어 100세가 되신 어머니의 삶을 주시해 보면, 음식 섭취의 감소에 따른 허약감이 임종징후의 출발점인 게 확실하다. 간호사들 또한 임종의 단서(기미)에 대해 ‘식사량이 줄거나 삼킴 기능의 문제로 기력이 약해질 때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노인 환자의 활력징후가 급격하게 변하면 임종을 직감하고 임종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긴장을 하게 된단다.

 

“일단은 드시는 게 달라지시더라고요... 인제 뭐 기력이 쇠약해지시니까, 안 드시거나, 드셔도 조금밖에 못 드시고... 삼킴도 아무래도 힘들어지시고...”라는 간호사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 어머니의 요즈음 일상과 그대로 일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간호사들은 ‘금방 돌아가실 듯 하다가도 다시 살아나시는 분이 있으니 임종을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방금 의사도 포기하고 ‘일주일 밖에 못 살겠다’ 하셔서 호스피스 케어도 다 해주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밥을 먹고 싶다’고 하시면서 두 그릇씩 잡수시며 잘 사시는 경우도 있단다.

 

그러므로 간호사들이 기울이는 최선의 정책은 ‘생명을 붙잡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임종징후를 보이는 노인 환자들에게는 ‘간호사로서 환자의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호흡유지와 영양공급에 사력을 다한다는 얘기다.

 

생명연장을 원하지 않는 보호자가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처치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보호자 모르게 식이를 공급하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활력징후를 측정하면서. 급하다 싶으면 간호사실 가까이 환자를 옮겨 놓고 신체 상태의 변화를 조금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니 말이다. 참으로 고개가 숙여지는 간호사들의 직업 정신이여.

 

그래, 바로 이거다. 어머니의 임종을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으니, 마치 씨름을 하듯이 임종의 징후들을 노려보면서 여차하면 제어의 샅바를 더욱 단단히 틀어쥐는 것이다. 임전무퇴의 용감한 간호사처럼 말이다.

 

오늘도 어머니는 요양원의 주간보호에 나가지 못하셨다. 워낙 연세가 있으신데다가 여름날의 막바지 더위가 무지막지한 용심을 부리면서 활력을 떨어뜨리는 때문이다. 더욱이 태풍을 예고하는 습기가 바닷바람을 타고 올라와 공기의 무게에 눅눅함을 더하니, 쇠약한 어머니가 일어나 앉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거의 실신하다시피 누워 있는 어머니가 이따금 신음을 하면서, ‘정옥아, 나 살려 도라’고 중얼거리신다. 죽어도 내 이름, 정옥이를 잊으면 안된다고, 급하면 무조건 ‘정옥아, 나 살려 도라’고 외치시라고 하였더니, 저리도 간절하게 부르신다.

 

문득, ‘임종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간호사들의 고백이, 내 가슴 속에서 큰 북을 두드리듯 공명을 울린다. 그래,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간호사들의 임종간호 불문율,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를 끌어안고, 어머니의 하루를 단단히 지켜내자. 이 글을 쓰는 시간, 어머니는 거실 쇼파에 누워서 가느다란 신음으로 ‘주여, 주여, 주여....’라고 부른다. ‘어머니, 죽을 것처럼 아프거나 무서우면 주여! 라고 외치십서’라고 했더니, 아기처럼 따라서 하시는 어머니만의 기도다.

 

어머니, 더 주무십서. 경 허당 보민 오늘도 무사허게 하루해가 질꺼우다. 오늘은 이쯤에서 정호승 시인이 불렀던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를, 나도 불러드리고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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