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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 아직은 그 강을 건너지 마세요 (3)

100년 만에 가장 크고 둥근 보름달이 뜬다는 추석. 정작 제주도에서는 구름 때문에 달을 보기가 어려웠다 한다. 나 또한 마음으로는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달이건만, 어머니를 보러 온 형제들을 치르느라 그만 하늘을 잊어먹고 말았다. 어쩌면 달에 대한 나의 마음이 진정으로 간절했다기보다는 지치고 고단한 심신이 막연하게 달이 뜬 밤하늘, 그 정겨움과 한가함을 동경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름달을 놓치고 보니,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 휴식도 명절도 아니게 어정쩡하니 되어버렸다. 하지만 추석날 형제들이 해 온 음식으로 아침을 먹으며, 나와 어머니는 ‘매일이 추석이면 좋겠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마주보며 서로에게 환한 웃음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소중해서 어머니를 꼬옥 안아드렸다. 나야 아침 상차리기가 거저먹기라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겠지만, 어머니는 왜 저리도 눈부시게 웃으실까?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추석의 못 다한 선물일까.... 이런 시간이 내년에도 다시 올까....

 

이 시간, 어머니는 대문 앞에 앉아서 졸고 계신다. 어쩌면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 앉았으니, 파도가 들려주는 바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리라. 오늘부터 어머니는 요양원 주간보호센터에 나가지 않으신다. 대신에 나와 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하였다.

 

이제는 백세 어머니가 아침마다 요양원 봉고차를 타시느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좀 더 젊은 노인들이 신경 쓰며 바라보는 시선을 미안해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남의 손에서 지내다 오시느니, 차라리 요양보호사 자격이 있는 내가, 우리 집에서 소위 재가복지서비스를 손수 제공하기로 한 결정의 산물이다.

 

그리고 추석에는 형제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앞으로 어머니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해 보았다. 어머니가 요양원 주간보호에 나가시는 게 힘들어서 ‘집에서 보내신다’는 말도 곁들여서. 내가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는 대신에 형제들이 얼마씩 돌봄 비용을 분담했으면 하는 바램도 은근히 담긴 질문이었다.

 

그런데 결론은 ‘요양원으로 보내자’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주어지는 기초연금 30만원과 장수수당 2만5000원이 있으므로, 그 정도면 요양원에서 지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달 전에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동생이 대화를 주도하였다. 도무지 집에서 돌보기가 힘들어서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요양원이 좋구나, 이렇게 좋은 걸 왜 좀 더 일찍 보내주지 않았느냐, 집으로 오라고 해도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거다’라고 하신단다.

 

게다가 ‘동네 할머니들의 경우에도 요양원에 가니까 집보다 훨씬 음식이나 잠자리가 편안하고 좋다’고 하신다는 넷째 언니의 의견이 크게 설득력을 얻었다. 참고로 언니는 매달 어머니의 용돈을 우리 집 통장으로 부치는, 요즘 보기 드문 효녀다.

 

더불어, ‘어머니가 이제 백세이신데,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더 사느냐’면서 ‘이제는 힘든 육신을 이끌고 이 세상에서 고생하며 사느니 어서 죽어지는 게 복’이라면서, ‘하나님께서 속히 천국으로 불러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큰언니에 이르러서, 나는 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다섯째 언니가 작지만 확실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요양원에는 자유가 없다’고, ‘어머니는 지금도 저렇게 돌아다니시고, 툭 하면 밤중에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기도 하는데……. 그래도 집이 낫지 않겠느냐’고.

 

아직은 정신이 있으신데, 요양원에 보내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으로 통곡하면 어떡하느냐고. 어머니 성품에 식사도 잘 안하시고 삶의 의지를 던져버리면, 여기까지 잘 와 놓고 ‘크게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다섯째 언니의 주장 앞에,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는 언니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흘렀다. 시어머니만 모시고 있지 않다면, ‘내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할 언니였다.

 

결국, 어머니는 지금까지처럼 그냥 우리 집에 계시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잘 지내왔고 또 익숙하기도 하니, 너희가 계속 수고해야겠다. 어른 모시고 살면 복이 있다”는 큰 언니의 믿음찬 결론 앞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난주에도 어머니가 호흡하시기 힘들다 해서 병원으로 모시고 갔는데, 병원비가 12만원 나와수다’라는 말을, 나는 속으로 삼켰다. 매달 들어가는 병원비, 약값, 기저귀 등 노인에게 들어가는 비용들을 늘어놓으면 무엇 하랴. 그래봤자 별반 달라질 것도 없이, 독박 돌봄의 씁쓸함과 섭섭함이 더 크게 밀려들 텐데…….

 

사실, 명절 동안 ‘연로한 부모님을 어떻게 할 것인지’, ‘누가 어머니 혹은 아버지를 모실 것인지’를 두고 분위기가 서늘하거나 서먹해진 경우들이 우리 집에서만 벌어진 사건이 아닐 것이다. 신문이나 TV를 보면, 대부분 가정에서 부모 부양에 관한 주제가 이야기될 때 가장 큰 화제가, ‘경제적인 부분’으로 나타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쇠약해지고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이므로, 이에 대한 부담도 부모 부양에 선뜻 나설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사례를 가족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나누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씨는 몇 년 전 명절에 형제들이 모여 홀로 계신 노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오랜 이야기를 통해 결정한 것은, 자신이 어머니를 모실 테니 제사는 형이 지내고, 나머지 형제들은 어머니의 용돈을 책임지기로 하였다. 그날 이후 이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모두 배 아파 낳고 고생해 키운 자식인데 한 명에게만 부담을 지울 수 있나요. 이제는 자식들이 장성했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형제 사이가 더 돈독해진 것이 가장 좋은 점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세히 몰랐는데, 그날을 계기로 서로가 살아가는 모습들을 알 수 있었다. 이 씨는 쉽지 않은 일인데 말없이 따라준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크다.」

 

한편, 가족 내 노인 돌봄 현황에 대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시부모나 친정부모의 주돌봄자들은 돌봄 제공자가 되기 전, 돌봄과 관련하여 어려움 및 불이익을 경험하게 될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상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돌봄 대상자의 건강상태 악화로 인해서 돌봄 제공자가 되거나, 돌봄 제공자가 점진적으로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상실함에 따라, 처음에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돌봄이 점점 시간과 내용 측면에서 증폭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 돌봄 제공자의 경우 ‘어쩌다 보니 묵시적으로 주돌봄자가 되었다’는 응답이 가장 많고, 돌봄 책임의 분담방식도 ‘별도의 논의과정 없이 각자 알아서 적당히 분담한다’는 응답률이 가장 높다. 이처럼 돌봄 제공자의 돌봄 권리 및 자율성이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도 돌봄 불이익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연구 결과에 동의하는 가정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의 경우에도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가시고, 장례식에 참석했던 내가 ‘나를 따라서 한국으로 같이 가겠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오면서, 지금까지 20년을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임종을 바라보는 백세가 되어서는, 이제까지 돌봄을 자청하였으니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게 도리가 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섭섭함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인 것 같다. 사실은, ‘내가 끝까지 어머니를 책임지리라. 그게 사랑하는 내 아버지에 대한 진심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슴속 깊은 곳에다 새겨놓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이 나 몰라라 하는 듯 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아서, 괜히 본전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저 불쑥 용심이 난 게다. 하기야 지난 10년간 어머니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셨으니, 이후 10년은 당연히 우리가 돌보아드려야 하는 게 마땅하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내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다면, 내가 돌봄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사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싫거나 나쁘지만은 않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부지런히 무언가를 돕고자 하시는 제주도 어머니다. 또한 내가 힘들어 하거나 기가 죽어 보이면, “살암시민 살아진다. 싸는 물 이시민 드는 물 이신다!"라며 기십을 돋우어 주시는 제주해녀다.

 

실은 어머니가 백세가 되면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니 일기가 아니라 ‘메모’라 부르는 게 맞을 듯싶다. 어머니의 하루 생활 중에서 특이사항, 말하자면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특수한 행동이나 증상,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나 행적, 기록해 두어야지 싶은 의미심장한 말이나 태도 등을 수첩에 기록했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치매를 하는 어머니와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는 육체적 고단함과 피곤함을 이겨내려면, 어머니의 어머니다움이 가장 좋은 약이 된다. 4월 15일의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머니가 가래침을 아무데나 뱉는다. “다시 이러면 요양원에 보냅니다!”라고 큰소리를 쳤다.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아, 내가 한 살이 되어버린 어머니를 협박하였다. 나는 한 살 때 기저귀에 똥을 쌌고, 어머니는 그 기저귀를 손수 빨아주셨을 터인데……. 당신의 가슴을 열어 젖을 먹여주시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시면서, 아플 때는 부둥켜안고 ‘내가 아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애를 끓이고 밤을 새셨을 터인데……. 그러한 어머니를 공포에 떨게 하는 너는, 도대체 너는 누구냐?」

 

끝까지 어머니를 내 손으로 돌봐드려야지 하면서도 너무 고단하고 피곤하면, 시설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요양원에서 일주일 동안 일을 하면서 관찰하고 경험해 보니, 이부자리나 식사는 우리 집보다 더 깨끗하고 다채로워 보였다. 같이 쳐다보며 동병상린을 나눌 동료들도 있으니, 어쩌면 우리 집보다 더 낫지 싶었다.

 

하루는 언니에게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드릴까?’라고 물었다. “어머니처럼 의식이 있으면 안 돼. 치매가 더 심해져서 사람도 모르고 상황도 분간이 잘 안되면 모를까. 자식들이 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기고 가버리자, 할아버지가 방바닥을 두드리면서 대성통곡을 하더라. 얼마나 마음이 아팠으면 저럴까 싶어서 내 가슴이 다 아프더라. 어떤 할머니는 ‘자식들이 데리러 온다’ 하시면서 승강기 앞에 하루 종일 앉아 기다리시더라. 한 달 동안을. 얼마나 가슴이 저려오던지……. 그런 할머니는 식사도 잘 안 하시고, 말씀도 없으시고, 대체로 일찍 돌아가시고 말아.” 요양원에서 일하는 언니의 말에, 나는 다시 결심을 한다.

 

그래, 어머니를 끝까지 집에서 모시자. 그리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선물처럼 더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보자. 어머니가 나를 못되게 하시겠나. 당신이 흙이 되더라도 이 자식만큼은 잘 되고 복되기를 바라고 기도하실 우리 어머니…….

 

이래저래 추석은 일 년에 한 번인 것이 다행스러운 날이다. 아, 어머니가 다시 이 추석을 보내실 수 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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