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선 김우남 전 국회의원 별세 ... 향년 70세
한국외대 제13대 총장에 제주출신 강기훈 교수 선출
고환율, 고물가에 고금리까지 … 李 정부 ‘3중고’ 서둘러 대처해야
현근택 변호사, 수원 제2부시장 사직 후 용인시장으로 방향전환
제주 감귤, ‘역동의 1970년대' ... 재배면적 확장·기술수요 폭발
'4.3 강경진압의 원흉' 박진경이 국가유공자? ... 제주사회, 반발 확산
제주 식음료 시장 52.2% 내·외국인 관광객이 소비 ... 선호도 최고는 '회'
봉우리어반스케치 동호회, 식품꾸러미 12세트 화북동에 기탁
내년부터 한라산 주차장 요금 최대 13배 인상 … 승용차 하루최대 1만3천원
제주여행의 새 트렌드는 '러닝' … 버킷리스트·크루·트레일러닝 대세
제주4·3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에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 8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제주영어교육도시 내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 본관 로비에서 ‘제주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국제학교 특별전시–제주4·3 기억과 화해의 길’을 열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특별전시는 제주4·3의 역사적 배경과 진상규명 과정을 미래세대에 전달하고, 4·3이 지닌 화해·상생·평화·인권의 가치를 글로벌 교육 환경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물은 4·3 진상규명 노력, 기록물 보존 과정,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 등을 담은 사진과 설명 패널로 구성됐다. 국제학교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자료는 영어로 제공된다. 국제학교 학생 10명이 참여한 ‘어린이 4·3작가(4·3·2·1)’의 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전시 기간 SJA Jeju를 비롯해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NLCS), 한국국제학교(KIS), 브랭섬홀아시아(BHA) 등 제주 국제학교 학생들이 인솔자와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SJA Jeju 권연우 학생은 “이번 전시를 통해서 제주4·3의 역사적 진실과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알게 됐다”며 “4·3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인영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이번 전시는 국제학교라는 글로벌 교육 공간에서 4·3을 세계 시민교육의 관점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라며 “더 많은 학생이 4·3의 의미를 접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도가 10일 서귀포시 토평동 소재 '서귀포 구룡사 대웅전 목조보살좌상 및 복장유물'을 제주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이 보살상은 1643년(인조 21년) 경상남도 하동 쌍계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1953년 구룡사 신도회가 쌍계사에서 옮겼다. 애초에는 쌍계사에서 석가여래 부처님 곁에 함께 모셔졌던 보살상(부처님 왼쪽에 모시는 보살, 좌협시)으로 추정된다. 높이 88㎝ 크기의 이 보살상은 여래형 복식(부처님처럼 간소하고 단정한 승복 차림)에 화려한 보관(불상이 쓰는 관)을 쓰고 있다. 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불상 내부를 열어본 결과, 1643년에 작성된 발원문(불상을 만든 이유와 제작자를 기록한 문서)과 후령통(불상 안에 넣는 통), 경전류 등이 거의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불상 안에 넣는 이런 유물들을 '복장유물'이라고 한다. 이 발원문은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좌상'의 대좌 묵서명 기록과 대부분 일치하면서도 서로 보완돼 불상의 역사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보살상은 제주로 옮겨진 조선시대 불상 중에서 서귀포 서산사 목조보살좌상(1534년 제작)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다. 또 불상 복장유물이 완전하게 보존된 경우는 매우 드물어 17세기 조선시대 불교 조각과 신앙 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고종석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앞으로 30여일간의 예고 기간을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먹거나 마시는데 지출한 비용이 도내 식음료 산업 전체 시장의 50%를 넘어 도민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제주관광공사가 발표한 '제주 식음료업(F&B) 소비 심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관광객은 전체 소비의 41%를 먹거나 마시는데 지출했다. 이러한 관광객의 식음료 지출 규모는 제주도 식음료 산업 전체 시장의 52.2%(내국인 관광객 45.9%, 외국인 관광객 6.3%)를 차지해 도민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식당 이용고객 대상 배달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관광객은 33.2%로 나타났다. 현장 식당 방문객 중 59.1%, 배달앱 이용자 중 73.9%가 포장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관광객이 제주 음식을 경험하는 방식에 포장과 배달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포장을 이용하는 이유는 술과 함께 숙소에서 편히 먹기 위한 단체(49%)와 영유아 동반, 반려견 동반, 1인 손님 등 식당 이용에 제한이 있어 배달·포장을 이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관광객이 방문하거나 배달한 메뉴로는 ‘회’를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당 방문객은 ‘회’를 가장 자주 이용했고, 만족도 1순위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 재방문 시 기대되는 메뉴로는 ‘생선 및 해물요리’(26.3%) 다음으로 ‘회’(15.0%)를 선택했다. 배달 이용자를 분석했을 때도 치킨(54%) 다음으로 ‘회’(37%)의 순위가 높았다. 다만 ‘회’의 배달 만족도는 5위로 기록돼 배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어 더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68.1%로 나타났다. ‘제주 외식비가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만족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전체 58.6%로 조사됐다. 관광객은 식당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맛(현장 32.2%, 배달 32%)을 1순위로 꼽았고,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분위기(37.3%)를 1순위로 꼽았다. 관광객은 식당과 카페에 기대한 맛과 분위기가 실망스러울 때 가장 먼저 ‘가격’(현지 61.4%, 배달 14.3%, 카페 41.1%)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정가보다 비싸게 받는 바가지요금은 당연히 근절돼야 하지만, 판매 가격에 상응하는 서비스 제공이 이뤄진다면 제주 외식 가격 논란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본다"며 "이를 위해 어려운 일이지만 제주도민의 서비스 제공 수준을 관광객이 기대하는 서비스 수준보다 더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 식음료업(F&B) 소비 심층분석 보고서'는 지난해 6월부터 지난 5월까지 1년간 제주에서 발생한 신용카드 소비금액을 기반으로 설문조사와 리뷰데이터를 분석해 작성됐다. 분석 대상은 제주에서 현장식사, 배달앱 주문, 포장주문 등 식사경험이 있는 관광객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초등학교에 몰래 들어가 수업 중인 교실을 촬영한 중국인 관광객이 경찰에 붙잡혔다. 제주서부경찰서는 건조물침입 혐의로 중국 국적의 20대 관광객 A씨를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1일 오후 2시 40분께 제주시 한 초등학교에 후문을 통해 허가 없이 들어가 운동장과 수업 중인 교실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이를 수상하게 여긴 교사가 A씨를 붙잡아 추궁했고, 학교 측이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흉기 등 문제가 될 만한 물건을 소지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신체를 촬영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경찰에 "호기심에 학교에 들어갔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쓰레기 종량제봉투 판매 대금 수억원을 빼돌려 재판에 넘겨진 제주시청 공무직 직원에 대해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제주지검은 11일 제주지법 형사2부(임재남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30대 A씨에 대해 징역 5년과 추징금 6억106만6040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A씨는 2018년 4월부터 지난 7월까지 제주시청 생활환경과에서 종량제봉투 공급과 관리 업무를 맡으며 3837차례에 걸쳐 6억원 넘는 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지정 판매소에 종량제봉투를 배달한 뒤 현금으로 대금을 받고 나서 주문 취소 건으로 처리해 돈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18년 30여 차례 수준에 그친 범행이 적발되지 않자 점차 횟수를 늘려 지난해에는 1100여 차례에 걸쳐 돈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횡령한 돈을 생활비와 온라인 게임, 사이버 도박 등에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사건 범행 수법이 계획적이고 죄질이 불량하다"며 "편취금 대부분은 도박하는 데 사용됐고, 피해 회복이 전혀 되지 않았다"며 구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재판에서 A씨는 "저로 인해 동료뿐 아니라 제주 행정 시스템의 명예를 실추시켜 죄송하다.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않겠다"며 "제가 횡령한 돈은 반드시 변제하겠다. 하루라도 빨리, 한 푼이라도 더 변제할 수 있도록 선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도가 신한금융그룹 제주은행과 손잡고 제주 자생식물을 활용한 탄소흡수 숲을 만든다. 제주도는 제주은행과 12일 ‘세미맹그로브 숲 조성’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으로 도는 숲 조성 부지를 제공하고 유지·관리를 맡는다. 제주은행은 숲 조성 비용을 부담하고 나무 식재 활동을 진행한다. 조성된 숲에는 두 기관이 함께 만든 공간이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도민 공간임을 알리는 표식이 설치된다. 세미맹그로브는 열대·아열대지역의 맹그로브와 유사한 특성을 가진 식물이다. 제주에는 세미맹그로브로 황근과 갯대추나무가 자생한다. 맹그로브는 일반 산림보다 최대 5배 높은 탄소 저장 능력을 지녀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도는 2029년까지 5년간 45억원을 투입해 세미맹그로브 숲 140ha를 조성할 계획이다. 세미맹그로브 숲에 기업이 참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애숙 제주도 기후환경국장은 “숲 조성은 탄소흡수원 확충을 넘어 생태계 복원, 관광자원화 등 다양한 환경적 가치를 지닌다”며 “제주은행과 함께 만들어가는 이 모델이 탄소중립 실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 디지털 관광증 '나우다'(NOWDA)를 발급받은 관광객이 10만명을 넘어섰다. 제주도는 전날 기준 관광객 10만3878명이 나우다를 발급받았다고 11일 밝혔다. 지난 8월 11일 본격적으로 가입을 받기 시작한 나우다는 약 4개월 만에 가입자 10만명을 돌파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도는 오는 13일 오후 4시 30분 제주시 함덕해수욕장 특설무대에서 나우다 가입자 10만명 달성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 도는 행사에서 농협중앙회 제주본부와 제주은행·상공회의소·제주소상공인연합회·제주렌터카조합·한국외식업중앙회 제주도지회 등 제주지역 16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앞으로 관광 서비스 연계, 데이터 기반 공동 사업, 지역 상품·서비스 판로 확대 등 나우다 생태계 확장에 협력할 예정이다. 또 나우다 기념행사화 함께 오는 25일까지 함덕해수욕장 일대에서 '비치(Beach) 크리스마스&메모리 2025'가 시작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는 대형 트리와 포토존, 조명 시설 등이 설치·운영된다. 김양보 제주도 관광교류국장은 "나우다 10만 달성은 제주 관광의 디지털 전환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과"라며 "이번 행사가 2026년 제주 관광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도민과 관광객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 나우다는 제주 관광에 멤버십 개념을 도입한 디지털 플랫폼이다. 제주를 찾는 만 14세 이상 내국인 관광객에게 발행된다. 네이버페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후 QR 코드 스캔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다. 첫 발급 시 보전·공존·존중으로 대표되는 '제주와의 약속'을 서약해야 한다. 나우다를 발급받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현재 관광지·체험시설·식음료·소품 가게 등 160여 개 사업체에서 10% 이상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는 향후 나우다를 단순한 할인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관광객의 자발적 참여 기반 멤버십 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꽃사슴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는 내용의 제주도 조례안이 도의회를 통과했다. 제주도의회는 10일 제444회 제2차 정례회 본회의에서 제주도가 제출한 '제주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가결했다. 이 개정안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꽃사슴을 유해야생동물로 신규 지정하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의 지난해 3월 보고서에 따르면 꽃사슴 등 사슴류는 겨울철 국립공원 인근 마방목지에서 190여마리 서식이 확인됐고, 그 외 중산간 목장 지역을 중심으로 10∼20여마리씩 집단서식해 약 200∼250마리가 파악됐다. 보고서는 사슴류가 노루에 비해 2∼5배가량 몸이 크고 뿔도 훨씬 크기 때문에 노루에 위협이 되며 오소리나 족제비, 도롱뇽 등 고유한 생태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개정안과 관련해 동물권 단체들은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면 지방자치단체장 허가를 받은 유해야생동물 피해방지단이 총포 등을 이용해 포획 또는 사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며 "유해동물 지정이 포획과 살처분으로 직결될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또한 "생태, 피해, 사회, 경제 자료 없이 내려진 유해동물 결정은 과학적 정당성이 없다"며 꽃사슴 유해동물 지정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는 집비둘기 등 유해야생동물에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게 하는 내용도 담겼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현재 우리가 즐겨 먹고 있는 온주 밀감과 만감류가 도입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02년 프랑스 출신 에밀 타케 신부는 제주에 와 ‘홍리(서홍)’성당에 13년간 근무하며 식물학자로서 제주산 식물을 연구하며 벚나무 원종을 한라산에서 발견하여 벚나무 원산지가 제주임을 밝혔다. 1911년 그는 제주산 왕벚나무 몇 그루를 일본에 있는 친구 포리 신부에게 보내주었는데, 그 보답으로 받아 심은 미장 온주 14그루가 현재 제주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는 온주 밀감의 효시(嚆矢)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들은 그동안 서귀포시 서홍동 면형의 집에서 관리되었다. 조선 말기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박영효가 1907년에 제주도로 유배 온 후 제주읍 구남동에 머물면서 과수원을 만들어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 밀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박영효는 개화파 주역으로 정변으로 일본에 두 번 망명하였고, 1907년 귀국 후 다시 제주도로 유배되어 1년 형기를 마쳤다. 유배가 끝난 뒤에도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제주에 정착하고 땅을 매입하여 농사지었다. 1911년 서홍동 출신 김진려가 일본으로 가서 구마모토에서 접목 강습을 받은 뒤 돌아올 때 온주 밀감과 워싱톤 네이블을 가지고 들어와 심었다고 한다. 최초로 일정 규모를 갖춘 큰 농장은 서귀읍 서홍리에 살던 일본인 미네(峰)가 개원한 현 제주농장이다. 1913년 온주 밀감 2년생 묘목을 도입해서 심었다고 한다. 이후 일본인 농장주가 경영하다 1944년 고 강창학 선생의 부친인 강서구 선생이 농장을 매입했다. 강창학 선생이 직접 관리하기 시작한 1948년 이후 우리나라 최대 감귤농장으로 알려져, 수학여행단과 정부 관료들이 제주에 오면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여겨졌다. 1945년 광복 이후 우장춘 박사가 감귤 품종 개량을 시도하였지만 한국 전쟁으로 혼란한 와중에 무산되었고, 제주4·3은 제주도 농촌을 폐허로 만들어 이미 심어있던 감귤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제주4·3 여파가 다소 가라앉은 1955년부터 감귤재배에 관심 가지게 되었다. 1965년부터 재일동포들이 감귤 묘목을 기증하여 고향 돕기 운동이 재일동포 사회에 일어났으며 이 무렵 ‘제주 개발회’, ‘제주도민회’, ‘제주친목회’, ‘경제인회’ 등 단체와 마을 단체친목회를 통하여 ‘고향 감귤 묘목 보내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지금도 제주도 마을마다 이를 기리는 재일 교포 공덕비가 즐비하다. 1964년 2월 제주도를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악산 아래까지 감귤나무를 심을 수 있을 수 있는 땅이면 다 감귤나무를 심어라. 제주도는 온난한 지역인 만큼 식량 증산보다 감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라”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이 때문인지 지금도 서귀포시 서홍동 속칭 ‘멀 왓’ 지경에는 오르내리기도 힘든 급경사지에 자연석을 쌓아 단단한 돌담을 쌓고 경사지 흙을 일구어 감귤나무 한 그루 한 그루 심으며 정성껏 잘 돌봐왔던 덕에 지금은 대표적인 감귤원 경관이 되고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감귤을 재배하면 자식을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 공부시킬 수가 있다고 해서 엄청난 재배 붐이 일어났다. 1970년대는 감귤 농업인에게 가장 ‘역동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지속적인 재배면적 확장과 기술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노지 감귤 재배기술이 제주도 전체로 확장되어 나갔던 시기다. 50년 전 온 동네가 나서 과수원을 조성하던 당시, 우리 집에서도 어머니 혼자 밭에 나가 과수원을 만들었다. 초기 감귤원 조성은 시간이나 공력이 많이 든다. 먼저 울타리 밭담을 쌓고 담 주변에 편백이나 삼나무로 방풍림을 심었다. 밭에 가로, 세로 일 미터, 깊이 일 미터로 구덩이 파고 거기에 탱자나무에 접붙인 온주 밀감 묘목을 심는다. 주중에는 어머니 혼자, 주말에는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와 초등학생이던 나와 형제들 모두 과수원에 가서 해 질 때까지 일하다 오곤 했다. 1980년대엔 재배면적 증가보다 생산량이 증가했다. 이 당시 품종도입에 의한 작형(作型)을 늘렸다. 1990년대는 생산량 증가에 따른 가격 불안정으로 생산보다 판로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 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제주4·3을 왜곡 발언한 태영호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에 대해 법원이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제주지법 민사3단독 오지애 부장판사는 10일 4·3희생자유족회 등이 태 전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오 판사는 태 전 의원이 원고인 4·3희생자유족회에 1000만원을 배상할 것을 명령했다. 오 판사는 다만 다른 원고인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 양성홍 4·3행방불명인유족회장, 생존 희생자 오영종(94)씨의 손해배상 소송은 기각했다. 오 판사는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등에 비춰보면 태씨 발언은 허위 사실로 봄이 타당하다"며 "이에 따라 4·3 사건 희생자들의 진상 규명과 명예를 회복할 목적으로 구성된 4·3희생자유족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하지만 태씨 발언이 4·3사건 희생자나 유족 개별 구성원을 지칭하는 것으로는 볼 수 없어 4·3희생자유족회를 제외한 나머지 원고들의 청구는 기각한다"고 밝혔다. 태 전 의원은 국회의원 신분이던 2023년 2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보도자료 등을 통해 '4·3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는 등의 주장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4·3희생자유족회 등은 "태 의원의 허위사실 유포로 희생자와 유족 명예를 훼손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같은 해 6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소액사건 기준인 3000만원을 넘는 3000만100원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4·3희생자유족회 등은 "이 소송을 통해 왜곡과 선동으로 4·3희생자와 유족,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 공적인 제재가 필요함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반면 태 전 의원 측은 "태 전 의원의 주장은 허위 사실이라고 할 수 없고 명예훼손 행위에도 해당하지 않으며, 피해자가 특정됐다고 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당초 이번 소송 선고는 지난해 7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당시 태 전 의원 측 요청으로 인해 변론이 제기됐다. 이후 지난달 10일 선고기일이 잡혔다. 하지만 공판 직전 갑작스럽게 재판 일정이 연기되면서 결국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2년 6개월 만에 선고가 이뤄지게 됐다. 이날 선고 직후 제주4·3유족회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제주지법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3 희생자의 명예와 유족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 준 사법부 판결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태 전 의원의 진정성 없는 태도와 무책임한 회피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오늘 판결은 태 전 의원의 왜곡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준엄한 심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4·3에 대한 왜곡과 선동으로 희생자와 유족 명예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며 "국회와 정부는 4·3 왜곡·폄훼에 대한 처벌 규정이 담긴 4·3특별법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 한림항에서 70대가 몰던 승용차가 정박해 있던 어선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11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50분께 제주시 한림항 한림수협 위판장 인근에서 70대 A씨가 몰던 아이오닉5 승용차가 항구에 정박해 있던 어선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났다. 사고 차량은 어선 위에 차체를 걸친 채 멈춰 섰고, 피해 어선은 선체 일부가 파손됐다. A씨는 사고 차량에서 스스로 탈출했다. 다리 통증을 호소해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A씨는 사고를 내고 "차량이 급발진했다"며 119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현장을 수습하는 한편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중이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 해상에서 숨진 밍크고래가 그물에 걸린 채 발견됐다. 10일 제주 서귀포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50분께 서귀포시 마라도 남서쪽 약 51㎞ 해상에서 여수 선적 대형 트롤 어선 A호(139t) 그물에 죽은 밍크고래가 혼획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발견된 밍크고래는 길이 약 6.4m 둘레 2.4m로, 작살흔 등 불법 포획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해당 어선은 지난 4일 오전 제주시 한림항을 출항해 새우·민어·고등어 등을 어획하고, 9일 오후 6시쯤 마라도 해상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는 양망 작업을 하던 중 죽은 밍크고래가 함께 걸려있는 것을 확인해 신고했다. 해경은 전문가에 문의해 "연구 가치가 없다"는 답변을 받고, 고래류 처리확인서를 발급해 해당 어선에서 유통·판매할 수 있도록 인계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도는 도내 공공기관의 회의에서 발생하는 1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다회용품 키트인 '또시 회의 키트'를 대여하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11일 밝혔다. 도청 본청 부서에서 우선 시범 시행되는 '또시 회의 키트'는 종이 명패나 종이컵 등 1회성 물품을 전자 명패, 다회용컵(또시컵), 물병, 목재 트레이, 메모판 등 다회용 구성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회의 키트다. '또시'는 '다시'라는 뜻의 제주어다. 시범 기간에는 최대 15명 규모 회의에서 또시 키트를 이용할 수 있다. 회의 1주일 전 자원순환과에 신청 후 수령·반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정기 회의는 사전 협의 시 지속 대여도 가능하다. 도는 시범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대여 규모와 운영 기관 확대, 구성품 다양화 등 확산 방안을 검토하고 내년에는 공공기관 대상 1회용품 사용 금지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강애숙 제주도 기후환경국장은 “공공기관이 먼저 1회용품 절감 문화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또시 회의 키트가 공공회의 전반에 자리 잡고 민간으로도 자연스럽게 확산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비어있던 제주 읍면지역 폐교가 다자녀가구, 신혼부부를 위한 주거 공간이자 학생과 지역주민이 누리는 교육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 제주개발공사는 9일 도청 삼다홀에서 폐교 등 유휴부지 활용 복합개발 공공주택 공급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세 기관은 2028년까지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와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에 '내일마을 공공주택'을 조성한다. 총 60여 가구의 공공임대주택과 교육시설, 주민 공원 등이 들어선다. 송당리 체육용지(1만624㎡)에는 공공임대주택 30여 가구와 공원이 들어선다. 인근 송당초까지는 약 500m 거리다. 옛 무릉중(1만4581㎡)에는 공공임대주택 30여 가구와 함께 기존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한 교육시설, 공원이 조성된다. 인근 무릉초·중통합교까지 거리는 약 50m다. 특히 무릉리는 건물을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해 학생과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도는 복합개발 공급 방안을 마련하고 폐교 리모델링과 공원 조성 등에 사업비 일부를 지원한다. 교육청은 부지를 제공하고, 유상 이관으로 받은 토지비는 시설비로 재투자한 뒤 완공 후 교육시설을 운영한다. 제주개발공사는 설계와 건설공사를 맡는다. 총사업비 191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은 내년 1월 기획설계를 착수해 2028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한다. 현재 제주 읍면지역에서는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으나 공공임대주택은 동(洞)지역에 집중돼 다자녀가구와 신혼부부가 읍면지역으로 유입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협약은 폐교 부지를 활용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전국 첫 사례다. 빈 땅에 주택을 짓고 기존 시설은 교육 공간으로 되살려 학생 유입과 지역 활성화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시도다. 앞서 도와 교육청은 지난해 10월 교육행정협의회에서 이런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후 도·교육청·제주개발공사·공공건축가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운영해 올해 8월 옛 무릉중과 송당리 체육용지를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 도와 교육청은 지난 10월 송당리와 무릉리에서 주민 설명회를 열었고, 지난달에는 지역주민 대표 6명을 포함한 주민협의체를 구성했다. 이달부터 내년 5월까지 주민협의체를 운영해 주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보존·활용하는 방향으로 세부 개발구상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중앙정부의 국정과제 '공공 유휴부지 활용 주택공급 확대'와 '소멸위기지역 재도약 지원'과도 부합한다고 도는 설명했다. 지난 10월 정부는 '폐교 활용 활성화를 위한 중앙-지방 업무협약'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의 폐교 활용을 행·재정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오영훈 지사는 "폐교에 다자녀 가족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늘고, 아이들이 늘면 학교가 살아나고, 학교가 살아나면 마을 전체가 되살아난다"며 "이번 사업이 제주 읍면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광수 교육감은 "이번 협약이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의 연결 고리가 더욱 견고해지는 출발점이 돼 송당리와 무릉리 마을 전역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져 지역이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4·3의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가치를 바탕으로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를 실현하고자 제정된 제주평화인권헌장이 10일 공식 선포됐다. 제주도는 이날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77주년 인권의 날 기념식'에서 제주평화인권헌장 선포식을 진행했다. 총 10장 40조로 구성된 헌장은 세계인권선언과 대한민국 헌법 등 국내외 인권 규범의 보편 원칙과 약속을 담았다. 헌장에는 4·3과 평화, 소통과 참여, 건강과 안전, 문화와 예술, 자연과 사람, 교육 등 도민의 삶과 밀접한 분야별 보편적 인권 기준과 이행 원칙이 포함됐다. 특히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 온 제주 공동체의 정신을 바탕으로 기후위기와 무분별한 개발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삶을 확산하려는 제주만의 가치도 반영됐다. 구체적으로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4·3의 진실을 알 권리·기억할 권리·회복할 권리·왜곡 등에 대응할 권리, 평화롭게 살 권리, 민주적 참여와 자유로운 의사 표현의 권리, 공공정보 접근권, 재난·재해로부터의 안전, 학대·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안전한 노동환경, 건강권·먹거리권·사생활 보호 등 도민 삶의 전 영역에서 존중받아야 할 핵심 인권 기준이 담겼다. 이어 문화·예술 향유, 자연과의 공존, 환경보전, 기후위기 대응, 사회적 소수자 보호, 주거·교육·돌봄 등 인간다운 삶을 위한 폭넓은 권리 기준도 명시됐다. 헌장은 도민과 행정의 역할도 규정했다. 도민은 권리 주체로서 헌장의 실천에 참여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도는 헌장이 행정 전반에서 실현되도록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이행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헌장 교육·홍보 확대, 인권침해·차별에 대한 구제 절차 마련, 도민 참여 기반의 개정 절차 등도 포함됐다. 이날 선포식은 헌장 제정 경과보고, 헌장 선포 및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헌장 낭독에는 오영훈 지사, 이상봉 도의회 의장, 김광수 교육감,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을 비롯해 청년, 사회복지, 여성, 인권·시민단체, 이주민 등 각계각층 도민들이 참여했다. 오영훈 지사는 "제주평화인권헌장은 어떠한 폭력과 차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도민의 의지이자,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더욱 넓고 깊게 확장하는 우리 모두의 약속"이라며 "헌장의 정신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4·3의 화해와 상생 가치를 지켜온 도민의 자긍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오 지사는 선포식 후 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헌화·분향한 뒤 위패봉안실을 찾아 평화인권헌장 선포 사실을 4·3영령에게 보고하고 헌장을 바쳤다. 한편 이날 행사장 안팎에서는 헌장 선포에 반대하는 일부 보수·종교단체 관계자 등의 반발로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헌장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행사장 안에서도 '가짜 제주평화인권헌장 폐기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큰 마찰 없이 행사는 마무리됐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창조주여, 제가 간청했나이까? 흙으로 저를 빚어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읍소라도 했나이까? 어둠 속에서 끌어내 달라고?(Did I request thee, Maker, from my lay to mould me Man? Did I solicit thee from darkness to promote me?)” 존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에 나오는 이 구절은 메리 셸리(Mary Shelleyㆍ1797~1851년)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초판본 표지에 마치 소설의 부제(副題)처럼 박혀 있는 ‘제사(題詞, 책의 첫머리에 그 책과 관계되는 노래나 시를 적은 글)’다. 「실낙원」 10권에서 등장하는 지옥에 떨어진 인류의 조상 아담(Adam)의 절규이기도 하다. 이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창조주가 금지한 선악과를 먹고 지옥에 떨어진 아담이 절망과 고통 속에서 내뱉는 비명이다. 자신의 존재와 가혹한 운명을 한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겨우 그까짓 선악과 하나 따먹었다고 ‘믿거라’ 했던 창조주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원망과 억울함의 호소 같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에 사용된 이 제사는 존재의 원치 않은 탄생, 창조자(Maker
원ㆍ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경제 전반의 리스크가 커지고 민생이 위협받고 있다. 고환율 탓에 수입의존도가 높은 석유류와 축산물, 수산물, 과일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고환율·고물가의 이중고(二重苦)가 현실로 닥쳤다. 게다가 시중에 풀린 돈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물가상승을 압박하고 있어 확장 재정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소비자물가는 10~11월 두달 연속 2.4% 상승률을 나타냈다.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치 2%를 9~11월 석달째 넘어섰다. 특히 소비자가 자주 구입하는 생활물가 상승률은 2.9%로 1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석유류가 5.9% 뛰면서 전체 물가를 0.23%포인트 끌어올렸다. 국제유가는 하락했는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것이 결정타였다. 농축수산물 물가도 5.6% 뛰며 물가 오름세에 0.42%포인트 기여했다. 수입 소고기와 과일 및 코코아, 팜유, 커피 등이 물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밀가루와 설탕, 대두는 작황이 좋아 국제 시세가 떨어졌는데 고환율 영향으로 수입 가격은 소폭 하락에 그쳤다. 9월 통화량(넓은 의미의 통화 M2)은 지난해 9월 대비 8.5% 증가한 4430조5000억원이다. 통화량은 금
존 루스(커트 러셀 분)가 워런 소령(새무얼 잭슨 분)의 신원 확인 절차를 마치고 마차에 동승을 허락하면서, 자신이 호송 중이던 데이지에게 워런을 소개한다. 미국인들은 워낙 사교적이라 그런지 상대방이 모르는 사람이 있다 싶으면 거의 본능적으로 ‘소개’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개를 한다. 워런 소령이 모자챙을 조금 들어 인사를 한다. 현상수배범인 데이지에게도 ‘문명인’답게 최대한 예의를 갖춘다. 그러자 마차에 앉아있던 데이지가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머금고 “안녕, 깜둥이(Hi, Nigger)”라고 답례한다. ‘Nigger’라는 말은 요즘도 점잖은 사람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워 ‘N-word’로 순화해서 옮기는 혐오 표현이다. 워런 소령은 백인들의 그런 혐오 표현에 이미 익숙한지 그저 저능아처럼 웃어 보인다. 사회적 약자는 혐오를 감내해야 한다. 혐오가 혐오스러운 장면이다. 남북전쟁 당시 흑인이 소령까지 진급했다면 최고로 출세한 흑인이다. 그러나 데이지 같은 가장 ‘저렴’한 백인도 자신이 최고의 흑인보다 서열이 높다고 믿는다. 소개가 끝나고, 루스가 워런 소령에게 마차에 동승할 것을 허락하자, 데이지는 현상수배범 주제에 “나더러 깜둥이(nigger)와 동승
한국은행이 11월 27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했다. 7ㆍ8ㆍ10ㆍ11월 네차례 연속 동결이다. 환율과 집값 등 외환·금융시장이 불안해서다. 잇따른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오르고, 원ㆍ달러 환율은 1500원선을 위협하며 물가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향후 금리 인하 여부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가 12월 기준금리를 인하할지에 영향을 받을 것 같다. 연준은 인공지능(AI) 거품 우려로 주가와 코인 등 자산시장 거품이 꺼지는 조짐을 보이자 입장을 바꿔 금리인하 의사를 내비쳤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한은도 원ㆍ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완화돼 내년 초 기준금리를 인하할 여력이 생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에서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박이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10ㆍ15 부동산 대책 한달여 만에 서울 아파트값이 다시 오른다. 환율 상승 여파로 휘발유 가격이 4주 연속 상승했다. 외식물가가 들썩이는 등 물가 불안 우려가 큰 판에 금리 결정을 ‘정치논리’로 접근하기는 부담스럽다. 반도체 경기가 슈퍼 사이클에 진입해 경제성장률에 숨통이 트인 점도 한은이 금리인하를 서두르지 않는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5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계엄이 선포됐다. 계엄과 쿠테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대한민국의 과거도 아니고, 그것도 45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인데도 다시 등장한 것부터 이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했다. 그런데 그 계엄은 당일 밤 10시23분 선포돼 다음날 새벽 1시1분에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해제 의결됐다. 2시간 38분만에 무효가 된 계엄령이었다. 이건 이상하다기 보단 좀 놀랍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함의 연속이다. 계엄이 무효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불려 다녔지만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그동안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란몰이’라며 야당(이제는 야당이 아니다)과 국민 대다수를 오히려 겁박했다. 일부 기독교와 극우 세력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대통령직 파면결정이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집회현장엔 태극기·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휘날린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탄핵반대’를 외치며 그렇게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이끌기를 법으로만 하고 다스리기를 형벌로만 하면 백성이 법과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다. 이끌기를 덕(德)으로 하고 다스리기를 예(禮)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바로잡아 선(善)에 이른다.” 『논어』(論語) 위정편 제3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 ‘공정’과 ‘상식’의 대명사였다. 국내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 법대 출신이란 점에서도, 검사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기개에서도, 그리고 검찰총장이 되고 나서도 권력에 굴하지 않는 풍모에 그렇게들 생각했다. 물론 동의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지지자들은 그랬다. 오늘(1일) 대통령의 담화를 보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져도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아서다. 대통령의 말이 그르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많은 수치와 통계적 이유를 들어 의사단체의 부당한 논리를 공박하는 지금의 판단 때문이다. 지금이 이런 수치와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시점인지 의문이 들어서다. 윤 대통령의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또 틀린 말도 아니지만 지금 그런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시점이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일 때인지도 의문이다. 정부와 의료
담쟁이가 뒤덮인 돌벽 한쪽이 덩그러니 서 있다. 초록색 방수포가 뒤덮은 객석 바닥은 이미 원형을 잃었고, 공연을 품던 무대는 무너진 채 흉터처럼 갈라진 흔적만 남았다. 한때는 웃음과 박수로 가득했던 자리에 이제는 공사 차량 자국과 철거 상흔만이 흩어져 있다. 오래도록 서귀포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제 잔해와 철거의 상처로만 존재한다. 청춘의 기억을 간직한 무대, 가족과 함께한 영화 관람, 동네 아이들이 뛰놀던 객석의 풍경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건축물과 그것을 지켜보는 허탈한 눈빛뿐이다. 현장을 찾은 건축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라면 보강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무대를 배경으로 보낸 낭만의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벽체를 손으로 짚으며 "아직 숨 쉬는 건물인데 왜 이렇게 급히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0일 오후 이중섭 거리를 찾은 어린이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발걸음을 멈췄다. 회색빛 공사판 가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무너진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른 이는 "관광지에 왔더니 왜 철거 현장만 남았느냐"며 의아해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전국은 요동쳤다. 17개 시·도가 일제히 비상 체제로 흔들렸다.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던 그 때 제주에서는 도청 본관 출입문이 닫혔다. 밤 11시 17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13분까지다. 이 조치가 단순한 '출입문 통제'였는지, 아니면 '청사 폐쇄'였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며 제주도정은 곧바로 '불법 계엄 동조' 의혹에 휘말렸다. 논란의 중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부재'가 있었다. 오 지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그날 저녁 저는 제주에 없었다. 서울에서 기업인들과 면담을 마친 뒤 오산에서 식사를 했고, 오후 9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고 말했다. 이후 자택으로 이동해 비서실장과 특보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새벽 1시 30분 도청 회의를 소집해 "군·경은 상부 지시가 있더라도 따르지 말라"는 불복 지침을 명확히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단의 질문은 한 가지로 모였다. "
이쯤되면 거의 여론조작이라 말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세우자는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다. 연이어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수치가 오히려 도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도와 도의회, 정당과 연구기관, 나아가 언론사까지 앞다퉈 민심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이고 질문은 자의적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나온 조사조차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니 도민의 눈에는 이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맞춘 각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발표된 제주연구원 조사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찬성 46.3%, 반대 34.9%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찬성 응답자의 63%는 내년 민선 9기 출범과 동시에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공개한 여론조사는 정반대였다. 도당 조사에서는 3개 구역안 반대가 43.1%, 찬성이 35.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도의회는 다시 별도의 여론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는 1500명을 대상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 인지도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 인지도 ▲선호 구역(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달 3일 새벽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속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제주남초)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의 풍경이었다. 정당 참관인과 투표 사무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5시 30분, 개시 준비가 본격화되자 사무원은 참관인을 상대로 투표지와 도장, 봉인 스티커를 하나하나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봉인작업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고, 투표소는 긴장감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6시 35분. 한 50대 남성이 조용히 투표소에 들어섰다. 신분증을 내민 그에게 여성 사무원이 선거인명부를 대조하던 순간, 전산 시스템에는 이미 '사전투표 완료'로 명시돼 있었다. "혹시 사전투표 하지 않으셨어요?" 사무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안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원은 옆 동료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재차 "29일에 혹시 사전투표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신분증을 챙겨 빠르게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참관인과 사무원들
입내(성대모사)의 기원은 아주 오래다. 『사기·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맹상군이 급히 함곡관을 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닭이 울어 새벽을 알리지 않으면 함곡관을 통과할 수 없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좋은 방법을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닭의 울음을 잘 흉내 내는 사람을 찾아 새벽을 알리는 수탉 소리를 모방하여 울게 하여서는 여러 닭들이 일제히 따라 울게 만들어 무사히 함곡관을 넘었다. 이 기록에서 당시에 이미 성대모사 기예를 갖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송대에는 명확한 입내 기술을 기록한 문헌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9권 「재집친왕종실백관입내상수(宰執親王宗室百官入內上壽)」의 기록이다. “음악이 아직 울리지 않았는데 집영전(集英殿) 산 위 누각에서 교방(敎坊)의 가무를 연주하는 예인들이 여러 금수의 소리를 흉내 내자 내외가 숙연해졌다. 울음이 그치자 공중에서 소리가 잘 어울리니 난새와 봉황이 날아와 모이는 것 같았다.” 『무림구사(武林舊事)』 1권 「성절(聖節)」에도, ‘여러 금수가 우는’ 호복(胡福) 등 2명이 있었다. 6권 「제색기예인(諸色伎藝人)」에 ‘사투리를 배운’ 방재랑(方齋郞)이 있었으며 ‘물건을 파는 소리를 흉내 내는(吟叫)’ 사람이 강아득(姜阿得) 등 6명이 있었다. 당시에 이른바 ‘규과자(叫果子)’1), ‘음아(吟哦, 음영吟詠: 박자에 맞춰 음송, 낭독하는 것)’ 또한 입내에 속했다. 송대 고승(高承)의 『사물기원(事物紀原)』 9권의 기록이다. “가우(嘉祐) 말에 인종이 죽어서 사방에서 8음이 그치고 조용하게 되자, 시중에 처음으로 규과자 놀이가 생겨났다. 본래 지화·가우 연간부터 자소환(紫蘇丸)을 읊을 것과 악공 두인(杜人)이 십규자(十叫子)를 엮은 것이 시작이다. 경사에서 물건을 팔 때에는 소리를 지르게 마련인데 음아(吟哦)〔음영(吟詠)〕가 서로 달랐다. 그래서 시민들이 그 성조를 채용하여 사이에 사장(詞章)을 넣어 오락거리로 삼았다. 지금 세상에 성행하니 ‘음아’라 부른다.” 이것이 바로 당시에 『도성기승(都城紀勝)』에서 말한 ‘와사(瓦舍)의 여러 기예’ 중 하나인, 시정에서 여러 색깔로 물건을 파는 소리를 따서 노래하고 읊조리는 기예다. 궁조에 맞춰 이루어진 ‘규과자’는 시중의 물건을 파는 성조를 종합적으로 모방한 것이다. 당시에 여러 설창(說唱), 가무(歌舞), 곡예(曲藝), 잡기(雜技) 예인은 모두 거지의 지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물며 보잘 것 없는 재주인 입내 예인이야 말하여 무엇 할 것인가. 『청패류초·걸개류』에 수록된 「개효각종성(丐效各種聲)」의 사례가 그것이다. 입내를 실연하면서 구걸하는 거지의 사례는 청대 정지상(程趾祥)의 저서 『차중인어(此中人語)』 3권 「개기(丐技)」에서 따왔다. 광서 초년에 상해시에 거지 한 명이 있었다. 입에 갈대 줄기로 만든 피리를 물고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 병아리 소리, 연 날리는 소리 등을 흉내 낼 수 있었다. 거의 진짜 같아 사람들이 가짜를 구별할 수 없었다. 이외에 돼지, 개, 소, 양 등 가축 소리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었다. 기공(氣功)을 실연하면서 구걸하는 방식도 있다. 직접 기록된 문헌을 근거로 하면 기공(氣功)은 이천여 년 전의 사서와 의서에 이미 보인다. 기공을 운용하여 병을 예방하고 몸을 튼튼히 했다는 기록이다. 중국 전통 무술도 일찍부터 기공으로 몸을 튼튼히 하고 몸을 지키는 효능을 받아들여 하나로 융합시켰다. 역사상 유명한 무술 대가들은 기공의 도에 정통하였다. 강호에 기예를 팔아 걸식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기공도 구걸하는 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청대 선통 말년(1911) 7월, 신해혁명이 발발한 그 해에 강녕(江寧) 하관(下關)시에 거지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한 점포에 들어가 긴 걸상을 하나 가지고 나와 계산대 위에 거꾸로 올려놓고는 주먹을 쥐고 운기를 한 다음 걸상에서 2,3촌 떨어진 곳에서 주먹을 뻗고 당기면서 걸상을 왔다갔다 움직였다. 걸상에 주먹이 닿지도 않으면서 4차례가 움직이게 만들었다. 한 차례 실연한 후 점포 주인에게 사례금을 요구한 것은 물론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도시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당시의 시장에서는 각양각색의 장사꾼이 생겨났다. 장사꾼의 큰소리로 외치며 물건을 파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끊임없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자 당시의 설창 예인이 물건을 파는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그 소리를 기초로 가공하고 연마해 전문적인 기예로 발전시킨 후 당시의 경성의 ‘와사(瓦舍)’에서 공연하였다. ‘규과자(叫果子)’는 그런 입내(성대모사) 공연 중의 하나다. 주로 당시에 과일을 파는 장사꾼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방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청대 광서 연간에 소주(蘇州) 도화선관(桃花仙館)에서 석판 인쇄한 당재풍(唐再豊)이 편찬한 『아환회편(鵝幻匯編)』 권12 『강호통용절구적요(江湖通用切口摘要)』의 기록을 보자. “강호 여러 기술은 모두 네 가지로 나눈다. 포(布), 피(皮), 이(李), 과(瓜)인데 이를 행하는 자를 상부(相夫)라 부른다. 상부를 하는 자는 하다라 하지 않고 맡다 라고 하여 스스로를 당상(當相) 사람이라 부른다. 점, 관상, 문자점 등을 통틀어 포항(布行)이라 부르고 병을 치료하는 약을 파는 것, 고약을 만들어 파는 것 등을 통틀어 피항(皮行)이라 하며 요술(마술) 4가지1)를 통틀어 이자(李子)라고 부르고 권법, 곡마(曲馬) 등을 통틀어 과자(瓜子)라 부른다.” 이 네 가지 부류에 속한 거지는 실제로 기예를 부리며 구걸하는 매예형(賣藝型) 거지다. 일찍이 명·청시기에 강호에서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팔면서 구걸하던 거지 사이에 많은 ‘당상(當相)’의 직업은어가 유행하였다. 예를 들어 『신각강호절요(新刻江湖切要)』에 기록이 있다 : 의사를 제붕공(濟崩公), 원기를 북돋우는 것을 고권인(苦勸人), 명의를 한화통(熯火通), 부유한 의사를 한화(汗火), 한때 인기 있는 의사를 단청(丹靑), 죽채(竹彩) ; 안과를 피간(皮懇), 침과 뜸을 차연만(釵烟彎), 진맥을 탄현자(彈弦子), 탕약(湯藥)을 사다(손으로 약재를 집어서 달아 첩(貼)으로 짓는다는 뜻)를 배한(配熯), 약을 바르는 것을 암로(暗老), 암한(暗熯), 고약을 원지(圓紙), 도원(塗圓) ; 약을 달이는 것을 전한(煎熯), 소량의 약 가루를 고약의 가운데에 놓고 상처에 바른 것을 비설(飛屑), 방추형 약을 한화(熯火), 한금(熯琴), 오고 가고 하면서 약을 파는 것을 도피(跳皮), 행한(行熯) ; 약을 소매하는 것을 주소포(丢小包), 춘약을 파는 것을 파한(派熯), 취폐(取鄨), 괘랑(掛狼), 기생충병을 치료하는 것을 칠절통(七節通), 칠절조(七節吊), 침을 놓는 것을 차매(叉賣), 차당(叉黨), 환약을 환한(丸熯), 립립(粒粒) ; 우황을 폭공(爆工), 약용 진주 분말을 교환하는 것을 고부공(鼓釜工), 연충 토하기를 발묘수(潑卯水) ; 짐을 짊어지고 약을 파는 것을 천평당(天平黨), 환약을 파는 것을 도립립(跳粒粒), 호탱(虎撑)2)을 촌령(寸鈴), 금창약을 파는 것을 도십자한(跳十字熯), 향을 피우고 산 위의 사묘에 참배하며 약을 파는 것을 공당(拱黨), 관음당(觀音黨), 추환(捶丸)3)하며 약을 파는 것을 만자(彎子), 처방전을 파는 것을 제공(提空) ; 고약을 제조하는 것을 취도아(炊塗兒), 북경사람이 약을 파는 것을 염칠피통(念七皮通), 승려가 약을 파는 것을 삼피도(三皮跳), 도사가 약을 파는 것을 화두생(火頭生), 전진당(全眞黨), 충치를 치료하는 것을 시수(柴受) ; 부녀자가 약을 파는 것을 타청(拖靑), 반시(扳柴), 공중에서 약을 취하는 것을 채립(采粒), 나귀 타고 약을 파는 것을 타귀(拖鬼), 우산을 들고 약을 파는 것을 창피(昌皮), 마술하면서 약을 파는 것을 정차당(丁叉黨), 가판대를 늘어놓고 약을 파는 것을 흘탑당(趷 黨), 좌선해 약을 파는 것을 주돈자(丢墩子), 게시해 약을 파는 것을 설벽(設僻), 가짜 약을 파는 것을 도장한(跳將熯), 의술을 배우는 것을 쇄피(鎖皮) 등등이라 불렀다. 관상을 보는 ‘당상(當相)’을 행할 때에는 각각 12간지 동물을 표시하는 띠로 은어를 만들었다. 『강호통용절구적요(江湖通用切口摘要)』는 더욱 구체적이고 생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대 위에 약병을 설치해 병을 치료하는 자를 사평(四平), 대 위에 약병을 설치하고 약을 파는 자를 념자(捻子), 땅 위에 많지 않은 약병을 설치한 자를 점곡(占谷), 손에 호청을 들고 흔들면서 거지를 지나면서 긴 천을 이용해 간판으로 삼아 손님을 맞이하는 자를 추포(推包), 호청을 추자(推子) 등으로 불렀다. 고약을 팔면서 철추로 자기 몸을 때리는 자를 변한(邊漢), 고약을 팔면서 칼로 팔 등에 자해하는 자를 청자도(靑子圖), 고무 협지고(夾紙膏)를 파는 자를 용궁도(龍宮圖), 고약을 팔면서 돈을 요구하지 않고 향만을 요구하는 자를 향공(香工), 시골만 돌아다니면서 광대라 자칭하며 병을 치료하는 자를 수포(收包), 가판대를 깔아놓고 초약을 파는 사람을 초한(草漢), 대나무 막대기에 많은 기생충을 달고서 기생충환(吊蟲丸)을 팔며 다니는 자를 낭포(狼包), 기생충을 달고 다니지 않고 기생충환을 팔며 다니다 찾는 사람이 없으면 먼저 쌀벌레나 돈을 땅에 던져 병자를 토하게 만드는 자를 도모수(倒毛水), 삼삼칠(參三七)을 팔고 다니는 자를 근근자(根根子), 가루약을 물에 넣어 환을 만드는 것을 탕리자(湯李子), 황색 돌기를 술에 섞어 허리와 다리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팔고 다니는 자를 추리자(推李子), 안약을 파는 자를 태한(抬漢), 가짜 용골(龍骨)을 팔고 다니는 자를 처량자(凄涼子), 구슬 놀이를 하면서 고약을 팔고 다니는 자를 탄궁도(彈弓圖), 독창을 치료할 수 있다며 춘약을 팔고 다니는 자를 연장(軟賬), 당의정을 팔고 다니는 자를 통틀어 첨두(甛頭), 징을 치며 당의정을 파는 자를 초포(超包), 약을 잘게 잘라 사탕에 넣기 전에 바싹 졸이는 것을 좌목첨두(剉木甛頭), 사탕을 길게 만들기에 앞서 톱양을 본뜨는 것을 소포첨두(小包甛頭), 속이 비고 부드러운 당의정을 포화념지(鋪貨捻地), 마술을 선보이고 나중에 약을 파는 것을 취마(聚麻) 등등으로 부른다. 약을 파는 모든 것을 통틀어 피항소포(皮行小包)라 부른다.” 이러한 여러 가지는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파는 자들의 본업의 내막을 잘 보여준다. 두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 약간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서로 보충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유행의 차이에서 오는 상이점이라 하겠다. 청대 『북경민간생활채도』 제96 「찬령매약도(串鈴賣藥圖)」의 제사는 이렇다. “이것은 중국에서 방울을 흔들며 약을 파는 그림이다. 이 사람은 강호 떠돌이 의사다. 의술에 의약에 어느 정도 정통하며 말재간이 좋아 여러 성을 돌아다니며 기예를 판다. 한 손에 방울을 들고 흔들며 다른 한 손에는 서로 다른 약 이름을 쓴 광고를 들고 있다. 병을 치료할 때에는 눈으로 병색을 보고 병세에 따라 말을 옮기며 약을 판다. 단지 의식을 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의 형상은 제사에 못지않다. 몇 마디 말로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팔면서 구걸하는 방식의 거지의 행위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단지 의식을 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한 마디로 거지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마술(戱法儿)’의 기본 수채활(手彩活, 즉 손재주)에는 4가지가 있다. ‘단(丹), 검(劍), 두(豆), 환(環)’이다. 단(丹)은 쇠구슬을 삼키는 것 ; 검(劍)은 보검을 삼키는 것 ; 두(豆)는 선인적두(仙人摘豆, 사발 2개에 콩이나 콩 크기의 진흙알 7개를 엎어놓고 옮길 때마다 변환하고 나중에는 온데간데없는 눈속임 마술) ; 환(環)은 구련환(九連環, 지혜의 고리)을 가리킨다. 2) 호탱(虎撑)은 낭중행의(郎中行醫)의 표시(標示)다. 구리나 쇠로 만든 금속권(圈)이며 가운데는 비어있고 안에 작은 쇠구슬을 집어넣었다. 호탱을 흔들면 소리가 난다. 명청(明清)시대 안휘성(安徽省) 안경(安慶)에서 유의(游醫) 낭중(郎中)들은 등에는 약 바구니를 짊어지고 손에는 호탱을 쥐고 방방곡곡을 누비고 돌아다니며 의술을 행하며 한약도 팔았다. 이것이 ‘호탱(虎撑)’의 내력(来历)이다. 안경 일대에 유전되어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신기한 전설이 있다. “당(唐)나라 때 명의 손사막(孫思邈)이 어느 날 심심산곡으로 약을 캐러 들어갔다.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여러 빛깔이 섞여 알록달록한,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가 입속에 피를 머금고 있다가 손사막을 향하여 고통스럽게 신음 소리를 내었다. 손사막은 호랑이가 불쌍하여 호랑이의 입안을 들여다보았다. 늙은 호랑이의 목구멍 속에 기다란 뼈가 걸려 있었다. 손사막은 호랑이가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목구멍에 걸려있는 기다란 뼈를 꺼내기는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호랑이가 입을 다물면 손이 끊어질 것을 염려하여 손사막은 급히 마을로 내려가 철장에게 철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손사막은 철환을 호랑이의 입안에 버티어 놓고 철환의 구멍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호랑이의 목에 걸린 뼈를 호랑이의 입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호랑이는 감격하여 손사막에게 머리를 조아리고는 멀리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와 같은 소문이 퍼진 후 유의낭중들은 자기들도 손사막처럼 고명한 의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하여 한 손에 철환을 들고 다니며 행의를 표시하기 시작했는데 이와 같은 철환을 호탱(虎撑)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유의낭중(游医郎中)들에게 호탱(虎撑)을 흔드는데 있어서 일정한 규칙이 있다. 예를 들면 호탱을 자기 가슴 앞에서 흔드는 유의낭중은 일반 낭중(郎中)이고 호탱을 자기 어깨 높이에서 흔드는 낭중은 의술이 비교적 뛰어난 낭중이며 호탱을 자기 머리 위로 높이 올려서 흔드는 낭중은 의술이 매우 고명한 낭중이라는 상징이다. 호탱의 위치와 상관없이 약방의 문 앞을 지나 갈 때는 호탱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약방 안에 손사막의 위패(位牌)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낭중이 약방 앞을 지나가며 호탱을 흔들 경우엔 스승을 모독했다는 혐의를 받고 약방 주인은 즉시 유의(游醫)의 호탱(虎撑)은 물론 약 바구니까지 몰수하고 동시에 손사막의 위패 앞에 분향하며 사죄하라고 명했다. 사료(史料)에 의하면 송(宋)나라 때 명의 이차구(李次口)가 호탱을 손에 쥐고 행의하기 시작했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차구는 의술이 고명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민간 의사들이 호탱(虎撑)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행의하는 습속은 청(清)나라 말과 민국(民国) 초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신중국 성립 후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민간 의사의 행의를 표시하던 ‘호탱’은 한의 역사 문물이 되고 말았다. 현대의 민간 의사들과 민영 병원에서는 고객을 끌어 들이기 위한 수단으로써 빨강 색깔의 비단 위에 “묘수회춘(妙手回春)”, “신의성수(神醫聖手)”, “도초편작(道超扁鵲),기압화타(技壓華佗)” 등 글씨를 써서 문 앞에 높이 매달아 놓는다. 3) 옛날 놀이의 하나다. 마당에 한 자 가량의 너비로 네모나게 금을 긋고 가운데 공 따위를 놓은 다음 다른 곳에 구멍을 파서는, 몽둥이로 공을 쳐서 그 구멍 안에 넣는 사람이 이긴다. 타탄(打彈)이라고도 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전통 초가의 공간을 그대로 찾아보기는 힘이 들고, 개량되었거나 기억에만 남아 있는 공간이 되었다. 대정 지역 농촌의 집들은 원래의 초가의 터를 확장하거나 개량된 현대의 집이 대부분이다. 물질적 변화의 삶이 공간 구조도 바뀌게 한 것이다. 제주 전통의 가옥 구조를 보면 진입로인 올레, 너른 마당, 채전(菜田)인 우영, 간장·된장·젓갈류를 보관하는 장팡, 돼지가 사는 돗통(통시), 소를 키우는 쉐막, 살림집인 초가 한 채나 혹은 안거리 밖거리, 모커리 가옥 3채가 서로 분리돼 있었다. 또 마당과 이어서 눌터와 초가를 돌아가면 뒷 우영이 있었다. 초가의 구조 또한 대부분 3칸에서 4칸이었고, 초가 구조는 정제(정지), 쳇방, 큰방, 작은 방, 마루, 안방(고팡), 굴묵, 난간 등으로 이루어졌다. 정제(정지:부엌)에는 예전에 세 개의 돌로 받치 솥덕이 3곳에 있었으나 난방을 사용하게 되면서 방과 이어진 온돌을 놓았다. 쳇방은 앉아서 식사를 하는 공간이며, 거실 역할을 하고 있는 마루에서는 제사를 지내거나 접객을 하는 공간이었다. 물론 큰 방에서 제사를 지내는 집들도 있다. 대정 지역에서는 고팡을 안방이라고 하여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로 썼으며, 평소에도 늘 통쇠(자물쇠)를 걸어두었다. 안방은 그냥 흙벽으로 두고 곡식을 차고 어둡게 보관하였으며, 두 주먹 크기의 ‘창곰’을 내서 공기만 겨우 통할 수 있고 빛을 최소한 제한하여 들어오게 만들었다. 안방에는 곡식을 보관하는 통개와 뒤주(나중에 드럼통)들이 있었다. 영락리, 동복리, 김녕리 등에서는 그 통개에 안내(안칠성)를 모시기도 하는데 그 통개 속에는 안칠성의 상징물(구슬, 오색천, 오곡)을 넣고, 제사 때나 철갈이 때 그 통개 위에다 상착에 제물을 차려 놓는다. 온돌은 근세에 이르러 서민에게 도입되어, 방 구들에 두 줄의 홈을 파서 납작한 곶돌인 아아용암으로 줄줄이 덮은 후에 찰흙을 바르고 마르면 장지를 붙여서 콩기름을 여러 번 바른다. 밖으로 굴뚝을 내어 연기를 배출하였다. 난방은 두 곳에서 이루어진다. 초가가 개량되면서 정제(부엌)와 붙은 방은 솥덕과 연결하여 온돌을 만들었고, 다른 방인 경우 따로 굴묵과 연결하여 온돌을 지폈다. 땔감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밥을 지을 때는 솔잎·소나무 쭉정이·장작·콩깍지·조칲·솔또롱(솔똥,:솔방울) 등을 사용했고, 때에 따라서 보리낭이나 감젯줄을 사용하기도 했다. 굴묵의 연료로는 보리 까끄레기나 쉐똥을 사용하여 불을 지핀 후 당그네로 뜨거운 불채를 깊게 밀어넣으면 점점 방바닥이 뜨거워진다. 또 연료는 따로 눌(노적단)을 눌어서 마당 구석에 놔둔다. 연료 중에 낭뿔리가 있는데 낭뿔리는 주로 소나무 뿌리이다. 낭뿔리는 화력이 좋아서 큰일 때에 돼지고기를 삶을 때 사용하기 때문에 따로 구입해 둔다. 동네 청년들이 모여 낭뿔리 계모임을 만들었다. 또 다른 눌로는 촐(꼴)을 누는(쌓은) 눌이 있었다. 촐눌은 쉐나 말을 키우는 집의 먹이이며, 촐눌로는 감젯줄눌, 콩깍지눌, 조칲눌, 오리지널 촐눌이 있었다. 기본적인 쉐와 말 먹이는 촐이었다. 그러나 별미처럼 꽁깍지와 조칲은 쉐와 말이 좋아하고 감젯줄은 특히 말이 좋아한다. 그리고 깔개로 쓰는 보리낭눌은 돗통에 깔거나 비가 올 때 마당에 깔기도 하고, 또는 날래(곡식)를 널(말릴) 때 멍석 아래 깔개로 쓰거나 여러 모로 집 안팎 공간의 깔개로도 사용하고 장마철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우영에는 채소들을 심었는데 일종의 자연 냉장고처럼 싱싱하게 때마다 캐서 먹는다. 우영에는 나물·파·고추·가지·상추·무 등을 조금씩 가꾼다. 우잣에 심는 나무로는 동백, 감나무, 비파, 피마자, 복사꽃을 심었고, 돗통 옆에는 무화과를 심는다. 초가 뒤편이나 서측에 낙숫물을 막기 위해 양애(양화)를 심었고 향기로운 순은 식용으로 먹었다. 올레에 심는 꽃으로는 마농꽃, 봉숭아, 분꽃, 칸나 등을 심었다. 돗통은 정제와는 반대편에 만든다. 신화에서도 정제와 측간은 멀어야 좋다는 말이 있는데, 남선비의 본부인인 조왕 할망과 첩인 노일저대구의 똘이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며, 멀리 있어야 하고, 사실은 위생상으로도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한다. 쉐막에는 쉐를 키우지만 잠대와 같은 농기구를 걸어 놓거나 작두와 남방애를 보관한다. 나날이 증가하는 이주민의 시대가 되면서 제주 전통문화는 변해가고 있고, 타지역 문화와 혼합되는 상황에 놓여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제주도의 문화 지각이 변동하고 있다. 공간은 사회적, 환경적으로 생산력에 따라 마치 유기체처럼 변한다. 인구 변동, 생활방식, 삶의 질에 따르는 의식주 변화에 따라 다시 공간이 바뀐다. 정작 중요한 변화의 요인은 산업의 큰 변화였다.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하는 것이 세상이 이치라면, 삶도 당연히 변해야 정상이 아닐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중국의 전통 의약학(醫藥學)은 역사가 유구하다. 집단주의적 관념(인체의 각 부분이 전체 유기체를 구성하는 정합(整合)된 것으로 보는 관념), 변증론치(辨證論治)1), 예방과 치료의 결합(예방치료)에 뛰어나다. 현재 보이는 상(商)대 복사(卜辭) 중의 현존하는 질병에 대한 기록은 500여 항목이나 된다. 서주(西周) 때에는 의학이 ‘천관총재(天官冢宰)’에 속했다. 식의(食醫), 질의(疾醫, 내과), 양의(瘍醫, 외과), 수의(獸醫) 등 여러 과가 있었다. 의사는 의정(醫政)을 모두 관리하였다. 이후에는 민간에서 사의(私醫)가 명성을 떨쳤다. 『사기·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의 기록을 보면 춘추시대 때에 진월인(秦越人, 편작)이 내과 수술에 능했고 대하의(帶下醫, 부인과), 소아과, 이목(耳目) 비병(痹病)의 등을 겸했다. 모두 “각지의 인정 풍속에 맞추어 진료 과목을 바꾸었다.”(隨俗爲變) 전통 중의학은 민간에서 생겨났기에 역대로 유방랑중2)이 강호를 떠돌아다니면서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중의학은 가전(家傳) 풍습이 있다.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인연이 생기면 의약 기술을 배우거나 관련 지식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 약방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전문적인 한의사가 아니라 대부분 의약 지식이 있어 질병을 진단하고 약을 조제하였다. 이러한 중국민족문화 중에서 그러한 의약학 문화전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팔면서 구걸하는 거지 부류가 생겨난 것도 기이한 일은 아닐 터이다. 약방에서 약을 조제하는 사람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약을 캐고 약을 심으며 약을 만드는 약농(藥農), 약공(藥工)도 거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었다. 가전비방을 배운 사인이나 관리도 생활이 곤궁해져 초라하게 되거나 환란에 빠지게 되면 자기 기술을 펼치면서 걸식하거나 돈을 버는 것은, 그저 길거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동냥하는 거지보다는 그나마 용이하기도 하였고 떳떳하기도 하였다. 『후한서·방기전(方技傳)』 기록을 보자 : 곽옥(郭玉)이라는 광한(廣漢) 낙성(雒城) 사람이 있었다. 그의 부친은 부수(涪水)에서 고기를 자주 낚았기에 부옹(涪翁)이라 불렸다. 민간에 은거하며 구걸하면서 질병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침술로 치료해 줬다. 나중에 『침경진맥법(針經診脈法)』을 저술하여 제자 정고(程高)에게 전해주었다. 정고도 은거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공명도 쫓지 않았다. 곽옥은 어릴 적부터 정고를 따라다니며 방진(方診, 처방과 진찰) 육징(六徵)3)의 기술과 ‘음양의 변화를 헤아릴 수 없다(陰陽不測)’의 법술을 배웠다. 나중에 궁중의 태의승(太醫丞)이 됐을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 그럼에도 그는 어질었고 자신의 재능을 뽐내지 않았다. 빈천한 하층민에게도 전심전력으로 병을 치료하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곽옥의 부친은 의술을 행하며 구걸하였다. 곽옥도 명성을 얻어 관리가 됐으면서도 여전히 가풍을 지키며 가난한 병자를 멸시하지 않았다. 인품과 의술 모두 뛰어났다. 적어도 한(漢)대에 이르면 중국 민간에 의술을 펼치며 구걸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을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송대 소박(邵博)의 『소씨문견후록(邵氏聞見後錄)』 29권 기록을 보자 : 정사보(鄭師甫)는 종아리에 부스럼이 났다. 물이 들어가자 너무 부어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거지가 귀지로 부스럼에 바르자 하룻밤 사이에 물이 흘러나오고 부스럼도 완치되었다. 책에는 너무 간단하게 30여 자의 기록밖에 없고 정사보의 자술이기에 그 거지에게 어떤 포상금으로 사례했는지도 서술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술된 상황을 보면 의술을 행하며 구걸하는 거지라 판단할 수 있다. 명대 황희수(黃姬水)의 『빈사전(貧士傳)』 하권 『왕규(王逵)』의 기록을 보자 : 왕규의 자는 지도(志道), 전당(錢塘) 사람으로 한쪽 발을 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하루 세 끼니를 잇기가 어려워서 약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나중에 계속해 약을 팔 수 없자 점을 쳐주면서 살아갔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사람을 위하여 근심을 덜어주고 곤란을 해결해 주었다. 이처럼 왕규는 약을 팔면서 구걸하였을 뿐 아니라 점술을 이용하여 걸식했음을 알 수 있다. 두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던 거지였다. 고대에 강호에서 의술, 점술, 점성술, 관상을 봐주는 것을 ‘방기(方技)’라 하였다. 『사기·창공전(倉公傳)』에 “방기에 뛰어나고 능히 병자를 치료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한서·예문지』는 말한다. “방기(方技)라는 것은 모두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니, 왕이 설치한 관직 가운데 하나인 직무다. 태고에 기백(岐伯), 유부(俞跗)가 있었고 중세에는 편작(扁鵲), 진화(秦和),……한이 흥하자 창공(倉公)이 나타났다.”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강호 방기 중의 의술이다. 나중에 강화 사회에 네 가지로 나뉘었는데 그중 하나가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파는 부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변증론치(辨證論治), 각종 증상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치료를 결정한다는 한의학 이론이다. ‘증(證)을 변별하여 치료를 논한다’는 뜻으로, 한의학에서 질병을 인식하고 치료하는 기본원칙이다. 한의학에서는 병명에 관계없이 우선 증(證)을 살핀다. 증은 증후군(證候群)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환자로부터 얻은 정보들, 즉 질병의 원인이나 부위·성질·신체적 여건 등의 증후군을 종합적으로 살핀 후 치료를 한다는 이론이다. 변증시치(辨證施治), 변증론치(辯症論治)라고하기도 한다. 2) 주방랑중(走方郎中), 떠돌이 의생(醫生), 주랑중(走郎中), 유방랑중(游方郎中), 영의(鈴醫), 초택의(草澤醫), 주의(走醫)라고도 한다. 옛날 유학(遊學)하며 의술을 행하고 약을 팔며 사방을 주유했던 사람을 가리킨다. 3) ‘방진(方診)육징(六徵)’은 의방(醫方), 진법(診法)과 3음3양(三陰三陽)의 맥상(脈象)을 판별하는 의법(醫技)이다. 육미(六微)〔육징(肉徵)〕에 대해 청대 심흠한(沈欽韓)은 《양한서소증(兩漢書疏證)》에서 말했다. “육미(六微)는 3음3양(三陰三陽)의 맥후(脈候)다.” 《소문(素問)》 《육미지대론편(六微旨大論篇)》에 요지암(姚止庵)의 해제에 말했다. “하늘에는 육기(六气)가 있고 사람에게는 3음3양(三陰三陽)이 있어 상하가 상응한다. 변화는 여기에서 생겨나고 질병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그 뜻이 지극히 미묘하기에 육미지대론(六微旨大論)이라 하였다.” ‘육미(六微)’는 의도(醫道)를 가리킨다. ‘육미(六微)’는 ‘육징(六徵)’이라하기도 하는데 여섯 가지 징후를 가지고 병을 진단하는 법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