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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다우트 (6)
‘뒷담화’ 수준의 가짜뉴스 ... 개인에게 폐혜 돌아가지만
정치권이 만드는 가짜뉴스는 ... 사회와 국민에게 회복 불능 피해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플린 신부가 자기 입으로 흑인 중학생 아이와 동성애의 죄를 범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려 하지만 플린 신부는 끝까지 부인한다. 수사 권한도 없고 형사 콜롬보나 CSI 과학수사대급의 추리력과 수사능력도 갖추지 못한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네가 네 죄를 알렸다’고 분기탱천하는 원님 재판 수준을 맴돈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순순히 ‘자복’하지 않는 플린 신부에게 최후의 협박을 한다. 플린 신부를 둘러싼 의혹을 플린 신부의 전 근무지와 교구의 수녀들에게 물어보겠다고 한다.

신부의 비위나 비리 의혹을 조사할 권한도, 그렇다고 징계권도 없는 수녀들에게 물어보겠다는 말에 플린 신부는 “차라리 주교회의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라”고 응답하지만,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수녀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물어보는 방법을 택하겠다고 선언한다. 다시 말하면 플린 신부의 ‘추악한 의혹’을 동네방네 소문내겠다는 뜻이다. 

플린 신부는 명색이 성직자인 수녀원장이 이런 간교한 수를 동원하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때까지 수녀의 추궁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서던 플린 신부는 소문내겠다는 협박 한마디에 전의(戰意)를 상실한다. 플린 신부는 소문이라는 것의 속성과 무서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로마 최고의 시인으로 칭해지는 베르길리우스(Vergilius)는 로마 건국을 노래한 서사시 ‘아이네이드(Aeneid)’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소문(rumor)은 다른 어떤 악마들보다 빠른 악마다. 소문이란 이름의 이 악마는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강해지고 빨라진다. 이 악마는 처음에는 작고 미약하지만 곧 큰 바람이 되고 그 머리를 구름 속에 감춘 채 온 땅을 뒤덮어버린다.”

라틴 역사에 정통했을 플린 신부도 ‘소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아이네이드’의 경고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플린 신부는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소문 전략’ 카드를 꺼내자 곧바로 주임신부직에서 사임하기로 결정한다. ‘소문 전략’이란 치졸하지만 대단히 효과적인 무기인 셈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드’에서 로마의 건국을 노래했지만, 어쩌면 로마의 패권을 놓고 벌인 옥타비아누스와의 싸움에서 ‘가짜뉴스’에 난도질당해 모든 것을 잃은 안토니우스를 노래한 듯하다. 

안토니우스야말로 역사상 ‘가짜뉴스’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만하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최대 정적이던 안토니우스가 ‘술주정뱅이에 여색에 빠진 자이며 이집트 클레오파트라의 꼭두각시’라는 소문을 퍼트린다.

안토니우스는 휘청인다. 휘청이는 안토니우스에게 옥타비아누스는 결정타를 날린다. 안토니우스가 작성했다는 가짜 유서를 대량 복사해서 로마 시내에 뿌린다. 안토니우스의 가짜 유서에는 ‘내가 죽으면 이집트 파라오들의 무덤에 나를 묻어달라’고 적혀있다. 

로마 시민들은 로마를 배신한 안토니우스에게 분노한다. 옥타비아누스가 꺼내든 비장의 무기는 베르길리우스의 표현처럼 ‘구름 위에 얼굴을 감춘 소문’이란 악마였다. 로마 시민들은 그 소문을 누가 퍼트렸는지도 알 수 없고, 진위도 알 수 없지만 모두 떨쳐나서서 조국의 배신자 안토니우스를 처단하라고 총궐기한다.
 

 

그렇게 B.C. 31년 악티움 해전(Battle of Actium)에서 패한 안토니우스는 소문이라는 악마에게 연타를 당하고 주저앉는다. 

안토니우스는 아마도 명색이 일세(一世)의 영웅이란 옥타비아누스가 그렇게 저급한 전략을 구사했다는 데 치를 떨었을지 모르지만, 끝내 또다른 ‘가짜뉴스’에 최후의 일격을 당한다. 악티움 해전에서 패한 클레오파트라는 로마군의 수색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자살했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옥타비아누스는 그 소문에 콧방귀를 뀌고 끝까지 클레오파트라를 추적하는데,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이었던 안토니우스는 그 소문을 믿고 절망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클레오파트라도 결국 자살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마시대 실사판이라 할 만하다. 안토니우스는 ‘가짜뉴스’에 3연타(連打)당하고 패가망신하고 삶을 버린 인물로 기록된다.

인터넷 시대 속 대한민국은 IT강국답게 ‘가짜뉴스’ 몸살도 남들보다 심하게 앓는 듯하다. ‘구름 속에 얼굴을 감춘’ 소문들이 무고한 누군가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지게 하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게도 한다.

‘술자리 뒷담화’ 수준의 가짜뉴스 폐해는 몇몇 개인에게만 돌아가겠지만, 정치인들이 ‘가짜뉴스’의 생산ㆍ유통ㆍ소비에 발 벗고 나선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회복 불능의 피해가 사회 전체와 전체 국민에게 돌아간다.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소문’ 협박에 굴복해서 주임신부직을 사임하고 떠나기로 결심한 플린 신부는 ‘소문’이란 주제로 마지막 강론에 나선다. 어느 고해성사 신부의 이야기를 꺼낸다. 어느날 한 여인이 고해성사 신부를 찾아와 자신이 이웃에게 나쁜 소문을 전달하는 죄를 지었다고 고해하고, 이제 고해성사를 했으니 용서받을 수 있냐고 묻는다. 

신부가 답한다. “오늘 베개를 가지고 지붕에 올라가 칼로 베개를 가르고 흔들어라. 그리고 다시 오라.” 여인은 신부의 말대로 한다. 베개를 가르고 흔들자 깃털들이 바람에 날려 사방으로 날아간다. 다시 성당을 찾아온 여인에게 신부가 말한다. “바람에 날아간 깃털들을 모두 찾아오면 용서받을 수 있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베개를 가르고 흔들어 날려보내는 깃털들이 하늘을 뒤덮는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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