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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다우트 (2)

 

카톨릭 교회의 보수적 가치를 신봉하는 알로이시우스 수녀원장에게 진보적인 플린 신부는 ‘불온’한 요주의 인물이다. 당연히 적개심을 품는다. 플린 신부는 부임 첫 강론부터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듣기에 조금 ‘수상한’ 발언을 한다.

플린 신부가 발언한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난파선에서 탈출해 구명정에 혼자 남은 선원이 자기가 배운 대로 별자리에 의존해 바다를 헤쳐나간다. 그러면서 선원은 계속 자신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한다. 외톨이가 되면 별자리까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 모두 그렇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그것을 플린 신부가 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든지, 아니면 플린 신부가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모종의 죄를 괴로워하는 고백으로 받아들인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진보의 바람이 잔뜩 든 데다 신앙심까지 의심스러운 플린 신부를 향해 적개심을 불태운다. 플린 신부는 분명 무슨 ‘사고’를 치고 있을 것이며, 언젠가는 분명 ‘사고’를 칠 것이며, ‘사고’를 쳐야만 한다. 

플린 신부가 ‘사고’를 쳐줘야만 그와 함께 날아온 불온한 진보의 바람을 몰아내고 숭고한 보수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제임스 수녀에게 플린 신부를 밀착 감시하라고 지시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 수녀가 주저하면서 플린 신부를 둘러싼 사소한 뉴스 하나를 물어 온다. 자신의 수업 중에 플린 신부가 외톨이 흑인 학생 도날드를 사제관으로 보내달라고 해서 보냈는데, 돌아온 도날드가 무척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고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는 뉴스였다. 

보고를 받은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눈이 빛난다. 속으로 ‘빙고!’나 ‘대~박!’을 외치는 듯하다. ‘사제관에 불려갔던 소년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는 뉴스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그 작은 뉴스 하나를 ‘플린 신부와 흑인 소년과의 동성애’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라고 심증(心證)을 굳힌다. 그녀의 마음속에 똬리 틀고 있던 적개심이라는 괴물이 그 뉴스에 눈을 번쩍 뜬다.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사소한 뉴스 하나에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발작 버튼’을 누른다. 

적개심에 사로잡혀 시작된 발작은 어떠한 합리적 해명이나 반박도 멈출 수 없다. 영국 역사학자 E. H. 카(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교양서도 ‘빨갱이’로 의심받는 자가 읽으면 그가 ‘빨갱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된다.

이유는 E. H. 카가 영국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소련에 근무했고 소련에 긍정적인 시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1981년 ‘부림사건’ 기소 이유에 적시됐던 황당한 논리다. 알로이시우스 수녀나 ‘부림사건’의 검사님이나 모두 광기 어린 적개심에 사로잡힌 인물들이다.

 

 

적개심이란 밀폐된 방에 가득 찬 유증기(油蒸氣)와도 같다. 작은 불씨 하나만 튀어도 폭발한다. 플린 신부를 증오하는 적개심이 가득한 상태에서 그와 독대한 학생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났다는 작은 꼬투리는 세상을 날려버릴 정도의 폭발력을 지닌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14좌가 세계최고봉인 것은 이미 그 높이가 8000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히말라야 산맥 위에 올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800m 남짓밖에 안 되는 에베레스트나 로체나 K2봉(峰) 자체는 도봉산이나 북한산 높이에 불과하다. ‘별것도 아닌’ 대청봉이나 인수봉이나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올라앉으면 세계 최고봉이 된다. 

히말라야 산맥과 같은 거대한 적개심 위에 보태지는 어떤 작은 봉우리 같은 의혹은 거대한 의혹으로 돌변하기 일쑤다. 에베레스트봉이나 로체봉이나 해발 26m라는 서울에 옮겨 놓으면 그저 도봉산 인수봉에 불과하다. 적개심이 받쳐주지 않는 의혹에는 모두 관대하거나 무관심하다.

우리 모두 자신이 적개심을 품은 세력이나 집단, 인물을 꼬집는 것이라면 아무리 불확실하고 사소한 소문 하나에도 알로이시우스 수녀처럼 ‘발작 버튼’을 눌러댄다. 8000m짜리 거대한 적개심 위에 올려놓으면 아무리 작은 의혹도 예사롭지 않다. 너무나 특별하고 중요하고 중대하다.

그러나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1964년이라 아직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기 전이라 알로이시우스 수녀원장의 광기에 가까운 적개심은 교구와 수녀원 담장 안에 머문다. ‘적개심의 조직화’가 이뤄지지 못한다.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이 만개한 지금이라면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광기 어린 적개심은 분명 ‘집단적인 광기와 적개심’으로 조직화했을 게 분명하다. 
 

 

광기 어린 적개심을 생계수단으로 삼는 ‘유튜버’들이 넘쳐나는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들의 ‘상업화된 광기 어린 적개심’이 정치와 사회를 뒤흔든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교회 어느 목사의 ‘적개심’은 쉽게 조직화해 사회를 뒤흔들고 집권당의 멱살까지 쥐고 흔든다. 정치도 자신의 교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공언한다.

니체의 통찰력은 놀랍다. “개인의 광기는 예외적인(exceptional) 것이지만 집단의 광기는 규칙이 된다.” 광기가 조직화하면 소외가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함께 미쳐야만 한다. 혼자 미친 짓을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집단화된 광기와 적개심은 두려움이 없다. 규칙을 따르는 것이 두려울 리 없다. 일본 속담처럼 ‘빨간불도 함께 건너면 두렵지 않은 듯’하다. 혹시 지금 대한민국을 조직화된 광기와 적개심이 끌고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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