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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삼춘 볼락누이-민요로 보는 제주사회와 경제(21)] 방앗돌 끌어 내리는 노래

 

예전 한국영화에는 방앗간이 남녀가 밀회를 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했다. 방앗간은 어둡고 사람이 상주하지 않아 들킬 염려가 적었다. 제주에서는 ᄆᆞᆯ방에가 그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고라불켜, 작산 비바리가 밤중 들언 ᄆᆞᆯ방애 강 놀암서랜” 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여간 아니었다.

 

연자매인 ᄆᆞᆯ방에는 ‘ᄆᆞᆯᄀᆞ랑’, ‘ᄆᆞᆯᄀᆞ레’, ‘ᄆᆞᆯ구레’, ‘ᄆᆞᆯ방아’, ‘ᄆᆞᆯ방애’, ‘몰방이’라고도 불렸다. 소를 이용하면 ‘쉐방에’라 한다. ᄆᆞᆯ방에는 탈곡한 보리나 조 등을 도정(搗精)할 때 쓰였다. 마을마다 4~5개씩, 2~30호에 1개 정도 있었으며 접을 맺고 접원의 행동규범을 마련했다. 주로 마을 안 사거리에 두었다.

 

제주에서는 ‘ᄆᆞᆯ방에’를 설치할 당시에 구성된 ‘ᄆᆞᆯ방에 접’ 구성원들이 차례를 정해 ᄆᆞᆯ방에를 사용했으며, ‘방에왕’ 지붕 일기나 보수는 공동으로 하였다.

 

성산읍 신풍리에는 방앗돌 제작과 관리에 대한 접원의 규약이라 할 수 있는「마확접입록(馬確接入錄」(1870년 2월 12일 설립)이 남아있다. 접원 모두가 쌀 2말과 포(布) 2자씩을 내어 ᄆᆞᆯᄀᆞ레를 설치할 자본으로 삼았다. 이에 공인(工人)을 모아 돌을 다듬고 접원은 출역하여 ᄀᆞ레왕 2칸을 짓고 ᄆᆞᆯᄀᆞ레 1기를 설치하여 자손대대로 전하여 사용하기로 하였다,

 

마을 내에서도 동가름, 서커름, 웃카름, 알카름 등으로 나누어 작게 10호 이내 많게는 2~30호가 ‘접원’으로 구성하였다. 많은 곳은 ‘쌍방아’를 설치했다. 가끔 만 평 이상 농사를 짓는 부잣집에서는 ‘독방아’를 설치하여 사용했다.

 

ᄆᆞᆯ방에는 윗돌(맷돌), 아랫돌(창돌), 고줏대(선쟁이), 방틀(틀목), 뺑이(장귀) 등으로 이루어진다. 현무암 검은 돌을 이용하여 돌 다듬는 속공을 빌어서 윗돌과 알돌을 만들면 마을 주민들이 다 같이 힘 모아 끌어온다. 마을마다 ‘ᄆᆞᆯ방잇간이’, ‘ᄆᆞᆯᄀᆞ레왕이’ 있어 여기에 ᄆᆞᆯ방에를 설치하여 조나 보리, 잡곡의 껍질 벗기는 작업을 했다. 방앗돌 굴러가는 동안 곡식 알갱이가 떨어지고 찧어지며 빻아지게 된다.

 

ᄆᆞᆯ방에는 맷돌보다 수십 배나 크고 사람 대신 말이 돌려 능률이 그만큼 높다. 맷돌은 위짝과 아래짝이 맞닿게 기둥을 의지하여 위짝을 세워 돌리는 구조이다. 소나 말이 귀한 곳은 ᄆᆞᆯ방에를 사람이 대신 돌렸다. 특히 현무암으로 만든 윗돌은 비교적 가벼워 사람이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지역은 윗돌 자체가 너무 커 소나 말을 메우지 않고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제주는 석질이 현무암으로 윗돌을 만들기 때문에 이것은 화강암에 비해 가볍고 규모가 작아 마소가 귀한 곳은 서너 사람이 끌어 곡식을 찧거나 빻는 일이 가능했다.

 

제주에서는 디딜방아나 물레방아를 쓰지 않았던 만큼 마을마다 연자매를 공동으로 세웠다. 대체로 혈연이 중심이 되었으며 아버지가 쓰던 방아를 아들이 쓰게 마련이다. 제주지역 ᄆᆞᆯ방에는 그 구조가 탄탄하게 꾸며졌고 조밀하게 분포한다. 제주도 농촌에서 평균 20가구 당 ᄆᆞᆯ방애가 하나씩 설치되었을 만큼 몰방에가 흔했다. 제주도는 계 조직에 의하여 ᄆᆞᆯ방에가 설치, 운용되는 등 자생적 협부기능(協扶機能)을 지녔다. 제주도 ᄆᆞᆯ방에집은 지역 고유의 초가집으로 꾸며졌다. 제주도 애월읍 하귀리와 신엄리에 있는 방아는 중요민속자료 제32호로 지정되었다.

 

‘ᄆᆞᆯ방에’에 관한 기록이 『북학의(北學議)』에 ‘연마(連磨)’ 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1778년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여겨진다.

 

방앗돌 끌어 내리는 노래는 산이나 들에서 방앗돌을 제작하고 마을로 끌어내리며 부르던 노래이다. 방앗돌 내리는 소리, 방앗돌 굴리는 소리라고 한다.

 

허 어 어허 어 굴려가는 소리 어기영차
꼬불 꼬불 어허 어 깊은 골짝
길을 닦아근 어허 언 기밋 경기가 금일로구나
앞엔 보난 어 어허 어 험헌(험한) 동산이 있구나
이 동산을 어허 얼 어떻게 넘을꼬(고) 이 동산을 올려봅시다

 

야~ 영차 영차 역군님네 힘을 내어 이 동산을 올려 보자
허 어 어허 어 역군님네 건실도 하구나

 

어기영차 천년만년 어허 언 자던 돌도 오늘날은 어허 언 실 곳이 잇구나
허 어 어허 어 ᄒᆞᆫ(한)치 두치 내사 가는고 ᄒᆞᆫ치 두치 내 사단 보난(니)
허어 언 오늘 하룬 목적지까지 다 들어가는고
허 어 어허 어 친구 벗님네 다 모다(모여) 듭시다
칠성같이 어허 어 벌어진 친구 벗님네
다ᄀᆞ치(같이) 어허 얼 다 모다 듭시다
허 어 어허 어 뱃뱅이 돌도 다 들어갔구나
천년만년 허 어허 언 자던 돌도 오늘날은 흐 어허 언 쓸모가 있구나
일락서산에는 어허 언 해는 다 저물어 가는고
우리의 갈 길은 어허 언 얼마나 남았는고

 

할ᄅᆞ산(한라산)으로 허 어허 어 ᄂᆞ리(내리)는 물은
낭썹썩은(나무잎썩은) 허 어허 어 ᄂᆞ리는 물이로나
요 내 몸으로 허 어허 어 ᄂᆞ리는 물은
오장육부 어허 어 썩어 내리는 물이로구나
허 허 어허 어 웃뱅이 돌도 다 들어가는고

 

자 웃뱅이 돌 올려 놉시다 야 영차 영차
산판에서 놀던 돌도 오늘날은 올라 간다 자 다 올라 왔구나

 

야 허 허 어허 어 적군님네 건실도 허구나
어기영차 허 허 어허 어 요 벵이(방아)도 다 되어 가는고
요 벵이를 만들어근 어허 언 자순(자손) 열례 물려 줍시다

 

* 일락서산=해가 서쪽에 있는 산으로 짐. 산판=나무나 풀을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여 가꾸는 산

 

예전 하효리 마을조사 때 마을 어르신들께 여쭈어 보았더니, 멧돌(웃돌), 창돌(알돌), 팡돌, 천돌 등을 마련하기 위해 하효리는 ᄀᆞ매곳(磊埋) 지경의 현무암을 이용했다. ᄀᆞ매곳은 지반이 분화 용출로 3백만 평의 넓은 면적에 크고 작은 분석(噴石)이 쌓여있는 특수한 지대이다. 또한 이 ᄀᆞ매곳 지역은 굴무기나무 자생지로 ᄆᆞᆯ방에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를 이곳에서 나는 굴무기나무로 이용했다고 한다.

 

방에돌 만드는 작업을 보면, 먼저 석수기술을 가진 전문 석수장이가 ᄀᆞ매골 현무암 바위를 이용하여 제작하면 마을사람 전부 나가 하루 혹은 이틀에 걸쳐 낭구루마(나무마차)로 운반한다. 이때 운반에 동원된 사람들에게 품삯은 없고 점심(반주 포함)만 제공한다.

 

ᄆᆞᆯ방에는 개인 소유도 있었지만 주로 ᄆᆞᆯ방에 계(契)를 조직하여 만들었다. 예전 하효리에서 이러한 계는 구두계약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한다. ᄆᆞᆯ방에 계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채경, 솔박, 기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을 순서대로 놓아두면 선착순 20~30세대를 정하여 ᄆᆞᆯ방에 계가 이루어진다. ᄆᆞᆯ방에 계 책임자는 ‘계모’다. 계원이 한번 씩 돌아가며 1~2년씩 맡아 ᄆᆞᆯ방에, ᄆᆞᆯ방에집 수리, 보수를 책임지고 관장했다.

 

ᄆᆞᆯ방에 사용료는 없다. ᄆᆞᆯ방에나 ᄆᆞᆯ방에 수리, 보수에 필요한 인원이나 장비는 공동 부담한다. ᄆᆞᆯ벵이집 지붕 보수(2년에 한번)이고 중수리 교체, 맷돌 매기(3년에 한번), 틀목 교체(10년마다) 등이 있다.

 

이야호 어 야호 어서 어서 모여덜 듭서
이야호 에 에 야 일심동력
ᄒᆞ여그네(하여서)
수만석도 모여 들면 가볍습니다
ᄒᆞᆫ적(한적) 두적 얼른얼른 넘어간다
산 넘어 산이요 물 넘어 물인데 역군님네 모여 들어
고개 넘고 재 넘어근(넘어서) 소곡소곡 잘도 나간다
힘을 내면 고개 너머 막걸리 사발이 기다렴고나(기다리는 구나)(방앗돌 내리는 소리)

 

제주지역 ᄆᆞᆯ방에는 위짝과 아래짝으로 이루어진다. 위짝은 아래짝에 세워놓은 ‘중수리’라는 기둥에 의지하여 돈다. ᄆᆞᆯ방에 돌릴 때 올려놓은 곡물은 ‘중수리’ 쪽으로 쏠린다. 그 곡물을 한가운데로 쓸어내야 한다. 그 일을 두고 ‘혹 낸다’고 한다. 말을 매어 앞에서 천천히 끌어당겨 돌기 시작하면 윗돌이 움직인다. 아랫돌은 땅위에 고정시켜져 있다. 윗돌과 아랫돌이 맞물려 돌아가고 곡물을 아랫돌에 놓으면 윗돌이 돌아가면서 껍질을 벗겨준다.

 

ᄆᆞᆯ방아틀은 ᄆᆞᆯ방에 윗돌과 아랫돌을 연결시켜 원심력으로 돌릴 수 있도록 역할을 한다. 장틀목이라 한다. 틀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대목수만 만들었다. 볼록하게 다듬어진 아랫돌 가운데 구멍을 내고 원기둥모양으로 나무를 둥글게 다듬어서 박아 고정시킨다. 이를 중수리라고 한다. 중수리 재료는 아주 중요하다. 나무는 질기고 습기에 강한 솔피나무 같은 고급 수종 나무를 구해 만들었다. ᄆᆞᆯ방에 틀은 구하기 쉽고 가공하기 쉬운 소나무로 만들었다.

 

‘ᄆᆞᆯ방에집’은 ᄆᆞᆯ방에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ᄆᆞᆯ방에를 비, 바람, 눈에서 보호하여 오래 사용하려고 지은 초가집이다. ᄆᆞᆯ방에집 건축과 유지 보수는 동네에서 10~20여 가구가 재정적으로 부담했다. 지붕은 초가지붕과 같은 형태 형태는 방형(方形)이다. 초가를 받치는 네 귀에 굵은 나무 기둥을 세우고 벽은 외담으로 쌓았다. 벽의 포와 벽담 위쪽에 작은 창을 내어 빛이 들어 올 수 있도록 하였다. 안쪽은 흙과 짚을 넣어 만든 반죽으로 벽을 발랐다. 안쪽 벽에 벽장과 같은 시설을 하여 곡물이나 그릇을 넣을 수 있게 했다. 간혹 중간벽에 등잔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조그만 하게 흙 선반을 만들었다. ‘ᄆᆞᆯ방애집’, ‘ᄆᆞᆯ방이왕’, ‘ᄆᆞᆯ방애왕’, ‘ᄆᆞᆯᄀᆞ래왕’, ‘ᄆᆞᆯᄀᆞ래집’으로 불려진다.

 

한 번의 ᄆᆞᆯ방에 작업량은 다양 하지만 소를 이용할 경우 2시간 정도다. 평소 붐빌 만큼 복잡하지 않았다. 명절같이 붐빌 때는 채경, 솔박 등을 온 순서대로 차례로 놓아두고 자기 순서가 되면 ᄆᆞᆯ방에를 이용했다.

 

ᄆᆞᆯ방에집 주변은 동네 사람 집합소였다. 어른들이 작업 하는 동안 아이들은 그 주변에서 놀고 어른들도 ᄆᆞᆯ방에 주변에 모여 담소하며 놀이도 즐겼다.

 

자~ 멧날(몇날) 메틀(며칠) 걸련(결려) 이 방앗돌을 맨들아 놔시난(만들어 놓았으니) 우리 마을로 굴려 옵시다
넘어가는 소리로구나 어기영차 요 돌을 호오 오호
무거운 돌이로구나 역군님네 호오 오호
다 모다들엇고나(모여들었구나) 요 돌은 호오 오호
좋은 돌이로고나 호오 오호 넘어가는 소리로구나

 

앞을 보라 호오 오호 험ᄒᆞᆫ(한) 동산이 잇고나
팔등
ᄀᆞᇀ이(같이) 굽어진 길로 호오 오호 활대ᄀᆞᇀᄂᆞᆯ아(날아)든다 호오 오호
넘어가는 소리로구나 칠성
ᄀᆞᇀ이 벌어진 궨당님네덜(들)
다 ᄆᆞᆯ
ᄀᆞᇀ이(말같이) 호오 오호 모다듭시다(모여듭시다)
ᄒᆞᆫ번(한번) 요 산을 올려 봅시다

 

요 동산을 영차 모다들엉(모여들어) 영차 올려봅시다 자 다 올라왓구나
ᄒᆞᆫ 동산도 다 올라왓구나 요 돌을 호오 오호
어디서
ᄂᆞ려(내려)오는 돌인고 논오롬(오름) 굽(밑)에서 어흐 호오
ᄂᆞ려오는 돌이로구나 ᄂᆞ려오단 보난(내려오다 보니)
목적지도 다 들어와 가는 구나
천 년 만 년 자던 돌도 이제야 다 들어 왓구나(방앗돌 굴리는 소리)

 

안덕면 덕수리 지역에서 방앗돌 제작은 지금부터 200년 전 부터 이루어 졌다고 한다(방앗돌 굴리는 노래를 구성했던 고 허승옥 옹의 진술). 1960년대까지만 해도 덕수리에 방에집이 10개 정도 있었다. ‘방앗돌 끗어 내리는 소리’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덕수리에 사는 강원호씨는 7살적부터 직접 말을 몰며 일했었고 30세까지 보리, 조, 산듸(밭벼) 등 곡물 껍질을 벗길 때 ᄆᆞᆯ방에를 이용했었다고 한다.

 

엥허야 도요 어기여~고레~사대로다
엥허야 도요 간다 간다 내돌아 간다 이물거리 내돌아간다

 

님좋고 낭(나무)허당 무엇을 허랴 저 바당(다)에 폭 빠졍(져)도라
님아~님아~정든님아~ 아들 떨고~어데(디)를 갈까
날 도려(데려)가소 날 도려가소 저, 동서가 날 도려가소
등장가세 등장가세 하느님전 등장가세

 

* 등장가세=백성들이 지방 수령이나 국가권력에 어떠한 사실에 대해 호소하기 위해 청원서를 제출하는데, 그것을 소지(所志)라고 했다. 청원서는 소지 외에 의송(議送), 단자(單子), 원정(冤情), 등장(等狀), 발괄(白活)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등장은 지역 사회의 유림이나 친족 집단 또는 마을 구성원 등 다수의 사람이 집단적으로 어떠한 사실에 대해 청원(請願)할 때 쓰였다. 등장 문서는 조선 후기에 많이 나타난다.

 

ᄆᆞᆯᄀᆞ렛 소리는 말을 이용하여 곡식을 도정하며 불렀던 노동요다. 사람의 힘으로 돌릴 경우 ‘이여싸나 이여싸나’, ‘엉허야~’ 소리를 내고, 마소를 이용할 경우는 ‘어러러!’, ‘어러렁떠리렁’ 후렴하기도 한다.

 

허야두리 산이로구나 ᄀᆞ렌(고래)보난 지남석이여
초불두불 다 ᄀᆞᆯ아가도(갈아도) ᄊᆞᆯ(쌀)이쳐도 안나는 구나
앞체중체 다들어도 조반(朝飯)ᄀᆞ슴(도량) 안나는구나

 

<참고문헌>

 

김동섭(2004),『제주도전래농기구』, 민속원.
김영돈(2002),『제주도 민요 연구』, 민속원.
제주연구원〉제주학아카이브〉유형별정보〉구술(음성)〉민요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o?cid=210402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etail.do?
cid=210402&mid=RC00003821&menuName=구술(음성)>민요
제주특별자치도, 멀티미디어 제주민속관광 대사전.
제주특별자치도(2012),『제주민속사전』, 한국문화원연합회 제주도지회.
좌혜경 외(2015), 「제주민요사전」, 제주발전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 역임, 현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 『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오달진 근대제주』(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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