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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삼춘 볼락누이-민요로 보는 제주사회와 경제(8)] 멸치 후리는 노래

제주에서는 멸치잡이를 ‘후린다’고 한다. 멸치 후리는 노래는 멸치 그물 후리는 작업을 하며 부르던 어업 노동요다. 멜 후림 소리라고도 한다. 요즘 제주에서 가장 핫 하다는 월정, 행원, 함덕, 곽지, 협재, 화순, 표선, 신양, 이호, 삼양 멸치잡이가 유명했다. 멜 그물질 소리는 먼 바다에서 그물로 멸치 떼를 에워 쌓은 후 모래 깔린 해안가로 마을사람들이 일제히 끌어당기는 작업할 때 여럿이 호흡 맞추며 부르는 노래다. 한사람이 선소리를 하면 그물 당기는 사람들이 동작을 맞추며 후렴구를 부른다.

 

멸치라고 다 같은 멸치가 아니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멸치는 정어리, 샛줄멸, 눈통멸 등이다. 고맙게도 멸치는 매년 무리 지어 제주도 동쪽으로 들어온다. 이때 고등어도 같이 들어온다. 여기서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북쪽 해안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남쪽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간다. 샛줄멸은 4, 5월에 눈통멸은 6, 7, 8월에 정어리는 8, 9, 10월경에 잡힌다. 제주에서는 보리 수확기에 잡히는 보리멜 즉, 샛줄멸이 가장 유명하다.

 

 

19세기 이전 제주에서는 연안에 원담(石堤)을 쌓아 밀물 때 바닷물과 함께 들어왔다가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원담 안에 남아 있던 멸치를 족바지(뜰채) 혹은 당망(攩網)으로 건져 올리는 방식으로 멸치를 잡았다. 멸치 올라 올만한 곳에 높이 5~6척(尺, 1척은 33.33cm), 너비 2~3척, 직경(直徑) 1척 가량 돌을 올려 쌓아 담으로 둘러싼다. 원담 안에 멸치 들었을 때 마을 남녀노소 모두 구물 어깨에 지고 원담 안에 들어가 직경 1장(丈, 10자, 약 3m) 2척, 깊이 5~6척, 자루길이 2장 2척 가량의 당망(그물 양쪽에서 여러 사람이 끌줄을 잡아당겨 물고기 잡는 큰 그물)으로 멸치를 건져 올렸다.

 

원담(개)은 개인이 쌓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 3~4명이 공동으로 쌓아 공동 소유했다. 원담에 고기가 많이 들었을 때 주인 혼자 이를 가져가지만 평상시 누구나 자유롭게 잡게 하고 잡은 물고기의 1/3만 받았다. 요즘 같지 않은 먼 옛날 얘기다. 원담 한쪽에 작은 입구를 트고 혹은 암석이 돌출하여 작은 만(小灣)을 이루고 있는 곳에 멸치가 들어올 때를 노려 그 입구를 구물로 막고 당망으로 잡았다. 구물은 면사(綿絲)로 만들고 너비 5~6심(尋, 1심은 여덟자), 길이는 장소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1907년 이후 점차 원담 내 어획에서 벗어나 예망(曳網), 지예망(地曳網), 휘라망(揮羅網), 방진망(防陳網), 장망(帳網)등을 이용하여 더 많은 멸치를 어획하기 시작했다. 멸치가 많이 잡혀 돈 풍년 왔지만 큰 딸은 비양도로, 가운데 딸은 가파도로, 작은 딸은 법환리로 시집보내고 이제 두 늙은이만 남아 이 많은 멸치를 어찌 처리해야 하나. 아버지 어머니도 결국 늙는다. 시집간 딸들이 이를 모를 일 없다. ‘땅 부자 일 부자’라고 ‘멜 풍년 일 풍년’이던 시절 노래다. 그래도 빈 둥지에 남겨진 노부부는 “우리 옛 조상들이 하던 일을 잊어버리지 말고 되살려보자”며 그 버거운 짐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휘라망(揮羅網)은 주머니가 없는 지예망(地曳網)으로 20심(尋, 8척)에서 100심, 너비는 양끝 1심, 중앙 약 5심, 길이 150심의 예승(曵繩)을 양쪽 끝에 달아 어군을 둘러싸 해안가로 멸치를 끌어들였다. 제주도 어장 대부분은 모래사장이며 너비가 좁다. 5~6정보(町步, 3000평)이내이며 10정보 넘는 곳이 드물다. 좁은 어장은 한 조가 일개소를 독점하는 곳도 있고 여러 조합(組合)이 공유하는 곳도 있다. 이곳은 동시에 다수 구물을 사용할 수 없어 미리 협의하여 순서를 정해 작업했다.

 

멸치잡이는 구접(40명), 신접(38명), 해방 후 신설망으로 조직되었으며 보통 그물배 2척, 당선 2척, ‘태우’ 6척이 바다에 나가 방진망을 펴 잡았다. 방진망(防陳網)은 그 구조가 휘망과 다르지 않디. 연안에 바위가 많아 휘망을 사용할 수 없는 곳에 쓴다. 고기떼를 확인한 다음 구물을 던져 물속에 원형을 만들어 이를 둘러싼 다음 서서히 조이며 멸치를 걷어 올린다. 풍어기 때 구물 안쪽을 풀어 멸치 떼를 나누어 싸고 서서히 바닷가로 끌어 올려 잡았다.

 

장망(帳網)은 일종의 부망(敷網)으로 깊이 15심, 너비 10심의 장방형 구물 네 귀에 길이 10심 예승을 붙인다. 보통 4~5인승 어선 4척이 어장에 이르러 투망하는 데 그 상단은 항시 수면에 뜨고 하단은 물에 가라앉혀 고기떼를 쫒아 구물을 조정하고 때를 봐서 구물 한쪽 끝을 들어 올린다.

 

 

휘망이나 방진망은 개인이 사용하지 않고 수십 명으로 구성된 조합에서 한다. 조합은 평상시 어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멸치잡이 때만 참여한다. 어획물은 조장(‘도가’라고 불림)의 지시에 따라 조합원에게 분배하거나 또는 건조한 후 상인에게 팔아 그 소득을 조합원에게 균등하게 나눈다. 도가와 ‘소임(부조장)’은 조합원 몫의 소득과 한사람 반의 몫을 더 얻는다.

 

한 명 또는 두 명이 소유하는 구물은 망자(網子, 구물 계원)를 쓴다. 망자들 사이에는 조장을 두고 그 지휘 하에 작업한다. 그런데 망주(網主)는 단지 어획물을 판매하는 일만 관여한다. 분배는 망주와 망자 간에 반으로 나누고 망자들 사이는 조합의 경우와 같다. 멸치 망대(網代, 망주에게 배당되는 수익금)는 도민의 어장으로 10명 혹은 20명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다. 예전 제주군의 자포, 곽지포, 금성포, 귀덕포, 협재포, 배령포, 별방포, 무주포, 김녕포, 함덕포, 대정군의 모슬포, 정의군의 표선포 등은 한 어기 때 20만근 이상의 수확지로 유명했다.

 

 

멸치잡이는 5월에 이루어 졌다. 잡은 멸치는 젓갈로 자가 소비하거나 상인에게 판매했다. 나머지는 건조시켜 어비(魚肥)로 사용했다. 어비는 주로 멸치이며 간혹 복어, 고등어, 각재기, 갈치 등을 건조시켜 건조한 해조류와 함께 쌓아두었다가 사용한다. 멸치가 많이 나는 월정리, 하도리, 행원리는 음력 5월부터 멸치를 어획하여 이를 말린 후 대맥(大麥)을 파종할 때 시비(施肥)한다. 이렇게 거름을 주면 수확량이 30~40% 정도 많았다. 열심히 하면 누구나 부농이 될 수 있어 좋았다. 장마가 계속되어 어획한 멸치가 마르지 않을 때 이를 재(灰)속에 묻어두었다가 재와 혼합하여 시비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 월정리에서 많이 잡을 때 180고리 정도 잡았다. 한 고리는 보통 40말 기준이다. 한 고리 정도면 삼백 평 밭에 거름 줄 수 있다.

 

멸치가 아주 많이 잡혔다 해서 멸치를 거름과 보리농사에만 사용하지 않았다. 멸치도 어엿한 생선이다. 제주에서는 멸치와 얼갈이배추 등을 넣고 끓인 멜국을 많이 먹는다. 생멸치가 많이 날 때 냉동멸치가 아닌 싱싱한 멸치로 국을 끓이면 해장에도 좋고 칼슘의 공급원으로도 좋으며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갈치호박국, 각재기국, 멜국 모두 제주의 맛을 정확히 각인시켜 준다. 개인적으로 멜국 보다 멜 튀김과 멜 조림을 좋아한다. 각재기국 〉멜국 〉갈치호박국

 

<참고자료>

 

김영돈(2002),『제주도 민요연구』, 민속원.
제주시우당도서관(1997),『제주도의 옛 기록』.
제주연구원〉제주학아카이브〉유형별정보〉구술(음성)〉민요http://www.jst.re.kr/digitalArchive.do?cid=210402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etail.do?cid=210402&mid=RC00088972&menuName=구술(음성) > 민요
좌혜경 외(2015), 「제주민요사전」, 제주발전연구원.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 역임, 현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 『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오달진 근대제주』(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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