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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삼춘 볼락누이-민요로 보는 제주사회와 경제(37)] 흙 이기는 노래(소리)

 

제주도 초가는 크기에 따라 두 칸, 세 칸, 네 칸 집으로 구분한다. 또는 울담 안에 배치된 집의 수에 따라 ‘외커리집(一자형)’, ‘두커리집(二자형)’, ‘세커리집(ㄷ자형)’, ‘네커리집(ㅁ자형)’으로 부른다. ‘외거리집’은 ‘안거리’ 한 채와 부속채로 이루어진 집, ‘두거리집’은 ‘안, 밖거리’를 갖춘 두 채 집을 말한다. ‘안거리’와 ‘밖거리’는 마당중심의 이(二)자형으로 마주보거나, 기억자(ㄱ)형태로 배치된다.

 

‘집터 다지는 노래’는 집짓기 위해 터를 다지며 부르던 노래다. ‘원달구 소리’라고도 한다.

 

어어 원달구야 에에 원달구야 에에 원달구야
삼세 번 채랑 들러다구 천추 만년 살을 집터 은곽 ᄀᆞᇀ이(같이) 다져보자
좌청룡을 돌아보니 할로산(한라산) 일주맥에
청룡백호를 돌아보니 청룡백호가 확실쿠나(하구나)
천지내룡 일석지라 요 땅에 성주를 하니
청룡산 육칠덕은 아들 자손에 부귀영화
삼년 만에 살다보니 아들 자손에 부귀영화
자손 창성은 물론이오 부귀영화 ᄒᆞᆯ(할) 듯 ᄒᆞ(하)네
그만저만 ᄆᆞ칩(마침)니다(집터 다지는 노래, 서귀포시 예래동)

 

한 칸 형 가옥은 ‘통칸(한 칸)’으로 구성된다. 돌로 원형이나 네모로 벽을 쌓아 올린 다음 가운데 외기둥에 짧은 마루를 올리고 이에 의지해 서까래를 걸어놓는다. 내부는 ‘정지’와 방 구별 없이 한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흙바닥 한쪽에 ‘봉덕(부섭)’을 놓고 다른 한쪽에 짚이나 ‘새(띠)’, 널을 깔았다.

 

두 칸 형 집은 ‘막살이집’이라고 한다. 세 칸의 ‘안거리’를 지을 경제적 여유가 없을 경우 두 칸 집을 짓고 산다. 한쪽 칸은 ‘정지’, 다른 쪽 칸은 ‘구들’로 구성된다. ‘구들칸’은 앞, 뒤로 분할되어 앞쪽은 ‘구들’, 뒤쪽은 ‘고팡’이 있다. 이 ‘고팡’은 ‘정지간’으로 출입할 수 있게 했다. ‘정지간’은 ‘세 칸 집 정지간’과 같고 ‘통간’으로 쓰며 흙바닥이다. ‘구들’전면에 ‘무뚱’이 있어 이곳으로 출입했다.

 

두 칸 집은 ‘안, 밖거리’로 배치된 가옥인 경우 ‘밖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 경우 한쪽 칸은 헛간, 다른 쪽 칸은 ‘구들’로 시설되며, 헛간은 ‘쇄왕(쇠막)’이나 대문간이 간살에 놓이기도 한다.

 

세 칸 형은 작은 ‘구들’이 있는 형(型)과 없는 형으로 구분되고 다시 작은 ‘구들’이 있는 형은 한 칸 형, ‘정지’내형, ‘중마루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작은 ‘구들’이 없는 세 칸 집은 ‘구들’ 하나만 안에 있다. 가운데 ‘상방(마루)’을 두고 왼쪽으로 ‘정지’가 있다. 오른쪽 앞뒤에 큰 ‘구들’과 ‘고팡’이 위치한다. 이런 유형은 산북지역보다 산남지역에 더 많이 있다.

 

작은 구들이 있는 세 칸 집에서 한 칸 형은 가운데 ‘상방’을 두고 왼쪽으로 앞뒤에 큰 ‘구들’과 ‘고팡’, 오른쪽 앞뒤에 ‘정지’와 작은 ‘구들’이 있다. 밀집 촌락에 이런 집이 많으며 산북지역에도 볼 수 있다. ‘정지’내형은 작은 ‘구들’이 없는 세 칸 집 ‘정지’ 안에 작은 ‘구들’을 꾸민 집으로 작은 ‘구들’은 건물과 별개로 되어있다. 이 형(型)은 지역에 관계없이 볼 수 있다. ‘중마루형’은 ‘정지’내형과 같은 ‘칸살’로 하되 작은 ‘구들’을 ‘상방’에 붙이지 않고 거꾸로 ‘상방’ 반대쪽에 붙여 ‘상방’과의 사이 생기는 공간에 마루를 깔아 이용한다.

 

네 칸 형(웃3알 네칸형)은 중앙에 상방이 설치되고 그 우측(또는 좌측)에 ‘챗방’과 작은 ‘구들’이 전후로 놓인다. 그 좌측에 부엌을 길게 만든다. ‘상방’ 좌측 또는 우측으로 세 칸 집 형태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난간과 ‘구들’, ‘고팡’이 있고 방 측면에 ‘굴묵’이 있다. 이 형은 세 칸 집에 비해 규모가 크며 부엌이 작은 ‘구들’과 인접한 ‘챗방’이 추가된다.

 

 

제주도 초가의 벽체는 이중으로 되어 있다. 나무와 흙으로 축조된 주벽체와 자연석 현무암으로 축조된 외부 벽체(덧벽)로 구성되어 있다. 주벽체 골격은 가시나무, 참나무, 괴목 등 온대 상록수를 사용하였다. 골격과 골격 사이를 대나무 혹은 잔나무가지를 새끼 엮어 흙을 발랐다. 칸막이 벽체는 대나무를 엮어 그 위에 흙을 바르고 도배한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웃풍을 막아 주기 위해서다.

 

외부 벽체는 구조와 관계없이 암회색 다공질 현무암을 막쌓기법으로 축조되었다. 모서리 부분 벽체는 가능한 각(角)이 생기지 않도록 둥글게 쌓는다. 바람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다. 현무암으로 마감된 외벽은 중후한 느낌과 함께 지역성을 표출하고 있다.

 

새벽질 노래(흑질 소리)는 초가집 지을 때 벽에 흙 바르며 평안을 기원하는 노래다.

 

요 집 짓엉(지어) 삼년 만에 에헤에에헤 아덜(아들) 나면 효자로다
ᄄᆞᆯ(딸)은 나면 열려(열녀)로다 어허어어어
개는 나면 사농개(사냥개)여 오호오옹 허허허어
뒈야(돼지)진 나면 지름돗(기름돼지) 뒈고(되고) ᄃᆞᆨ(닭)은 나면 영계로다
ᄆᆞᆯ(말)은 나면 천리마여 소는 나면 황소로다
도는 갈라 제주도여 군은 갈라 남군이라
면은 갈라 표선면이라 부락(마을) 갈라 성읍리라
동넨 갈라 서하동에 헤에에 에헤에 올려 들어 혼례 문제
마당 들어서난 마당장제 에헤에 집 들어사난 집가자라
우럭삼촌 들어 봅서(보세요) 어허어 어허어
볼락조캐(조카) ᄀᆞᆯ으라(말해라) 듣저(듣게)(흑질소리, 표선면 성읍리)

 

제주지역 토양은 화산회토(火山灰土)가 주를 이룬다. 화산 폭발물이 바람에 의해 운반되고 퇴적되어 생성된 토양이다. 입자가 가볍고 토양 구조발달이 미약하여 점토피막(皮膜)이 없다. 토양 점착성(粘着性)이 약하여 옹기의 바탕흙으로 적합하지 않다. 제주전통옹기는 비화산회토인 황적색(黃赤色) 중점식토(重粘埴土)의 심토 하부점토를 바탕흙으로 사용한다.

 

이 토양은 현무암을 모암(母巖)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산화철이 풍부하다. 특히 장석(長石)은 석회질(石灰質)로 되며 심층토로 갈수록 회갈색으로 변하며 점력(粘力)이 강하다. 제주도 서남부 지역과 북서부 일부 및 북동부 일부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래서 대정읍 신평리, 구억리, 무릉리, 한경면 고산리 등지에서 제주전통옹기의 생산이 성행했었다. 제주시 도남동, 애월읍 광령리, 구좌읍 일부 지역도 만들어졌다.

 

옹기바탕은 점토(粘土)다. 제주지역에서 ‘고냉이흙’, ‘흙’, ‘질흙’ 등으로 불렸다. 질흙은 한 밭에 전체적으로 고루 다 있지 않고 부분적으로 있는 곳에만 있다. 질흙을 찾으면 먼저, 삽으로 ‘웃직(표토~심토 상부)’을 걷어내고 심토(沈土) 하부의 점토를 채취해, 물을 뿌리며 메질해 이긴 후 덩어리 뭉쳐 마차로 운반하였다. 운반한 질흙은 ‘메판’에 놓고 두 사람이 하루 이틀 메질 한 후, 한 곳에 보관한다. 질흙은 그릇을 만들 때마다 ‘깨끼’로 흙을 얇게 깎아 잔돌이나 불순물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벵벵 돌멍(돌며) ᄁᆞᆫᄁᆞᆫ 잘 ᄇᆞᆯ리라(밟아라) 요 쉐덜(쇠들)아
ᄒᆞᆫ져(어서) ᄇᆞᆯ려뒁(밟아두고) 나가사(나가야) 송애기(송아지) 젖도
멕(먹)이고 잠깐 쉴 철이여 초불 다 ᄇᆞᆯ렸거든(밟았거든)
흑 뒈쓰는(뒤집는) 사름덜(사람들) 흑(흙)뒈쓰렝 ᄒᆞ(하)라
흑 다 뒈쌋(뒤집)걸랑 저 쉐덜 다 디물리라(가두워라)
오호야돌 에헤에 에헤에 월월 쉐 다 디물렷거든
두 불 ᄇᆞᆯ려 걸라 오호야돌 오호옹 월월 월월 ᄒᆞ자
흑 다 ᄇᆞᆯ렸거들랑 저 쉐덜랑 영주산더레 내 ᄆᆞᆯ아(몰아) 뒁(두고) 들어오라

 

흑 다 ᄇᆞᆯ렸거든
흑 터는 사름덜 들어상(들어서서) 재게(어서) 흑 털렝(털라고) ᄒᆞ라
흑 다 털어놓앗거든 자개덜 흑 ᄇᆞᆯ르렝 ᄒᆞ라
일락서산에 해는 뉘웃뉘웃(뉘엿뉘엿) 지어가고
요 흑 잘 ᄇᆞᆯ림(밟음)은 남암직(남을 듯)구나
요 집 짓엉 삼년 만에 엥헤에 아덜(아들) 나면
효자가 뒌댄(된다는) 말이로구나 ᄄᆞᆯ은 나면 열려가 뒌 댄 말이로구나
쉐는 나면은 황소가 뒌 댄 말이로구나
개는 나면은 사농개가 뒌 댄 ᄒᆞ는구나
ᄆᆞᆯ은 나면은 천리마가 뒌 댄 말이로구나
ᄃᆞᆨ은 나면은 영개가 뒌 댄 말이로구나
할로산(한라산)에 산목이 ᄍᆞᆯ르면(짧으면) 삼일 안에 비가 온댕(온다)
ᄒᆞ(하)는 속담이 있댕(있다고) ᄒᆞ(하)는구나(흙이기는소리, 표선면 성읍리)

 

* ᄁᆞᆫᄁᆞᆫ=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근심하는 모양

 

흙 이기는 노래(흙 이기는 소리, 망데기질 드리는 소리)는 흙을 이겨 초(草)집 짓거나 옹기 제작하며 부르던 노래이다. ‘망데기(항아리)’를 만들거나, 벽에 흙을 바르기 위해 물을 넣고 개면서 불렀다. 뭉쳐진 흙을 위로 올렸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를 반복해 흙에 끈기를 넣었다. 이 동작을 '또린다' 라고 한다. 마당에 있는 흙을 파서 보리 짚 혹은 메밀짚으로 만든 ‘수세미’를 놓고 소를 이용하여 흙을 이기며 불렀던 노래가 ‘흙 이기는 소리’다.

 

서두리두 더럼마야 힛 서두리두 더럼마 서두리두 더럼마여
끈덕끈덕 다려보자 끈덕끈덕 다려보자 신세타령 불러가멍
요매질을 ᄒᆞ면서(하면서) 그릇이 뒈는(되는)구나
끈덕끈덕 끈덕지게 옆으로 척척 욮(옆)매질 ᄒᆞ멍(하며)
항도 나고 그릇도 난다 금도 나고 은도 난다 쉐(쇠)도 나고 ᄆᆞᆯ(말)도 난다
서두리두 더리두럼 우리 부모 날 날 적에 무슨 날에 날을 난고
옹기 장시(장수)로 태어나고 요 내 가슴 서룬 한을
그 누구가 풀어주나 서두리두 더럼마
어야 지쳤구나 다쳤구나 보리떡에 쉬 묻히고 너도 나도
지쳤구나 힘을내고 ᄌᆞᆽ아(쪼아)보자 얼릉얼릉(얼른얼른) 돌려가며
큰 항 작은 항 만들어 줍서(주세요) 그릇이 다 뒈여가면
굴들이고 불들이고 서두리두 더럼마
옆으로도 찍어보고 높은 동산 ᄌᆞᆽ아 보자
욜로 절로 모다들멍 힘을 내여 ᄌᆞᆽ아 보자
그릇 장시 옹기 장시 흐랑흐랑(물렁물렁) 돌아가며
정의골로 돌아가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그릇 삽서(사세요) 항을 삽서 그릇 팔고 오는구나 어기여차 서두리야
숨 들이멍 ᄄᆞᆷ(땀)들이멍 읏인(없는) 힘이 막 솟아난다 서두리 ᄒᆞ고 더럼
찰찰도는 흐린 흙에 찰떡 ᄀᆞᇀ이(같이) 흐리구나 서두리도 더럼마
욜로 절로 모다들멍(모아들어) 높은 동산 ᄌᆞᆽ아 보자
서두리 허구도 더럼마 숨도 쉬고 ᄄᆞᆷ도 흘령(흘려)
은이 될까 금이 될까 금도 나고 은도 난다 서두리 ᄒᆞ구도 더두리럼
소리가 맞아 가는구나 선소리는 안 뒈는구나(되는구나)
욜로(여기로) 절로 두드리멍 두드리멍 ᄄᆞ려(때려)보자
좇아들멍(들며) ᄄᆞ려보자 골고루 ᄄᆞ려보자(때려보자)
여기두여차 방에야(망데기질 드리는 소리, 대정읍 신평리)

 

제주전통옹기의 생산과정에서 여성은 철저히 배제된다. 특히 가마에 불 땔 때 가마 근처에 여성이 접근하면 안 된다. 그래서 제주여성들은 생산보다는 판매활동을 주로 했다. 소성(燒成)이 끝나 요출(窯炪)한 옹기는 옹기점에 직판(直販)하거나 도붓장수를 통해 판매하거나 옹기전에 위탁 판매한다. 혹은 제주여성들이 도내 각지를 찾아다니며 행상(行商)으로 판매했다. 옹기생산에 참여한 옹기대장, 불대장은 소성이 끝날 때마다 임금(賃金)으로 옹기를 받았다. 그렇게 되면 판매는 자연 그들의 아내 몫이다. 이들이 각 가정 돌아다니며 직접 판매했다.

 

옹기거래는 대부분 곡식 같은 현물이나 외상으로 거래되었다. 여러 종류 곡식으로 거래 되었다. 때문에 곡식에 따라 각각 다른 바구니를 마련해야 했다. 이 곡물들을 방앗간에서 찧어 와야 했기 때문에 당장은 수지 타산이 맞는지 잘 몰랐다. 보리, 조, 메밀, 피 등이 대부분이었다. 강정이나 법환 같이 논이 있는 지역에서는 나록(水稻)을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밭벼(산듸), 동촌(김녕 일대)의 메밀, 모슬포의 감자와 미역, 의귀리에서는 ‘새’로 받았다. 의귀리 ‘새(띠)’는 다른 지역 ‘새’보다 품질이 좋았다고 한다.

 

옹기 판매가격은 거의 고정되어 있었다. 가격변동이 심하지 않다. 가장 비싼 옹기는 ‘웃대기 허벅’이다. ‘줄 고름’ 때 주인보다 상인(貨主)이 우선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화주(貨主)는 줄 단위로 판매하고 개인은 그릇으로 판매했다. 당시에는 직접 생산하여 직접 판매하는 소규모 거래가 있었다. 간혹 여러 사람이 함께 도매로 공동구매해다가 소매로 팔기도 했다.

 

신작로가 생기기 전에는 소나 말을 이용한 수레로 옹기를 운반했다. 말 수레가 소 수레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다. 가까운 거리(예를 들면 구억리에서 애월읍 원동까지)는 지게로 져 날랐다.

 

장거리는 돛을 이용하는 풍선(風船)을 타고 종달리, 김녕, 뒷개(북촌)까지 운반하였다. 구억리에서 가까운 모슬포 포구를 이용하지 않고 사계항을 이용했다. 모슬포항은 수심이 얕고 화산암 암초가 많은데다 물살이 빠른 조류가 항구 바깥으로 흐르고 있어 다들 입항하기 꺼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사계포구, 모래사장을 이용했다. 안덕면 사계포구를 이용해 하루 두 번 운반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풍선으로 운반되는 옹기가격은 풍선을 이용하지 않고 운반하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값을 조금 더 쳐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어느 한 집에 옹기를 내려놓은 다음, 옹기 하나를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누구네 집에 옹기가 왔으니 ‘옹기 사라’고 외치며 그 마을을 돌아다닌다. 그러면 그 집으로 옹기를 사려는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당 임대료는 좋은 ‘통개’ 하나를 지불했으며 식사는 알아서 해결했다. 가져간 옹기를 다 못 팔고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옹기가 생필품이었고 당시 옹기공급이 원활하지 않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제주도 전통옹기의 판매는 행상(行商)에 의한 판매였다. 주로 제주여성들이 ‘허벅’과 ‘장태’ 등을 지고 가까운 거리를 걸어 다녔다. 오일장이 생기자 오일장을 통한 옹기거래가 더 확대되었다.

 

<참고문헌>

 

김정기․김홍식(1973),『제주도 문화재 및 유적 종합조사보고서』.
김홍식․김석윤․신석하(1996),『제주의 민속 Ⅳ, 주생활편』, 제주도.
문화체육부(1994),『전통문화마을 보존․전승을 위한 모델 개발 연구』.
양택훈(1992),『제주민가의 주거 공간변화에 관한 건축 계획적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오영심(2002),「제주도 전통사회의 옹기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연구」,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제주연구원〉제주학아카이브〉유형별정보〉구술(음성)〉민요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etail.do?cid=210402&mid=RC00003867&menuName=구술(음성)>민요
제주특별자치도, 멀티미디어 제주민속관광 대사전.
좌혜경 외(2015),『제주민요사전』, 제주발전연구원.
허은숙(2014), “제주옹기와 사람들”,『제주발전포럼』제49호, 제주발전연구원.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 역임, 현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 『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오달진 근대제주』(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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