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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삼춘 볼락누이-민요로 보는 제주사회와 경제(32)] 영주십경가, 이야홍

 

조선 말 제주도 대표 지식인 매계(梅溪) 이한우(李漢雨, 1818~1881)는 제주에서 경관이 특히 뛰어난 열 곳을 선정하여 ‘영주십경(瀛州十境)’이라 하고 시적(詩的) 향취가 풍기는 이름을 붙여 시(詩)를 지었다. 그 뒤 여러 대가들이 그 시에 차운(次韻)하여 많은 시를 남겨 현재 제주의 대표 명승지(名勝地)로 꼽히고 있다.

 

이한우가 선정한 영주(瀛洲) 십경(十景)은 성산일출(城山日出): 성산 해돋이, 사봉낙조(紗峯落照): 사라봉 저녁노을, 영구춘화(瀛邱春花): 영구(들렁귀)의 봄꽃, 정방하폭(正房夏瀑): 정방폭포의 여름, 귤림추색(橘林秋色): 귤림의 가을 빛, 녹담만설(鹿潭晩雪): 백록담 늦겨울 눈, 영실기암(靈室奇巖): 영실의 기이한 바위들, 산방굴사(山房窟寺): 산방산 굴 사찰, 산포조어(山浦釣魚): 산지포구 고기잡이, 고수목마(古藪牧馬): 초원에 기르는 말 등이다.

 

이한우는 먼저 ‘성산출일’ 다음에 ‘사봉낙조’를 놓아 하루를 말하였고, 춘하추동을 두어 한 해를 이야기하였다. ‘영구춘화’ ‘정방하폭’ ‘귤림추색’ ‘녹담만설’이다. 이렇게 길어지는 시간 뒤에 변함없는 바위인 ‘영실기암’ 또는 속세(俗世)와는 절연(絶緣)을 하고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사찰(寺刹) ‘산방굴사’를 주목하였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고기 잡는 모습과 초원에서 노니는 말을 보는 모습으로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온다. 그렇게 영원한 시간의 흐름과 변함없는 자연과 그 속에 사는 인간의 삶을 제주 열 곳 명승지에 빗대어 놓았다. 이후 이한우는 영주십경에 서진노성(西鎭老星: 서진에서 보는 노인성)과 용연야범(龍淵夜帆: 용연 밤 뱃놀이)을 더하여 영주십이경(瀛洲十二景)을 만들었다.

 

숙종 때에 제주목사로 왔던 야계(冶溪) 이익태(李益泰, 1694년 도임)는 조천관(朝天館), 별방소(別防所), 성산(城山), 서귀소(西歸所), 백록담(白鹿潭), 영곡(靈谷), 천지연(天池淵), 산방(山房), 명월소(明月所), 취병담(翠屛潭)을 ‘제주십경(濟州十景)’으로 꼽은 바 있다.

 

그보다 뒤에 제주 목사로 왔던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702년 도임)은 한라채운(漢拏彩雲), 화북재경(禾北霽景), 김녕촌수(金寧村樹), 평대저연(坪垈渚烟), 어등만범(魚燈晩帆), 우도서애(牛島曙靄), 조천춘랑(朝天春浪), 세화상월(細花霜月)을 제주의 팔경(八景)으로 꼽았다.

 

이형상의 팔경(八景) 선정(選定)은 한라채운(漢拏彩雲)과 어등만범(魚燈晩帆)의 2경(景)을 제외하고 다 제주도 동북쪽에 치우쳐 있다. 한편 이익태가 단순히 열 곳 지명만을 열거한 데 비해 이형상은 지명(地名)과 함께 구체적인 감흥을 밝히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그대로 답습(踏襲)되었다.

 

순조 철종 연간 영평리 살았던 소림(小林) 오태직(吳泰稷, 1807~1851)은 나산관해(拏山觀海), 영구만춘(瀛邱晩春), 사봉낙조(紗峯落照), 용연야범(龍淵夜帆), 산포어범(山浦漁帆), 성산출일(城山出日), 정방사폭(正房瀉瀑)의 8곳을 선정하였다. 이렇게 선정 하면서 오태직은 특별히 제주팔경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또한 정방사폭(正房瀉瀑)과 나산관해(拏山觀海) 이외에는 제주에서 성산까지, 즉 동북면에 치우쳐 있고 특히 제주시 지역만 3곳을 뽑아 도 전역을 두루 포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조선 헌종 때 제주 목사로 왔던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역시 열 곳을 선정하였다. 영구상화(瀛邱賞花), 정방관폭(正房觀瀑), 귤림상과(橘林霜顆), 녹담설경(鹿潭雪景), 성산출일(城山出日), 사봉낙조(紗峯落照), 대수목마(大藪牧馬), 산포조어(山浦釣魚), 산방굴사(山房窟寺), 영실기암(靈室奇巖)이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이 글에서 소개하는 제주도 영주십경(瀛洲十景)은 성산일출(城山日出), 사봉낙조(紗峰落照), 영구춘화(瀛邱春花), 정방폭포(正方瀑布), 귤림추색(橘林秋色), 녹담만설(鹿潭晩雪), 고수목마(古藪牧馬), 산포조어(山浦釣魚) 영실기암(靈室奇巖), 산방굴사(山房窟寺)이다. 영주십경가는 제주풍광(風光) 중 흔히 말하는 영주십경을 서우제소리 가락 맞추어 부른 신(新)민요라 할 수 있다.

 

여기는 여기는 제주나 돈데
옛날 옛적 과거지사에 탐라국으로 이름 높아
삼신산도 안개나 속에 아 아양 아아아양 어어어 양 어어어요
사시절 명승지로다 할로산(한라산)이나 명승지로다
성산포 일출봉에는 해 뜨는 구경도 마냥도 좋고
사라봉 저 뒷산에랑 구경도 좋구나 좋다
산지포 저 돛대위에 갈매기만도 놀고야 날고
고수에 저 ᄆᆞᆯ(말)들은 사랑만 짜고야 논다
방선문 저 꼿(꽃)들에는 선녀만이 놀고도 마는
겨울ᄃᆞᆯ(달) 귤림 속엔 원님 사또만 노시는구나
정방수 저 폭포에는 상담만도 지건도 마는
영실에 저 기암은 단비만 구르는 구나
산방산 저 앞 바당(다)엔 파란 연(鳶)도 크건도 마는
녹담(綠潭)에 저 잔설(殘雪)에 경치만 좋구나 좋다
사시절 명승지로다 할로산(한라산)이나 명승지로다(영주십경가)

 

제1경 성산일출 (城山日出) : 성산 해돋이

 

제주 동쪽 끝 성산포 해안에 돌출한 우아한 자태의 산이 있다. 동틀 무렵 일출봉 정상에 오르면 바다에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일출(日出)장관을 볼 수 있다. 이한우의 시 제목은 성산출일(城山出日)로 되어 있다.

 

산립동두불야성(山立東頭不夜城) 동쪽 머리에 서있는 산이 불야성 같더니
부상효색사음청(扶桑曉色乍陰晴) 해 뜨는 곳 새벽빛 잠깐에 어둠이 걷히네
운홍해상삼간동(雲紅海上三竿動) 바다 위 붉은 구름 해를 따라 걷히니
연취인간구점생(煙翠人間九點生) 사람 하는 마을에 푸른 연기 솟는다
용홀천문개촉안(龍忽天門開燭眼) 하늘 문에는 문득 용이 눈을 부릅뜨고
계선도수송금성(鷄先桃峀送金聲) 복사꽃 골짜기에서 닭 우는 소리 들리네
일륜완전승황도(一輪宛轉升黃道) 둥근 해가 높이 솟아오르니
만국건곤앙대명(萬國乾坤仰大明) 온 세상 나라들이 밝음을 우러른다.

 

제2경 사봉낙조 (紗峯落照) : 사라봉 저녁노을

 

제주시 동쪽 해안 건입동(健入洞)에 해발고도 148m의 측화산(側火山) 사라봉(沙羅峰)이 있는데 이 산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를 말한다. 공원으로 조성된 산정의 망양각(望洋閣)에서는 제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수파홍사요벽봉(誰把紅紗繞碧峰) 누가 붉은 비단을 푸른 봉우리에 둘렀는고
사양경각환형용(斜陽頃刻幻形容) 잠깐 해지는 사이 모습이 바뀌었네
신루변태번황학(蜃樓變態飜黃鶴) 신기루는 변하여 황학이 되고
경굴부광희적룡(鯨窟浮光戱赤龍) 고래 굴에 뜬 빛 적룡을 희롱한다
역력고촌연외수(歷歷孤村煙外樹) 외진 마을 나무 연기 너머에 뚜렷하고
의의원사월변종(依依遠寺月邊鐘) 아득히 먼 절 종소리가 달가에 들린다
잠정일어동인전(暫停日馭同寅餞) 잠깐 해 수레 멈추고 송별 자리 함께 하여
기아부상효로봉(期我扶桑曉露逢) 부상의 새벽길에 다시 만날 기약한다,

 

제3경 영구춘화 (瀛邱春花) : 영구(들렁귀)의 봄꽃

 

제주시 오등동 방선문은 용담동으로 흐르는 한내 상류에 있다. 하천 가운데 거대한 기암이 마치 문처럼 서 있다. 맑은 시냇물, 그리고 봄철이 되면 계곡 양쪽과 언덕에 무리를 지어 피어난 진달래가 장관을 이룬다. 봄이면 조선시대 제주에 부임한 제주목사와 육방 관속(官屬)이 행차하여 풍류를 즐겼다.

 

양안춘풍협백화(兩岸春風挾百花) 양쪽 언덕 봄바람에 온갖 꽃 들 끼고 있고
화간일경선여사(花間一徑線如斜) 꽃 사이로 한 가닥 오솔길 비껴 있다
천청사월비홍설(天晴四月飛紅雪) 날 맑은 사월에 붉은 꽃잎 눈처럼 날리고
지근삼청영자하(地近三淸影紫霞) 선계 가까운 땅에는 붉은 이내 비친다
영입계성통활화(影入溪聲通活畵) 그림자 잠긴 시내는 살아 있는 그림이고
향생선어격연사(香生仙語隔煙紗) 신선의 말소리만 들려 모습은 비단연기에 가렸다
청군수향상두거(請君須向上頭去) 청하노니 위쪽으로 올라가 보시오
응유벽도왕모가(應有碧桃王母家) 푸른 복숭아 열린 서왕모가 있을 터이니

 

제4경 정방하폭 (正房夏瀑) : 정방폭포의 여름

 

이 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로 낙하 높이는 23m이다. 낙하수의 물보라에 의한 무지개와 인근 바다의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설비삼복청산냉(雪飛三伏靑山冷) 삼복에 눈이 날려 청산이 서늘하고
홍괘반공백일장(虹掛半空白日長) 긴긴 여름날 무지개가 허공에 걸렸네
직도연천귀대해(直倒連天歸大海) 거꾸로 떨어진 물은 하늘에 이어진 채 바다로 돌
가고
횡류락지작방당(橫流落地作方塘) 땅에 떨어져 옆으로 흘러 연못을 만들었네
내지보택종성우(乃知普澤終成雨) 마침내 비를 내려 널리 적셔 주려고
진입신룡조화장(進入神龍造化藏) 깊숙한 곳 신룡이 조화 부리는 걸 알겠네

 

제5경 귤림추색 (橘林秋色) : 귤림의 가을 빛

 

10월 중순 이후 절정을 이루는 노란 감귤과 가을바람이 빚어내는 정취는 단풍 일색인 다른 지역 가을과 사뭇 다르다. 특히 서귀포, 남원, 중문 등 산남지역에 감귤 농원이 밀집해 있어 귤림추색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황귤가가자작림(黃橘家家自作林) 누런 귤 집집마다 저절로 숲을 이루니
양주추색동정심(楊州秋色洞庭心) 동정호 가 있는 양주인 듯 가을빛 깊었네
천두괘월층층옥(千頭掛月層層玉) 가지 끝마다 걸린 달은 층층이 옥이요
만과함상개개금(萬顆含霜箇箇金) 서리 머금은 열매는 낱낱이 금이로다
화리선인승학의(畵裏仙人乘鶴意) 그림 속에 선인이 학을 탄 듯
주중유객청앵심(酒中遊客聽鶯心) 술 취한 나그네가 꾀꼬리 소리 듣는 듯
세간욕치봉후부(世間欲致封侯富) 세상에 부귀영화 이루려 하는 사람들
저사주문도리심(底事朱門桃李尋) 무엇하러 권세가를 찾아다니는 가

 

제6경 녹담만설 (鹿潭晩雪) : 백록담의 늦겨울 눈

 

해안지대는 노란 유채꽃, 산등성이에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한 봄이 찾아와도 한라산 정상은 아직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이처럼 산 밑 해변은 꽃과 신록(新綠)이 무르익어 가는데도 여전히 흰 눈을 이고 사는 한라산을 녹담만설이라 하였다.

 

천장만설호징담(天藏晩雪護澄潭) 하늘이 늦도록 눈을 저장하여 맑은 못을 지키니
백옥쟁영벽옥함(白玉崢嶸碧玉涵) 백옥이 우뚝 솟았고 푸른 옥이 잠겼다
출동조운무영토(出洞朝雲無影吐) 아침 구름은 골짜기를 나오며 그림자를 토하지

천림효월유정함(穿林曉月有情含) 숲을 뚫고 나온 새벽달은 정을 머금었다
한가경면미호분(寒呵鏡面微糊粉) 물 위에 찬 기운 부니 분을 바른 듯하고
춘투병간반화람(春透屛間半畵藍) 병풍바위에 봄이 스미니 절반은 쪽빛이라
하처취소선지냉(何處吹簫仙指冷) 어디에서 피리 부느라 손이 시린 신선
기래쌍록음청감(騎來雙鹿飮淸甘) 쌍 사슴 타고 와 맑은 물을 마시는 가

 

제7경 영실기암 (靈室奇巖) : 영실의 기이한 바위들

 

한라산 정상 서남쪽 허리께에 숨어 있는 깎아 세운 듯 천연 기암절벽이다. 전설을 간직한 채 우뚝우뚝 솟아 있는 오백장군들이 마치 조물주 호령에 부동자세를 취한 듯하다. 영실기암 사계절은 특히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일실연하오백암(一室煙霞五百巖) 연하 덮인 골짜기 오백 개 바위
기형괴태총비범(奇形怪態總非凡) 기묘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네
승의보탑간운장(僧依寶塔看雲杖) 스님이 탑에 기대어 구름을 보는 듯하고
선읍요대무월삼(仙揖瑤臺舞月衫) 요대에서 신선이 달빛 소매로 춤추는 듯
한객궁하도범두(漢客窮河徒犯斗) 한나라 나그네 황하 근원을 찾다가 북두를 범하

진동망해막정범(秦童望海莫停帆) 진나라 아이들 바다를 보며 배를 멈추지 못했네
장군혹공신기루(將軍或恐神氣漏) 장군들은 하늘의 기밀 샐까 두려워
묵수영구구자함(墨守靈區口自緘) 신령한 곳 굳게 지켜 입을 다물었다.

 

제8경 산방굴사 (山房窟寺) : 산방산의 굴 절

 

안덕면 사계리 동쪽에 거대한 준산(峻山)이 하늘로 솟아 있다. 산세가 험준하면서 수려한 산방산이다. 고려 승려 혜일이 마음을 닦았다는 산중턱 동굴이 바로 산방굴사다. 이 동굴에서 바라보는 해안선과 경치는 매우 빼어나다.

 

화공다교착청산(化工多巧斲靑山) 조물주가 재주 많아 푸른 산을 깎아내어
동설승문운엄관(洞設僧門雲掩關) 굴속에 절을 짓고 구름으로 빗장 걸었네
연석건곤포상하(鍊石乾坤包上下) 돌을 다듬어 만든 천정과 바닥을 감쌌고
공침세계천중간(孔針世界穿中間) 침으로 뚫어 세상은 그 중간에 만들었네
도현수색천년희(倒懸樹色千年戱) 거꾸로 매달린 나무는 천년을 희롱하고
점적천성만고한(點滴泉聲萬古閑) 떨어지는 물방울은 만고에 한가롭다
한탑향소쌍불좌(寒榻香消雙佛坐) 향기 가신 차가운 자리에는 부처 두 분 앉혔는데
기시병발학비환(幾時甁鉢鶴飛還) 어느 때나 큰 스님이 학을 타고 오실 런지

 

제9경 산포조어 (山浦釣魚) : 산지포구의 고기잡이

 

제주 관문(關門)인 산지포(山池浦)는 옛날 강태공들이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우던 곳이다. 지금은 제주항이 들어서 흔적조차 없지만 예전 측후소 올라가는 길 밑에 아름다운 모양의 홍예교가 있었다. 홍예교 밑 깊은 물에는 은어(銀魚)가 뛰어 놀았다고 한다. 그 옆에 푸른빛 맑은 샘이 흘렀다 한다.

 

양양경사출조어(兩兩輕槎出釣魚) 짝지어 고기잡이 나가는 가벼운 떼 배
해천일색경중허(海天一色鏡中虛) 하늘 바다 한 색으로 거울 속 허공이라
낙화비서춘화후(落花飛絮春和後) 꽃 지고 버들 솜 날리는 따스한 봄날
녹수청산우헐초(綠水靑山雨歇初) 푸른 물 푸른 산비가 막 개었다
하의연운수왕반(何意煙雲隨往返) 연기구름은 무슨 뜻으로 가고 오는고
다정구로망친소(多情鷗鷺忘親疎) 다정한 갈매기는 친소를 잊어구나
여금차경수고수(如今此景輸高手) 지금 이 경치를 좋은 솜씨에 맡긴다면
응작인간미견서(應作人間未見書) 세상에서 못 보던 글을 지을 터인데

 

제10경 고수목마 (古藪牧馬) : 풀밭에 기르는 말

 

제주도는 예부터 말 방목(放牧)과 서울 진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한라산 중턱의 탁 트인 초원 지대 곳곳에서 수백 마리의 조랑말이 떼 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은 제주만의 매력이다.

 

운금재래각색구(雲錦裁來各色駒) 구름 비단을 마름질한 듯 각색의 망아지들
청규자연우신부(靑虯紫燕又晨鳧) 청규마 자연마 또 신부마일세
도화세우행행접(桃花細雨行行蝶) 복사꽃 가는 비에 날아드는 나비 같고
방초사양갈갈오(芳草斜陽渴渴烏) 향기로운 풀 지는 해에 목마른 오추마라
무습반모개변호(霧濕班毛皆變虎) 안개 젖은 무늬 털은 다 호랑이 같고
풍비황렵각의호(風飛黃​鬣各疑狐) 바람에 날리는 누런 갈기는 여우같다
투편욕소동서예(投鞭欲掃東西穢) 채찍 휘둘러 세상 더러운 거 쓸어버리려
수유경륜만복주(誰有經綸滿腹蛛) 거미 배에 가득한 경륜 누구에게 있을까

 

영주십경가와 마찬가지로 제주의 빼어난 풍광을 주로 노래하는 민요가 이야홍이. 이 민요는 음악적으로 매우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어 그 표현이 까다로운 민요 중 하나다.

 

천지연 달밤에 은어(銀魚) 노는 그 구경 이야홍 좋기도 좋구나
고량부 삼성(三姓)이 나오신 그곳은 이야홍 삼성혈이라
삼매봉 안고 도는 외돌개 절경이 이야홍 좋기도 좋구나
성산 일출봉 야경(夜景)주로다 이야홍 성산 일출봉
용연야범에 노 젓는 뱃사공 이야홍 처량도 하구나(이야홍)

 

한라산 상상봉 높고도 높은 봉 이야홍 백록담이라
고량부 삼성에 나오신 저곳은 이야홍 삼성혈이라
용연야범에 노 젓는 뱃사공 이야홍 슬슬도 가구나
성산일출봉 야경조로다 이야홍 성산 일출봉
천지연 ᄃᆞᆯ(달)밤에 어마 눈은 구경에 이야홍 좋기도 좋구나
삼메봉 앞마당은 외돌개 절경에 이야홍 좋기도 좋구나
절부암 절벽에 부서지는 저 절 소리 이야홍 처량도 하구나(이야홍)

 

제주도송(濟州島頌)
여름밤 꿈꾸듯이 다녀온 제주도건만 사흘 지나 닷새 돼도 잊혀지지 안하 애를 씁니다. 섬이라 제주 땅은 곱고 고운 꿈의 나라울도 문도 없는 초인(超人)들의 살림터라 네 것 네 것이 우리 것이니 금처서 안 가린 듯 그 뉘라서 탄하리.

 

늙은 꾀꼬리 목쉬어 내천(川)찾을 때 밭갈이에 지친 아낙네 점북따러 포구(浦口)로 가네. “이러러” 말새끼야 조밟이도 끝낫으니 천지연(天池淵) 물마시고 거듭 철에 오려므나 거울면(面) 같은 산지포구(山池浦口)에 매엿던 목선(木船)이여 섬 색시 머리처럼 부드러운 한라 산맥(山脈) 노송(老松) 욱어진 기암유곡(奇岩幽谷)을 나려 패는 정방폭(正房瀑)의 물소리가 눈감아도 보이듯 귀 막아도 듣기는 듯.

 

한라산록(漢拏山麓) 소요(逍遙)하든 고삐 없는 말의 떼“우러러”말 부르는 농군(農軍)네의 애타는 소리 못 듣는가 나믈 마소 저물 소리에 들리겟소.

 

뜨는데도 성산(城山)바다 지는 곳도 사라봉(沙羅峯)이라거니 햇님아 재촉마오. 한라산이야 못 넘으리 비포(琵浦) 아가씨네 해삼(海蔘) 광주리 텅 비엇으니 백록택변반송(白鹿澤邊盤松)우에 쉬엄쉬엄 땀 드려 가오.

 

산에 물에 놀다온 나이건마는 간 듯도 안간 듯도 갈피 못 차려 애를 씁니다. 뭇노니 꿈속의 나라 제주 섬이어 내 그대 찾앗음여 생시런가 꿈이런가? (이무영 李無影, 동아일보, 1935.07.12.).

 

산지포(山地浦), 용연(龍淵) 절경(絶景)과 삼사비(三射碑)
삼성혈을 보고 돌아서려니 흐렷던 날이 금시에 바짝 들며 해가 쨍쨍 나려 쪼인다. 서문교(西門橋)를 지나서 공자묘를 구경하고 다시 밭이랑을 타고 해변으로 나가려니 노송가지 사이로 무엇인지 뻔쩍 한다 물이다.

 

아, 이토록이나 맑은 물은 어다 잇으며, 물이면 물 이엇지 이토록이나 잔잔한 수면이 잇을 수 잇을까? 이것은 달 밝은 밤, 제주도 시악들의 목욕터라는 용연(龍淵)이다. 수면까지 삼사십 척이나 되는 절벽이 양쪽 언덕이 되고 그 사이를 수은같이 맑은 물이 흐른 다아. 그러나 이 물을 그 누가 흐른다 할 것인가? 잔 물살 한줄 없는 물속에서 가끔 잉어 허연 뱃대기 번적인다.

 

용연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괴벽(怪癖)을 다 하야 만든 석함(石函)이다. 천태만상의 기암(奇巖)이 변두리가 되어 잇는 것도 장관이려니와 그 기암절벽 틈을 파고 난 반송(盤松)이 거올 속 같은 물에 비치어 물속의 해송(海松)이 절벽에 비치엇는지 절벽의 반송이 물속에 비친 것인지 분간키 어려울만하다. 아람드리 노송에 등을 기대고 가마니 물가에 앉앗으려니 세상만사(世上萬事)는 잊히는 듯 물러가고 조름만 포옥포옥 쏟아지네. 구렝이도 십(十)년에 용 되엇다 하거늘 용연에 몸 닦고 지은 죄 못 벗으랴. 잉어인지 꼬리로 물살 지을 때야 현긔 나네, 이 몸도 용 되어 오르는가 하엿소.

 

산지포구(山地浦口) 여관으로 돌아온 것은 한시, 간단한 오찬을 마치고 자동차를 달리어 삼사석비(三射石碑)를 찾앗다. 이 삼사석비는 탐라국의 시조 고을나 부을나, 양을나 세분이 서로 도읍을 다투다가 이 삼사석비가 선 곳에서 활을 쏘아 자긔의 화살이 떠러진 곳에 자긔의 도읍을 정하기로 하고 활을 쏜 바로 그 지점이라 한다. 삼사석비를 지나니 왼편에는 바다요, 오른편에는 펀한 평야다.

 

사긔(史記)에 의한다면 피란 다니든 몽고족(蒙古族)이 제주도에 와서 영주(永住)하게 된 일이 잇다고 한다. 그래 그럼인지 제주도 농민들의 밭갈이 광경은 그게 통이 몽고족과 같은 데가 만타. 수십 필의 말을 몰아서 조밭 밟이를 하는 것도 일즉이 보지 못한 광경이려니와 고삐도 없는 말의 떼가 편한 들판을 어슬렁거리는 풍경은 제주도 아니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해가 어스름만 하여도 마소(馬牛)를 오양 속에 가두고 대문을 첩첩히 닫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 농촌이오 세게 각국의 풍속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농민들은 이와 꼭 반대다. 해가 질 무렴이면 마소를 집에서 몰아 들과 산으로 내보낸다. 들이나 산에 가서 자고 해 뜨거 던 다시 들어오라는 것이다. 호박닢 한나를 가지고도 네 것이니 내 것이니 싸우는 것이 세상의 상태거늘 마소에 굴레도 안 씨우고 고삐도 매지 안 흔 나라가 어디 잇을 것인가? 물론 이것은 이십사(二十四)만의 도민 중에 거지는 또 한사람도 없다는 제주도민들의 생활안정에서 온 미풍(美風)이겟지 마는 그 천성이 그만큼 아름답지 못하다면 이때껏 말목에 고삐가 매어지지 안 핫을리가 만무할 것이다. (이무영 李無影, 동아일보, 1935.08.04.).

 

천지연폭포(天地淵瀑布)
제주도는 물의 나라, 폭포의 나라다. 한라산맥에서 흘러 나린 백사십여개의 고고만외, 그 뫼를 흘른 수천 골작, 옛날의 분화구(噴火口)엿던 산상의 백녹담(白鹿潭)에서 새어 나린 물줄기는 혹은 게류가 되어 섬 처녀들의 목욕터가 되고 혹은 모디어 수심(水深) 수백 척의 호수가 되엇다. 직경 삼사십 척이 물확을 채운 옥수는 지세 따라 폭포가 되어 산채캐던 처녀들의 목말도 시켜준다.

 

 
▲ 진관훈 박사

이 허다한 폭포 중에서도 천지연(天池淵)은 폭포의 나라 제주도에서도 이름난 폭포다. 서귀포(西歸浦) 어촌에서 런넬 처런된 산골을 타고 □□으로 이삼정 들어가면 벌서 획을 내려 패는 물소리가 산 뿌리를 잡아 흔든다. 골작에 들어서니 때 아닌 안개가 자옥하여 십여 척 거리에 선 사람이 얼굴까지 몽롱하고 금시에 옷이 눅눅하게 적어버린다.

 

물확의 주위는 한 백 척 가량이나 될까? 확안에 솟은 바위도 물에 못 견디는 듯 잠겻다 솟앗다 담방 구질을 한다. 인가에서 육, 칠정이고 보니 인축(人畜)의 소리를 들을 길도 없거니와 그 울창한 밀림 속이건만 새소리 한마디 안 들린다. 천지연은 사람에 따라서는 비연폭포(悲戀瀑布)라고 부르는 사람까지도 생기게까지 산채캐던 섬 처녀와 편발의 초동들이 애틋한 연정을 정산한 사건이 한두 번 아니라 한다(이무영 李無影, 동아일보, 1935.8.5.).

 

<참고문헌>

 

김영돈(2002),『제주도 민요 연구』, 민속원.
동아일보, 1935년 07월 12일자. 08월 04일자. 08월 05일자 기사
제주시,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제주연구원〉제주학아카이브〉유형별정보〉구술(음성)〉민요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o?cid=210402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etail.do?
cid=210402&mid=RC00000335&menuName=구술(음성)>민요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etail.do?
cid=210402&mid=RC00007226&menuName=구술(음성)>민요
좌혜경 외(2015),『제주민요사전』, 제주발전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 역임, 현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 『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오달진 근대제주』(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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