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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프로빈셜 홀(30)] '조배죽'의 유물 ... 권력의 두 얼굴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아우성이었다. 소나무 숲이 붉게 물들어가는 재선충 전염병이 전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푸른 숲은 단풍이 든 것처럼 병들어 가고 있었다.

 

확산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일반인들조차도 걱정이 늘어갔다. 7대경관 선정 발표에 큰 성과로 착각하던 조배죽들은 유권자들의 차가운 시선을 읽지 못하였다.

 

천재지변에 대응하려면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이 최우선이다.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면 사태를 수습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확산되어 버린다. 오랜 기간 현장 경험과 치밀한 학습으로 갖추어진 전문가의 판단이 결정적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가 있었더라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조기에 진압하라‼”고 엄명을 내렸을 것이다.

 

덧붙여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으니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신속하게 집행하라‼"고 재난대응 총력태세로 전환하였을 것이다.

 

반대로 간신들의 모습은 이 때 드러난다. 지도자를 골치 아프게 하는 문제점을 묻어버리고 그들의 책상 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한다. 현장에서는 큰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어도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고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대신에 “골프를 치시도록 공식일정을 비웠습니다. 저녁에는 연회를 준비하였습니다”라고 보고를 하면서 충성을 다하였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에게는 그게 더 중요하다.

 

권력에 취한 자들은 오직 지도자의 편안함을 챙기는 생각만 들어차 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지경에 이르면 현장 책임자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책임을 추궁한다. 현장에서는 실무자들이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음에도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며 거꾸로 다그친다. 끝내 자신들의 리더십에 커다란 공백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를 않는다. 권력의 이면에 나타나는 속성이다.

 

권력의 두 얼굴

 

권력은 '눈에 보이는 힘(overt power)'과 '눈에 보이지 않는 힘(covert power)'으로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권력의 두 얼굴은 중요한 정보를 왜곡하여 전달하고 편견을 동원하여(mobilization of bias) 지역사회에서 직면한 문제를 논의하지 못하도록 묻어 버리고, 소수에 의하여 밀실에서 정책이 주도된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주민의 사고방식까지도 바꾸어 버리고 아무런 생각도 없는 무개념 정책이 추진된다. 무의사 결정(non-decision making)이다.

 

프로빈스는 7대경관 전화질로 재정을 탕진하고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켜 버렸다. 미래를 설계하여야 할 인재들을 검지 손가락 하나로 단순무식한 노무에 메어 달리도록 몰아 행정 시스템을 몇 년 전으로 퇴보시켜 버렸다. 전문가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이 낙후된 행정 시스템을 원상회복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있어야 한다.

 

뒤늦게 프로빈스 전 지역에는 붉게 물 들어가는 소나무 숲을 제거하는 방제작업이 이어졌다. 포크레인과 전기톱 소리가 윙윙 거리면서 울려 퍼져 나가고 있었다. 현장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심지어 소나무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터졌으나 조배죽들은 외면해 버렸다.

 

몇 개월째 계속되는 작업 현장을 지켜 본 한 리장으로부터 “국제자유도시여 뭐여 허지 마랑(하지 말고), 기본이라도 졸바로 허주기(제대로 하라)‼”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뭐~시 중 헌디(뭐가 중요한가)?”라며 7대경관에 취해버린 프로빈스를 향하여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두 얼굴의 조배죽

 

영원히 프로빈스의 주인이 될 것처럼 사또놀이를 즐기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버린 조배죽들에게 유권자의 판단은 냉혹했다. 7대경관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다음 선거에서 승리를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다시 일어설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해 버렸다. 총독이 프로빈스를 떠나고 지도자가 바뀌면서 그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실세 조배죽이었던 우영식(嚘鸋篒)이 먼발치에서 김철수를 보자 배시시 웃으며 잰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는 김철수가 프로빈스를 떠나기 전에 만난 마지막 조배죽이다.

 

예전에 민간위원회 위원 위촉을 위해 협의를 받고자 찾아 갔었다. 협의를 할 의무가 없었는데도 사전에 협의 하라는 지시가 내려 왔었다.

 

우영식은 위원 후보자의 얼굴 사진에 볼펜으로 콕콕 찍어가면서 취조하듯이 “이 사람 우리 편입니까?"라고 매운 말꼬리를 비틀어 올렸었다.

 

김철수는 “편이라니요?”라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그의 권세에 눌려 “이 분야에 전문가입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인사입니다”라고 설명하였었다.

 

그러나 우영식은 자신들 편이 아니라는 김철수의 대답에 “중립? 말귀를 못 알아먹나? 이 사람 빼란 말여‼” 거친 반말과 함께 얼굴 사진에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 볼펜으로 'Ⅹ'를 그어 버렸다. 존경받는 인사의 얼굴 사진에 볼펜으로 함부로 그어 버리는 그의 태도에는 오만무도함이 배어 있었다. 부글거리는 감정이 올라왔지만 어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오만함은 정치인들의 얼굴처럼 능그럽게 바꾸어졌다. “안녕하십니까‼”라고 허리를 반으로 굽히며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자세로 양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왔다. 김철수는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는 예전처럼 전성시대를 그리워하며 그런 날이 다시 오면 다시 태도를 바꾸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권세를 누리려 할 것이다.

 

김철수는 지난 20여년 동안 조배죽들의 집중 공격으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고 프로빈스를 떠났다.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서면 추락할 천길 벼랑 끝에서 오래 버티어 서 있었다.

 

한 줌의 미련도 남김없이 털어내고 홀가분하게 정문을 나섰다. 이제 다산 선생님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지냈던 다산초당을 찾아 그들의 전횡을 낱낱이 고해 바칠 예정이다. <제1부 끝>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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