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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프로빈셜 홀(Provincial Hall)(14)] 집권세력의 탐욕...스러져 가는 인재

 

우민태(宇脗駘)는 조배죽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성골(聖骨) 조배죽이 되어 더 큰 벼슬을 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중국 무협소설을 열심히 공부 중이다. 사무실에서도 즐겨 읽는 듯 책상 위에 가득히 쌓여 있다. 열심히 공부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론가 “어‼ 난데‼ 그거 가정오라(가져와)‼”라고 위압적인 목소리로 전화를 하였다. 한 시간 후에는 시골에 있는 도서관 직원이 부리나케 달려와서 가방에서 책을 풀었다.

 

도서관 직원이 가져온 책은 중국 무협소설 '측천무후(測天武后)'다. 아마도 도서관에 지시하여 이 책을 구입하여 가져오라 한 것 같다. 우민태가 김철수를 불러 “이 책 익엉(읽고) 요약해 도라(달라)‼”고 지시한다. 총독이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책을 요약해서 만들어 오면 총독에게 보고할 것이라 한다. 김철수는 “그거 참‼”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혔다. 총독이 중국 무협소설이나 즐기면서 위안을 삼게 하려는 십상시 본성이다.

 

측천무후는 온갖 남성 편력과 악행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포악한 여황제(女皇帝)로 기록된 인물이다. 우민태는 TV 드라마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측천무후의 행각을 총독에게 보고하여 그녀를 닮은 황제(皇帝) 리더-쉽으로 프로빈스를 이끌도록 할 생각인가 보다. 그 총독에 어울리는 조배죽이다. 그렇더라도 하고 싶으면 본인이 직접 읽어서 요약해서 가져다 바칠 일이다. 부하 직원에게 시킬 일이 아니다.

 

한 때 프로빈스에는 유명한 책들이 소개되어 읽기를 권장하였던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그 책의 한 페이지도 읽어 넘길 능력이 모자란 자들은 부하 직원들에게 그 책의 내용이 뭔지 “고라줘(얘기해 달라)‼”라는 유행이 돌기도 했었다. 그렇게 해서 내용을 전해 들었다 한들 넓은 세상에 대한 조배죽들의 눈과 귀는 열리지 않는다. 옛날에는 책을 읽어주는 노비가 있었다는데 프로빈스에는 진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김철수는 억지로 떠맡은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일주일 후에 우민태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거(‘측천무후’ 요약) 안 되시냐(안 되었나)?”라는 독촉을 받은 김철수는 욕질을 해 대면서 전화기를 집어 던져 버렸다. 우민태는 “쾅‼” 전화기 던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간이 콩알 만하게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이후에 연락이 없다. 조배죽들의 약점은 강하게 받아 버리면 ‘비를 맞아 감기 걸린 꿩’같이 사족을 쓰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스러져 가는 인재들

 

서기 1800년 조선시대 개혁군주였던 정조 임금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던 자들이 집권하고 이른바 세도정치(勢道政治)가 시작된다. 이 자들은 허술한 임금을 내세워 눈과 귀를 가리고 자신들의 파벌에서 누가 어느 벼슬자리를 하고 반대편은 역모의 누명을 씌워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 관심사다. 그 본성은 탐욕 그 자체다. 권력을 재미삼아 휘두르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그들은 유럽 제국주의 세력들이 이미 코 앞에 다가오고 있었는데도 알지 못했다. 부정부패한 자들은 세상 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방에서는 매관매직으로 벼슬을 하는 아전(衙前)들이 삼정(三政)을 문란(紊亂)시키며 ‘본전을 뽑으려’ 백성들을 수탈하였다. 세도정치는 1863년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63년 동안 이어진 사회질서가 무너지면서 나라의 운명은 기울었다. 머지않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백성들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고통을 짊어져야 했었다.

 

정조 임금은 우수한 성적으로 과거에 급제한 젊고 개혁적인 다산 정약용을 총애하였다. 그러나 정조 임금이 세상을 떠나면서 정약용은 세도정치 세력에 의해 17년 동안 유배를 당하고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미 가문은 몰락해 버리고 다시 일어설 기회를 모두 잃어 버렸다. 그의 친형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를 당하고 죽을 때까지 고향 땅을 밟지를 못하였다.

 

프로빈스에 국가 고등고시에 합격한 젊은 사무관이 발령을 받았다. 뛰어난 실력과 온화한 성품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다. 김철수는 친동생 같은 젊은 사무관이 크게 성장해서 프로빈스를 잘 이끌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멀리 파견을 나가게 되고 이후에는 돌아오지 못하였다. '파견'은 한편으로는 사무관 자리를 만들어 그들이 차지하고 다른 편으로는 반대파를 제거하는 양날의 칼이다.

 

파견을 가는 자들은 스스로 '인공위성'이라 하면서 혹시 돌아오지도 못할 길을 가는 것 아닌가 자조하기도 한다. 젊은 사무관은 모든 것을 잃고 스러져 갔다. 조배죽들은 국가가 배출한 뛰어난 인재를 국가와 프로빈스를 이끌어 갈 동량(棟梁)으로 키워 주지는 못할망정 제거해 버렸다.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사무관의 일생을 고향의 선배들이 짓밟아 버렸다.

 

이것은 총독의 날개 짓에 의한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일 수도 있다. 총독의 유력한 경쟁상대가 고등고시 출신이었으니 같은 고등고시 출신 사무관이니까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서 총독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려 저지른 일일 수도 있다. 조배죽들이 용서받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김철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충성서약서

 

프로빈스에는 또 다른 사무관이 있었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중앙정부에 발탁되어 오랫동안 근무하였다. 좁은 프로빈스에서 한 장짜리 서류에 토나 달면서 꼬질꼬질한 끗발이나 부려먹던 서리(胥吏) 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배죽들은 중앙정부의 쟁쟁한 실력파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앙정부 사무관들이 살짝 에둘러 표현하는 가벼운 논리도 이해를 하지 못하여 버벅버벅 거린다.

 

이 사무관은 중앙 무대에서 쌓은 각계 인맥이 두텁고, 넓고 깊은 지식으로 판단력이 뛰어났다. 세련된 말과 행동은 대표적인 고위 관리로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출중하였다. 사욕을 탐하지 않았고 신망이 두터워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마디로 조배죽들과는 노는 물이 달랐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전임 지사에게 발탁되었으나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프로빈스를 위해서 일을 해왔다.

 

그러나 조배죽들이 프로빈스를 장악하면서 이 사무관은 ‘반대파’로 몰려 변방 한직으로 밀려 난다. '잠시 인사이동이겠거니‼'하였으나 길고 긴 유배생활이었다. 6년이었다.

 

악연은 반복된다. 몇 년후 조배죽들은 이 사무관에게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며 총독에게 충성하도록 서약을 강요한다. 그러나 “조배죽들의 앞잡이가 되어 온갖 악행을 대신해 주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달콤한 유혹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김철수는 '너희들(조배죽들)‼ 오래 가질 못한다!!'며 하늘의 이치를 믿고 있었다. 이미 말기적(terminal stage) 증상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총독의 집무실에서 백주 대낮에 벌어진 해괴한 사건으로 프로빈스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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