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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 PARK IL -자유를 향한 탈출

한국전쟁 휴전협정 60주년이다.

한국전은 1950년 6월25일 발발, 53년 7월 27일 협정을 체결해 정전체제로 전환됐다. 1129일 동안 지속된 6·25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과 함께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이 설치돼 숨을 돌렸다. 남·북한은 그후 60년 동안 휴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휴전 후 많은 일들이 남과 북에서 일어났다.

 

포토저널리스트들은 그동안 남과 북, 그 중간 지점인 판문점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기록했다. 그리고 그 역사의 기록들을 펼쳐 보였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동강사진박물관을 비롯한 영월읍 일대에서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회 주관으로 ‘2013 동강국제사진제’가 열리고 있다.

 

<제이누리>는 동강사진마을 운영위원회의 제공으로 휴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한 사진전 ‘기억과의 전쟁’을 참여 작가별로 연재한다. 제주를 여는 창! <제이누리>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독점 게재하는 사이버 전시회다. / 편집자 주

 

박일 PARK IL 작가노트

2003년 5월7일 오후4시쯤 북한부에서 “내일 북한 탈북자들이 중국 선양의 외국대사관 진입을 시도한다는 첩보가 있으니 중국비자가 있는 사진기자가 중국으로 지금 당장 출장을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취재데스크를 맡고 있던 터라 중국비자가 있는 후배들을 물색했으나 아무도 없었다.

 

중국비자를 갖고 있었던 난 급히 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 뒤 출장준비를 서둘렀다. 공항 게이트에 도착한 것이 비행기 출발시간 10분전이었다.

 

베이징에 도착. 다음날 오전 6시 국내선을 타고 선양에 도착했다. 탈북자도움협의회(가칭) A씨에게 연락해 선양시내 한복판 중산공원에서 접선(?)을 했다. 그 자리에는 일본 교도통신사 한국취재팀장과 사진기자도 함께 와 있었다.

 

A씨는 미국과 일본 영사관 진입계획을 밝혔고 우리는 탈북자들이 많은 일본 영사관을 선택했다. 일본영사관이 마주보이는 건물 5층에 도착하자 1평도 안 되는 쪽방에 탈북자 김광철씨 가족 5명(2살짜리 한미와 어머니, 할머니 등)이 앉아있었다.

 

거사 시간이 2시로 정해졌다. 쪽방을 나서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 영사관으로 들어가면 북한을 탈출하는 9부 능선을 넘는 것이다. 일본 영사관 초소에는 중국공안이 서있다. 저 공안을 제치고 5명이 일본 영사관으로 진입하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현장에서 1/250초. 셔터를 누르기위해 긴 시간을 기다려봤지만 그 10분의 기다림은 20년이 넘는 취재생활 중 가장 초조했고 심장이 멈출 듯 했다.

 

그들이 공안을 제치고 진입을 시도한다. 정신없이 눌러댄 셔터.

 

그 사진 속에는 김광철씨와 동생 성국씨가 중국공안을 밀치고 영사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 김씨의 모친이 손녀 한미양을 끌어안고 철창문 안으로 뒹구는 모습, 부인 이성희씨가 절규하며 중국공안에 의해 끌려나오는 모습, 한미양이 울며 엄마의 몸부림을 지켜보는 모습 등이 담기고 있었다.

 

이때 파인더를 통해 성난 중국공안이 사진을 찍는 맞은편 건물 5층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들어왔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5층 건물을 뛰어내려와 골목길로 2km를 도망쳐야 했다. 중국공안에 의해 추적당할 염려가 있어 선양을 빨리 탈출해 북경으로 빠져 나간 뒤 기사를 송고하겠다는 교도통신 기자와 헤어졌다.

 

특히 교도통신이 지금 송고하지 않는다면 연합뉴스가 특종을 하는 것이다. 설사 내가 잡힌다면 내가 뉴스가 돼보자는 배수진까지 치면서…. 선양의 한 오래된 호텔의 비즈니스센터에서의 사진 전송. 우여곡절 끝에 8장의 사진을 전송 하는데 성공했다. 무려 1시간이 걸렸다.

대특종을 했다. 국내 모든 신문과 외신, 일본 신문에도 연합뉴스의 사진이 1면을 장식하고, TV방송에서도, 사진으로 뉴스를 보도했다.

 

그러나 특종에 대한 기쁨보다는 본인의 무사 귀국이 큰 걱정이었다. 본사에서는 선양공항을 나서다 체포당할 우려가 있으니 육로로 몽골로 가서 서울로의 귀국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하기도 했다.

 

일본 영사관에 진입한 한미네 일가족을 중국공안이 영사관내로 진입해 끌어내 중·일 간의 외교 분쟁으로 진전됐다. 일본 5개 방송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현장을 목격한 사진기자의 증언, 이 사진 때문에 중·일 외교 분쟁의 중요 증언이 돼 김광철씨 일가족은 수일이 지나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박일(朴日) PARK IL 약력.

 

서울에서 1957년 출생해 1975년 중앙대 사진학과 입학, 상명대 대학원을 2004년 졸업했다. 1982년 3월 연합통신 사진부에 입사해 당시 민주화 시위 현장을 중점 취재했다. 민주화 시위가 잠잠해지자 국회 출입기자로 이동해 국회에서 정치를 중점적으로 취재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과 동시에 청와대를 만 4년간 출입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1년간 다시 청와대를 출입했다. 이후 2004년 연합뉴스 사진부장으로 2년간 재직했다. 2006년 연합뉴스 충주주재기자(부국장)로 부임해 2008년 퇴직했다.

 

1985년 한국보도사진전 은상·가작 수상, 2002년 6월 이달의 기자상(한국기자협회), KBS홍성현 언론상 신문본상(홍성현언론기금), 제14회 최병우 기자 기념 국제보도상 수상(관훈클럽상),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수상(한국사진기자회), 삼성언론인상 수상(삼성언론재단), 서울언론인상 수상(서울언론인클럽)을 했다.

 

현재 충청도 일간지 동양일보 충주·제천·단양 취재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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