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제주에 연합캠퍼스 꾸린다
민주방 ‘3각 라이벌’ 책사 대격돌 ... 선거비무는 슬픈 드라마다
제주도의회 해외출장 '전국 1위' ... 반복 출장 논란
JDC 산업육성본부장에 이경선 전 국토부 국장
민요의 나라 제주 ... 제주인의 삶을 노래로 표현하다
정부, ‘탄소 없는 제주’ 가속 ... 2035년 신차 100% 전기차 전환
코로나19 때로 치솟은 청년실업률… AI시대 맞춰 정책 재설계해야
국민의힘 청년 오디션 제주 우승자 나왔다 ... 김태현 당선권 확보
"나의 세상은 단 하나의 시선 ... 또다른 시선은 없을까?"
제주삼다수 이벤트 경품으로 지역화폐 '탐나는전' 준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위원장 김민호)는 2일 제10차 회의를 열고 오는 지방선거 경선 선거구를 추가로 의결했다. 경선이 확정된 제주시 선거구는 삼도1동·삼도2동(강원근, 정민구), 외도동·이호동·도두동(고연종, 송창권), 애월읍을(강봉직, 김영익), 일도2동(김희현, 박호형) 등 4곳이다. 일도2동의 경우 4선 고지를 노리는 김희현 전 제주도 정무부지사와 3선 도전에 나선 박호형 현 의원이 격돌한다. 해당 선거구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갑·을이 통합됐다. 김 전 의원이 당시 불출마, 박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 서귀포시에서는 동홍동(김대진, 김주용, 김형준, 현용탁)과 대천동·중문동·예래동(노승진, 임정은) 선거구가 경선 지역으로 결정됐다. 3선 도전에 나선 김대진 의원은 도전자 3명과 본선 진출을 놓고 겨루게 됐다. 공관위는 이날 대정읍(양병우, 김나솔, 이경철)은 심사에서 제외했다. 제주시 노형동을 선거구는 무면허 운전이 적발된 현지홍 의원이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이경심 의원의 단수공천 확정됐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제주댁으로 잘 알려진 국악 가수 양지은은 TV조선 ‘금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제주 민요 ‘너영 나영’을 불렀다. 이 무대는 제주 민요를 현대 리듬에 맞춰 섬세하게 감정표현을 하여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처음 듣는 제주 민요의 색다름과 청아한 양지은의 음색이 더해져 제주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많은 이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너영 나영’이란‘너랑 나랑' 의 의미를 지닌 제주어로 너와 내가 함께 어울린다는 뜻이다. ‘너영 나영’은 ‘오돌또기’, ‘이야홍 타령’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제주 민요 중 하나다. “너영 나영 두리둥실 놀구요. 낮이 낮이나 밤이 밤이나 참사랑이로구나.” 여기까진 알겠는데, “백록담 올라갈 땐 누이동생 하더니 한라산 올라가니 신랑 각시가 된다.” 이 대목에선 제주토박이인 나도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겠다. ‘너영 나영’은 노래 앞부분은 원곡의 감성을 살려 편안한 리듬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잔잔히 어루만지며, 뒤로 갈수록 사물놀이로 흥을 돋우는 반전 멜로디가 있다. 곡의 서사를 따라 완급을 조절하며 세밀하게 감정선을 전달하는 제주 양씨 양지은의 목소리는 삶에 지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정화 시켜 준다. 그래서 그녀는‘치유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양지은은 데뷔 초기부터 착하고 배려심 많은 언행으로 드라마 여주인공 같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양지은의 동네 오빠인 송상섭 한림공원 대표는‘우리 착한 지은이’라며 100번도 넘게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게, 1971년 협재리 바닷가의 황무지 모래땅을 사들여 야자수와 관상수를 심어 가꾸어 오늘날 한림공원을 만든 한림공원 창업자 고 송봉규 회장이 치매에 걸려 의식이 혼미한 와중에서도, 양지은의 노랫소리가 들리면 잠시나마 밝은 미소를 되찾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송상섭 대표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예전 동네 귀염둥이 양지은의 목소리와 제주 민요가 지닌 강한 치유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일찌감치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고 송봉규 회장은 오랫동안 물심양면 그녀를 지원하며 그녀의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실제로 양지은은 ‘한림공원 장학회’로부터 국악 특기 장학생으로 지원받았다. 이처럼 제주 민요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제주인들에게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재작년 초 가수로 데뷔한 전 예술의전당 대표 고학찬 씨가 노래하게 된 동기를 들어보면, 다들 엄마가 그리워 가슴 뭉클해 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15년 살다 한국으로 잠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치매로 3대 독자 아들인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습니다. 3일 동안의 짧을 일정을 마치고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 혹시나 하여 어머니가 즐겨 부르셨던 제주 민요 ‘이아홍 타령’을 불렀습니다. 그 순간 말도 표정도 멈춰 있던 어머니께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셨습니다.” 제주민요 이야홍 노래 듣기 치매에 걸려 노모가 3대 독자 아들조차 못 알아보다가, 아들이 제주 민요 ‘이아홍 타령’을 부르는 순간 잠시 기억이 돌아온 듯, 아들과 함께 ‘이아홍 타령’을 불렸다는 사연이다. 제주도는 민요의 나라다. 민요는 민중들의 사상, 생활, 감정을 담고 있으며 노동이나 생산 활동과 연관된 생산적 노래다. 제주 민요에는 농사짓기 소리, 고기잡이 소리, 일할 때 부르는 소리, 의식에서 부르는 소리, 부녀요, 동요, 잡요 등이 있다. 특히 제주 민요에는 노동요와 부녀요가 압도적이다. 노동요에는 농사짓기 소리로 ‘검질 매는 소리’가 가장 많고 ‘밭 밟는 소리’, ‘도리깨질 소리’, ‘방아 찧는 소리’ 등이 있다. 고기잡이 소리로 해녀들이 전복을 따러 갈 때 노를 저어가면서 부르는 ‘해녀 뱃소리’가 있다. 그리고 일하며 부르는 소리로 맷돌질하면서 부르는‘고랫소리’, ‘가래질소리’, ‘꼴 베는 소리’, ‘톱질 소리’, ‘방앗돌 굴리는 소리’ 등이 있다. 또 말총으로 망건, 탕건 등을 짜며 부르던 노래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주로 여자들이 민요를 불렀다. 주로 집안의 일, 즉 멧돌, 절구를 찧는다던가 말총으로 망건, 탕건 등을 짜는, 이른바 힘이 든다든가 그렇잖으면 심심해서 일할 때 노래했다. 이밖에 야외에 나가 농사일을 한다든지 바다에서 전복을 딸 때도 불렀다. 해녀 노래는 바닷속에서 작업하면서 부를 수도 없으므로, 난바다에 나갈 때까지 배를 저으면서 노래했다. 제주 민요는 노동요만 있는 게 아니다. 의식에서 부르는 소리, 부녀요와 동요, 통속화된 잡요 등도 있다. 노동요의 중간중간, 즉 단조로운 노동 중에 사랑과 원한, 시집살이, 집안, 인간관계 등 인생살이 내용도 많다. 제주 노동요를 통해 제주 여성들은 신세를 한탄하거나 삶의 고달픔을 소리로 표현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또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말 못 할 서러움을 하소연하는 인정의 노래도 있으며 또 밤이며 낮으로 보고 싶고 기다려지는 사상의 연가(戀歌)도 가지가지가 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부르는 사무친 노래도 있다. “새야! 저세상 가서 우리 부모 만나, 우리 딸 어디 앉아 울고 있더냐? 우리 부모가 묻거든, 길거리에 앉아 엄마 부르며 울고 있더라고 말해 다오.” 이 세상 그 어느 딸이, 돌아가신 친정엄마 무덤 옆에 당 배추가 아무리 풍성하게 많았어도 북받치고 눈물겨워 하나라도 캘 수 있을까? 재작년 <제주 일 노래> 상설공연장에서 만난 부혜미 제주문화원 민요 강사는 “제주인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게 제주 민요”라고 명쾌하게 정의했다. 어머니 한춘자 명창 따라 자연스럽게 제주 민요를 배운 그녀는 제주 민요와 더불어 제주의 신화와 굿 이야기를 노래하며 대중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제주인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제주 민요는 세대를 거쳐 제주인의 삶과 역사를 이어 주는 역할도 한다. 민요를 통해 세대 간 교감하고 공감하며, 전통을 계승하게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전국 광역의회 의원들의 해외출장 실태를 분석한 결과 제주도의회가 출장 횟수와 인원 모두에서 전국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31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2년 7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전국 17개 광역의회를 대상으로 실시한 해외출장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제12대 제주도의회를 포함한 전국 17개 시·도의회다. 출장 건수와 참여 인원, 출장일수, 예산 규모 등을 종합 분석했다. 조사 결과 제주도의회는 모두 67건의 해외출장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2위인 대전광역시의회(30건), 3위 광주광역시의회(24건)와 비교해도 큰 격차를 보였다. 출장 참여 인원 역시 제주도의회가 322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상남도의회 299명, 대전광역시의회 111명 순으로 나타났다. 의원 개인별 출장 횟수에서도 제주도의회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전국 기준으로는 제주도의회 김경학 전 의장이 16회로 가장 많았고, 부산광역시의회 안성민 의원이 14회로 뒤를 이었다. 제주도의회 내부 순위에서도 김경학 의원이 16회로 가장 많았고, 강경문·강충룡·김대진·임정은 의원이 각각 10회, 강철남·오승식·원화자·이정엽·하성용 의원이 각각 9회로 뒤를 이었다. 특히 7회 이상 해외출장을 다녀온 제주도의원은 전체 44명 가운데 30명에 달해 반복 출장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제12대 제주도의회 임기 중 한 번도 해외출장을 가지 않은 의원은 2024년 보궐선거로 입성한 양영수 의원(아라동을·진보당)이 유일했다. 2회 출장 의원은 2명, 4회 출장 의원은 3명으로 조사됐다. 전국 기준으로도 해외출장 규모는 상당했다. 전국 17개 광역의회 의원 904명 가운데 871명(96%)이 임기 중 최소 한 차례 이상 해외출장에 참여했다. 출장 건수는 558회, 참여 인원은 중복 포함 3282명이다. 출장 기간은 3705일이다. 전체 예산은 128억4616만원으로 집계됐다. 평균적으로 출장 1건당 5.9명이 참여해 6.6일 동안 해외에 체류했다. 건당 평균 예산은 약 2302만원 수준이었다. 다만 정보 공개 수준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장계획서는 전체 558건 중 482건이 비용을 포함해 공개돼 85%의 공개율을 보였지만 결과보고서에서 예산까지 포함해 공개된 사례는 95건에 그쳐 16% 수준에 불과했다. 비용이 제외된 결과보고서는 463건, 결과보고서 자체가 없는 경우도 19건으로 확인됐다. 경실련은 “모든 해외출장을 외유성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출장 빈도가 과도할 경우 반복 출장의 기준과 배경, 의정활동과의 연관성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출장계획서와 결과보고서에 예산을 포함한 필수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동일·유사 목적의 반복 출장에 대한 심사 기준과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지방의회 해외출장 관리 기준의 표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국민의힘 제주도당의 공천 갈등이 도당 핵심 인사 간 정면충돌로 번지고 있다. 전 제주도당 사무처장에 이어 현역 제주도의원까지 도당위원장의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갈등 수위가 한층 높아지는 분위기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귀포시 정방·중앙·천지·서홍동 선거구 출마를 준비 중인 강하영 제주도의원(국민의힘·비례대표)은 2일 제주도의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천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고기철 제주도당위원장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강 의원은 “강상수 의원의 경선 포기와 탈당은 동료 의원으로서 안타깝지만, 기자회견에서 언급된 내용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라며 “특정 후보 단수공천을 염두에 둔 여론조사가 진행됐다면 이는 심각한 공천 비리”라고 주장했다. 또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전략공천을 시도했다면 공정 경선 원칙이 훼손된 것”이라며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기철 위원장은 강상수 의원과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 의원은 공천 정보 유출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강상수 의원이 공관위원들만 알 수 있는 내용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의문”이라며 “전달자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공천 심사가 아니라 공천 야합이라는 의심이 제기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강상수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해야 하고, 허위사실이라면 나 역시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특히 강 의원은 “강상수 의원의 발언은 사실상 양심선언에 가까운 것으로 국민의힘 제주도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신뢰가 무너졌다”며 “논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고기철 위원장은 공관위원장과 도당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사퇴를 요구했다. 강 의원은 또 강상수 의원을 향해서도 “계엄 사태 이후 탈당을 고민했다면서 공천 신청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당의 책임과 의무는 다하지 않고 혜택만 누리려는 이기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는 “그동안 의문이었던 부분들이 강상수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로 드러난 것과 다름없다”며 “당의 공정 원칙이 무너진 상황에서 남은 선거기간 동안 도당위원장이 당을 이끌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강 의원은 강상수 의원과 같은 선거구 공천을 두고 경쟁해 왔다. 강상수 의원은 지난달 30일 ‘본선 경쟁력’을 이유로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시는 농업용 저수조 증설 사업을 이달 시작해 상반기 내에 완공한다고 3일 밝혔다. 최근 기후변화로 농업용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시는 총사업비 47억원을 투입해 저장 능력이 부족한 소규모 저수조의 용량을 대폭 증설할 계획이다. 대상 저수조는 애월읍 봉성리·어음리·납읍리·하가리·상가리·장전리, 조천읍 대흘리, 한경면 조수리의 8개 저수조로, 각각 500t 규모로 저수용량을 확대한다. 시는 저수용량 확대와 함께 노후 농업용수 관로도 정비해 용수 손실을 줄이고 공급 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해양경찰서와 서귀포해양경찰서는 기상악화가 예상됨에 따라 3일 오후부터 4일까지 이틀간 제주 해안 전역에 걸쳐 연안 안전사고 위험 예보제에 따른 '주의보'를 발령한다고 3일 밝혔다. 해경은 제주도를 통과하는 저기압의 영향으로 제주 연안에 초속 10∼16m의 강풍이 불고, 최대 4m에 달하는 높은 파도가 일 것으로 예보되는 등 연안 사고 위험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해경은 항·포구 등 연안 순찰을 통해 테트라포드·갯바위 등 위험구역 출입을 통제하고, 낚시객 등에 대한 계도 활동과 안전시설물 점검 등 해양 사고 예방 활동을 한다. 또 유관기관 전광판 게시, 선주·선장 대상 안내 문자 발송 등 홍보활동도 병행한다. 연안 안전사고 위험 예보제는 연안해역의 위험구역에서 기상악화나 자연 재난 등으로 같은 유형의 안전사고가 반복·지속될 우려가 있을 경우 위험성을 국민에게 사전에 알리는 제도다. 예보 단계는 '관심-주의보-경보' 세 단계로 구성된다. 제주해경 관계자는 "봄 행락철을 맞아 제주 연안해역을 찾는 행락객 많아지고 있다"며 "추락 등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방파제나 테트라포트 등 위험구역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국회의원(서귀포시)이 정책 중심 선거 행보를 본격화하며 정책자문단을 공개했다. 위성곤 의원 측은 2일 “제주의 핵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 교육, 농업, 재생에너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정책자문단을 구성했다”며 “실행 가능한 정책 중심 선거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자문단 좌장은 양영철 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이 맡는다. 여기에 이효연 전 제주대 기획처장, 박정환 제주대 교육학과 교수, 김종환 제주국제대 행정학 교수, 김상명 교수, 강봉현 교수 등 학계 인사들이 합류했다. 보건·의료 분야는 이상호 제주대 약학대학 학장이 맡고, 감염병·축산 방역 분야는 황규계 제주대 수의대 교수가 담당한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법률 전문가들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정책의 실행력과 법적 타당성을 보완할 예정이다. 도시경관과 공공디자인 분야는 이광진 제주대 교수가 맡고, 관광 분야에는 성덕호 박사와 문재홍 제주관광대 교수가 참여한다. 문화·예술 분야는 장호진 제주호은아트센터 대표가 담당한다. 농업 분야에는 김재훈·한상헌 교수, 축산 분야는 이왕식 교수가 참여한다. 해양·수산 분야에서는 전유진 제주대 교수와 유연철 제주대 교수가 합류해 제주형 해양 산업 정책을 지원한다. 에너지·환경 분야에는 장순웅 경기대 창의공과대학장이 참여하고, 인천공항 설계에 참여한 김신호 건축사, 스마트시티 전문가 권창희 교수, 기후환경 물순환 전문가 현경학 전 연세대 교수 등도 자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와 함께 실무형 전문가 그룹도 별도로 구성됐다. 고용수 건축사, 고성찬 공인중개사, 박진우 전 경기대 교수, 박영미 AI 마케팅랩 대표, 김동현 문학평론가 등이 포함됐다. 위성곤 의원은 “정책자문단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민 삶을 바꾸는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겠다”며 “구글폼 등을 통해 도민 정책 제안을 받아 실행 가능성을 검토하고 당선 이후 즉시 도정에 반영할 실행 로드맵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KBS제주는 제주4·3 제78주기를 맞아 '봉인해제-36년 전 미공개 테이프'를 4·3 희생자 추념일인 3일 오후 7시 40분에 방송한다고 2일 밝혔다. 이번 방송은 1990년 2월 방영 예정이었으나 외부 압력으로 끝내 전파를 타지 못했던 다큐멘터리 '해방과 분단: 제주4·3 전후'를 바탕으로 제작한 '리뷰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당시 제작 과정에서의 고민과 시대적 분위기, '불방'의 배경을 짚어보는 한편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장면의 의미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78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됐다.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도가 주관한 올해 추념식은 '4·3의 역사는 평화를 품고, 역사의 기록은 인권을 밝히다'를 주제로 마련됐다. 주제에는 4·3 기록물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고 4·3 정신인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미가 담겼다. 이날 추념식에는 구름 많고 바람이 다소 부는 날씨 속 4·3 생존 희생자와 유족, 도민, 정부 인사, 정치인 등 2만여명이 참석해 행사장을 채웠다. 추념식 본 행사는 4·3희생자 영령을 위한 묵념, 헌화 및 분향, 국민의례, 인사 말씀, 추념사, 유족 사연, 추모 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가 시작되는 오전 10시부터 1분간 제주도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울렸고, 추념식 현장에는 동박새 소리와 첼로 연주가 함께 울려 퍼졌다. 유족 사연은 4·3 희생자의 가족관계 정정 첫 결정 사례인 고계순(78) 어르신의 이야기가 영상과 배우 김미경 낭독으로 소개됐다. 고계순 어르신은 친아버지가 4·3으로 희생돼 작은아버지 자녀로 살아오다가 올해 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결정에 따라 친아버지 자녀로 가족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추모 공연으로는 바리톤 고성현이 소해금 연주가 량성희의 연주에 가곡 '얼굴'을 불렀다. 량성희는 증조부가 4·3희생자고 조부모 고향이 제주인 재일동포다. 이어 제주도립합창단이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한 뒤 4·3 평화합창단,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노래했다. 추념식은 KBS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추념식 본행사에 앞서 오전 9시부터 종교의례와 추모 공연 등 식전 행사도 진행됐다. 행사가 모두 끝난 후에는 참배객들이 위령제단에서 헌화·분향하며 4·3 영령을 추모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4·3 희생자 추념일은 지난 2014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민선 8기 제주도정이 전국 시·도지사 공약 이행 평가에서 3년 연속 최고등급을 받았다. 제주도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발표한 ‘2026 전국 시·도지사 공약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서 종합 최고등급인 SA를 획득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평가에서 도는 3년 연속 종합 최고등급을 기록했다. 특히 공약 이행 완료, 2025년 목표 달성, 주민 소통 등 3개 분야에서 2년 연속 모두 SA를 받은 시·도는 제주가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평가는 지난 2월 9일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전국 17개 시·도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평가 항목은 ▶공약 이행 완료 ▶2025년 목표 달성 ▶주민 소통 ▶웹 소통 ▶공약 일치도 등 5개 분야를 종합적으로 반영했다. 종합 최고등급(SA)을 받은 광역단체는 제주를 비롯해 서울, 부산, 광주, 경기, 충남, 전남, 경북, 경남 등 9곳이다. 대구는 단체장 공석으로, 대전은 세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평가에서 제외됐다. 제주도 민선 8기 공약은 모두 102건이다. 이 가운데 완료된 공약은 5건, 이행 후 계속 추진 중인 공약은 86건으로 전체 91건이 완료·이행 공약으로 분류됐다. 완료·이행 비율은 89.22%에 달한다. 또 정상 추진 공약은 9건, 일부 추진 공약은 2건으로 나타나 대부분의 공약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약 재정 규모는 11조3736억8800만원으로 계획됐다. 현재까지 9조1786억7200만원이 확보돼 재정 확보율은 80.7%로 집계됐다. 이번 평가 결과는 공약 추진률뿐 아니라 재정 확보 수준과 주민과의 소통 체계를 함께 평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임기 막바지에 접어든 시점에서 공약 이행률이 89%를 넘어선 것은 도정 운영의 실행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다만 남아 있는 11건의 과제 가운데 일부 추진 사업도 포함돼 있어 임기 종료 전 마무리 성과가 최종 평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양기철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은 “민선 8기 공약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만큼 도민과의 약속을 끝까지 이행하는 데 행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행정안전부는 3일 오전 10시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제78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을 연다. '4·3의 역사는 평화를 품고 역사의 기록은 인권을 밝히다'를 주제로 열리는 행사에는 4·3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 등 2만여명이 참석해 4·3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행사 주제는 지난해 4월 제주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하고 4·3의 정신인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미가 담겼다. 추념식은 오전 10시부터 1분간 제주도 내 전역에 묵념 사이렌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시작된다. 종교의례 등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4·3 희생자 영령을 위한 묵념, 헌화 및 분향, 추념사, 유족 사연, 추모 공연, 대합창 순으로 진행된다. 유족 사연으로는 친아버지가 4·3사건으로 희생돼 작은아버지의 자녀로 살아오다가 올해 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위원회)'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결정에 따라 친아버지의 자녀로 가족관계등록을 하게 된 고계순 어르신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바리톤 고성현은 추모 공연에서 소해금 연주에 맞춰 가곡 '얼굴'을 부르며 4·3 희생자와 유족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제주도립합창단은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한 후 4·3 평화합창단,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노래하며 4·3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 회복을 바라는 제주도민의 마음을 담아낸다. 행안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4·3 희생자 1만5218명, 유족 12만822명 등 전체 14만3240명이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인정됐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제주 4·3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이자 잊어서는 안 될 비극"이라며 "정부는 앞으로도 희생자들의 신원확인 및 유해봉환 등에 힘써 유가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보듬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공직선거후보자 재심위원회가 지난 1일 양경호(노형동갑)과 김승준(한경면) 제주도의원의 재심을 받아들여 공천배제 결정을 뒤집었다. 두 의원은 앞서 당의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공천에서 제외된 바 있었지만 재심에서 기회를 얻으면서 단수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초 공천배제 결정은 지난달 29일 공관위 회의를 통해 내려졌고, 두 의원은 각각 사기 전과와 폭행 전과가 이유가 되어 부적격자로 분류됐다. 그러나 이번 재심에서 두 의원은 과거 공천 심사에서 이미 공천을 받은 경험이 있어 심사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두 의원은 지난달 31일 재심을 신청했고, 불과 하루 만에 공직선거후보자재심위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중앙당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만약 의결이 이루어지면 김 의원과 양 의원은 단수공천을 확정짓고 지방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반면 폭행 등의 전과로 공천에서 제외된 부지성(구좌.우도면) 예비후보와 탈당 경력으로 감점을 받은 현길자(이도2동을) 예비후보는 재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부 예비후보는 이후 중앙당 공천재심위 산하 공천신문고를 통해 마지막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현 예비후보는 감점이 확정되면 경선에서 -25%의 페널티를 받게 된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경북 문경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주4·3을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달리기를 하면서 모금한 금액을 제주4·3평화재단에 기탁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문경 문창고등학교 2학년 학생·교사 일동이 전날 재단에 기탁금 125만원을 전달했다고 1일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이번 기탁은 문창고의 '제주 공감 달리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4·3 희생자를 추모하고 4·3을 전국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학생과 교사들은 4·3이 발생한 해인 1948년을 뜻하는 1948㎞ 달리기를 목표로 설정하고 3주에 걸쳐 함께 달리며 기부액을 모금했다. 그 결과 120여명이 참여해 총 2100㎞를 달렸으며, 목표액을 넘어선 125만원을 기탁하게 됐다고 한다. 문창고의 이번 프로젝트에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고등학교 독서토론 동아리 학생도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소설 '순이 삼촌'을 함께 읽은 후 독서토론을 하며 4·3의 아픔을 함께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창고 2학년 학년부장인 정지성 교사는 "학생들이 함께 달리며 기부하는 취지에 공감하고, 즐겁게 참여했다"며 "이런 작은 움직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학생들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문철 4·3평화재단 이사장은 "문창고 학생들이 4·3에 관심을 갖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몸으로 실천하며 뜻깊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준 데 깊이 감사드린다"며 "기탁금은 4·3의 기억과 가치 확산을 위해 소중히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의 '여행가는 달' 캠페인과 연계한 2026 대한민국 숙박세일 페스타(봄편) 사업으로 제주 여행 숙박비가 지원된다. 2일 제주도에 따르면 도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 진행하는 이번 봄편 사업에서 제주에 배정된 할인권은 총 2만1430매로, 사업에 참여하는 전국 13개 지방자치단체 전체 물량의 19.8%를 차지한다. 올해는 '연박 할인'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2박 이상 숙박할 경우 숙박비 14만원 이상이면 7만원, 5만원 이상 14만원 미만이면 5만원을 각각 지원한다. 1박의 경우 숙박비가 7만원 이상이면 3만원, 숙박비가 2만원 이상 7만원 미만이면 2만원을 각각 할인해준다. 할인권은 오는 8일 오전 10시부터 7개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선착순으로 발급된다. 발급 후 21시간 이내에 예약과 결제를 완료해야 하며, 입실일 기준 4월 30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 1인 1매 원칙이며, 야영장·대실 상품은 제외된다. 자세한 내용은 공식 누리집(ktostay.visitkorea.or.kr)이나 전용 콜센터(☎1670-3980)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도는 봄편 성과를 토대로 10월 가을편에는 추자도·우도 등 부속 도서지역 전용 할인을 운영해 관광 활성화와 지역 균형 발전을 함께 도모할 계획이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타운홀 미팅 이후 6·3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선거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놓으며 정책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4대 과학기술원 연합캠퍼스 조성, AI 데이터센터 건립, 청정에너지 확대 등 제주 미래 산업 전략을 발표하자 각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추진해온 정책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캠프 선거준비사무소는 31일 “이재명 정부가 민선 8기 제주도정의 미래산업 구상을 국가 차원의 로드맵으로 격상했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 사무소는 “우주, 청정에너지, 바이오, 모빌리티를 축으로 한 제주 4대 핵심 미래산업 육성 로드맵이 확정됐다”며 “그린수소 생태계 조성, 히트펌프 보급, AI 기반 관광서비스 혁신, 과기원 연합캠퍼스 조성 등은 모두 민선 8기 도정이 추진해온 미래산업 전략이 국가 정책으로 채택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 발표는 오영훈 지사와 민선 8기 제주도정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며 “이제 근거 없는 폄훼와 정략적 왜곡을 중단하고 제주 미래를 위한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대림 국회의원(제주시갑)도 같은 날 ‘4대 과학기술원 연합캠퍼스 제주 조성’ 계획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히며 자신의 공약과 연계성을 강조했다. 문 의원은 “당과 정부에 지속적으로 추진을 요청해 온 사업으로, 공약으로 제시한 ‘카이스트 공동캠퍼스 유치’ 계획과 궤를 같이한다”며 “연합캠퍼스 모델은 단순 교육 기능을 넘어 산업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종합적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2026년 에너지 공동대학원 운영을 시작으로 2030년 연합캠퍼스 완성까지 정부와 발맞춰 추진하겠다”며 “청년이 돌아오고 전국 인재가 모이는 제주 산업 생태계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문 의원은 또 ▶5대 제주 특화 융복합 산업 공동연구 ▶카카오 등 기업과 산학협력 AX 연구소 설치 ▶AI 창업 전진기지 구축 등 구체적인 연계 공약도 제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위성곤 국회의원(서귀포시) 역시 과기원 연합캠퍼스와 40MW 규모 AI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을 환영하며 자신의 정책 구상과 연계된 성과라고 강조했다. 위 의원은 “4대 과학기술원 연합캠퍼스 설립과 4000억 원 규모 AI 데이터센터 건립은 국정기획위원회 당시부터 공들여 설계해 온 제주 미래 전략”이라며 “제주형 카이스트는 지역 인재가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세계적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40MW 규모 데이터센터 건립은 제주를 AI 대전환의 메카로 만드는 핵심 사업”이라며 “과감한 투자가 제주 디지털 산업 지도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 의원은 “이번 발표가 단순한 약속에 그치지 않도록 정부와 함께 단계별 전략을 꼼꼼히 챙기겠다”며 “제주가 대한민국 미래 산업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0일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주대와 카이스트 공동대학원 운영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4대 과학기술원이 참여하는 연합캠퍼스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이탈리아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영화 ‘장미의 이름’. 이 영화의 이탈리아어 원작 제목은 ‘Il Nome de la Rosa(장미의 이름)’이고 영어 제목은 ‘The Name of the Rose(장미의 이름)’이다. 대개 몇 차례 번역을 거치다보면 각 언어권 사정에 맞게 제목이 변주되는 게 다반사인데 장미의 이름만은 초지일관 장미의 이름이다. 그만큼 영화 ‘장미의 이름’은 이 제목이 아니라면 작품을 설명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원작소설이나 영화에 장미는 한 송이도 등장하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란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 소설의 제목을 굳이 장미의 이름이라고 붙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작품 의도를 이미 모두 설명하고 있다. ‘장미’는 모든 꽃 중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대표적인 꽃이다. 그렇다보니 모든 것에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장미에 저마다의 의미를 담아 주고받는다. 사랑, 헌신, 명예, 존경, 열정, 순결, 감사, 성모 마리아, 기쁨, 낙원, 아름다움, 순간성. 기쁨과 덧없음이 동시에 있는 상징 등등…. 중세 상징체
봄과 함께 꽃 소식이 전해오지만, 취업전선은 냉랭하다.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를 방불케 한다. 미국발 관세폭탄에 중동전쟁 격화로 ‘오일 쇼크’까지 우려돼 취업난은 가중될 전망이다. 청년고용 지표는 악화일로다. 2월 고용통계를 보면 전체 취업자가 23만4000명 늘어난 반면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되레 14만6000명 줄었다. 청년층 실업률은 7.7%로 코로나19 팬데믹이 고용시장을 강타한 2021년 2월(10.1%)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다. 청년 실업자가 28만6000명,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쉬었음’ 청년이 48만5000명이다. 실업자와 그냥 쉬는 경우를 합친 사실상 실업 상태인 청년은 77만1000명에 이른다. 청년 취업자 감소폭은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 감소폭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1년 새 15~29세 인구는 803만5000명에서 787만7000명으로 1.96% 줄었다. 반면 청년 취업자는 355만7000명에서 341만1000명으로 4.1% 감소했다. 청년 취업자 감소율이 인구 감소율의 두배를 웃돈다. 청년층 일자리 감소 요인은 복합적이다. ‘고용 저수지’ 역할을 해온 제조업과 건설
영화 ‘장미의 이름’은 ‘광적인 믿음의 질서’에 대항하는 ‘합리적 실증주의’의 도전을 담아낸다. 한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히 모두가 공포에 질린다. 믿음에 충실한 수도원 수도사들은 성경 요한묵시록이 예언한 종말이 다가왔다며 패닉 상태에 빠진다. 교황청은 이 두려움을 잠재워야만 한다. 교황청은 ‘바커스빌의 윌리엄(William of Bakersville)’이라는 이름의 수사修士를 ‘특별수사관’으로 임명해 문제의 수도원으로 파견한다. 윌리엄 수사는 교황청에서도 인정하는 최고의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인재다. 가끔은 성경도 합리적으로 해석해서 이단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던 인물이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보니 교황청에서도 교회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명석함’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원작자 움베르토 에코의 ‘작명 유희’가 흥미롭다. ‘바커스빌’이라는 이름은 명탐정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의 탐정소설 「바커스빌의 개(The Hound of Bakersvilles)」에서 따오고 윌리엄이라는 이름은 13세기(영화의 배경과 동시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했던 실증주의자 ‘윌리엄 오캄(William O
중동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의 대치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폭격과 이란의 주변국 에너지시설 보복공격으로 치달았다. 석유 인프라는 파괴하지 않는 금지선(레드라인)이 깨지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까지 치솟았다. 중동전쟁 격화 소식에 19일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9원 급등한 150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올랐던 주가도 급락했다. 이날 환율은 낮 거래 종가 기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0일 이후 17년만의 최고치다. 그만큼 고환율ㆍ고물가(유가)ㆍ고금리의 ‘3고高’ 파고가 거세졌다. 경제 및 외교안보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특히 석유ㆍ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자원 공급망은 불안정(Unstable)ㆍ불확실(Uncertain)ㆍ예측 불가(Unpredictable)의 ‘3U’ 상태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언과 달리 중동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장기전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석유 의존도, 특히 중동산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선 고유가 충격이 길어질 것이란 걱정이 더 커졌다. 전쟁이 3~4개월 지속되면 국제유가는 120달러를 웃돌고, 6개월까지 길어지면 150달러를 넘어서리란 관측이
1994년 12월 초의 일이다.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에서 주재기자 신분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 시절 사무실에 묘한 편지가 배송됐다. 수신인만 적혀 있을 뿐 발송인 이름은 없었다. 내용은 현직 신구범 지사를 겨냥한 제보였다. 그해 구좌읍 이장단협의회의 동남아 여행이 시빗거리였다. “현직 신 지사가 이장단협의회 회장인 신모 이장에게 일화 30만엔을 줘 선거를 앞두고 그를 매수했다”는 내용의 제보가 투서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한 곳만이 아니라 여러 언론사로 그런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다. 그 다음해 첫 민선 1기 6·27지방선거가 예고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확인을 했지만 신 지사 측의 답변은 “이장단이 해외시찰을 한다고 할아버지 뻘 친족인 신 이장이 도와달라기에 공금을 지원할 순 없어서 과거 일본 방문 중 친족회에서 ‘활동비나 보태라’며 받은 일본 돈을 개인적으로 드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예산엔 도지사의 ‘재량사업비’가 있었지만 그는 예산을 쓰지 않았다. 스스로 사비로 처리했다. 그것도 나중 예기치 않던 구좌읍 관내 교통사고로 여행일정이 취소되자 보탰던 여행경비는 돌려받았다. 더 사안을 확인해보니 그 익명의 투서는 언론사만이 아니라 검찰, 경찰, 행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5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계엄이 선포됐다. 계엄과 쿠테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대한민국의 과거도 아니고, 그것도 45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인데도 다시 등장한 것부터 이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했다. 그런데 그 계엄은 당일 밤 10시23분 선포돼 다음날 새벽 1시1분에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해제 의결됐다. 2시간 38분만에 무효가 된 계엄령이었다. 이건 이상하다기 보단 좀 놀랍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함의 연속이다. 계엄이 무효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불려 다녔지만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그동안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란몰이’라며 야당(이제는 야당이 아니다)과 국민 대다수를 오히려 겁박했다. 일부 기독교와 극우 세력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대통령직 파면결정이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집회현장엔 태극기·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휘날린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탄핵반대’를 외치며 그렇게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제주 정치권이 또다시 4·3 앞으로 몰려가고 있다. 4·3은 제주 공동체가 함께 기억하고 함께 아파해야 할 역사다. 그런데 선거만 다가오면 이 역사는 어김없이 정치의 한복판으로 소환된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제78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다음달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다. 추념식 자체가 대규모 공적 공간이 되면서 정치권의 시선이 더욱 집중되는 구조다. 더 민감한 대목은 올해 4·3이 단순한 추모의 영역을 넘어 다시 선거 프레임의 중심에 놓이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주요 주자들은 하나같이 4·3의 의미를 말하고, 해결 의지를 강조하고, 자신이야말로 4·3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말만 놓고 보면 모두가 옳다. 문제는 그 말들이 쏟아지는 시점과 방식이다. 추념의 언어가 선거의 언어와 겹치는 순간, 4·3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수단으로 변하기 쉽다. 오영훈 지사는 현직 프리미엄 위에 4·3 관련 입법과 도정 성과를 함께 얹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만들고 있다. 2022년 도지사 선거 때도 그는 자신이 4·3특별법 개정에 역할을 했고, 추가 진상규명과 정명(正名), 보완 입법, 배·보상 사각지대 해
담쟁이가 뒤덮인 돌벽 한쪽이 덩그러니 서 있다. 초록색 방수포가 뒤덮은 객석 바닥은 이미 원형을 잃었고, 공연을 품던 무대는 무너진 채 흉터처럼 갈라진 흔적만 남았다. 한때는 웃음과 박수로 가득했던 자리에 이제는 공사 차량 자국과 철거 상흔만이 흩어져 있다. 오래도록 서귀포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제 잔해와 철거의 상처로만 존재한다. 청춘의 기억을 간직한 무대, 가족과 함께한 영화 관람, 동네 아이들이 뛰놀던 객석의 풍경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건축물과 그것을 지켜보는 허탈한 눈빛뿐이다. 현장을 찾은 건축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라면 보강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무대를 배경으로 보낸 낭만의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벽체를 손으로 짚으며 "아직 숨 쉬는 건물인데 왜 이렇게 급히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0일 오후 이중섭 거리를 찾은 어린이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발걸음을 멈췄다. 회색빛 공사판 가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무너진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른 이는 "관광지에 왔더니 왜 철거 현장만 남았느냐"며 의아해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전국은 요동쳤다. 17개 시·도가 일제히 비상 체제로 흔들렸다.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던 그 때 제주에서는 도청 본관 출입문이 닫혔다. 밤 11시 17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13분까지다. 이 조치가 단순한 '출입문 통제'였는지, 아니면 '청사 폐쇄'였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며 제주도정은 곧바로 '불법 계엄 동조' 의혹에 휘말렸다. 논란의 중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부재'가 있었다. 오 지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그날 저녁 저는 제주에 없었다. 서울에서 기업인들과 면담을 마친 뒤 오산에서 식사를 했고, 오후 9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고 말했다. 이후 자택으로 이동해 비서실장과 특보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새벽 1시 30분 도청 회의를 소집해 "군·경은 상부 지시가 있더라도 따르지 말라"는 불복 지침을 명확히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단의 질문은 한 가지로 모였다. "
이쯤되면 거의 여론조작이라 말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세우자는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다. 연이어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수치가 오히려 도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도와 도의회, 정당과 연구기관, 나아가 언론사까지 앞다퉈 민심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이고 질문은 자의적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나온 조사조차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니 도민의 눈에는 이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맞춘 각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발표된 제주연구원 조사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찬성 46.3%, 반대 34.9%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찬성 응답자의 63%는 내년 민선 9기 출범과 동시에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공개한 여론조사는 정반대였다. 도당 조사에서는 3개 구역안 반대가 43.1%, 찬성이 35.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도의회는 다시 별도의 여론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는 1500명을 대상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 인지도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 인지도 ▲선호 구역(
거지닭이라는 의미의 ‘규화자계(叫化子鷄)’는 강소 상숙(常熟)의 유명한 요리다. 특수한 가마에 넣어 굽는 방식과 독특한 풍미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대체적인 요리법은 이렇다 : 크고 살진 암탉을 골라 내장을 빼내고 털을 말끔히 뽑은 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닭의 배안에 여러 가지 원료를 넣는다. 신선한 고기, 생새우살, 소시지, 표고버섯, 닭내장, 정향 등의 원료와 파, 생강, 소금, 간장 등의 양념을 버무려 채워 넣는다. 돼지기름으로 닭을 한 겹 싸고 다시 연잎으로 싼 후 밖에 황토 진흙을 바른다. 숯불 위에 올려놓고 약 4시간에서 6시간을 불에 구운 후 진흙껍질을 벗겨내면 된다. 그렇게 요리한 닭은 바삭바삭하고 부드러워 입에 맞는다. 특별히 맑고 향기로우며 맛도 유별나다. 상주 우산(虞山)진의 셀 수도 없이 많은 음식점에서 규화자계를 요리해 판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명성을 듣고 끊임없이 모여든다 청대 광서 8년(1882)에 문을 연 우산 산경원(山景園) 찻집이 처음 규화자계를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벌써 백년이 넘었다. 이처럼 맛있고 좋은 미식이 어떻게 ‘규화자’ 즉 ‘거지’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닭을 가마에 넣어 굽는 요리 방법은 명대 상숙 우산 기슭의 거지가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 거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 해 한 해 해가 바뀔 때마다 그 거지는 상숙의 한 마을에 있는 성황묘에서 머물렀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지만 시절이 구걸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때인지라 마을에 내려가 걸식하지 못했다. 깊은 시름에 빠진 그가 문을 나서는데 마침 중년부인이 갓 잡은 암탉을 들고 마을 옆 개울가로 가고 있었다. 그녀가 개울에 도착하자 뒤따라 어린 아이가 개울가로 달려가 쪼그리고 앉아 물장난을 쳤다. 부인은 “아이고, 녀석아. 물에 빠지면 위험해. 집에 가거라!”라고 말했지만 아이가 듣지 않자 암탉을 개울 옆 돌 위에 올려놓고 아이를 마을로 데리고 갔다. 거지가 가만히 보니 기회가 아닌가. 새해맞이에 충분하지 않는가. 거지는 급히 암탉을 들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진흙에 발이 빠져 신발이 벗겨졌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아났다. 산 위로 달아난 후에 가만히 보니 솥도 없고 깡통조차도 없지 않은가. 생닭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멍하니 있다가 발에 묻은 진흙을 보고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거지는 암탉을 소에 넣고 적신 후에 발에 묻은 진흙을 떼어내 빈틈없이 메꾼 후 마른 풀과 가지에 불을 붙여 그 위에 올려놓고 구웠다. 흙덩이가 된 암탉을 꺼내 손에 올려놓자 너무 뜨거워 ‘아야’ 소리와 함께 땅위에 떨어뜨렸다. 암탉이 땅에 떨어지자 쌌던 진흙이 떨어지면서 닭고기 덩어리도 함께 묻어나왔다. 새빨갛고 싱싱하고 야들야들한 닭고기가 되어 있었다. 한 입 물자 입 안 가득 향이 베어 나왔다. 달콤하게, 배부르게 닭고기와 함께 설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혼자이기는 했지만 섣달그믐날 저녁에 온 식구가 모여서 함께 먹는 음식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그런 닭고기 요리 방법이 어떻게 음식점에 알려졌는지는 알 수는 없다. 음식점에서는 좀 더 가공해 많은 식객을 불러 모았다. 가면 갈수록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요리 방법도 발전하였다. 조미료 등도 가미되면서 맛에 풍미를 더해갔지만 진흙을 발라 숯불에 굽는 기본 방법은 여전했다. 민간 전통 맛을 지닌 미식이 되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음식을 불에 익혀 먹는 것이 날것으로 먹는 것보다 영양이 있고 맛도 좋으며, 불을 가지고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고 어둠을 밝힐 수도 있었으며, 불을 만들고 불씨를 보존하는 것 등등 모두 문명사회로 진입했다는 지표의 하나로 보고 있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 숯불 위에 놓고 구운 ‘규화자계’는 맛있는 요리로 사람을 불러 모을 뿐 아니라 애초의 순수함과 순박함으로 돌아간다는 ‘반박귀진(返璞歸眞)’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의 옛일을 회상하고 잊지 않는 순수한 미학관념이다. ‘규화자계’의 음식 풍속 습관은 물질과 정신이 유기적으로 융합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유명무실하게 될 뿐이다. 사람들이 특별히 호감을 갖지도 않게 될 것이며 민속 전통의 계승 발전이라는 생명력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가미(百家米) 인류의 가장 원시적인 제사에서 인류에게 필수적인 식품을 가지고 귀신에게 올리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오곡, 가축을 삼가 바치고 사람머리 내지 친생아들까지 헌제하기도 하였다.(‘맹(孟)’자의 갑골문을 보면 아들을 삶아 신을 공경하는 풍속의 유습을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신앙 습속, 의례 습속이면서 음식 습속 범주에도 속한다. 사람들은 귀신을 인격화 했기에 인류의 문화 유형에 근거하여 자신의 음식 습속을 귀신에게 억지로 갖다 붙였다. 거지는 걸식하며 배를 채우는 것을 근본으로, 많은 집에서 지은 밥인 ‘백가반(百家飯)’을 먹는 것으로 삶을 유지하였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백가반’으로 재앙을 쫓아버리고 병을 떨쳐 버리는 방법을 창출해내어 하나의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호박안(胡朴安)이 편찬한 『중화전국풍속지』 하권에 강소성 ‘숭명(崇明)의 쥐 미신’이 기록돼 있다. “숭명 사람의 쥐에 대한 미신은 세 가지다. 첫째, 쥐는 돈을 센다. ……둘째, 쥐는 허망하게 만든다. 쥐가 밖에서 먹을 것을 찾을 때 가끔 실족해 땅에 떨어진다. 미신을 믿는 부녀자는 그것을 보면 불길하다고 생각하였다. 질병이 생기지 않으면 다른 재앙이 닥친다고 믿었고 반드시 액막이를 하여야한다고 믿었다. 액막이 방법은 이렇다. 땅에 떨어진 쥐를 본 사람은 몸소 시골로 내려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쌀을 구걸하여야 한다. ‘백가미(百家米)’이다. 빌려 온 쌀로 밥을 해 먹어야 재앙이나 불길한 일을 막을 수 있다. 부잣집 부녀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거지로 분장해 쌀을 구걸하여야 했으니 실로 우스꽝스럽지 아니한가. 셋째, 쥐는 물건을 떼어 먹는다.” 평소에 사람들은 거지를 천하며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그런데 일이 생기면 자기를 낮추어 거지를 본떠 구걸하였다. 인격을 스스로 낮추어 재앙을 쫓아내고 의혹을 해결하였다. 실로 우매한 행위를 하면서 스스로 마음의 균형을 찾았다. 거지는 쥐 때문에 고뇌하지도 않고 함부로 이것저것 의심하지도 않는다. 아무 것도 없는 처지가 됐기에 길거리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뿐이었다. 한 끼를 해결하려고 이곳저곳으로 헤매 다닐 뿐이었다. 무슨 다른 걱정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거지보다 근심이 많고 욕심이 많을 따름이다. 사람들은 그저 잠시 거지 행세해서 우환을 해결하고 무사안녕을 바랐다. 이런 심리상태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사실 그렇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저 정신적 효과일 뿐이다. 거지를 모방해 백가미를 구걸하고 재앙을 쫓아내는 풍속은 여러 지역에 존재한다.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호남 평향(萍鄕) 사람들은 우환이 생기면 쇠를 가지고 상처를 내거나 피부가 붓고 짓무를 때까지 때리기는 경우도 있었다. 피부병과 같은 질환이 생기고 오랫동안 치유가 안 되면 친지나 친구를 초대해 바구니를 들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쌀을 구걸했다. 빈부 차이가 있기에 많으면 10할, 적으면 한 접시 등 일정하지 않았다. 선향 약간을 들고 갔다. 그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여러 날을 구걸하면 서너 단이나 열 단 정도의 쌀을 얻을 수 있었다. 그중 절반이나 태반을 갈아 가루로 만들고 탕위안을 만들어 반숙한 후 대나무 그릇에 담았다. 건장한 남자 몇 명을 선발하여 지붕에 올라가서 사방으로 내던지면 부근 남녀들이 모여들어 앞 다투어 주웠다. ‘창천재(搶天齋)’라 한다. 다 뿌리면 모였던 사람들이 와아 소리 지르며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병을 쫓아낼 수 있다고 전해온다. ‘창천재’ 때에 몸이 피곤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탕위안 10개 이상을 줍지 못하면 오히려 병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여야 했다. ‘타천재(打天齋)’라 한다. 이처럼 거지를 흉내 내어 ‘백가미’를 구걸하고 다시 사람들에게 뿌리는 것은, 직접적으로 귀신을 공경하여 제사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낮추는 방식으로 대중에게 도움을 청하여 재앙이나 병환을 해결하고 발산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백가미’를 구걸해 먹으면서 쥐의 재앙을 쫓아내는 거나 ‘창천재’나, 모두 우매한 변태 음식 습속 형태다. 거지라는 비정상적인 문화에서 파생된 문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둠의 무공, 마타도어 무공이 드디어 등장했어. 선거비무에선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 근데, 문장이 살아 있어.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아. 도대체 누구지? 제주무림에 이 정도 문장을 쓸 무사는 흔치 않은데 말이야.” 괴문자를 들여다보며 혼잣말하던 호검이 무릎을 쳤다. 무림플랫폼 애독자, 한평생 소설무공만을 수련한 콘치스검이 생각나서였다. 괴문자 문장을 한 자 한 자, 분해한 후 재조립하면서 그 속에 담긴 스토리텔링 기법도 찾아낼 수 있는 무사였다. 호검은 톡을 보내 긴급회동을 요청했다. 한식경이 지난 후였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에 2000원인 저비용 커피집에서 호검과 콘치스검이 마주 앉았다. 호검이 물었다. “문장이 예사롭지 않아.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고, 호소력도 짙어.” 한참 동안 괴문자를 들여다본 콘치스검이 말했다. “선거 선수무사군. 잘 봐. ‘영훈공은 사과해야 합니다.’라는 문장만 6번을 썼어. 전형적인 동어 반복 초식이야. 시(詩)무공에선 자주 쓰이지. 반복을 통해 운율을 만들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초식 말이야.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 듣는 상대무사는 세뇌될 수 있거든.” “그렇네. 수만에서 수십만 무사에게 보내는 문자비용을 감안 하면 단 한 자라도 줄이려고 할 텐데 말이야.” 콘치스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그렇고보니 순번에 그냥 번호를 적지 않고 대괄호를 쓰고 띄어쓰기까지 했어. 가독성을 최대한 고려한 초식이야. 근데, 대괄호는 자주 애용되는 문장부호가 아니잖아? 강조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절로 모르게 나온 습관일까?” 호검은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을 씹으며 물었다. “소설무공에선 한 문장 초식만 봐도 금세 알잖아. 어떤 무사가 썼는지 말이야?” “그렇지, 글씨체만 무사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문장에도 무사의 지문처럼 짙게 배겨 나오지. 문장 하나만 읽어도 버릇, 실수, 왁꾸(틀), 스타일, 철학 등을 한방에 알 수 있어. 조정래공과 황석영공, 이문열공, 요새 뜨는 김기태주니어검의 문장을 비교해 봐. 단박에 알 수 있지.” 호검과 콘치스검은 괴문자 읽기에 몰두했다. 100번을 읽으면 단서가 보일 수 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리필한 후였다. “찾았다!” 호검이 외쳤다. “뭔데?” 콘치스검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호검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 것이었다. “[5] 불통과 혼란으로 점철된 섬식 정류장, 오영훈 도지사는 사과해야 합니다. 여기에 뭔가 이상한 게 안 보이나?” “맞아! ‘점철된’ 이 단어는 70·80년대생들은 좀처럼 쓰지 않는 단어야. 아직은 아기무사인 90년대생은 아닐 것이고, 은퇴를 앞둔 50년대생 무사들도 아닐 것이야. 그렇다면 괴문자 작성무사는 60년대생이 분명하군.” “원숭이 무사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지. 전체 문장은 쉽고 담백하고 호소력 짙게 쓰다가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어. ‘점철된’ 단어 말이야. 근데 ‘점철된’은 무슨 뜻이지?” “내가 단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를 어떻게 알겠어. 네이버 사전 검색해 봐.” ▶점철(點綴)된=(일이나 사건 따위가 무엇으로) 서로 이어진 디저트로 치즈케익 하나를 먹어치운 콘치스검이 말했다. “요새 캠프에서 나오는 보도자료를 보면 너무 올드해. 아무리 촌무림이지만 너무 한다고 싶었지. 새로운 무사가 혜성같이 등장한 거야. 어느 캠프에서 영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캠프 공보무사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을 거야. 앞차기만 할 수 있는 무사들이거든. 공중제비차기, 다방향차기까지 가능한 새로운 공보무사가 등장한 거야.” 호검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잠시 명상에 잠겼다. 오랜만에 만난 의문의 무사, 무공도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고수는 고수를 한 눈에 알아본다. 간절하게 대련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고수와의 대련이 언제였던가. 하수들과의 대련으론 몸풀기도 못 했다. 호검이 비장하게 말했다. “나 몹시도 궁금해. 어떤 무사인지 우리 추적 한 번 볼까? 연령대는 60년대생으로 좁혀졌어. 무림검색엔진으로 찾아보면 어디엔가 분명히 있을 거야. 이 정도 문장내공이면 곳곳에 뿌려 놓았을지도 모르지. 500자 정도 분량만 있어도 단숨에 알 수 있어. ” 한참을 눈만 껌벅이던 콘치스검이 나직이 읊조렸다. “웬지 문장이 낯이 익어. 어디선가 분명히 읽었던 적이 있는 것 같아. 그때도 몹시도 궁금했지. 제주무림에도 이런 문장무사가 있었구나 하고 감탄했었지. 그때 그 문장이 뭐였더라. 도무지 생각이 안 나네.” 호검이 말했다. “내일 이어지는 연재에는 셜록 홈즈 출신 기철검이 출연해. 국민의힘 제주도방 맹주지. 프로파일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총 하나는 잘 쏘아. 근데 직접 물어보기도 민망하고 말이야. 상도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
제주도의 왜구 침략 일찍이 제주도는 일본과 중국, 한반도를 잇는 무역로 중간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왜구들의 중요한 약탈 대상 지역이 되었다. 바다의 해적활동에 필요한 물과 식량, 땔감 공급지로 중국이나 대만 베트남을 가려면 제주도는 중요한 지점으로 왜구들이 노리는 지정학적 거점이 된다. 추자도에 왜구가 처음 침략한 것은 고려 충숙왕 10년(1323)이다. 회원(會原)의 조운선을 군산도(群山島:현 고군산 군도)에서 약탈하자 내부부령(內府副令) 송기(宋頎)를 파견하여 왜구를 격퇴시켰다. 또 동년 10월 6일 추자도 등지에서 노략질하고 노약자와 남녀를 잡아갔다.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여 추자도에 사람이 줄어들자 고려 정부는 충정왕 2년(1350)에 추자도 주민들을 제주도 조공포(朝貢浦:도근천) 근처로 이주시켰다. 한편 그로부터 60년 후 조선이 개국 초기인 태종대(1413)에 제주도로 이주한 추자도 주민들의 절반을 추쇄하여 진도로 옮기려는 전라도 관찰사의 진도 목장 계획이 있었다. •추자도 왜구 침략 이후 제주를 침범한 사례를 내용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충혜왕 2년(1341)에 왜구가 정의현에 쳐들어 왔으며, 이듬해에는 무려 700여 척의 배가 내침을 했다. 충정왕 3년(1351)에 왜구가 귀일촌에 침범했다. •또 공민왕 원년(1401)에는 왜구가 우포(友浦:옛 이름이 범질포인 것으로 보아 화순포이다. 우포(벗개)라면 용수리를 말하기도 한다)를 침범하였다. •공민왕 8년(1359)에는 대촌(제주성안)까지 침범하였다. •우왕 2년(1376)에 왜적 600여 척의 대규모 왜구가 제주 주변을 맴돌다가 제주를 침범하니, 탐라 성주 고신걸(高臣傑)이 왜구와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부상당해서도 끝까지 전의를 잃지 않고는 왜구를 격퇴시켰다. 승전을 접한 고려 정부는 고신걸에게 특별히 정2품 호조전서(戶曹典書)의 벼슬을 내렸다. •우왕 3년(1377) 여름에 왜적이 다시 침입하였는데, 전라수군 도만호(都萬戶) 정룡(鄭龍) 등이 병선 2척으로 정탐하다가 왜선 1척을 포획하여 모두 죽였다. •태종 원년(1401)에 왜구들이 제주 서촌 마을인 곽지촌에 쳐들어가 노략질을 하였다. •태종 4년(1404) 왜구가 고내촌과 명월촌을 침범하였다. •태종 6년(1406) 1월에 왜선 16척이 제주를 노략질하니 제주 병사들이 이를 물리쳤다. 동년 3월에는 왜선 14척이 추자도에 정박하자 전라도수군절제사 구성미(具宬美)가 나아가 싸워 이를 격퇴하였다. 가을 7월에 왜적이 다시 쳐들어와 산남쪽에서부터 돛을 바람에 날리며 대정현 죽도(竹島:차귀도)에 다다랐는데 이때 안무사 이원항(李原恒)과 판관 진준(陳遵) 등이 이들을 맞아 공격하니 왜적들이 바로 물러갔다. •태종 8년(1408)에 왜적이 조공천으로 들어왔다. •태종 18년(1418) 왜적이 우둔(牛屯:구좌읍 행원 어등포 우목장), 우포(牛浦: 한경면 용수리), 차귀 등지를 침범했다. •세종 26년(1444) 왜구들이 제주(濟州)에서 노략질하다가 변방을 지키는 장수(邊將)에게 사로잡히고 나머지 도적은 대마도(對馬島)로 도망쳤다. 세종이 이예(李藝)를 파견하여 대마도주에게 도망쳐 간 나머지 도적들을 잡아서 보내라고 유시하니, 대마도주도 감히 숨기지 못하고 이예가 돌아올 때 도망간 왜구를 데려왔다. • 중종 5년(1522) 왜변으로 추자도 주민 30여 명이 살해되었다. • 중종 31년(1540) 가을 8월 제주 목사 권진(權軫)과 판관 한근(韓瑾)이 왜적이 침입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 죄과가 암행어사 원수장(元壽長)에게 적발되어 둘이 함께 파직되었다. •명종 7년(1552) 여름 5월 왜적과 중국 떠돌이 상인 등의 8척의 배가 표류하다가 정의현 하천리 천미포(川尾浦)에 도착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했다. 이 기록은 아래와 같다. 정의현 천미포 왜란 제주의 대표적인 왜구 침략 사건으로는 천미포 왜란(川尾浦 倭亂)을 들 수 있다. 천미포는 제주어로 지역 주민들은 ‘내끼’나 ‘내깍개’라고 하는데 ‘내(河川) 끝(尾)’에 있는 포구’라는 뜻이다. 또 이곳을 다른 이름으로 구진포(寇進浦)라고도 한다. 즉 ‘왜구를 물리친 포구’라는 뜻이다. 제주의 해안 지형은 아무 곳이나 배를 댈 수 없다. 오래전 어사 김상헌이 제주섬 지형이 날카로운 점을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암초들이 송곳처럼 숨어 있어서 배를 함부로 대었다간 파선의 위험이 커 왜구들은 포구가 있는 곳을 선택하여 상륙한다. 천미포도 외항은 만처럼 돼 있어 큰 파도를 막아주고, 포구는 천미천 하류가 돼 넓은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상륙에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명종 7년(1552) 제주목사 김충렬(金忠烈, 1503~1569)은 정의현(旌義縣) 천미포에 왜구가 침략했다는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남쪽 대양(大洋)으로부터 황당대선(荒唐大船) 2척이 천미포로 상륙하여 주민(浦口民)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하자 정의현감 김인(金仁)이 접전을 벌여 왜구 1인을 생포하였으나 날이 저물고 비가 와서 왜구가 물러가자 진을 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때 하륙(下陸)하여 싸움을 벌인 왜구의 수는 약 70여명, 배 위에 줄지어 선 왜구는 중국인을 포함한 수백 명이었다. 날이 밝자 왜구들은 험하고 단단한 암벽에 의지하여 방패로 앞을 가리고 조총을 쏘아대며 활로 쏘면서 방어를 계속하였다. 왜구들은 아군이 진격하면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와 대적하기를 반복하니 제주의 장졸(將卒)과 말이 모두 피곤하였고, 아군은 병기마저 부족하여 이들을 격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제주목사 김충렬은 수십일 동안 왜구와 싸워 성과를 올렸지만, 일부 왜구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갔고, 다른 왜구는 산 속에 숨어 주민과 군졸들을 사상케 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제주목사 김충렬은 고전(苦戰) 끝에 망고삼부라(望古三夫羅)를 사로잡았으나 나머지 왜구를 진멸(殄滅)하지 못하고 어선을 훔쳐 달아나면서 퇴로를 열어준 책임으로 정의현감 김인과 함께 죄인으로 유배되었다. 체포된 망고삼부라는 성천부(成川府)로 유배를 갔다. 왜란(倭亂)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제주목사 김충렬처럼 병무(兵務)에 어두운 문관(文官)보다는 무관(武官)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무관 출신 이정(李玎)을 제주목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정은 변방의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것이 두려워 부임을 미루다가 결국 왕명과 국법을 어겼다는 죄로 의금부로 압송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죄가 감형되어 절도(絶島)의 군졸로 강등되었다. 다시 후임 제주목사는 무관 출신인 남치근(南致勤, ? ~ 1570)이 임명되었다. 남치근은 기개가 높은 장수로 담력이 크고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다. 남치근은 왜구 격퇴의 공으로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된 무장(武將)이며, 후에 그는 한성부 판윤(判尹)의 요직을 거쳐, 경기·황해·평안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가 되어 1562년 황해도 재령의 해서(海西)에서 난을 일으킨 임꺽정을 효수한 인물이기도 했다. 남치근은 곧바로 제주에 부임하면서 군비(軍備)를 증강하여 왜구의 재침략에 대비하였다. 1554년 5월 왜선 한 척이 천미포에 상륙하자 남치근은 배에서 내린 왜구 10여 명 중 1명을 사살하고 왜구를 격퇴하였다. 1554년 6월에도 다시 제주목사 남치근으로부터 왜인 12급을 참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승정원은 왜구의 침략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염려하여 변방 제주를 지킬 보다 구체적인 계책을 논의하라고 비변사에 지시를 내렸다. 이의 대책중 하나가 유사시 가리포 첨사(僉使)의 신속한 군사 지원이었다. 같은 해 가을 7월에 제주 목사 남치근이 왜적의 배 2척을 포획하여 그 공으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나쁜 일은 연이어 잘 일어난다. 이미 조성된 상황을 바로 해결하지 않을 경우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일이 평소에 대비해 놓지 않으면 마침내 작은 불씨가 번져 큰 불이 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은 늘 마른 대로 번지고 물은 언제나 젖은 대로 흐르는 것이다. 이미 길이 만들어져 흐름이 있어서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고온다습한 기후를 갖는 제주도에서는 어떤 시설이나 구조물, 형상을 나무로 만들 경우, 목재 부분이 쉽게 부식되어 1~2년마다 한 번씩 새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모든 걸 돌로 만들자, 주의였다. 제주도 각 마을 중요한 곳에, 세워지는‘거욱’이나 읍성 취락 입구에 세워졌던 돌하르방 역시 그랬다. 제주도의 대표 캐릭터 돌하르방의 주요 기능은 수호신적 기능, 주술 종교적 기능, 위치 표식 및 금표 기능 등이다.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돌영감, 수문장, 장군석, 동자석, 망주석, 옹중석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완옹중 석상에서 유래했다 해서 옹중석(翁仲石)이라는 이름이 많이 통용되었다. 북촌 돌하르방공원에서 만난 김남흥 돌하르방 장인(1967년생)은 먼저 인문학적 소양 얘기부터 꺼내 들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15년 전 돌하르방에 인생을 걸면서 처음 매달린 일이 돌하르방에 관한 인문학적 탐구였다. 돌하르방이 어떤 연유로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유래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년)에 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 때문에 김남흥 장인은 몇 년간 도서관을 찾아 관련 사료를 발굴하여 탐독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 돌하르방 장인 김남흥 관장은 15년간의 열정과 노력으로 창조한 그의 ‘상상의 나래’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 줬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는 1754년 김몽규 제주 목사가 옹중석을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진시황 때 흉노족 등 북방 이민족을 물리쳤다는 거인 완옹중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죽은 후 진시황이 그의 동상을 아방궁 앞에 세웠다.” “김몽규 목사는 본토 사람으로 막상 제주에 와보니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당시 전염병이 돌아 8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이 상황에서 흩어진 민심을 모아야 했던 김몽규 목사 역시 완옹중이란 인물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의 삶이 든든해지기를 기대하며 관 주도로 옹중석을 만들어 동·서·남 성문 앞에 상징적 문지기를 세웠다. 우석목, 무석목 등으로 불리다가 1971년 제주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돌하르방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제주 목성을 지키던 돌하르방은 우락부락하고 무장을 한 모습으로 키가 크다. 반면 정의현성(서귀포시 성읍리)이나 대정현성(서귀포시 대정읍) 돌하르방은 각각 12기로 제주목 절반에 불과하며 키도 작다. 제주 목사가 주도했고 정의현과 대정현에서 따라 했다. 당시 지역마다 부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돌도 달랐기 때문에 석수들의 표현이 다르게 나타났다. 다만 돌을 가장 적게 깎아내면서 형태를 끌어낸 기법은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고등학교 시절, 당시 월남 참전용사 출신인 미술 선생님이 “돌하르방은 주변 현무암을 가져다가 대강 파놓은 예술적 가치가 별로 없는 싸구려 관광 공예품에 불과하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 때문에 여태껏 내가 '제주 돌하르방을 희화화하고 평가 절하했었구나'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제주의 돌인 검은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그 재질을 잘 살려 입체감을 더하며 조금씩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큰 눈, 자루 같은 코, 다문 입, 넓게 뻗는 귀 등 해학적이면서 인정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벙거지를 눌러쓴 머리는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여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하체는 옷자락으로 발이 보이지 않고, 배 중심에 위아래로 골이 있다. 두 손은 배에 올려놓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돌하르방은 손의 위치에 따라 상징하는 인물이 달라진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문인(文人)을 상징하고, 왼손이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무인(武人)을 상징한다. 오래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모자는 보통 버섯 머리 혹은 벙거지 모양으로 남근 모양과 흡사하다는 주장이 있다. 한때 돌하르방 코를 만지면 남자 아기를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막연한 기대로 혹은 재미 삼아 돌하르방 코를 만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하르방의 코 부분을 부수고 가루 내어 물에 타 마시는 풍습도 있었다. 2007년 작고한 제주도 마지막 석장(石匠) 고 고흥옥 옹은 돌 깨는 일을 하다 독학으로 동자석과 문인석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무덤에 동자석을 세우는 사람들이 줄었고 찾는 사람도 없어지면서 더 이상 동자석을 만들지 않았다. 동자석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 모습을 한 동남(童男), 동녀(童女)의 형상이다. 동자석은 동제석, 동ᄌᆞ석, 동주석, 동제상, 애기동자, 자석 등으로 부른다. 제주 민묘(民墓)는 부등변 사각형의 산 담으로 둘러 있고, 그 속에 둥근 봉분이 있으며 묘주(墓主)의 시중꾼이라 할 수 있는 아담한 동자석이 쌍으로 마주 서 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작고 귀여운 동자석은 제주의 대표적 석상이다. 무덤을 지키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를 지닌 제주 동자석은 현무암이나 화산암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 동자석과 다르다. 제주 동자석은 손에 홀, 부채, 문자, 수저, 붓, 칼, 술병, 술잔, 부채, 뱀, 새, 음양의 성기 등 다양한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다이아몬드형, 타원형 등 기하학적 무늬도 있다. 2024년 고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제주 동자석과 문인석 55점이 국립제주박물관 옥외정원에서 선보였다. 이 동자석과 문인석은 2021년 4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2만1000여 점 작품 가운데 일부다. 2006년 제주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돌 문화를 집대성한 제주 돌문화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제주 지역 최초의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지금도 여전히 조성 중이다. 제주 돌문화공원은 곶자왈 지대에 있는 326만9731㎡(100만 평) 부지에 야외 전시장뿐만 아니라 제주 돌 박물관, 설문대할망 전시관, 오백장군갤러리 등의 다양한 실내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외 전시장을 제외하고 실내 전시실만 합쳐도 4만2900㎡에 달하는 전시시설이 들어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공간 3만7719㎡를 넘어서는 규모다.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돌 문화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돌 문화공원 야외 전시장에는 48기 돌하르방, 사악한 기운과 액운을 몰아낸다는 방사탑, 제주의 상징인 정주석, 무덤 주위에 세워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는 동자석 등이 망라돼 있어 제주의 풍성한 돌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