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9 (목)

  • 맑음동두천 7.9℃
  • 맑음강릉 10.6℃
  • 맑음서울 8.0℃
  • 맑음대전 8.5℃
  • 맑음대구 11.4℃
  • 맑음울산 13.0℃
  • 맑음광주 11.0℃
  • 맑음부산 11.6℃
  • 맑음고창 8.0℃
  • 흐림제주 9.3℃
  • 맑음강화 3.8℃
  • 맑음보은 8.2℃
  • 맑음금산 8.6℃
  • 맑음강진군 10.6℃
  • 맑음경주시 11.7℃
  • 맑음거제 10.6℃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강정태의 [퓨전제주무림(武林) 시즌 2] (3) ‘투톱(?)’ 무림역전 스토리

무협소설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연재했던 무협소설의 시즌 2입니다. 무협은 무술(武)로 협(俠, 의기로울)을 이룹니다. 창작인 소설이 더해져 무협소설이 됐습니다. 퓨전무협 소설입니다. 무협의 묘미는 살리기 위해 일상적인 무협용어는 사용했지만, 해석이 힘든 용어는 현대어로 풀어썼습니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왔습니다. 이름을 차용 당한 인물들은 제주에서 ‘공인’입니다. 공인다운 아량으로 소설인 점을 이해 부탁합니다. 무협소설 주인공들이 매번 외치는 기합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갈(喝)∼” [편집자 주]

 

영훈공의 시간은 빠르게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커다란 달력이 보이는 순간 멈칫했다. 1968년 12월이었다. 양팔과 양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갈(喝)∼ 하고 외치고 싶었지만, ‘응앵!’ 소리밖엔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생시(生時)인가, 꿈인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포근해졌다. 영화를 보듯 마음 느긋하게 관람하기로 했다. 영상이 100배속으로 흐른 후였다.

 

◆총학 주니어맹주 등극 비하인드 스토리

 

초등 수련생 시절이 보였다. 집에서 왕복 6km에 달하는 흥산초등수련장을 걸어 다니며 축지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수련장에서 돌아오면 농사무공도 익혔다. 지금 같으면 아동수련생 학대였다. 하지만, 그 시절 시골무림에선 다들 그랬다.

 

남원중·서귀포고무림을 거쳐 제주대무림에 입학했다. 그의 첫 수련장은 한라산 교지편집위원회. 당시 학생무림 최대 쪽수(인원수)를 자랑했던 NL(민족해방) 계파에 신진 이론을 수혈하는 전위(前衛)조직이었다. 운동무림 엘리트 코스에서 출발했던 것이었다. 다시 100배속. 무림 1993년. 자타공인 제주학생무림 총학 주니어맹주로 등극하고 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기억났다. 총학캠프에선 기환 수련생(현 민주노총 제주방주)을 비무 후보로 내세울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환 수련생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반대 시위를 벌이다 갑작스레 포졸에게 붙잡히고 만다. 캠프에선 급히 다른 후보를 찾았고, 간택된 것이었다. 단독 후보여서 찬반 비무로 진행됐고, 학생 무림인 선택을 받았다. 무림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다. 정치무림 한길만을 걷게 된 운명의 서막이었다.

 

대학무림을 졸업한 직후인 무림 1994년 3월, 도자무공을 연마하는 선희낭자와 혼인하고 있었다. “내 나이 만 25세였어.” 영훈공은 흐뭇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선희 낭자와는 CC(캠퍼스 커플)였다. 더 좁히면 운동무림 동아리 커플. 신념과 이론을 격렬하게 공감한 동지가 혼연일체가 된 최고 수준의 관계. 동지와의 연애가 최종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속도위반설이 난무했지만, 묵언초식으로 대응했었다. 그 시절엔 다들 그랬다. 영훈공은 영상을 잠시 멈추고 채널을 돌렸다. 선희 낭자 특집프로였다.

 

◆선희 낭자는 누구인가?

 

제주대무림 88학번. 제주무림 도예무공 1세대로 꼽힌다. 도예무공 수련을 시작하면서 본인과 약조했다. ‘1일 1그릇(1표)’ 빚기, 신혼 초엔 갓난아이의 요람을 흔들며 물레를 돌려 그릇(표)을 빚었다.

 

한때는 내조의 여왕이라고도 불렸다. 지금도 회자된다. ‘선(先) 선희 낭자, 후(後) 영훈공’. 영훈공이 비무장에 도착하기 전엔 어김없이 선희 낭자가 있었다. 미리 도착해 분위기를 돋우는 방식으로 유권자 무림인에게 어필한 것이었다.

 

이후 은유의 달인, 명언 제조무사로 불리며 영훈공 정치 동반자급으로 올라섰다는 평도 있다. 무림 2023년 2월 월간리뷰무림에서의 인터뷰.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고도의 언어무공 진수를 선보이며 증명했다.

 

“도자기(도백) 하나가 나오기까지 깨질 수 있는 요인은 수백 가지다. 그걸 다 통과하고 1000도가 넘는 불(마타도어)을 견디는 작품(무사)만이 살아남아 결과물(당선)을 낸다! 그게 도예(정치무림)의 세계다!”

 

무림 2025년 11월 18일이었다. 영훈공이 석열 전 지존 계엄무공을 펼칠 당시 자택수련을 했다며 정적들에게 협공받을 당시였다. 자신의 SNS에 어록을 남겼다.

 

“도예무공인만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 운명은 불이 굽는다는 것을…. 흔들리고 깨져도 나는 그 길을 간다. 그이(영훈공)도 그러하리라.”

 

무림 2025년 12월 29일 그의 SNS에 때아닌 갈(喝)∼ 기합이 울려 퍼졌다.

 

”어디에서든 흙과 이쑤시개만 있으면 그 무엇(재명지존 라인)이든 만들어 낼 수 있게 됐어!“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도예무공 득도의 경지에 올라섰다는 자신감이었다. 영훈공은 선희 낭자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며 화답했다.

 

◆‘와신상버섯’ 대반전 드라마

 

영훈공이 다시 채널을 고정시켰다. 중원무림 민주화를 이끈 근태거사 라인이었던 20대 후반 모습이 보였다. 새정치국민회의방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사회 무림에 뛰어든 것이었다. 직책은 근태거사 특별보좌무사. 낭만적인 학생무림이 아니었다. 비정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될지 모르는 실전 무림이었다. 병법서를 손에 놓지 않으며 조금씩 공력을 높이고 있었다. 너덜거리는 병법서를 빨래집게로 집으며 표 계산을 했다. 출전 가능할 정도로 표가 쌓여 있었다.

 

무림 2002년. 제주도의회 무림비무에 새천년민주방 무사로 첫 출전했다. 실전은 높디높은 벽이었다. 한나라방 석현검에 밀려 패배했다. 하지만 4회와 5회 비무에선 연달아 승리. 2선 도의회무림 의원이 됐다.

 

무림 2012년 도의회무림 의원직을 전격 사퇴하곤 첫 승부수를 던졌다. 중원무림 의원 경선에 나선 것이다. 상대는 중원무림 2선 의원 우남거사였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패배했다. 졸지에 백수가 된 것이었다. 곧바로 낙향했다. 아버지 버섯 농장에서 일을 하며 값비싼 웅담 대신 갓 딴 표고버섯을 날것으로 씹으며 검을 갈았다. 표고버섯으로 단련한 ‘와신상버섯’이었다.

 

무림 2016년에 치러진 총선무림 경선에서 ‘국회 무림의 꽃’이 된 3선 우남거사와 다시 만났다. 표고버섯이 공력을 급상승시켰던 덕분이었을까. 우남거사를 누르는 대반전 드라마를 썼다. 여세를 몰아 본선에서도 승리했다. 이후 2선 중원무림의원이 되어 있었다. 무림 2020년 낙연거사 라인을 부여잡았다. 수석비서 수하까지 맡으며 중원무림에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뿔싸.

 

낙연거사가 대권 경선비무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대권무림 경선 후보였던 재명거사 라인으로 전격 스카우트됐다.

 

◆‘현타의 아침’ 영훈공 기합의 의미는

 

희룡공이 변방의 용이 아닌, 중원의 용이 되고 싶다며 제주맹주직을 사퇴한 후 대망의 무림 2022년 시점이었다. 두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중원무림 의원 전격 사퇴. 경선비무에서 대림검과 붙어 승리했다. 53.13%. 격차는 6.28%. 본선은 너무나 쉬웠다. 무림여론조사 지지율이 워낙 높았다. 뜨끈뜨끈한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를 후후 불어 마시며 여유롭게 유세차를 타고 카퍼레이드를 벌일 정도였다. 55.14%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때였다. 영훈공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묘시(卯時)였다. ‘현타의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은 현실 자각 타임. 잠을 잘 때도 손에 쥐고 자는 스마트폰을 켰다. 요새 들어선 하루에 2~3번도 SNS에 쓰곤 했다. 음성모드로 전환한 뒤 짧고 강렬한 기합을 질렀다.

 

갈(喝)∼.

 

같은 시각 밤을 지새우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호검이 영훈공 SNS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맹주의 고뇌가 한없이 응축된 문장, 갈(喝)~. 고수는 단숨에 안다. 단 한 자 안에 고농축된 수십 년 무림사가 읽혔다. 호검이 이해 가득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했다.

 

“영훈공이 잡은 중원무림 라인은 누구인가?” 몹시도 궁금했다. 호검은 급히 정가의보검에게 카톡을 보냈다. ‘전가의 보도’를 살짝 비튼 이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검이란 뜻을 담고 있었다. 오랫동안 중원무림 책사로 활약하다 낙향해 한라산 중턱에서 은둔 중인 무사였다. 정가의보검은 기다렸다는 듯 초스피드로 답변을 보냈다.

 

“으하하!! 영훈공은 무림 2026년 2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모처에서 서울시맹주 출격 예정 무사와 밀실 회동할 예정이다. 재명지존이 공들여 키우는 최애(最愛) 무사 원오 성동구방주다. 제주무림 판을 뒤흔들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
 

 

 


추천 반대
추천
1명
100%
반대
0명
0%

총 1명 참여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