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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4) 동냥을 기쁨으로 삼은 부옹(富翁)

한자어 ‘걸개(乞丐)’의 여러 명칭을 보면 거지의 본래 뜻은, 재물을 동냥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극빈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동냥하는 사람이 극빈자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 부자도 기꺼이 빌어먹었다. 예를 하나 들면 이렇다.

 

청나라 때에 상해(上海) 가정(嘉定)현 남쪽에 유명한 사찰 명칭에 따라 이름 붙여진 남상진(南翔鎭)이 있었다. 진의 동쪽에 큰 부자라고는 할 수 없어도 넉넉한 토지와 부동산을 가진, 그리 부족함이 없는 중산층 가정이 있었다. 자식과 며느리도 있어 생활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홀연히 집을 떠나 거지가 되었다.

 

집안사람들이 그를 강제로 집에 끌고 가서 애걸복걸하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그의 족제의 집안도 부유하여 그에게 100묘(畝)의 전지를 주겠다고 하였다. 그가 가진 전지도 2경(頃, 약 2만여 평)이 넘으니 100묘를 더한다면 의식주에 걱정이 없었지만 그는 한사코 응하지 않았다.

 

부모도 외아들인 그에게 사정사정했다. 그는 부모에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천하에 거지가 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사해를 집으로 삼아 빌어먹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미 제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두 분께서는 손자를 곁에 두고 노년의 즐거움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제가 두 분께 드리는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끝내 동냥하며 생을 마쳤다. 풍족한 삶에 환멸을 느꼈을까? 정신적인 공허함에 기꺼이 동냥하면서 자신이 바라던 인생의 즐거움을 구했다. 물론 세상에 이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거지에게 1문(文)을 희사해 부자 되고 아리따운 아내를 얻다

 

청나라 때에 기꺼이 거지가 된 부자의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비정상적인 변태 심리로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 거지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와서 구걸하는 굶주린 백성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 또한 기이한 일에 속한다. 항주(杭州)에서 발생한 일이다.

 

김용(金熔)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빈한한 가정 때문에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쌀가게에서 장사를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식당 한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식당 주인이 한 손으로 거지를 붙잡아 놓아주지 않은 채 실랑이 하고 있었다. 주위사람들은 중재하지 않고 구경만하고 있었다.

 

김용이 나서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거지가 식사를 마쳤는데 1문이 부족하여 사정했으나 주인이 관용을 베풀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김용은 상황을 듣고는 어찌 1문밖에 되지 않는 돈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를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곧바로 주머니에서 1문을 꺼내어 대신 지불하였다.

 

거지는 자신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준 것에 고마워하며 김용을 뒤따라가다가 외지고 조용한 곳에 다다르자, 김용에게 이름과 사는 곳을 묻고는 고맙다고 공수하며 말했다.

 

“나는 하남(河南) 출신이오. 집안에 만금의 재물이 있소. 수천이나 되는 굶주린 백성이 집에 매일 찾아와 먹을 것을 달라하니, 괴로웠소. 모든 창고를 털어서 먹인다 하여도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소. 창고도 다 비고 해서, 집에서 뛰쳐나와 강호를 전전하면서 동냥질하고 있소.

 

그런데 성년이 된 큰딸이 우리 늙은 부부와 동행하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사람의 이목을 끌 뿐 아니라 아이가 세속에 물들까 염려되어 걱정이 말이 아니오.

 

지금 길에서 만난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당신을 보니, 성실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판단되오. 비록 1문밖에 안 되는 돈이기는 하지만 감격해 우러러 받들게 되었소.

 

이러면 어떻겠소? 내 딸을 주리다. 내 딸을 당신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는데 당신은 어떻소?”

 

김용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최고로 좋은 일이 아니던가. 조용히 대답하였다.

 

“우연히 만났지만 우리가 서로 인연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 어르신에게 총애를 받기는 했습니다만 혼인대사를 제멋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먼저 제가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아뢰고 다시 가부를 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녁에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일의 전후를 말하고 있는데 거지 부부가 묘령의 아리따운 딸을 데리고 집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마침내 결혼하였다.

 

한 달 후, 거지의 딸은 김용의 가족이 무척 진실하고 순수하여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석과 장신구를 남편에게 주면서 밑천 삼아 장사하도록 하였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김용의 집안은 현지의 부호가 되었다. 돈 1문으로 뜻을 이루고 아리따운 부인과 부귀를 얻으면서 일시에 대중의 흠모와 칭찬을 받게 되었다.

 

“오랫동안 황금을 뿌리더라도 미인의 사랑을 받은 적 있었던가. 꽃 같은 절세미인을 그저 주머니 속 동전 한 푼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어찌 알았겠는가!”

 

이 전기적인 이야기는 부자가 거지 행세하는 보기 드문 사례라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지라는 하류계층에 속한 빈민이 자신들을 경시하는 사회의 세속 관념에 대한 위화감을 반영한 것이거나, 아니면 일부러 기이한 얘기로 세상 사람에게 자극을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자신들의 심리적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인과응보의 소극적 처세 사상의 일종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요, 스스로 조소를 면하기 위한 변명이며 위안이기도 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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