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영화의 주인공 ‘무당벌레(브래드 피트)’의 캐릭터는 ‘킬러’치고는 무척이나 독특하다. 킬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끼고 반쯤 은퇴한 상태다.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저지른 살인과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죽음에 죄의식을 느끼고 정신과 의사 상담까지 받는 중이다.
그런 ‘무당벌레’가 마리아의 의뢰로 다시 현장에 복귀한다. 마리아는 탄환열차에서 가방 하나 가져오는 매우 간단한 일이라고 말한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항상 쉽게 얘기한다. 무당벌레는 그 일이 마리아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으리라는 것을 베테랑답게 간파한다. 말처럼 단순히 ‘가방 하나’가 아니라 ‘주인이 있는 가방’이고, 그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은퇴생활에도 생활비는 든다. 어쩔 수 없이 탄환열차에 탄다.
무당벌레는 총질, 칼질, 주먹질 대신 가급적이면 대화로 ‘가방 회수’라는 주어진 임무를 해결하려 한다. 동경역 사물함에 넣어둔 다양한 전투장비 중에서 기껏 수면제와 폭죽을 고르고 온갖 최신형 권총은 그대로 두고 탄환열차를 탄다. 가방 주인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우거나 폭죽을 터뜨려서 가방 주인이 깜짝 놀란 사이에 가방을 훔쳐오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임무를 완수할 계획인 듯하다.
그렇다고 무당벌레가 처음부터 대화론자나 평화주의자는 아니었던 듯하다. 젊은 시절 무당벌레는 여느 킬러 못지않게 현란한 칼질, 총질, 주먹질로 임무를 해결해 명성을 쌓아왔던 모양이다.
탄환열차 속에서 아무리 ‘말로 하자’고 달래도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킬러들을 상대로 마지못해 펼쳐보이는 액션은 거의 성룡급이다. 방어모드를 공격모드로 전환하기만 하면 ‘타노스’급 전투력을 보여줄 실력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무당벌레는 문제의 가방을 사이에 두고 또다른 킬러 ‘레몬’과 총구를 겨눈 사생결단의 순간 선뜻 레몬에게 가방을 양보한다. 과거에도 한번 마주쳤던 경험이 있는 레몬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안다. 또한 레몬에게 그 가방이 목숨을 걸만큼 중요하다는 상황도 이해한다. 무당벌레마저 그 가방에 목숨을 걸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무당벌레는 그 가방에 목숨이 걸린 것은 아니다. 사례금을 못 받을 뿐이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진정한 베테랑이다. 결국 돈가방도 허공으로 날아가고, 돈가방 쫓던 자들도 모두 죽지만 무당벌레는 살아남는다.
어느 날 공자(孔子)가 사냥꾼이 참새 잡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물에 걸린 참새들은 모두 부리가 노란 새끼참새들이다. 기이하게 여긴 공자가 참새를 잡던 사람에게 왜 어미참새는 잡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참새 사냥하던 사내가 알려준다.
“어미참새는 겁이 많기 때문에 그물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 새끼참새는 모이에 눈이 어두워 겁이 없어서 그물에 잘 걸린다. 그런 새끼참새도 어미와 함께 있을 땐 잘 안 잡힌다. 반대로 어미참새가 새끼와 함께 있을 때 쉽게 잡히기도 한다.”
참새잡이의 깨우침을 통해 공자가 제자들에게 삶의 교훈을 남긴다. “두려움을 알기 때문에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재난을 당한다. 또한 어떤 상대와 행동을 함께하느냐에 따라 복을 누릴 수도 있고 불행을 당할 수도 있으니 군자는 모름지기 함께할 상대를 신중히 가려야 한다(공자가어 육본편).”
사람들은 흔히 욕심에 정신이 혼미해져 두려움을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는 순간 모든 재앙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맥아더 장군은 그의 ‘아들을 위한 기도문’에서 ‘두려움’에 대한 교훈을 남긴다. ‘미국판 시저’로 불린 맥아더 장군은 문장력도 시저만큼이나 훌륭하다.
“주여, 저의 아들이 자신의 나약함을 알만큼 강하고, 두려움을 인정할 만큼 용감하게 키워주소서(Build me a son, O Lord, who will be strong enough to know when he is weak, and brave enough to face himself when he is afraid).” 자신의 약한 구석을 모르는 것은 무식한 것이지 강한 것이 아니다. 두려움을 못 느낀다면 그것은 미친 것이지 용감한 것이 아니다. 용기와 만용(蠻勇)은 다르다.
오늘도 정치판에서는 ‘권력(power)’이란 모이를 향해 부리 노란 새끼 참새들이 그물 속으로 겁 없이 달려든다. 이들을 말려줄 어미참새는 보이지 않는다. 어미참새가 새끼참새들을 말리기는커녕 부추기기도 하고, 가끔은 어미참새가 먼저 모이를 향해 돌진하기도 한다. 새끼참새 어미참새 모두 두려움을 잊은 듯하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참새는 2500년 전 중국 참새들과는 또 다른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