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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릿 트레인 (8)

1000만불이 든 돈가방을 노리고 ‘탄환열차’에 모여든 킬러들은 모두 용병(傭兵)들이다. 용병이란 자신의 전투가 아닌 남의 전투를 돈 받고 대신해 주는 존재들이다. 전쟁 당사자들의 옳고 그름이나 명분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전쟁의 승패에도 무관심하다. ‘고객’과의 계약에 따라 일정한 역할을 해주고 그에 따른 급여만 받으면 그만이다.

 

 

영화 속 용병킬러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메디치(Medici)가(家)의 유명한 책사 마키아벨리(Machiavelli)가 「군주론」에 정리한 용병들의 행태와 참으로 닮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아무리 다급해도 용병만은 절대 끌어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로마 역사에 정통했던 마키아벨리였던 만큼 고대 로마 시대 용병의 역사에도 정통하다. 마키아벨리가 용병에 질색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용병들이란 뒷전에서 뭉그적거린다. 전세가 기울면 가장 먼저 튀어버린다. 급여를 포기하지 목숨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고객이 급박할수록 용병료는 올라가니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 시민군과 적군이 피 터지게 싸우다 모두 탈진한 뒤에야 나타나 모든 공을 독차지한다.

우리나라 범죄영화에서 으레 상황이 모두 정리된 뒤에 요란한 사이렌과 함께 퍼레이드 펼치며 나타나는 경찰들을 닮았다. 더욱 고약한 것은 용병집단은 두 진영 사이에서 ‘간’을 본다. 언제든 높은 가격을 부르는 진영과 새 계약서를 작성한다.

로마와 지중해 패권을 다퉜던 한니발의 카르타고는 용병에 의존해서 망한 나라다.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 장군은 누미디아(Numidia) 용병들의 활약으로 로마까지 쳐들어가지만 로마 스키피오 장군이 누미디아 용병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자 누미디아 용병들은 곧바로 스키피오 장군과 연합해서 카르타고군을 무찔러버린다. 참으로 쿨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최악의 경우는 정말 용맹하고 욕심 많은 용병들이다. 이들은 적들을 물리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고객까지 때려잡고 안방을 차지한다. 고객이었던 로마까지 쳐부수고 황제를 폐위시킨 다음 스스로 로마의 왕에 오른 오도아케르(Odoacer)가 그분이시다. 카르타고와 로마가 사생결단했던 지중해 패권이 난데없이 북방 게르만 용병대장에게 돌아가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영화 속 킬러 용병 ‘무당벌레(브래드 피트)’는 열심히 싸우지 않고 튀어버리는 유형의 용병이다. 용병은 강적을 만나면 사례금 날렸다 생각하고 튀어버리지 고객의 이익에 목숨 걸지 않는다. 1000만불 든 가방을 ‘레몬’에게 양보하고 튈 궁리부터 한다. 우선 살고 볼 일이다.
 

 

반면 레몬은 누미디아 용병형이다. 카르타고 한니발의 의뢰로 로마의 스키피오군과 싸우다 느닷없이 돌변해 카르타고를 무찌르듯, ‘하얀 사신’을 위해 싸우다 느닷없이 하얀 사신의 원수 ‘장로’와 편 먹고 하얀 사신의 본진을 휩쓸어버린다.

레몬의 교토역 대첩은 포에니 전쟁 ‘자마 전투(Battle of Zama·B.C. 202)’를 연상시킨다. 혹시 레몬이 교토역에서 하얀 사신의 본진을 초토화하고 오도아케르처럼 하얀 사신이 이끄는 야쿠자 조직의 ‘왕위’에까지 올랐는지는 모르겠다.

고대와 중세의 ‘용병 군대’의 역사는 산업혁명 이후에는 ‘용병 노동자’의 역사가 된다. 거의 모든 노동자는 사실상 용병과 다름없다. 노동현장에서도 전쟁터에서와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가 질색했던 용병의 속성이 ‘용병 노동자’로 어김없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회사에 몸 바쳐 충성하는 노동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돈만 더 준다면 언제든지 경쟁회사로 떠난다. 사장님들의 고민이다.

용병과 용병 노동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황은 이해하겠지만, 요즘은 ‘용병 정치인’까지 생겨나 세상과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니 어리둥절하다.

용병 노동자가 용병 군대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용병 정치인 또한 용병 군인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혹시 마키아벨리가 살아 돌아온다면 아무리 급박해도 용병 군대를 불러들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정치판에서도 내부에서 정치인을 발굴하고 키울 일이지 절대 용병 정치인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할 듯하다.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면 으레 선거판에 ‘외연 확장’이니 ‘외부 수혈’이니 하는 이름으로 용병들이 투입된다. 대개 당을 향한 충성도나 특정 이념의 이해도는 떨어지지만 ‘전투력’은 좋은 용병들이다. 지난 대선도 전투력 좋은 검찰 출신 용병이 대선을 승리로 이끌고 당의 주인이 되고, 자신을 임명했던 직전 정권의 목을 겨눈다.
 

 

다음 ‘총선 전투’ 승리를 위해서 이번에는 또 다른 검찰 출신 용병을 당대표로 옹립하자고 한다. 한때 진보 진영이 용병으로 영입한 명망 드높던 한 벤처 사업가는 이번 전쟁에는 보수진영과 용병계약을 맺고 그 목표를 아예 ‘민주당 궤멸’로 내건다. 스키피오든 한니발이든 ‘먹을 것’만 있으면 아무나 때려 부술 수 있다는 누미디아의 용병을 보는 듯하다. 역시 용병답게 쿨하다. 가히 용병 정치인 전성시대다.

뜨거웠던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전 세계에 흩어져 용병으로 축구전쟁을 하던 ‘축구의 신’들이 모처럼 돈 받은 만큼 뛰어주는 용병이 아닌 ‘국민대표’로 조국의 영광을 위해 진심으로 뛴 듯하다. 돈 받고 뛰던 때보다 더 뜨겁고 절실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월드컵 같은 국가대항전에는 ‘용병 축구’ 땐 볼 수 없는 패자들의 통곡과 눈물이 있다. 그래서 세계인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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