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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8) ... 췌장(pancreas)='전체(pan)'+'기름덩어리(creas)'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Let me eat your pancreas [君の膵臓をたべたい], 2017년)’는 다소 섬뜩한 영화인 듯하다. 제목만 보자면 무슨 공포 영화인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은 풋풋한 로맨스 영화다.

 

자신이 다녔던 학교의 교사가 된 주인공 시가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가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하루키는 고등학교 시절에 늘 혼자만 있던,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병원에서 야마우치 사쿠라(하마베 미나미)라는 여학생의 공책을 주워서 돌려주게 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고, 선생으로 지내는 현재와 과거의 상황이 오고 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사쿠라는 자신의 투병 일기를 ‘공병문고(共病文庫)’라는 공책 속에 적어가고 있었는데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 투병 일기가 아니라 공병, 즉 함께 병을 알아간다는 뜻을 내포한 것 같다.

 

얼굴도 예쁘고 사교성이 좋아 학교에서 제일 인기 많은 소녀 사쿠라는 순진한 소년 하루키가 마음에 든다. 둘이 사귀면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둘만의 여행도 다니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부분이나 뚜렷한 복선을 까는 것은 일본 소설이나 영화의 특징이다.

 

이 영화에서는 공병문고라는 투병 일기장, 도서를 정리하면서 사쿠라가 자주 하는 말 “책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보다 아무렇게나 두는 것도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지”하는 말은 사쿠라가 하루키에게 남기는 유서를 찾게 되는 복선이다.

 

영화는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던 소설이 원작이고, 영화도 흥행에 성공해서 이듬해 만화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내가 죽으면 내 췌장을 네가 먹게 해줄게.”라고 말하면서 “누가 자신의 췌장을 먹으면 영혼이 그 사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대.” 이렇게 사쿠라는 고백 아닌 고백을 하루키에게 한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아픈 부위에 해당하는 다른 동물의 장기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중요 장기를 먹으면 그 장기의 영혼이 들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게 된다는 오랜 믿음도 있어서 하루키에 대한 감정을 사쿠라는 내비쳤던 것이다.

 

췌장의 기능을 살짝 엿보면.....

 

췌장은 ‘이자’라고도 하는데, 영어로는 판크레아스(pancreas)라고 한다. 그리스어에서 ‘전체(pan)’라는 뜻과 ‘기름덩어리(creas)’라는 뜻이 합쳐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말이다. 손가락 두 개를 붙여놓은 너비에 길이는 15cm 정도이고, 위 뒤편에 있으며 뒷복벽 가까이에 붙어있다. 다른 장기들처럼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하다. 그래서 의과대학생들이 해부를 하다가 잘못 건들면 부서지기 쉬워서 그 부분을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한다.

 

췌장의 기능이 알려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중요성이 밝혀진 건 1800년대 후반인데, 이전까지만 해도 의학의 세계에서는 위 뒤편에 숨어있는, 의미 없는 기름덩어리로만 봤다. 해부학과 조직학, 생리학이 발달하면서 췌장은 소화액을 만드는 중요한 장기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후 독일의 파울 랑게르한스(Paul Langerhans, 1847~1888)라는 의사가 1869년에 췌장에 섬처럼 분포되어 있는 조직 소견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고하였고, 그의 이름을 따서 ‘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ets)’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사람에게서 혈당 조절을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한참 나중에야 알려지게 된다.

 

사람의 췌장에는 약 100만~150만 개 정도의 그 섬들이 있다. 현미경으로 보일락말락한 섬들 속에는 알파(α), 베타(β), 감마(γ)라는 세포들이 있어서 우리 몸의 혈당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특히 베타 세포에서는 인슐린을 만들어서 혈액 속에 일정량의 포도당이 돌아다니도록 하는데, 인슐린 분비가 잘 안 될 때는 혈당이 높아지는 병인 ‘당뇨’가 되는 것이다.

 

췌장의 병을 대표하는 것은 술로 인해 생기는 췌장염과 영화 속 사쿠라가 앓는 것으로 보이는 췌장암이 있다. 위 뒤편에 있기 때문에 상복부가 아프면 흔히 위염인 줄로 착각하기 쉽다. 가장 심각한 병으로는 췌장암이 있는데, 이 또한 위가 아픈 것처럼 보여서 위염약만 먹다 보면 암이 더 진행하게 되어 발견하기까지 시간이 지체되기 일쑤다.

 

사쿠라의 죽음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퇴원하기를 반복하던 사쿠라는 영화 말미에 다른 문제로 어이없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오열하는 하루키. 훗날 다니던 학교에 선생으로 일하면서 둘이 만났던 도서관에서 사쿠라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처럼 병을 고치거나 어떤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동물의 장기를 취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전 세계에 퍼져있던 현상이다. 눈이 좋아진다며 생선의 눈알을 먹거나 머리가 맑아진다며 소의 골(뇌)을 먹기도 한다. 몸에 좋다며 곰쓸개(웅담)나 오소리, 소, 돼지의 쓸개를 생식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 의학 상식에 맞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 있는 기생충에 감염될 위험이 더 크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의 ‘감각의 제국(愛のコリダ, 1976년)’에서 여주인공 아베 사다(마츠다 에이코)는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생각으로 죽도록 좋아했던 남자의 성기를 잘라서 목에 걸고 다닌다. 변태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것도 췌장을 먹는 것처럼 민간의 관습으로 볼 수도 있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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