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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18) 시각보조기 '릴루미노'를 통해 보이는 빛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공포와 불안감을 나타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해주는 영화가 있다.

 

31분짜리 짧은 상영 시간이지만 완성도와 감동이 100% 충전된, 허진호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Two Lights: Relúmĭno, 2017)’다. 제목에서 말하는 두 개의 빛은 감독이 의도한 것도 있겠지만, 관람자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예술 작품의 주제와 감동은 감상하는 자의 것이니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잘 쳤으나 점점 시력을 잃어 ‘저시력장애’를 가지게 된 서인수(박형식)는 현재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청년이다.

 

그와 달리 장난기 넘치고 밝은 성격의 안수영(한지민)은 냄새로 일하는 조향사(아로마 테라피스트)다. 7살 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해서 현재 한쪽 눈은 아예 안 보이고, 다른 쪽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뿐이다.

 

수영이 사진동호회에서 함께 출사(사진 찍으러 나가는 일)를 다니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해도 인수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점점 잃어 가는 시력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수는 동호회에서 만난 시각장애인들이 한결같이 밝은 척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안 보이는 답답함을 가졌으면서 뭐가 재미있다는 말인가?

 

시력을 잃는 이유

 

시력에 장애를 갖게 되는 이유는 망막이나 수정체(렌즈), 혹은 망막 손상처럼 안구의 문제일 수도 있고, 시각을 뇌로 전달하는 시신경 때문일 수도 있다. 시신경의 신호가 모이는 뒤통수 대뇌피질은 시각을 총괄하는 중추인데, 여기뿐만 아니라 앞쪽의 눈에서 뒤에 있는 시각중추까지 시각 정보가 전달되는 동안 뇌 어디든 손상을 받으면 심각한 시각장애를 얻을 수도 있다.

 

보통 시력이 저하된 정도나 시야를 기준으로 장애를 판단한다. 과거에는 소경, 맹인으로 부르거나 존칭 의미로 장님, 봉사라고도 했으나, 비하 표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으로 통일해서 부르게 되었다.

 

영화에서 인수가 사진동호회 사람들과 첫 만남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RP’ 장애라고 소개한다. 실제로도 한국RP협회라고 쓰는 걸 보면 같은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끼리는 일상어라서 그런 것 같다. RP는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의 영어 약자이고, ‘망막(Retina)의 염증’이란 뜻과 ‘색소(Pigmentation)’가 합쳐진 의학용어다.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눈으로 들어온 빛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망막의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이다. 유전 질환으로서 망막에 색소가 침착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인수는 20대 중반 때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해서 점점 시력을 잃고 있어서 현재는 시야가 좁아졌어도 직진으로 걷는 것은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점점 시력이 완전히 나빠질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사진동호회?

 

사진동호회 사람들은 인수와 다르게 모두 밝고 건강하다. 저시력 장애인이라서 잘 안 보이지만 밤낮은 구별하고 살아서 행복하다는 사람, 부분만 보인다는 오경아씨(신신애)는 늘 농담도 잘 하고 전맹인 남편과 함께 다정하다.

 

그들은 자주 봉사자들과 출사를 가고, “만져보고 느끼고..... 눈 이외 다른 감각을 통해서 피사체를 느끼세요. 우리가 아름다움을 보는데 눈이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껴보세요.”라는 지도 선생의 말처럼 각자 나름의 감각을 가지고 사진들을 찍어서 전시회도 연다.

 

영화에서는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녹내장(Glaucoma)을 가지고 있어서 그림들이 모두 뿌옇게 그려졌다고 아는 척하는 인수의 말이 있다. 녹내장(綠內障)은 주로 안압이 높아져서 시신경을 손상시키게 되어 실명까지 이르는 눈 질환이다. 수정체 주변을 적시고 흡수되어 사라져야 할 방수란 것이 흡수되지 못하고 남아서 압력이 높아지는 경우가 주된 원인이지만, 안압이 정상인 경우도 있다.

 

오래 전부터 쓰던 이 녹내장이란 단어는 사실 잘못 사용하는 말이다. 내장(內障)이란 단어는 한의학에서도 사용하던 말로, 눈 안쪽의 장애란 의미다. 눈 안에 병이 생겼다는 것으로 반대로는 외장(外障)이란 표현을 쓰면서 눈곱 등 눈 밖에 병이 생기는 경우로 구분했다. 내장이란 말에 눈동자가 녹색을 띤다고 해서 녹내장이란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사실 이 질환에서는 거의 녹색을 띠지는 않는다.

 

백내장(白內障)은 수정체 혼탁으로 생기는 것이고, 실제로 하얗게 보이니까 이름이 적절하다. 인상파 화가인 모네는 그의 인생 후반기인 1910년대 약 10년 동안만 녹내장으로 고생했고, 그림을 그릴 때도 상당히 불편했지만, 1924년경 녹내장 수술을 하면서 호전됐다고 한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인수가 한 말은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

 

이 영화가 가지는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한다. 한지민과 박형식, 신신애 배우들은 서로의 시각장애 상태를 연기하기 위해 눈동자가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초점이 안 맞는 상태 만들기를 엄청 연습했다고 한다. 그런 상태를 일부러 만드는 것이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영화를 보면서 감탄하게 된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주의할 점도 엿보인다. 인수를 만나러 가는 공원에서 장애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자 지나가는 사람이 도와주겠다며 갑자기 팔을 붙잡을 때 수영이 안 보이기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된다. 시각장애인의 몸을 함부로 만지려고 해서도 안 된다.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고, 만지거나 잡을 때는 일일이 얘기하고 동작을 설명하면서 해야 한다.

 

영화에서는 저시력 장애인을 위한 시각보조기인 ‘릴루미노(Relumino) 안경’이 등장해서 인수나 수영이 흐릿하지만 상대방이나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은 잔존 시력이 남아 있는 시각장애인이 앞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그 제품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제목에 나온 ‘두개의 빛’이라는 게 원래 시력을 잃기 전에 자기가 봤던 빛과 이제 새로이 기계를 통해 보이는 빛을 얘기할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이 보았던 빛과 달리, 안 보이는 것이지만 사랑이라든지 출사할 때 선생이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을 느끼는 다른 감각을 말할 수도 있다. ‘렐루미노(Relúmĭno)’는 라틴어로 ‘다시 밝게 한다’는 뜻이다. 라틴어 특성상 그대로 읽는 경향으로 봐도 제목에서 영어식으로 쓴 ‘릴루미노’는 잘못 표현됐다고 봐야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 알아야 할 점

•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계단을 이용할 때는 난간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 줌

• 시각장애인과 소통하려고 할 때 갑자기 몸을 건들면 안 됨(안 보여서 놀라게 됨)

•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에는 흰 지팡이의 반대편 팔을 잡으면서 반 보 앞에서 걷도록 함 (흰 지팡이 쪽 팔을 잡으면 시각장애인이 불안해 할 수 있고 방향을 잡기 어려워함)

• 시각 장애인과 인사를 하게 될 때에는 멀리 있을 때보다는 가까이 왔을 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좋음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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