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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4) ... 영화로 보는 감염병의 세계

에이즈 환자의 인권에 대한 영화 두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영화들을 보기 위해서는 에이즈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어서 다소 어렵지만 글 중간에 설명을 덧붙이게 되었다.

 

소개할 영화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2013)’과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다.

 

달라스(Dallas)는 미국 남동부 텍사스주의 도시 이름이다. 바이어(Buyer)는 구매자를 뜻하니 영화의 제목은 달라스에 있는 구매자들의 모임인 셈이다. 보수적이기도 하고 마초들이 득실댈 것 같은 남부 도시 달라스에서 무엇을 팔기에 모임까지 만들었을까?

 

공사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코카인에, 로데오 경기 도박에, 오늘을 방탕하게 살며 내일이 없는 인간이다.

 

우연히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에이즈에 걸렸다고 판정을 받는다. 이미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여서 살 수 있는 날이 겨우 30일 정도라고 의사로부터 얘기를 듣는다. 당시에 에이즈는 말 그대로 불치병이고, 진단이 내려지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록 허드슨과 함께 세상에 알려진 에이즈의 공포

 

이 영화의 배경은 1985년경이며, 로널드 우드루프라는 인물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 이 해는 ‘자이언트(Giant, 1956)’ 영화의 주인공이자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록 허드슨(Rock Hudson, 1925~1985)이 에이즈로 죽은 해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전에 없던 죽음의 병을 세상이 다 알게 되었고, ‘달라스 바이러스 클럽’ 영화에서도 록 허드슨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원인 바이러스라는 게 밝혀진 이후 사망했지만, 아쉽게도 그가 사망한 해는 치료 약제가 만들어지기 전이었다. 록 허드슨은 게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밝혔고, 죽기 전까지 에이즈 치료와 예방을 위해서 노력했다. 에이즈라는 괴물이 세상에 알려지게 한 최초의 유명인이었기 때문에 이 질병이 동성애와 등치되는 오해를 만든 걸까?

 

우드루프는 동성애자나 걸리는 병에 왜 자기가 걸렸는지 알아내려고 도서관에서 신문을 검색해본다. 열심히 자료들을 찾아보니 동성애자들이 많이 걸리고, 콘돔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에 이성애자도 성 접촉으로 충분히 걸리며, 마약 중독자들이 필로폰을 투여할 때 주사기를 함께 쓰다 보면 걸리기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카인은 가끔 애용하지만, 필로폰 주사는 사용하지 않았기에 원인 제공처는 자신의 여성 친구일 것이다.

 

담당 의사인 이브가 상담을 마치고 환자 후원 모임을 권하자 우드루프는 비아냥대며 말한다.

“난 곧 죽을 거예요”

“그런 사람한테 호모들이나 만나라는 거예요?”

 

단골로 다니던 술집을 가도 사람들이 슬슬 거리를 두며 피한다. 친구 놈이 말다툼하다가 우드루프의 침이 튀자,

“젠장. 침이 튀었어. 비누 어딨지?”

당장 죽을 듯이 설레발치며 화장실로 가서는 손을 박박 씻어댄다.

 

우드루프는 살아보려고 병원에서 임상시험 중이던 AZT(아지도티미딘, 최근에는 ‘지도부딘’으로 불림)라는 약물을 몰래 구해서 먹기도 한다. 용량도 모르고 함부로 먹다가 부작용으로 쓰러지고 입원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옆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와 말을 나누며 친해지게 되었다. 우드루프는 그를 남자 아가씨라고 부르는데, 같은 에이즈 환자이면서 자신이 죽도록 싫어하는 트랜스젠더이다. 남자 아가씨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 때 중요한 동업자가 된다.

 

에이즈의 원인균 발견

 

1981년, 미국 의학계는 원인 모를 병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성소수자(대게는 게이를 말함) 중에 면역결핍 증상을 보이면서 폐렴 등 감염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사망하는 사례들이었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있다는 점, 그로 인해 결핵, 폐렴 등 감염병에 취약해서 사망률이 아주 높다는 점이었다.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미생물 학자 바레-시누시(Françoise Barré-Sinoussi, 1947~), 몽타니에(Luc Montagnier, 1932~) 박사가 세계 최초로 그 원인 미생물을 찾아내어 존재를 알렸다. 나중에 이 원인 바이러스를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 Human Immunodeficiency Virus)’라 부르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자궁경부암이나 콘딜로마를 일으키는 사람 유두종바이러스(HPV, Human papillomavirus)를 발견한 독일의 미생물학자 추어 하우젠(Harald zur Hausen, 1936~)과 함께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미생물이 밝혀졌으니 치료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한다.

 

보통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세균)들은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 직접 질병을 일으키는 게 대부분인데,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다른 바이러스들과 아주 다르게 활동한다. 그들은 사람 몸 안에 들어와 면역세포들을 파괴하고 면역체계를 약화시켜서 다른 흉악한 질병들, 예를 들면 건강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던 세균이나 곰팡이에 감염되어 결핵, 폐렴, 칸디다증(곰팡이 감염) 등이 생겨서는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 면역계가 억제력을 잃게 되면 체력도 떨어져서 말라가며, 백혈병이나 카포지 육종과 같은 암도 발생하기 쉽다. 직접 병을 만들기보다는 다른 놈들이 들어와서 병을 일으키도록 몸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에이즈’라는 뜻은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걸려서 체내의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몸이 피폐해지며, 그러한 병에 걸려 오랜 시간 고생하거나 심하면 사망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질병 이름이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 부르고, 영어로는 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라고 한다.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

 

흔히 사람들은 ‘HIV 감염자 = AIDS 환자’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AIDS 환자는 거의 동성애자’라는 인식도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다. HIV 감염자는 말 그대로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말하지만, 모두가 에이즈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유지하거나 치료제를 잘 복용하면 요새는 웬만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국내 최초의 감염자가 아직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치료가 안 되거나 다른 이유로 면역력이 파괴되는 현상이 생길 때 에이즈라는 병명을 붙이기 때문에 둘을 같은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또 하나 잘못된 인식은 '성소수자들은 대부분 에이즈에 걸린다'라는 오해다. 사실 성소수자들에게서 동성간 성관계로 인해 HIV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전체 에이즈 감염자 수로 비교해보면 절반 정도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이성간의 성관계에 의해서다.

 

2019년 한국 정부의 HIV/AIDS 역학조사 보고서에서는 이성간 성접촉에 의한 것은 전체 감염자의 46.1%, 동성간에는 53.7%라고 발표했다. 나머지 0.2%는 극소수로서 필로폰 주사 공동 사용 등으로 생긴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어떤 형태이든지 감염자로부터 성관계 혹은 생식기나 항문의 상처를 통해서 전염되는 것이지, 그 원인이 꼭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증이다.

 

대부분 성관계가 원인이 되는 이유는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된 정액이나 질액이 상대방의 성기 내 상처를 통해 옮겨가기 때문이다. 모유를 통한 수직감염, 마약 투여시 주사기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다. 수혈은 최근 철저한 관리로 인해 거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HIV 치료약으로 개발된 것이 주인공 우드루프가 몰래 훔쳐 복용하던 AZT다. 처음에는 항암제로 만들어졌지만,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서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를 공격하기 때문에 효과를 인정받아 에이즈 치료약으로 허가를 얻었다.

 

영화 달라스 바이러스 클럽의 우드루프는 AZT의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서 몸소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단백질 영양제(펩타이드 T)를 복용했더니 자신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는 것을 알았다. 영양제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리를 받지 않아도 돼서 에이즈에 걸렸거나, 걸릴까봐 걱정하는 성소수자들을 중심으로 이 영양제를 파는 회원 모임을 만든다. 이름하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우드루프를 고소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오히려 제약회사가 숨기려 했던 부작용이 드러나고, 덕분에 용량을 줄여서 독성을 완화시킨 AZT와 펩타이드 T를 복합해서 에이즈 치료에 사용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우드루프는 최초의 에이즈 치료약 AZT 고용량 단독요법으로 속절없이 죽을뻔한 많은 이들을 살린 인물이 되었고, 30일 정도 살 것이라는 예측을 벗어나 1992년 9월 12일, 첫 진단 후 7년을 더 살고 죽는다.

 

주인공 우드루프역의 매튜 맥커너히는 이 영화를 위해서 살을 엄청나게 빼서 진짜 환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명연기를 펼쳐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텍사스가 고향인 맥커너히는 영화에서 그곳 사투리를 썼을까 궁금해진다.

 

또 다른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

 

에이즈 환자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또 다른 영화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를 권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취직해서 일하는 앤드류 베켓(톰 행크스)은 장래가 촉망받는 변호사다. 그는 게이라는 것을 회사에 말하지 않고 숨기며 지내다가 몸이 안 좋아 받은 혈액검사에서 HIV 양성 판정이 나왔다.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고 몸이 나빠져 에이즈로 진행된 상태였다.

 

일하던 법률회사는 이를 알게 되어 그를 해고하자 해고 자체가 부당하다면서 소송전이 벌어진다. 하지만 어떤 변호사도 그의 소송을 맡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게이이면서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영화가 제작된 당시는 여전히 성소수자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에이즈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차 있어서 HIV 감염자들에게 세상은 중세 수준의 인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몸이 안 좋아진 앤드류는 평소 자기와 감정이 좋지 않았던 조 밀러(덴젤 워싱턴)를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갔으나, 그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거절당한다. 재판을 위해 10번째로 찾아간 건데 어렵게 되자 절망에 빠진다. 그러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조는 인종차별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는 자신들의 처지와 차별받는 동성애자들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앤드류의 신념과 노력에 좋은 인상을 받아 변호를 맡게 된다.

 

거대 로펌을 상대로 길고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부당하게 해고됐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만만치 않다. 재판이 진행되는 긴 시간 동안 앤드류는 점점 몸이 쇠약해진다. 영화에서도 처음 장면에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살이 빠지고 창백해지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주인공 톰 행크스도 그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를 20㎏이나 뺐다고 한다.

 

마지막 재판에서 변호사인 조는 강변한다.

 

“이 법정에 모인 모두가 성적 기호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미움, 그리고 두려움 또한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미움이 어떻게 이 사람을 해고했는지 밝히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왜 제목이 필라델피아일까? 미국 독립선언문이 만들어지고 자유의 종이 있는 곳이 바로 필라델피아다. 영화는 재판이 성소수자들에게 역사적인 날이 될 것임을 상징으로 보여주려고 한 걸까? 유명한 주제곡 “Streets of Philadelphia”의 드럼 소리가 잔잔히 들리며 끝나기 때문에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음미하며 기다려도 좋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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