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2005년 제작되었다.
발표 기회가 없다가 2010년 제14회 한국미술협회 산하지부 노원미술협회 정기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있고 서울살이할 때 이사가 잦아서 어딜 갔는지 지금도 기억이 없다.
2004-5년 군상시리즈로 20여점 제작된 작품중 하나로 나름 애착이 있는 작품이라 액자까지 하고 전시출품도 해서 조금은 아쉽지만 어딘가에 잘 있으리라 본다.
이 그림은 참선하는 사람형상의 다양한 실루엣들을 흰여백으로 남기고 배경은 검은 먹으로 처리하여 명도대비를 강하게 주어 참선하는 사람의 형상들이 좀더 부각되어 보이게 제작한 것이다.
당시에는 육체를 통한 호흡수련과 기공수행으로 영적 관심이 많았던 때라 이런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리게 되었는데 이제는 호흡수련이나 기공같은 난행 고행을 안하고 모든 존재의 근원인 빛을 상념하고 참회와 감사의 명상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흔적을 통해 내 삶을 뒤돌아보면 이 모든 것들이 예기치 않게 내 힘이 아닌 보이지 않는 다른 힘이 작용해 왔음을 알게 된다.
원래 서양화를 전공하려 했는데 예술적 운명이 서양화의 길이 아닌 한국화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진리와 영적 탐구의 관심과 여정 또한 예술의 길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내 삶에 놓여져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림속 형상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번뇌, 망상, 망념에 늘 들끓고 흔들리고 휘둘리는 모습들이다. 그 형상의 일그러진 모습들이 우리모두의 모습이고 곧 나의 모습임을.
모든 그림은 화가의 자화상이다.
그림에 보여지는 형상의 흰 여백에 점과 선과 면으로 드로잉하여 실체는 본질이 본디 공(空)하고 점, 선, 면, 입체로 보이는 이 모든 것이 파편화 되고 달라보이지만 그역시 본질은 하나임을 얘기하고자 한 작품이다. 어렵고 추상적이고 관념적 얘기지만.
그리고 화제를 불교 용어인 무명(無明:무지를 뜻하는 용어로 일체 사물에 대한 도리를 밝게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거나 진리에 대한 무지로 통용되고 있다)으로 삼은 것 또한 과거의 기연과 연관지어져 있다. 운명처럼.
2003년 미국 L.ADP에 있는 아스토 갤러리에서 친구와 함께 첫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전 도록을 제작하며 도록에 필요한 서문 서평을 누구에게 부탁할까 하다가 생각난 분이 젊은날 방황의 시기에 짧지만 강렬하게 만났던 서예와 전각 선생님이셨던 석경(石鏡) 고석칠 선생님이셨다. 이분이 지금의 내 호(號)로 쓰고있는 일보(日步)를 하사해 주신 분이다.
방황의 시기에 서예를 통해 다시 붓을 든 나를 받아주고 서예와 전각을 익히는 그 기간 동안 나의 모습을 여실히 보아준 선생님께 개인전 도록에 들어갈 서문을 부탁하기로 한 것이다.
선생님 또한 내 개인전을 축하해주며 기쁘게 반갑게 흔쾌히 허락하여 주셔서 첫 개인전 도록에
‘공간, 그 마음의 문을 열며‘라는 멋진 제목의 글을 장식하게 되었다.
그 감사한 마음 잊지않고 선생님의 글을 일부 소개해본다. 선생님은 나를 만난 후 내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때늦은 대학을 졸업하며 졸업작품전에 실린 내 그림의 작품설명에서 무명(無明)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걸 알고 계신 상태였다.
선생님의 글이다.
“老子에 無名은 天地의 시작이요, 有名은 만물의 어머니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지식은 배우는 즉시 버려야 하고 쌓아놓으면 쌓아 놓을수록 본인에게는 좋은 일이 없다. 지식이 쌓이면 집착이 생기는데 집착은 대단히 경계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면 노자의 無名과 상범이의 無明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상범이의 無明은 有明을 전제로 한 무명인 것이다.
상범이는 늘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메모의 생활화는 참 좋은 습관이다.그러나 그 속에서 천재성이 하나씩 없어질수도 있다. 직관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보려고 하면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대상이 생기면 모르는 사이에 집착도 쌓이게 된다. 결국 무명 유명 직관은 다 같이 마음에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속에 있고 마음이 여기에 있으니 문은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20년 전 글인데도
버리고 비우고 내려놓는 마음의 강력한 힘을 통찰하고 계셨던 참 통쾌한 글이다.
그때는 어려 이 단순하고 심오한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지만 이제와서 읽어보니 이글이 너무나 감사하고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의 어리석은 무명과 방황을 걷어주고 벗겨주시려 한 그 따뜻한 마음.
그때는 몰랐었다.
이 거부할수 없는 운명의 끈이 지금도 이어져 감사하게도 서예와 전각을 배울 때 지어주신 일보(日步)라는 호(號)의 의미처럼 어둠이 아닌 밝은 빛의 길을 추구해 가는 영적 탐구의 길이 지속되고 있고 현재도 나에게 펼쳐지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든 만남과 시절인연, 순간순간 펼쳐지는 상황들, 사건들 모두 그러함을.
그리고 마음의 욕심과 집착, 아집과 교만의 억지힘을 쓰고 있는 과정이 곧 무명으로 그 무지가 불행을 낳고 고통으로 만들어짐을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조금이라도 억지힘을 뻬고 순리대로 살아가려 노력해야겠다.
선생님의 글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문이 열릴때까지 .
더불어 빛에 늘 감사하며 나와 연결된 모든 이들에게 도움되는 삶이 되기를 오늘도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기원해본다.
내가 부족하여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선생님처럼 나를 이끌어주고 만들어주고 도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잊지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