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색으로 점점 깊이 덮여지는 숲에 으름 덩굴이 파란 잎을 배경으로 꽃을 맺었다. 제주에서는 '졸갱이' 혹은 '유름'이라 불려 지는 덩굴은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면서 잎은 다섯 개의 손바닥을 펼친 것 같다.
나무 하나에 암꽃과 수꽃이 피어난다고 하는데 보라색 꽃잎에 더 짙은 꽃술이 암꽃인지 아니면 수꽃인지도 구분이 어렵다. 그게 그것 같기도 하다.
이 꽃이 지고난 후 맺어진 열매는 초록색이었다가 소시지 같이 커가면서 가을이 되면 차츰 갈색으로 변해간다. 때가 되면 활짝 갈라지면서 하얀 속살을 드러내면서 익어간다.
으름은 산에서 나는 머루와 다래와 함께 3대 과일 중의 하나라고도 한단다.
옛날에 먹을 것이 귀하고 어려운 시절에 지금은 어른이 된 아이들의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그 맛이 특별하고, 임금과 신하들이 나누어 먹을 만큼 그 맛이 뛰어 났단다.
지금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흔한 시대에 으름의 달콤한 맛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새들이나 곤충들이 풍족한 만찬을 즐기기에는 더없이 좋은 열매다. 사람들이 찾지를 않을 테니 새들이나 곤충들에게 더 많은 몫이 되어 돌아간다.
나이 든 어른은 어릴 적에 약간 덜 익은 으름을 따다가 굴묵(옛날 초가집에 불을 피워 난방하는 아궁이)의 재(불이 타고 난 뒤에 남은 가루)에 묻었다가 몇 일 지나면 잘 익은 으름을 맛있게도 먹었던 기억이 있다고 한다.
어머님이 농사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에 약간 덜 익은 으름 열매를 따고 와서 초가집 지붕 처마에 메달아 놓아 몇 일후에 익자마자 먹었던 기억도 있다 한다.
다른 사람들이나 새들보다 먼저 따먹고 싶어서 그럴 때도 있었단다.
“다른 사람들 모르게 먹으면 맛이 더 좋아 나수가?”
“남들 모르게 잘 익은 졸갱이 먹는 맛은 고랑 몰라!”
“고라 봅서! 어떤 맛인지?”
“요즘사 하근거 귀헌 줄 몰람쥬마는 옛날에사 어선 못 먹었쥬!”
옛날 어릴 적에 먹었던 으름의 달콤한 추억을 어른이 된 후에도 기억하며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행복한 모습이다.
어릴 적에는 쇠촐(소 먹일 풀)을 하러 갔다가 지천에 널려 있었던 으름 열매를 정신없이 따먹다가, 열매를 씹지 말고 삼켜야 되는데 씨를 잘 못 씹어서 쓴 맛 때문에 뱉어 버렸던 기억도 난다고 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야생 으름나무를 개량하여 고품질 으름을 생산하기도 한단다.
요즘에는 더위가 열흘 정도 빨리 찾아 온 것 같다. 아마도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짙은 파란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더욱 짙어가는 이 숲길에는 수많은 꽃들이 피고지고 열매가 맺으며 커가고 익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침 봄비가 촉촉하게 뿌려지면서 내일은 동이 터오는 대지에 보석같은 새벽이슬을 머금고 변화하는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제는 뜨거운 햇빛도 두려워 마라/ 또한 혹한(酷寒)의 눈보라도!”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