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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숲길 산책 (4)] 많은 사연을 간직한 동백나무

 

나즈막한 언덕 양지 바른 숲 사이로 동백나무의 빨간 꽃 한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시덤불을 뚫고 솟아오르려 몸부림치는 이 동백은 잠시 화려하게 피었던 한송이가 시들어가며 곧 떨어질 듯이 위태롭고 다른 꽃송이들이 곧 피어날 준비를 하는 중이다. 도시에서 많이 보던 개량종이 아니라 이 숲속에서 나고 자란 야생동백이다.

 

동백은 사연이 많다. 제주의 근대사에 큰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농민들은 매해마다 동백꽃이 떨어지는 계절이 다시 오면 가슴이 쓰려오고, 큰 상처가 다시 돋아나기도 한다. 아파도 너무 오래 아프다.

 

겨울에 꽃을 피워 붙여진 이름이 동백(冬柏)이다. 다른 나무와 꽃들은 모두 낙엽이 지고 겨울잠을 자는 사이에 동백은 홀연히 꽃을 피운다. 북풍 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붉은 꽃은 하나둘씩 피어나다가 봄이 끝자락에는 한꺼번에 화려하게 피어난다.

 

동백은 항상 윤기가 흐르는 푸른 잎을 배경으로 삼아 붉고 화려한 꽃잎과 꽃가루를 만드는 노란 수술과 꽃밥을 자랑한다. 그러다가 동백꽃은 가지에 매달려 시들어 가면서 화려하였던 시절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으로 툭 떨어져 버린다. 한 송이씩 떨어지는 모습이 처연하여 슬프게 보여 진다.

 

 

그 숲을 지나서 꿀벌들을 기르는 상자들이 보여 다가갔다.

 

얼굴을 가린 그물 모자를 쓰고 꿀벌 관리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꿀벌들이 윙윙 거리며 날아다니는 상자들 사이로 얼굴은 잘 안보여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아서인지 순박한 모습이다.

 

양봉업은 꽃이 많이 피는 곳에 가서는 꿀을 수확하고, 겨울에는 꿀벌이 추워서 따뜻한 장소에서 키워야 한다고 한다. 좀 있다가 완연한 봄이 되면 꽃이 많은 곳으로 이사를 가서 꿀을 채취하고 겨우살이를 위해 다시 온단다.

 

그래서인지 북쪽 언덕은 숲으로 둘러 싸여 찬바람을 막아주고 햇살은 따스하여 포근하다. 아직은 찬 가운이 돌아서 꿀벌들이 기력이 없는지 상자 주변에서 웅크리고 있다. 며칠이 지난 후에 날씨가 풀리면 활기차게 꽃을 찾아 날아다닐 것이다.

 

마침 꿀이라도 맛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물어 보았다.

 

“혹시 꿀 파는 것 이수가?”

 

“지금은 어서 마씸. 가을에 오면 특별히 드리쿠다. 그때랑 옵서!”

 

다시 들르겠다는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특별히?' 혹시 여왕벌들만 먹는다는 '로얄 제리'를 상상해 보는 맛도 특별하다. 그때는 '꿀(honey)'과 '연인(sweetheart)'을 같은 뜻으로 부르는 이유도 알게 될 것이다.

 

 

잠시 화려했던 동백꽃이지만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향기가 없고, 붉고 넓은 꽃잎으로 동박새를 유혹하여 꽃송이 가운데 노란 꽃술에 유난히도 많이 흐르는 꿀을 준다고 한다. 동박새가 동백꽃 꿀을 독차지 하는 이유는 겨울철에 먹을 것이 없어서 꿀로 허기를 채우는 대신에 꽃가루를 옮겨주는 특별한 관계라 한다.

 

'진실한 사랑' 혹은 '애타는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다른 지방 어디엔가는 동박새와 동백꽃 사이에 꿀과 연인 같은 이야기라도 전해지고 있을 듯하다.

 

맺어진 꽃은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떨어지면서 열매를 키워낸다. 열매 기름은 한때는 조상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바르는 기름으로 쓰여지기도 했단다. 농민들이 거친 땅을 일구어 가며 자녀들을 성장시켰지만 부모의 희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야속한 자녀들처럼 열매는 무심하게 커가고, 자신이 잘나서 혼자 커온 것처럼 가을철이 되면 붉게 익어 간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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