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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숲길 산책 (8)] 토종 블루베리 삼동나무 열매

 

'보리밭!' 이 밭 사잇길을 걸어가면 '뉘이 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뒤를 돌아보았지만 인적이 없이 고요하다. 대신에 숲속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가끔은 꿩들이 날라 다니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보리는 이삭이 패어 두어 달 지나면 성큼 수확기가 다가온다. 보리가 익어가는 시기에 까만색으로 익는 열매는 제주도의 토종 불루 베리라는 삼동나무 열매다. 열매는 초록색으로 태어나서 빨간 색으로 물들어 가다가 완전한 까만색으로 익어 간다.

 

나이가 든 어른들은 어렸을 때 이 열매를 먹고 입이 검붉은 보라색으로 물들여졌던 추억을 간직하고, 먹을 것이 귀하던 춘궁기에 허기를 달래기도 했었다. 군것질도 힘들고 밥을 제때에 차려먹기도 힘든 시절에 아이들은 특별하게도 달콤한 맛으로 즐겨 찾았던 친숙한 나무지만, 지금은 누가 처다 보지도 않을 정도로 관심이 멀어져 버렸다.

 

마스크와 시커먼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아주머니가 렌트카에서 내리더니 다가왔다. 코로나 덕분에 요즈음 많이 볼 수 있는 외계인 같은 모습이다. 경기도 화성(華城)에서 매년 이맘때 온다니 궁금하기도 해서 말을 붙여 보았다.

 

“화성(火星)에서 UFO(미확인비행물체) 타고 오셨나요?”

 

“아~뇨! 비행기 타고 왔어~요!”

 

“지구를 정복하러 오셨나요?”

 

“아~뇨! 고사리 캐러 왔어~요!”

 

우문현답(愚問賢答)같은 대화의 반전과 유쾌한 웃음 차대기는 처음 만나는 사람의 경계를 허문다. 가까운 곳에 친구의 펜션에 머무르면서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숲 속 한 구석에 고사리 맛이 특별해서 자신만 알고 매년 온단다.

 

그러고 보니 고사리들이 복스럽게 자라고 있다. 자신만 아는 공간을 침범 당해서인지 약간은 삐쳐 있어서 이 비밀은 지켜주기로 했다.

 

까맣게 익은 삼동나무 열매 한 알을 입에 넣었더니 옛날 달콤한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며 아주머니에게 한 알을 맛볼 것을 권했다.

 

“블루베리 보다도 달콤한데 이거 일부러 따러 와야겠네요!”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가던 어머니들은 밭에서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삼동나무의 위치와 열매가 익어가는 시기를 잘 살펴보았다가 때가 되면 열매를 많이 따서 시장에 가서 팔고 아이들 학용품을 사는데 보태기도 했었다.

 

열매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얼굴이나 손등을 가시에 긁히는 일은 예사이고, 곧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돌담을 건너면서 위태로운 모습으로 기어 다니기도 한다. 가끔은 뱀을 마주쳐서 화들짝 놀라 자빠지기도 한다.

 

열매를 많이 따서 기분 좋게 밭담을 넘다가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를 입고 열매가 다 쏟아져서 어쩔 줄 모르기도 하고, 자신도 달콤한 맛을 보고 싶지만 꾹 눌러 참으면서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따서 모은다.

 

삼동나무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사이에 젊은 농부가 지나가다가 잠시 발길을 돌려 다가왔다. 삼동나무 열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한단다.

 

나이가 들어 기력도 없는 어머니께서 매해마다 삼동 열매 익을 때만 되면 열매를 따서 시장에 팔러 다니는데, 사줄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도 없는데 시장 한구석에 하루 종일 초라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아들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단다.

 

말려보기도 하지만 듣질 않는단다. 아들의 걱정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예전의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을 어머니께서 어느 시장에 가시는지 귀띔을 해달라고 해서 들었다.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삼동 열매를 사 먹을 생각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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