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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숲길 산책 (3)] 인재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송악나무

 

다른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쑥쑥 자라며 기지개를 켜듯이 가지를 뻗어가며 다른 나무 가지들을 밀어내면서 힘자랑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송악나무는 시골의 돌담에 붙어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뿌리와 가지들은 돌담에 얽히면서 한 몸처럼 자라난다.

 

송악나무 잎은 돌담 위에서 사철 무성하게 자라면서 오랜 세월을 소의 훌륭한 먹이가 되어왔다. 그래서 제주 방언으로는 '소왁낭'이나 '소밥나무'라고 불려 지게 되었다 한다. 농부들은 밭에서 일을 끝내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소들을 몰고 집으로 올 때 소들의 고개는 싱싱한 송악나무 잎으로 쏠리며 군침을 흘렸는데도 야박하게 고삐를 죄어 재촉했었다.

 

그래도 농부들은 힘든 밭 일이 끝나면 소의 식욕을 돋구어 주기 위해서 송악나무 잎을 한 짐 베어다가 특별한 식단을 만들어 주었다. 소들은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소의 먹이로 쓰여졌던 송악나무는 지금은 돌담이 안보일 정도로 무성해지고 있지만, 가공 사료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관심이 멀어져 버렸다.

 

송악나무 열매는 5월이 되면 까맣게 익어 갈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는 못할망정 할 일은 한다. 신선한 바람을 타고 새로이 돋아나는 풀잎 냄새를 맡으며 봄의 기운을 느끼고 있다.

 

송악나무 위로 하얀 나비 한마리가 펄렁이다가 사진을 찍으려 다가가니 날아 가버렸다. 다시 가까이 다가와 주기를 바랐지만 오질 않는다. 다가가려니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아쉽지만 나비를 보았던 기억이 까마득한데 오늘 나비 한마리를 보게 되어 즐거웠다.

 

사진작가들이 찰나의 한 순간 귀중한 작품을 얻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숨을 죽이며 지켜야 하는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가까운 곳에는 동화에 나오는 것 같은 예쁜 집들이 대여섯 채 있다.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주황색 기와지붕과 잘 정리된 아담한 돌담 울타리, 그리고 서재가 들여다보이는 창문이 눈에 뛰어 다가갔다.

 

 

길가에 있는 울타리 너머 마당에는 흰 머리가 세월을 말해주듯이 나이 지긋한 어른이 텃밭을 가꾸는 중이다. 참 소탈한 성품인 것 같다. 울타리 너머로 말을 건넸다. 서울에서 살다가 온 듯하여 제주도 사투리 때문에 의사소통이 어렵지 않은지 궁금해졌다.

 

“사투리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세요?”

 

“많이 익숙해졌어요. 약간 어렵지만 프랑스 말처럼 아름답게 들릴 때도 있어요. 어디 감수강? 아방? 어멍? 머허멘 마씸?”

 

사분사분한 서울 억양에서 깊고 넓은 지식을 갖춘 단단한 품격이 느껴졌다. 마침 돌담 울타리에 자라나는 송악나무 넝쿨을 가리키며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아이비 리그(ivy league) 출신이시네요?”

 

농담을 알아차렸는지 서로 환하게 웃고는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송악나무의 영어 이름은 “에버그린 아이비(evergreen ivy)”다. 항상 푸른 송악나무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런데 아이비 리그하면 미국의 동부지역에 가장 명성이 드높은 하버드 대학 등 8개 명문대학을 일컫는 말이다. 송악나무 가지와 잎이 오래된 학교 건물을 따라 올라가면서 무성하게 덮여지게 되어 유명해지게 되었다.

 

수많은 위대한 인재들을 배출해낸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을 상징하고 그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나무이다. 송악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눈과 머리가 맑아진다는 속설이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도에서는 송악나무가 초라한 신세다. 그래도 다른 나무들처럼 우뚝 솟아올라 눈에 띄거나 화려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다시 역할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 마침 열매가 커가면서 알차게 익어가고 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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