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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주년 특별기획] 격동의 현장-남기고 싶은 이야기(제2화)
양영철 교수가 전하는 '제주근대화의 선구자' 맥그린치 신부 (2)

[격동의 현장-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제이누리> 창간 2주년을 맞아 제1화-신구범 전 제주도지사에 이어 제2화를 선보입니다. 제2화의 주인공은 '파란 눈의 개척자', '제주근대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성이시돌 목장의 P. J. 맥그린치 신부입니다. 제주축산을 넘어 한국축산, 근대화의 시초 역을 다진 80중반 노구의 서양 신부가 60년 동안 제주에서 일군 꿈을 양영철 제주대 교수의 집필로 매주 월요일 풀어냅니다. 제1화-신구범 전 제주지사에 이은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한국인들은 이런 걸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성경에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맥그린치 그는 척박한 땅, 그곳에서도 오지인 한림벌에 성당을 지었다. 그가 지금 돌이켜보는 그 때의 일들은 말 그대로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성당을 짓자면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시절. 신자들에게 알려 푼푼이 돈을 모으는 모금운동을 생각하지 않은게 아니지만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렇다고 마냥 형편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결국 맥그린치 신부 스스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백방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돈을 모았다. 교회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성당 건립이 필수적이기에 손을 놓을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땅을 사고 공사판을 벌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고민이 또 깊어갔다. 어렵사리 돈을 모아 공사에 들어갔는데 막상 건축자재로 쓸 물건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딱히 마땅한 수가 없었다.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저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기도가, 정성이 통했을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 때쯤 제주를 지나던 미국 화물선이 한림읍 용운동 앞바다에 좌초됐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며칠 동안 한림읍내에 머물게 됐다. 마침 주일이 되자 선원들은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맥그린치 신부를 찾았다. 그 선원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맥그린치 신부를 쳐다봤다. “어디에서 미사를 올립니까?” 마을 어귀 팽나무 아래, 임시 가건물 같은 곳을 전전긍긍하며 미사를 올리는 신부와 제주 신도들이 퍽이나 딱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이 방법을 알려줬다.

 

“배 안에 좋은 목재가 많으니 선장에게 부탁하면 얻어다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맥그린치 신부는 한 걸음에 득달같이 선장에게 달려갔다. 보물 덩어리를 만난 것 같았다. 즐비한 목재가 배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걸 보고 군침이 돌 정도였다.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통성명을 하다 보니 마침 선장의 고국 역시 아일랜드. 동족애의 마음으로 호소했다. 물론 선장은 흔쾌히 맥그린치 신부의 요청을 받아줬다.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3일 후 사고 조사반이 들이닥칠테니 그 전에 목재를 옮기라”는 것. 선장은 좌초피해로 목재가 유실된 것으로 얼버무릴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맥그린치 신부는 막막했다. 교회 신자라고 해봐야 기껏 20명 남짓이었고, 힘을 쓸 장정은 추리면 고작 6~7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인원으로 3일 내에 필요한 목재들을 모두 옮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난감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는 것이었다. 손을 놓고 있는 것보단 하는 한 해보기로 했다. 6~7명을 동원, 무작정 목재를 날랐다.

 

그 다음이 기적이다. 말이 한림읍 이지 소규모 부락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읍 전체는 광대했다. 배가 맞닿은 좌초지점은 한림읍 용운동. 눈을 씻고 봐도 천주교 신자란 아예 없는 마을이었다. 도무지 도움의 손길을 뻗칠 곳이 없는데 그 마을 주민들이 나서준 것이다. 도움의 손길은 이후 한림읍 전역으로 불길처럼 번져갔다. 지금도 의문스럽다. “무얼 믿고 우리를 그렇게 도와줬을까?” 한림성당은 그렇게 완공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성당이 지어졌으니 이제 맥그린치 신부의 역할은 주변으로 주변으로 내달렸다. 어엿한 건물도 지어졌는데 신도들을 더 모아야 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한림읍·한경면으로 발을 넓혀 금악성당을 비롯해 고산공소와 귀덕공소, 다음해에는 청수공소를 차례로 설립했다. 내친 김에 ‘새미 은총의 동산’을 만들어 그가 감동했던 프랑스의 루르드 동굴을 재현했다. 종교적 기반을 닦기 위한 일종의 랜드마크였다. 1994년 살레시오회 수녀원 분원, 1998년 성가소비녀회 성 이시돌 분원 설립 등은 그가 그렇게 내친 걸음으로 시작해 일군 수녀 시설이다. 1999년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조용히 머물며 기도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성 이시돌 사회교육연수원(피정의 집)’까지 만들었다. 물론 2001년 삼위일체 대성당 건립은 그가 한림을 중심으로 사제의 길을 걸으며 일궈 놓은 종교적 대역사(大役事을)다.

 

그러나 그 모든 일에 언제나 그가 마음을 다지는 계기는 바로 한림성당을 짓던 때의 감동이다. 외부인에게 퉁명스럽던 제주 사람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남의 일이라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배려심, 그리고 서로 힘을 모아 어려운 일을 해나가는 협동심을 본 것이다. 그는 그때 알았다. “제주사람들은 다르다. 이들은 역사를 만들어낼 줄 안다. 끊임없이 발전을 갈구하는 근면의 주인공이다.” 그 생각은 제주생활 내내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그를 다독거리는 에너지원이 됐다.

 

그들에게 빚을 갚아야 했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하는 제주 사람들을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이 책을 뒤지고, 저 책을 뒤지고 고국 땅에 수도 없이 편지를 보내며 맥그린치의 마음엔 어느새 신앙생활로 마무리되지 않는, 그것만으로 털어내지 못하는 숙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역개발.’ “이들의 가난을 몰아내고 제주를 일으켜 세울 일이 없을까?” 일을 벌어야 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사업에 나서야 했다. 종교에 귀의한 사제신분의 그가, 돈 푼이 오고 가는 세속의 이익이라곤 손톱 만큼도 몰랐던 그가 마을을, 제주를 희망의 섬으로 만들고 싶은 오기가 발동하고 있었다.

 

그는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제주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그것이었다. 그는 무릎을 쳤다. <글=양영철/ 3편으로 이어집니다>
 

 

 

맥그린치 신부는? = 1928년 남아일랜드의 레터켄에서 태어났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사제로 1954년 제주로 부임한 후 지금까지 60년간 제주근대화·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성당을 세운 뒤 수직물회사를 만들고, 4H클럽을 만들어 청년들을 교육했다. 신용협동조합을 창립, 경제적 자립의 토대를 만들었고, 양과 돼지 사육으로 시작된 성이시돌 목장은 제주축산업의 기초가 됐다. 농업기술연수원을 설립하고 우유·치즈·배합사료공장을 처음 제주에 만든 것도 그다. 그는 그 수익금으로 양로원·요양원·병원·호스피스복지원과 어린이집·유치원을 세워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그 공로로 5·16민족상, 막사이사이상, 대한민국 석탑산업 훈장 등을 받았고 1973년 명예 제주도민이 돼 ‘임피제’라는 한국명을 쓰기 시작했다.

 

 

 

 

양영철 교수는?

 

=제주대 행정학과를 나와 서울대와 건국대에서 행정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내생적 지역개발에 관한 연구 .” 맥그린치 신부의 제주근대화 모델을 이론적으로 살핀 저술이다. 현재 한국지방자치학회 회장,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및 제2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조선말 ‘의녀’로 불리는 김만덕 기념사업회 기획총괄위원장이면서 ‘나비박사’로 알려진 석주명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자치경찰 탄생의 이론적 산파 역을 한 게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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