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룡이 때를 만나지 못하면 물고기나 새우 사이에서 몸을 낮추고 후일을 기약해야 하며, 군자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소인배 밑에서 허리를 굽혀 조아려야 한다.”(여몽정(呂蒙正)「파요부(破窯賦)」) 실력과 지위가 자기 발전 상황과 정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자기 실력과 뜻을 효과적으로 숨겨야 한다. ‘도광양회’1하며 기회를 노려야 한다. ‘도(韜)’의 원래 뜻은 칼이나 활의 집이다. 도광양회는 일부러 재능을 숨기는 것이다. 칼끝을 거두어 들여 타인의 이목을 흩어뜨리는 방법이다. 초(楚)나라에 양유기(養由基)2라는 사람이 있었다. 활을 잘 쏘았다. 백보 안에서 버드나무 잎사귀를 맞추면 백발백중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후예(后羿)가 환생했다고 칭송하였다. 그때 그의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양유기에게 말했다. “기왕 그처럼 활을 잘 쏜다면 젊은이에게 재능을 전수해 줄 만하오.” 양유기가 듣고는 언짢아하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비할 데 없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당신은 젊은이에게 전수해 줄만하다고 말하다니. 그렇다면 나를 대신해 한 번 쏴보시오.&r
가식 없는 말을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즐겁지 않거나 타인이 꺼리는 일을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다른 각도에서 완곡하고 함축적이게 얘기를 꺼내어 듣는 사람을 편하게 만든다. 한 번 곱씹게 하여 그 뜻을 이해하게 만든다. 생각하면 할수록 함축된 뜻이 깊어지고 많아지게 한다. 그러면 흡입력이 갈수록 생기고 영향력이 강해진다. 동시에 갈등이 있거나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에게 말하면, 갈등이 완곡한 언어 속에서 자연스레 화력이 약해지고 갈등이 격화되지 않거나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화목하게 된다. 자기의 말을 타인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함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예술이다.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무궁하다.” “남은 뜻은 말하지 않는 가운데에 다 있다.” 중요한 것, 말해야만 하는 부분을 고의로 숨기거나 아니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타인에게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할 수 있다. “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함축은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언어를 부리는 기교를 체현하는 것이다. 구불구불한 작은 길이 한 눈
“약삭빠르게 굴면 제 꾀에 넘어간다.” 똑똑한 체 굴면 오히려 당한다는 속담이다. 사람이 총명하면 적지 않은 편리함이 있다. 그런데 너무 총명하면 다른 사람도 총명함을 가지고 방어하게 된다. 총명한 사람은 이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총명한 사람은 한 번 정도 총명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아니 두 번은 그래도 된다. 하지만 세 번은 총명함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 한 번 총명함을 보이는 것은 계시요, 두 번 총명함을 보이는 것은 교훈이다. 세 번 총명함을 보이면 경계심을 가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교류하는 데에 단순한 사람과 사귀기를 원한다. 단순한 사람과 교류하는 것은 마음이 편하고 자연스러우며 속셈이 없기에 경계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순한 사람이 바보라는 말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속이고 우롱할 수 있다는 말도 아니다. 단순한 사람은 마음이 순수하고 편안하며 담백하다. 단순한 사람도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깊이 생각하며 명확하게 볼 줄 안다. 단순한 사람은 자기 지혜를 더 가치 있고 더 의미 있는 일에 쓴다. 이것이 순자(荀子)가 말한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부드러움이 옥과 같이 완미하고 순수하다.”
교우(交友)는 일생일대의 즐거움이다. 일단 지기(知己)를 만나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아진다. 희망은 좋은 것이지만 방법은 취할 것이 못된다. 도가에서는 말한다. “닭과 개의 소리 서로 들리는 곳에 있을 지라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이 없을 것이다.”(『노자』제80장) 이런 ‘소국과민’ 사상은 극단적이라 취할 것이 못된다. 교우가 좋다하나 너무 친밀해서도 안 된다. 너나없이 친해지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무 친밀해지면 반드시 마찰이 생기고 갈등이 생긴다. 말이 불손해지고 주먹질 발길질이 오가게 될 수도 있다. 과거를 들춰내 약점을 찌르면서 소란스럽고 불안하게 될 수도 있다. 마을에서 잘 지내지 못하는 이웃 관계를 조사해본 결과, 예전에는 조금도 격의 없이 친밀하게 왕래하며 지냈던 사이였다. 그렇기에 친구지간에, 특히 가까운 친구 사이에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 한계를 지켜야 한다.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듯, 조화로운 사귐을 가져야 한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백하고 소인의 교제는 단술처럼 달콤하다.”(『장자·산목(山木)』) 장자가
어리석은 듯 처세하고 지혜롭게 거두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자신이 무능해 자신의 존재를 등한시하게 만들고 중요한 때에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기선을 제압하여야 한다. 구름 속에 갇힌 듯 아리송하게 만들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처세술이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일을 지나치게 따질 필요는 없다. 두리뭉실하게 할 때는 두리뭉실하여야 하고 애매모호할 때는 애매모호하게 지낼 필요도 있다. 당연히 똑똑하게 처리하여야 할 때는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 작은 일에는 애매모호하여도 된다. 약삭빠를 필요가 없다. 중요한 시점에서 큰 지혜를 보여주면 된다. 침묵은 금이다. ‘대지약우’1는 지혜로운 사람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재능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듯 하지만 실제는 충만해 있는 것이다. 실제 세상사를 보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거나 온힘을 다하지 않아도 될 일이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특히 그렇다. 여러 가지가 뒤엉키어 복잡하다. 나무뿌리가 휘감기고 줄기가 뒤얽힌 것처럼 복잡하여 해결하기 곤란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더욱 복잡하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뱀은 머리에서 일곱 치 되는 곳을 쳐야 한다.” 뜻인즉 뱀을 잡자면 뱀의 머리를 치기보다 머리에서 일곱 치 떨어진 곳을 치면 더 치명적이라는 말이다. 또 다른 속담도 있다. “백이면 백 사람 모두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 십인십색이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고 외향적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다. 부드러운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직한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일반 규율로 얘기하자면 강직한 사람은 부드러운 사람에게 정복당하거나 이용당하기 쉽다. 커다란 돌 하나가 면화 덩어리에 떨어지면 면화가 가벼이 품는다. 강함으로 강함은 이기는 것은 양패구상하기 쉽다. ‘사량발천근’1보다 못하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기원전 201년, 유방(劉邦)이 중국 천하를 통일한 이듬해에 큰 공을 세운 무신 20여 명을 봉했다. 공을 세웠지만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밤낮으로 공을 다퉜다. 하루는 유방이 궁전의 높은 누대에 서 있었다. 대소 장수들이 궁중의 모래 위에 앉아 손짓몸짓하며 이러쿵저러쿵 격앙돼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는 장량(張良)에게 물었다.
다음 몇 가지 이야기도 격장지계의 지모를 응용한 것이다. 초(楚) 성왕(成王)은 이미 상신(商臣)1을 태자에 앉혔지만 나중에는 작은아들 공자 직(職)을 앉히려고 생각하였다. 상신은 그 말을 듣고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길이 없어, 자기 사부인 반숭(潘崇)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만 이 일이 사실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겠습니까?” 반숭이 말했다. “태자께서 주연을 베푼 후 초성왕의 누이동생 강천(江芊)을 초대하십시오. 강천과 초성왕은 사이가 좋으니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연회 중에 고의로 강천을 푸대접하십시오. 그러면 진상을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상신은 반숭의 의견대로 행동하니 강천이 실제 노기충천해 말했다. “허! 너, 이 비천한 놈! 어쩐지 그래서 대왕께서 네 태자 자리를 폐하려 하는 거였구나!” 이것이 고의로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 진실을 탐색하는 지략이다. 은산군(陽山君)이 위(衛)나라 재상 자리에 있었을 때였다. 그는 위나라 국군이 자신을 의심한다는 말을 듣고는 일부러 위나라 국군이 총애하는 규수(樛竪)를
격장지계란, 상대 장수의 감정을 결정적으로 자극시켜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계책, 흔히 성격이 급한 적장을 상대로 사용한다. 격장지계를 사용해 사람의 감정이나 심리를 움직이는 것을 ‘반격(反激)’이라 한다. 신호 자극에 따라 일을 진행한다. 사람을 제어 관리하는 계략 수단이다. 격장계(激將計)란, 적의 장수를 분노하게 만드는 전술, 상대방의 약점이나 자존심을 건드려 분노하게 만든 다음 그의 허점을 공략한다는 뜻이다. “청하는 것은 자극하는 것만 못하다,”1 라고 한 속담이 이런 의미다. 격장지계에서 격장하는 수단은 언어가 될 수도 있고 행동도 될 수 있다. 목적은 하나다. 자극해야할 상대를 성내게 만들어 동요시키는 것이다. 그런 동요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일 수도 있고 화를 내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노기충천하게 만들거나 다른 감정을 유발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호기심도 좋고 성냄도 좋고 부끄러운 마음을 들게 만드는 것도 좋다. 그저 상대의 감정을 공략해 허점을 만들어 일을 성사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 오대(五代)시기 남당(南唐, 937~975)의 조왕(趙王) 이덕성(李德誠)2은
안자(晏子)1는 충간을 잘했던 제(齊)나라 대신이다. 안자가 죽은 지 17년 후 제(齊) 경공(景公)은 대부들을 청하여 연회를 베풀었다. 경공이 쏜 화살이 과녁을 벗어났는데도 연회에 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단하다며 환호하였다. 환호를 들은 경공은 얼굴색이 변하며 탄식하고는 활을 옆에 내려놓았다. 때마침 들어오는 현장(弦章)을 보고 경공이 말했다. “현장, 내가 안자를 잃어버리고 지금까지 17년이나 됐는데 여태껏 다른 사람이 내가 잘못한 일에 비판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소. 오늘 내가 활을 쏘아 과녁을 맞히지도 못했는데 그저 저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를 찬미하기에만 급급하구려.” 현장이 말했다. “그것은 대신들의 잘못입니다. 자신의 소양이 높지 않아 국군(國君)의 단점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용기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국군의 존엄을 감히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군께서 마땅히 주의하셔야 할 게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 ‘국군이 좋아하는 의복이 있으면 대신들이 가져와 입힌다. 국군이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면 대신들이 들고 와 바친다’고 하였습니다. 자벌레 같은 벌레는 황색의 먹이를 먹으면 몸이 황색
비판(비평)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하고 완미하게 만드는 좋은 수단이다. 사람을 성공으로 내닫게 하는 층층대이다. 비판하는 말에서 자신의 결점과 오류를 인지하면 자신의 언행, 사상을 고칠 수 있다. 자기 스스로 정확한 처세 방법과 생활 태도를 만들 수 있다. 타인이 자신을 비판하면서 풍자하며 타격을 가했다고 치자. 듣자마자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거나, 우레와 같이 펄쩍 뛰며 노발대발한다면 어떻게 하여도 발전할 수 없다. 옛날에 곽(郭)1나라가 있었다. 곽나라의 국군(國君)이 전란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수레를 몰고 있는 마부에게 말했다. “목이 탄다. 물을 마시고 싶구나.” 마부는 산뜻한 맛이 나는 좋은 술을 바쳤다. 잠시 후 국군이 말했다. “배가 고프구나. 먹을 것이 있으면 좋겠다.” 마부는 또 육포와 건량을 올렸다. 곽나라 국군이 물었다. “어떻게 그대가 이처럼 모든 걸 준비했는가?” 마부가 답했다. “제가 저장해 두었던 것입니다.” 국군이 물었다. “어째서 이런 것을 저장해 두었느냐?” 마부가 답했다. “주군께서 도망칠 때 마시고 먹게 하
홍응명(洪應明)은 『채근담(菜根譚)』에서, “덕은 사업의 기초다.” “덕은 재능의 주인이다.” 라고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마땅히 덕성(德性)으로 인생을 도야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고상한 품성으로 고상한 삶을 엮어야 하고 살면서 자연스레 덕성을 화육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고관, 현작 이상의 기질과 문장을 잘 쓰는 재능은 마땅히 덕성으로 도야해 성취하여야 한다. 이 방면의 기초가 보증되어야만 두 번째 방면, 즉 자기 덕성으로 다른 사람을 감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감화는 사람에 따라, 만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홍응명은 구체적으로 4가지를 나열하였다. 첫째, 속이는 사람을 만나면, 성실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감동시켜야 한다. 둘째, 잔악하고 포악한 사람을 만나면, 상서롭고 화목한 마음으로 감화시켜야 한다. 셋째, 간사하고 불공정한 사람을 만나면, 사람이 사람 되는 명예, 절조를 가지고 격려하여야 한다. 넷째, 기개가 너무 격앙되는 편파적인 사람을 만나면, 도덕의식을 가지고 감정과 행위로 격앙된 의기를 풀어야한다. 결국, 사람과 교제할 때에는 덕으로 남을 따르게 하여야 한다.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지출이 있어야 수입이 있다. 보답 없는 지출도 없고 지출 없는 보답도 없다. 주는 게 있어야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지출이 많으면 얻는 수입도 많다. 타인이 자신에게 주기만을 바란다면 얻을 수 있는 원천(源泉)은 결국 고갈할 수밖에 없다. 춘추시대 말기에 제(齊)나라 국군은 황음무도하였다. 가렴주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나라 귀족 전성자(田成子)1가 그 꼴을 보다 못해 자기 부하에게 말했다. “궁실이 가혹하게 빼앗는 수단으로 적지 않은 재부를 얻는다. 그것은 ‘얻는 것이 버리는 것과 같다.’ 창고는 가득 찰 수 있으나 국가는 안정되지 못한다. 결국에는 남에게 좋은 일만 해주는 ‘헛일’일 따름이다.” 그러면서 전성자는 크기가 다른 되를 제작해 자신의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에게 빌려주었다. 큰 되로 곡식을 주고 작은 되로 받아들여, “백성에게 혜택을 주었다.” 그러자 제나라 백성은 왕실에는 충성하지 않고 전성자에게 의탁하면서 일시에, “흐르는 물처럼 백성이 귀의하였다.” 전성자가 큰 되로 빌려주고 작은 되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