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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브이 포 벤데타 (9)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래 어느날’ 영국은 극악한 ‘전체주의 국가’가 돼 있다고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영화 속 영국 시민들의 일상은 일견 자유롭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시민들은 깨끗하고 질서 잡힌 런던 거리를 자유롭게 왕래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독재자 ‘슈틀러’가 장악한 영국은 평온하다. 노숙자는 없고 쓰레기도 없다. 너절한 광고 전단도 없다. 시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무장경찰이나 계엄령 치하와 같은 탱크도 보이지 않지만 질서정연하다. 시민들은 카페와 식당에서 자유롭게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눈다. 또한 자유롭게 TV를 시청한다. 히틀러나 스탈린이 그토록 꿈꿨던 ‘전체주의 지상낙원’이 마침내 슈틀러 총통이 지배하는 영국에서 실현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평온해 보이는 거리 곳곳에는 ‘핑거맨(fingerman)’이라고 불리는 사복 비밀경찰들이 섞여 있다. 카페나 식당에도 어느 자리엔가 섞여서 태연하게 식사를 하면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을 터다. 언제든지 불온한 대화를 나누는 시민들을 발견하면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뽑아낼 준비가 돼 있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시청하는 TV는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만 송출된다. 시민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이다. 카페 TV에 나온 슈틀러 총통이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자화자찬하는 열변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민들은 말없이 커피만 마신다. 참으로 숙련된 ‘할말하않’의 표정들이다. 이 카페의 시민들이 자유로운 상태인지 자유를 구속당한 상태인지 조금 헷갈린다.

결국 슈틀러 총통과 집권 노스파이어당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면 모든 시민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카페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슈틀러 총통과 노스파이어당을 욕하지 않는 한 느긋하고 자유롭게 커피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반대 상황이라면 모든 게 달라진다. 여주인공 이비(Evey)는 연인과의 밀회를 위해 ‘야간통행금지법’을 위반한다. 핑거맨들에게 적발된 이비의 인생은 송두리째 날아간다.

사랑할 자유는 있지만 동성끼리 사랑할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동성애 범죄’를 저지른 한 젊은 여자는 지하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슈틀러와 노스파이어당을 욕할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생방송에 출연해서 슈틀러를 조롱한 언론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처단된다. ‘종교의 자유’도 보장된다. 그러나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종교는 기독교뿐이다. 이슬람교를 믿는다면 그것은 곧 범죄행위가 된다. 

슈틀러가 만든 이런저런 법과 질서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모범시민’들은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 학교에선 모범생, 군대에선 모범병사, 심지어 교도소에선 모범수만 쥐어 터지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 ‘슬기로운 감방생활’이다.

그것이 아무리 제한적이고 부당한 것이라 해도 ‘기관’이 허락하는 자유만 누리겠다고 받아들이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가 아닌, 허용된 것만 할 수 있는 ‘소극적 자유’인 셈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유난히 자유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듯하다. 누가 그것을 그리도 정성스럽게 세었는지, 이번 광복절 대통령 축사에선 자유라는 단어가 무려 36번이나 반복돼 화제다. 

자유란 분명 소중하고 긍정적인 가치다. 그런데 새 대통령과 새 정부가 자유를 더욱 확대하고 확실하게 보장하겠다고 하자 일부에선 왜 그리 찝찝해하는 것일까.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적극적 자유’란 사실 꿈일 뿐이다. 자유란 항상 법으로 그 한계를 정한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보장되는 자유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할지도 법이 정한다. 자유를 강조하겠다는 새 정부를 향해 많은 사람이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인 듯하다. 결국 어떤 ‘법 원칙’ 아래에서 자유를 확대하고 더욱 확실하게 하겠다는 것인지를 둘러싼 우려다. 

사실 ‘자유의 보장’이란 ‘제로섬 게임’이다. 특정 집단, 특정 계층의 자유를 확대하면 또 다른 계층과 집단의 자유는 어쩔 수 없이 축소된다. 학생의 자유를 넓히면, 교사는 죽을 맛이 된다. 기업의 자유를 확대하면 노동자의 자유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법 적용의 변화에 따라 누군가는 ‘슬기로운 감방생활’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새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라는 게 혹시 ‘선택적 자유의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는 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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