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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브이 포 벤데타 (5)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 어느날 인류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핵전쟁이 터지고야 만다. 용케 핵전쟁의 재앙을 피해간 영국은 아수라장이 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통제사회를 택한다. 과거의 망령으로 봉인했던 히틀러의 파시즘이 부활한다.

 

일당 독재 체제는 모든 민주적 가치를 폐기처분하거나 창고 속에 처박는다. 권력을 독점한 일당은 국민들의 총화단결을 외치고, 이를 해치는 모든 개인적인 소망과 욕구는 철저하게 매도한다.

개인적 욕구를 버리지 못하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살벌한 강제수용소뿐이다. TV를 켜기만 하면 ‘위대한 지도자’ 슈틀러와 그의 나팔수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단결과 질서를 울부짖는다. ‘국가와 전체’는 선(善)이고, 개인과 다양성은 악(惡)이다.

‘브이 포 벤데타’는 분명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 속 모습이 왠지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는 낯설어야 마땅한데, 그 모습들이 익숙하기만 하다. 분명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상황과 장면일 텐데, 언젠가 어디에선가 경험했던 것 같은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꿈속에서 봤나 싶은 ‘데자뷔()’의 느낌이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들은 숱하다. 지도자 슈틀러와 그의 집권당 ‘노스파이어’는 국민들에게 ‘법치’를 강조한다. 그들이 정한 ‘법’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가혹한 처벌이 기다린다. 노스파이어당이 내거는 가치는 ‘기독 파시즘(Christian Fascist)’이다. 조금은 해괴하게 느껴지는 조합이긴 하지만, ‘기독 민주주의’도 있고 ‘기독 사회주의’도 있으니 기독 파시스트가 안 된다는 법도 없겠다. 
 

기독 파시스트당인 노스파이어는 기독교를 앞세운 정당답게 ‘국민 사랑’을 내걸고 있지만 하는 짓은 국민을 ‘개돼지’로 여긴다. 국민 사랑이 아니라 ‘가축 사랑’인 셈이다. 기독교 정당답게 당연히 마약과 동성애에 치를 떤다.

정권의 나팔수 루이 프로테로는 방송에 나와 국민들에게 마약에 손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마약의 쾌락에 몸을 맡긴다, 종교적 권력자인 주교는 소아성애(小兒性愛)를 탐닉한다. ‘너희들의 마약과 소아성애는 범죄지만 나의 마약과 소아성애는 위안과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야간 통행금지령을 어긴 소시민 이비(나탈리 포트먼)는 ‘핑거맨(Fingermen)’이라고 불리는 사복경찰에게 걸린다.이 너절한 경찰들은 젊은 처자 이비에게 통행금지법 위반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성상납을 요구한다. 엄격한 법치의 대상은 일반 국민이지 법을 집행하는 이들은 모두 법치에 바깥에 서 있다.

지도자 슈틀러는 국민들의 잘못엔 엄중하지만 집권세력의 온갖 불법, 탈법, 위법엔 관대하다. 정권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모두 눈감아줄 정도다. 영화 속 이 모습 또한 ‘미래’임에 분명한데, 왠지 언젠가 어디에선가 많이 봐왔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듯해서 당황스럽다.

영국과 미국이 합작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보면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당황스럽다. 영국과 미국의 관객들에겐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모습일 수 있겠지만, 어쩐지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오래된 미래’ 같기도 하다. 
 

디스토피아 미래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 우리들 기억 속에는 무척이나 친숙하다. 30㎝짜리 자를 들고 다니며 거리 속 여자의 치마길이와 남자의 머리길이를 꼼꼼히 챙기던 경찰도 경험했고, 정권의 편에 서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경찰과 국군도 경험했다. ‘삼청교육대’도 경험했고, 나팔수들의 ‘땡전뉴스’라는 것도 경험했다. 영화가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이 우리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경험한 ‘오래된 미래’인 셈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암담한 미래가 우리사회의 과거 모습만을 기억나게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더욱 딱한 일은 영화 속 미래권력자들의 모습이 우리사회 권력자의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영화 속 우울한 미래의 모습이 우리에겐 익숙한 ‘오래된 미래’이면서 ‘오래된 현재’이기도 하다.

참으로 변하지 않는다. 아마 우리는 이미 디스토피아 시대를 살았고 현재도 디스토피아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디스토피아를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 이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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