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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의 [제주역사나들이](51) ... 12차 고성.수산 탐방코스 (2)

■서문

 

 

 

서문(추정)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고 정의현성 복원 및 활용 방안 수립연구 용역'(이하 용역보고서)에 의하면 위의 사진에 표기된 곳이다.

 

 

서문(추정)으로 향하는 길 끝에 담쟁이와 온갖 덩굴로 뒤덮인 돌담이 보인다. 과수원의 경계이기도 하지만 그 과수원조차 버려져 있고 잡초가 무성해 성곽의 모습은 잡목더미 속에 묻혀 있어 온전히 볼 수가 없어 아쉽다.

 

다만 필자가 1914년 원지적도 및 현재의 상황을 볼때 서문(추정) 밖으로 이어진 길이 없다. 심지어 1914년 지적도에는 서문(추정)으로 향한 길조차 중간에 끊겨있다. 따라서 원래 서문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성문이 있었다면 당연히 드나드는 길이 있었을테고 그 길은 웬만하면 남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레었다. 고성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전까지는 그저 상상속의 성이었다. 이미 다양한 자료와 선행연구들이 있었음에도 아무생각이 없었던 나의 무지함을 반성할 따름이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남문터

 

 

남문터 남쪽 동네 지명이 '남문통'이고 이 동네를 감싸고 있는 길이 전형적인 성굽길의 형태이다.

 

애초에 성을 축조할 때 진입로도 같이 계획했다는 증거이다.

 

그런 연유로 이곳이 남문터가 확실하다.

 

남문통에는 군위오씨 집안이 살았다고 한다.

 

■ 잔존 성곽 구간(고성리 1400-5번지일대)

 

 

LH공사가 2007년에 사업승인을 받고 우여곡절 끝에 12년만에 아파트 공사를 진행중이다. 2004년에 문화예술재단에서 수행한 '비지정문화재 조사보고서' 에서 성곽의 보존과 문화재지정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은 사업승인을 내주었다. 그때에도 성곽의 존재는 뚜렷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성곽을 보존하는 조건으로 설계변경을 하여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346세대가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조형물처럼 쓸쓸히 묻혀질 고성의 600년 세월이 허무하기만 하다. 원형을 복원한답시고 쓸데없이 손대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흉내만 낸 박제품을 만드느니 비록 원형은 훼손되었지만 세월의 흔적 그대로 살아있는 지금의 모습으로 남겨두란 뜻이다.

 

■송두옥(1850~1922)

 

지난번 종달리편에 소개한 채구석과 함께 구한말 제주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이 분은 당대에 제주 최고의 갑부이자 무관으로 제주현감, 대정군수, 정의군수를 지냈다. 사재를 털어 여러번 구휼미를 내기도 했다. 당시 18척의 선단을 꾸려 무역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담대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제주의 유림을 주름잡기도 했다.

 

[김윤식은 『속음청사』에서 송두옥에 대하여 ‘송대정(宋大靜)은 제주읍 사람으로 나이는 40여세, 너그럽고 후하여 민심을 얻고 있다. 제주 대정 정의 3읍 관(官)을 두루 역임했고 집안이 부유하나 남의 원망을 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출처-고영철,제주환경일보(2017.6.22)

 

당시 제주읍내에 현 동문수산시장 일대(옛 향교전 부지) 약 3500평을 비롯해서 도내 곳곳에 수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당대 최고 부자였다.

 

 

송두옥 이분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고성 동문 밖 논이었던 광활한 토지의 소유주였기 때문이다. 1914년 지적원도를 보면 지금 LH공사가 진행하는 아파트부지의 대부분과 인접한 저류지(과거 논)가 모두 그 분의 소유였다. 동(東)물골른밧이라 부르던 곳이다. 제주어로 동쪽에 물이 고인 밭이라는 뜻이다. 물론 방향의 기준은 고성이다. 특이한 점은 답(畓,논)은 소유했으되 전(田,밭)은 소유하지 않은 점이다.

 

동갑내기이고 역시 대정군수를 지냈던 채구석도 종달리에서 바다를 매립하여 답(畓,논)을 소유하지 않았던가.

 

 

탐라순력도에서도 고성을 바닷가와 인접해 그려 놓았다. 그렇다면 이곳은 매립지임이 분명해 보인다.

 

당대에 대정군수도 같이 역임한 동갑내기 인물인 채구석을 몰랐을리 없고 오히려 친구로 지냈을 것이다. 채구석이 종달리 지미봉 아래 바다를 메웠다면 송두옥은 고성 동쪽 바다를 메우고 논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고성을 허물고 그 돌들을 가져다 쓴건 아닐까.

 

 

아파트 기초공사 현장에서 파내 쌓인 돌들과 가득 고인 물들이 그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채구석과 송두옥의 논들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갈대습지로 변해버린 점도 똑 같다.

 

두 양반이 매립사업 실패 후 술 한상 차려놓고 마주했으리라 상상해 본다. 서로 탓을 하든 위로를 하든.

 

아파트 공사는 기초공사에 꽤 애를 먹을것 같다. 계속 물이 나오고 지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요즘 건설기술로 안되는게 없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분양가에 반영될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오현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육군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 주택부문에서 일했다.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공부를 더 한 뒤 에이스케이 건축 대표이사를 거쳐 제주로 귀향, 현재 본향건축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대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시공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고향 제주의 벗들과 제주의 역사공부를 곁들여 돌담·밭담·자연의 숨결을 더듬고자 ‘역사나들이’ 기행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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