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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의 [제주역사나들이](52) ... 12차 고성.수산 탐방코스 (3)

■동문터

 

 

동문터 역시 남문과 마찬가지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폐성된지 거의 600년이 되었으니 성문은 진작에 없어지고 길만 남았을거다. 성곽은 야금야금 허물어져 갔을 것이고.

 

남문과 달리 동문밖에는 성굽길이 S자형태로 나 있지 않다. 송두옥의 논이 매립지였다면 동문 밖은 나오자 마자 바다이기 때문에 S자 성굽길을 만들 수도, 만들 이유도 없었으리라 짐작한다.

 

 

동문밖의 옛길은 오조리로 이어진다.

 

■원터(院-)

 

 

성안길을 따라 원터가는 길목은 돌담과 귤밭, 낮은 지붕들의 조화가 제주 옛 마을 원풍경의 극치를 보여준다. 감히 한 폭의 그림으로도 담아 낼 수 없다. 작위적으로 복원된 민속마을 풍경과는 비교할 수 없다. 세월을 담아내고 삶이 그려낸 살아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만난건 걷는자만의 특권이다.

 

인위적인 복원 보다는 보존이 더 앞선 가치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고정의현성 용역보고서에 의하면 '성산읍 고성리 묵은성의 성안동네 북성 안쪽(고성리 1360-2번지)에 있는 터를 이른다. 정의현성을 쌓은 뒤에 현감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확한 자료를 찾아보지 못했지만 이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보고서에도 표기되어 있는 원터의 원(院)이 의미하는 뜻은 조선시대 관원들이 공무를 다닐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 노원구에는 노원(蘆院)이 있었고, 전국 각지에 원이 있던 자리에 수많은 '원터' 또는 '원터마을'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

 

고성이 약 7년 밖에 기능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감이 살았던 곳이라기 보다는 폐성 후에 관리들의 출장 숙소로서의 기능을 했던 원(院)이 오랫동안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감의 숙소였던 곳이 폐성되면서 그 집이 원(院)으로 용도가 변경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개자리동산

 

성안동네 고성리 1349번지 바로 남쪽 삼거리 일대이다.

 

 

지명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삼거리 한가운데 오래된 퐁낭이 있고 쉼터를 만들었다. 고즈넉한 풍광이 성안의 정취를 잘 담아내는 장소이다.

 

잠시 앉아 봄 햇살을 받으며 성안사람이 되어본다.

 

■고성북측성곽

 

원터 옆으로 샛길로 들어서니 과수원이 나온다. 북측 성곽 흔적이 혹시 있을까 하여 과수원을 통과해 50미터정도 들어가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베일을 벗듯 600년을 지켜온 고성의 자태가 드러났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발견한 이와 비견할 순 없겠지만, 거의 온전히 남아 있는 성곽을 보는 순간의 전율은 가보지 않은 이는 모를 것이다.

 

 

 

전술한대로 2004년 문화예술재단에서 수행한 '비지정문화재 조사보고서'와 2017년 ' 고정의현성 복원 및 활용 방안 수립연구 용역'보고서의 존재를 몰랐던 필자에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성곽의 바깥에서 보니 높이가 5미터 이상이 된다. 성의 웅장한 자태는 성밖에서 더 잘 드러나 있었다. 기단폭이 10미터나 되는 구간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제주성의 자태가 이랬을 것이다. 오현단의 성지나 성읍 정의현성처럼 박제로 복원된 성의 모습이 아니라 600년을 지켜온 원래 그 성이다.

 

 

고성이 아직도 문화재로 지정이 되지 않은 사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제주도의 방어유적을 3성 9진 25봉수 38연대로 국한해서 그곳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인가. 7년만에 폐성이 된것도 서러운데 사람들은 아예 몰라준다. 사람들이 외면한 까닭에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하물며 조선시대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비석도 문화재로 지정하는데 이건 아니다.

 

그간 고성의 존재를 몰랐거나, 알았어도 그 가치를 몰랐거나, 가치를 알았어도 지정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서야 나온 용역보고서가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뒤늦게라도 문화재로 등록되어 잘 보존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단 누누히 얘기하지만 섣부른 복원은 제발 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곽을 감싼 덩쿨도 웬만하면 그대로 놔두자. 무너진 곳은 무너진대로 놔두자. 그게 고성만이 가진 매력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문화재나 고건축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조선초기 축성의 공법과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학술적으로도 굉장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성리엔 문화재가 딱 하나 있다. 신양 섭지코지에 위치한 협자연대이다. 제주도 기념물 제23-2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름 보존상태가 좋아 연대의 원형이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협자연대와 더불어 조속히 고성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고성의 성곽을 발견(?)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유채로 오인되어 역시 존재가 서러운 배추꽃 내음을 맡으며 걸음을 옮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오현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육군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 주택부문에서 일했다.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공부를 더 한 뒤 에이스케이 건축 대표이사를 거쳐 제주로 귀향, 현재 본향건축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대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시공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고향 제주의 벗들과 제주의 역사공부를 곁들여 돌담·밭담·자연의 숨결을 더듬고자 ‘역사나들이’ 기행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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