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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공자 뜻 찾기 ... 50에 이르러 다시 생각하는 성찰(6)

나이 50을 일컫는 지천명(知天命). 제주의 도지사도 그렇거니와 소위 386세력으로 불리던 이들이 이제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공자의 뜻대로라면 천명을 알 나이다. 하지만 그 천명(天命)은 또 무언지 도통 철학적 의문으로 다가오는 시기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다시 지천명의 세상을 돌아봤다. 스스로가 이른 나이에 대한 자아성찰적 고심과 고민이다. 10여차례에 걸쳐 ‘지천명’을 풀이한다. /편집자 주

 

 

『주역』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樂天知命,故不憂.”(『易·系辭上』)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우주와 합일되어 생명의 가치를 아는 까닭에 근심이 없다”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자 그대로 “하늘을 즐기고 명(命)을 아는 까닭에 걱정이 없다”라고 풀이를 하면 된다. 이런 관점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었으니 성인 중의 성인인 공자도 ‘천(天)’과 ‘명(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밖에. 사실 공자도 조짐[징조(徵兆)]를 믿었던 듯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다. 내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하였다.”(子曰:甚矣,吾衰也.久矣,吾不復夢見周公)(「述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봉황새가 오지 않으며 황하에서 하도가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났구나!”(子曰:鳳鳥不至,河不出圖,吾已矣夫!)(「子罕」)

 

사실 공자는 "주례가 모두 노나라에 있는(周禮盡在魯矣)”(『左傳·昭公二年』) 사회배경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소년시기에 ‘예(禮)’에 대해 특히 흥미를 가졌다. 바로

 

“공자는 어려서 장난할 때에 항상 조두(俎豆)를 진설하고 예를 행하는 용모를 베풀었다.”(孔子爲兒嬉戱,常陳俎豆,設禮容)(『史記·孔子世家』)

 

고 하였는바, 이는 당시 사회의 종교적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란 무엇인가? 바로 종교의식이다. ‘예(禮)’의 한자 본의는

 

“예(禮)는 밟는다는 뜻이다. 신을 섬겨 복을 받는 것이다.”(禮,履也.所以事神致福也)(『說文解字』)

 

라고 돼있다. 앞서 말했던 바대로 공자가 종교적 분위기가 농후했던 사회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에 ‘하늘’이나 ‘귀신’등을 알게 된 것은 당연하다. 이는 공자의 언행에서 실증할 수 있다. 바로 공자가 ‘주례(周禮)’를 무척 추숭했다는 점(공자가 직접 정리했다고도 하지만 후대의 기록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이다. 이 기틀이 바로 ‘하늘을 공경하고 귀신을 섬기는(敬天事鬼神)’ 종교의식이다. ‘예’와 종교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대에는 종교와 정치는 긴밀하게 엮어져 있었다. 후인들이 ‘예’를 가지고 공자의 정치론과 도덕론만 얘기하는 것은 지나치다.

 

공자는 자연의 이상 현상과 자연재해 등은 사람이 알 수 있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그런 의미는 ‘하늘’에서 온다고 믿었다고 추론된다. 공자가 썼다고 전해지는 『춘추(春秋)』에서 자연현상과 자연재해를 중시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신’이나 ‘하늘’과 관계는 적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신이나 하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고 그 관계가 무엇인지 확증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바로 여기에 공자의 진솔함이 있다.

 

 

 

 

 

이런 점에서 어떤 면으로는 공자가 ‘천(天)’과 ‘명(命)’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바로 ‘천(天)’의 계시는 당사자에게 주는 것이지 보편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天)’은 보편적 의미의 성성(聖性)이 존재하는바 사람에게 여러 가지 계시를 내리고 규칙이 존재하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부여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각의 ‘명’이 있고 사람마다 다른 ‘성(性)’이 있는 것이다. ‘명(命)’이란 곧 ‘천(天)’이 사람에게 부여한 각각의 규정인 셈이다.

 

사실 ‘명(命)’이란 글자에는 ‘정(定, 정해지다)’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자하가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생에는 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있다 하였다.”(子夏曰:商聞之矣,死生有命,富貴在天)(「顔淵」)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가 장차 행해지는 것도 명(命)이고 도가 장차 폐해지는 것도 명(命)이다.”(道之將行也,命也.道之將亡也,命也)(「憲問」)

 

에서 알 수 있다. 이 말속의 ‘명(命)’은 ‘천명(天命)’의 뜻이다. 바로 ‘하늘’에 적어도 ‘정해진(定)’ 것이 포함돼있다. 결코 ‘수명(壽命)’이나 ‘수명(隨命)’이란 뜻은 아닌 것이다. 이는 후대에 나온 개념이라 보면 된다. 그리고 공자의 ‘명(命)’은 ‘두려워(畏)해야’하고 ‘알 수(知)’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대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명(命)’을 어떻게 봤을까? 두 가지로, 하나는 ‘운명’이요 다른 하나는 ‘사명’이다.

 

‘운명’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결정을 의미하는 말이다. 숙명과 거의 같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가 지배를 받는 것이라 생각해보자. 그럼 지배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초인간적인 힘이거나, 또는 그 힘에 의하여 신상에 닥치는 길흉화복이다. 이런 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고, 신앙하는 것으로서 예로부터 신화(神話)나 종교, 철학사상에 나타난다. 운명관에는 형이상학적 경향이 강하다. 인도의 인과응보에 대한 사상처럼 종교적, 도덕적 요소를 포함한 것이 있으나 확실하게 구별할 수는 없다. 인간의 운명을 예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신앙이다.

 

운명은 결정된 것이라 보는 것이 바로 결정론(決定論, determinism)이다. 인간의 행위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연이나 선택의 자유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인과관계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떤 형태로든 원래 결정돼 있다고. 결정의 주체가 초자연적인 신인 경우도 있고 자연법칙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적 결정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예정설에는 인간 구제가 원래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세계 및 인간에 관련되는 모든 사항이 숙명에 따라 결정되고,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숙명에 지배되고 있다는 관점이 있다. 바로 숙명론(宿命論, Fatalism)으로 운명론(運命論)이라고도 한다. 종교상의 예정설도 숙명론이며 철학에 보이는 영원회귀설도 같은 형태다.

 

역사적으로 보면 숙명론은 반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배자에 대해 피지배자에게 수동적 태도를 강요하고 굴종할 것만을 요구하여 결국 지배자의 절대 권력을 긍정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현상을 변혁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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