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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공자 뜻 찾기 ... 50에 이르러 다시 생각하는 성찰(4)

나이 50을 일컫는 지천명(知天命). 제주의 도지사도 그렇거니와 소위 386세력으로 불리던 이들이 이제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공자의 뜻대로라면 천명을 알 나이다. 하지만 그 천명(天命)은 또 무언지 도통 철학적 의문으로 다가오는 시기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다시 지천명의 세상을 돌아봤다. 스스로가 이른 나이에 대한 자아성찰적 고심과 고민이다. 10여차례에 걸쳐 ‘지천명’을 풀이한다. /편집자 주
 

전환의 시기에는 인간에게 새로운 대응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중국사상 가장 커다란 변혁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학인(學人, 士)들이 출현하여 종래의 신(神) 중심의 주술적 세계관을 인간 중심의 이성적 세계관으로 대체시키면서 혼란한 시대에 새로이 대응하는 논리와 정신을 모색한다. 이런 과정에서 체계화된 사상이 완성된다.

 

제자백가의 사상은 중국사상사에 기본적인 내용과 골격을 제시하였다. 당시 문제에 대한 대응을 이해하는 데에, 그리고 중국사상 전체의 기본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전제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살았던 공자도 자기 나름대로 논리와 정신에 따라 사회위기에 대응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돼 가는 당시 구조의 변화를 사회적 위기로 여겼다. 질서가 없는 천하는 무도한 것으로 본 것이다.

 

공자는 전통애호(信而好古)(「述而」)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문왕과 주공 등 성인들에 의해 제정된 것으로 보이는, 서주 종법사회의 질서로 돌아간다면 당시의 무질서가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보인다. 그래서 공자는 서주 종법사회의 질서를 규정한 ‘예(禮)’를 중시한다.

 

‘예’는 원래 원시적 종교의례라는 뜻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귀족들 사이의 사회의례, 질서, 문화의식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공자는 “자기를 극복하고 예에 복귀하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顔淵」)라고 하였다. 예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仁)’해야 한다. “사람이 인하지 않으면 예는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人而不仁,如禮何)”(「八佾」)라고 한 것을 보면 전통사회의 이상적인 사회질서(禮)를 회복시키기 위한 도덕적 실천으로 ‘인(仁)’을 선택하였다.

 

이처럼 핵심은 ‘인(仁)’이다. 바로 “남을 사랑하는 것(愛人)”(「顔淵」)이다. 씨족공동체 사회에 남아 있던 인도주의와 박애정신인 셈이다. 사람은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고 여겼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켜서는 안 된다.(己所不欲,勿施於人)”(「顔淵」) “내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서게 하고, 내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己欲立而立人,己欲達而達人)”(「雍也」) 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만나야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공자가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서 ‘인’의 역할을 중시한 것으로 보면, 결국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요소들이 중요하며 결정적인 것임을 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공자가 ‘인’과 같은 도덕적 요소들을 중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도덕적, 정신적 가치를 도외시하고 상호 경쟁적으로 물질적 이익과 욕망을 추구함으로써 이상적인 사회질서인 주례(周禮)가 붕괴됐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심각한 혼란의 요인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통치자들의 윤리적, 도덕적 문제였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기존의 타락한 통치자 대신에 새로운 유형의 통치자인 군자(君子)를 제시하였다. 지적,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인 군자가 지배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무질서의 해결을 위해 공자는 힘에 의한 통치 대신에 덕에 의한 통치의 이념을 내세웠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그대가 정사를 함에 어찌 죽임을 쓴단 말이오? 그대가 선하고자 하면 백성들이 선해질 것이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에 바람이 가해지면 풀은 반드시 쓰러지오.”(子爲政,焉用殺.子欲善,而民善矣.君子之德風,小人之德草,草上[尙]之風,必偃)(「顔淵」)

 

바로 권력이 중심이었던 시대에 공자는 권력보다는 통치자의 덕과 백성의 만족이 정치적 성공의 진정한 척도가 돼야한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공자는 사회적 문제를 인간의 주관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와 동일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늘’보다 ‘사람’에게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공자는 주재자(主宰者)인 ‘하늘’에 대한 믿음이 없었을까? 그의 귀신관(鬼神觀)을 이해하면 답이 나온다.

 

공자가 ‘귀신(鬼神)’에 대해 한 말은 많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의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 지혜라 할 수 있다.”(子曰:務民之義,敬鬼神而远之,可谓知矣)(「雍也」)

 

라는 언급이다. ‘지([知)’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한 내용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공자는 사람이라면 귀신을 멀리해야 하고 귀신을 믿지 말라고 했다하기도 한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았다. 멀리(远)하라고 한 것이다. 확실히 공자가 말한 ‘원지(远之)’란 무슨 뜻인가? 그저 멀리하라 그것이다. 달리 말하면 귀신의 일은 사람과는 멀리 떨어져있는, 알기 어려운 일이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뜻이 아닌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귀신은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기에 우리가 귀신과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할 필요도 없이 이미 멀어진 ‘어떤 것’이란 의미가 아닌가. 그러니 너무 귀신에 대해 집착하거나 말을 한다는 것은 쓸데가 없는 것이라는 의미일 터. 그리고 유명한 말이 있다.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다."(子不語怪力亂神)(「述而」)

 

‘괴력난신’은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지만 ‘괴(怪)’는 괴이(怪異)·괴기(怪奇), ‘력(力)’은 믿을 수 없는 힘이나 폭력, ‘란(亂)’은 질서의 파괴와 문란(紊亂) 혹은 배덕(背德), ‘신(神)’은 괴이한 신이나 신비(神秘)나 귀신(鬼神)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유념해둬야 할 것은 ‘(不语)’란 굳이 “말(語)하지 않았다(不)”는 것이지 자신이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적인 것이 아니기에 현묘함을 논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지 깊이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를 성인이라 하는 게 아닌가? 자공(子贡)도

 

“부자의 문장은 얻어들을 수 있으나 부자께서 성과 천도를 말씀하심은 얻어들을 수 없다.(夫子之文章,可得而聞也.夫子之言性與天道,不可得而聞也)”(「公冶」)

 

라고 감탄하지 않았던가. 주자(朱子)도 “부자의 문장은 날마다 밖으로 드러나 진실로 배우는 자들이 함께 들을 수 있으나, 성과 천도에 이르러서는 드물게 말씀하시어 배우는 자들이 들을 수 없다(固學者所共聞,至於性與天道,則夫子罕言之,而學者有不得聞者)”(『集注』)고 했다. ‘성(性)’과 ‘천도(天道)’는 유교사상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그런데도 말씀을 자주 안 했다. 이유는? ‘귀신’에 대해 말씀하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는 공자가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는 ‘귀신’에 대해 집착하지 말고 사람의 일인 ‘인(仁), 의(義), 예(禮)'를 가까이 하라고 했던 것이 아닌가. 다음 문장을 살펴보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리 있지 아니하다. 사람이 도를 실천한다 하면서 도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는 결코 도를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道不遠人.人之爲道而遠人,不可以爲道)(『中庸』)

 

“사람이 도를 실천한다 하면서 도가 사람에게서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도올의 해석) 그렇다. ‘도불원인(道不远人)’인데 사람은 스스로 도를 멀리하고;‘귀신(鬼神)’은 사람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인데도 사람들은 오히려 귀신을 가까이 하는 것을 안타까워 한 것이 아닐까.

 

공자가 말한 ‘원지(远之)’는 그 당시 사람들이 너무 귀신을 섬기는 일이 많고 귀신에게 화복을 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멀리하라 한 것이리라. 공자의 위대성은 모든 "하늘을 공경하고 귀신을 섬기는(敬天事鬼神)" 것을 반대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공자가 살고 있던 당시에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귀신을 공경한다"는 이 말의 전제는 귀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공경한다"는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공자는 또 제사를 지냄에 있는 것 같이 하라고 했다. 바로

 

"제사를 지내실 적에는 계신 듯이 하셨으며 신에게 제를 지낼 적에는 신이 계신 듯이 하셨다."(祭如在,祭神如神在)(「八佾」)

 

가 그것이다. ‘제(祭)’는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제신(祭神)’은 선조 이외의 외신에게 제사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덧붙여 선조를 제사함은 ‘효(孝)’를 위주로 하고 외신을 제사함은 ‘경(敬)’을 위주로 한다고 했다. 공자의 문인들이 공자께서 제사를 지낼 때 정성스러운 뜻을 기록한 것이라 본다. 여기 ‘여(如)’는 ‘만약’이 아니라 ‘같이’다. 만약이라면 제사를 지내서 무엇을 하랴. 신에게 제사를 지냄에 있어 신이 존재한다고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신의 존재를 긍정한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자로가 말했다. “나는 공자님께 이렇게 들었다. 상례(喪禮)에 있어서는 애도함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기 보다는 예는 부족해도 애도함이 남음이 있는 것만 같지 못하며, 제례(祭禮)에 있어서는 공경함이 부족하고 예가 남음이 있기 보다는 예는 부족해도 공겸함이 있는 것만 같지 못하다.”(子路曰:吾聞諸夫子.喪禮,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祭禮,與其敬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敬有餘也)(『禮记·檀弓上第三』)

 

상례에 있어 예보다는 애도가 중요하고 제례에 있어 형식적 예절보다는 공경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죽은 이를 애도하고 공경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즉 근본이다. 예는 형식이다. 말단인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다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예는 쓰임으로 외재적 형식일 따름이다. 진실 된 ‘공경(敬)’과 ‘정성(诚)’이 바로 내용이다. 형식은 내용을 나타낼 수 있지만 결코 내용을 대체할 수 없다. 진실한 내용인 ‘경’이 없으면 예는 껍데기일 뿐이다.

 

바로 그렇다. ‘공경(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마음에서 온다. 마음은 어떻게 공경스러울 수 있을까? 믿음이 없으면 어찌 공경스러울 수 있으랴. 그렇기에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공자는 춘추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하늘을 공경하고 귀신을 섬기는(敬天事鬼神)’ 환경이 지배적이었기에 귀신을 믿는 것은 정상적이다. 물론 공자는 성인(聖人)이다. 특별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창의적이면서 중국 아니 동북아시아를 관통하는 사상을 가진 위인이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은 귀신을 부정하는 데에 있지 않다. 아니 부정한 적도 없다.

 

“대저 생(生)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죽게 되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간다. 이것을 일컬어 귀(鬼)라고 한다. 그러나 혼기는 하늘로 돌아간다. 이것을 일컬어 신(神)이라 한다. 그러기 때문에 귀와 신을 합하여 같이 제사지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선왕의 가르침의 지극한 것이다.”(夫生必死,死必歸土,此謂鬼;魂氣歸天,此謂神.合鬼與神而享之,敎之至也)(『禮記․祭儀』)

 

물론 이 문장은 『예기(禮記)』에 있는 기록으로 진실로 공자의 말씀이냐 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자가어(孔子家語)』와 중복이 되고 간백 자료로 입증됐다는 연구결과가 있음이니, 설령 공자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공문(孔門)의 공통된 관점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는 ‘유(儒)’의 본래 의미와도 상통한다.

 

‘유(儒)’는 춘추시기 무(巫), 사(史), 축(祝), 복(卜)에서 분화되었고 시서예악(诗书禮樂)에 능통하여 귀족을 위해 일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무(巫)’는 무엇이었을까? 춤을 추며 신(神)을 부르는 사람이었다. 넓은 의미로 제(祭0,) 사(祀), 의(醫), 복(卜), 산(算) 등을 이행하던 직책으로 부락 수령의 고문역할을 했다보면 된다.

 

‘사(史)’는 사관이다. 하지만 고대의 사관은 제사(祭祀), 성력(星歷), 복서(卜筮), 기사(记事) 등을 책임지던 직책이었다.

 

‘축(祝)’은 남무(男巫)라 보면 된다. 혹은 묘(庙)에서 향화(香火)를 관리하던 사람이다. ‘축저(祝咀)’라 하는 것도 있었는데 귀신(鬼神)에게 축(祝)[저(咀)]을 드리면서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게 하는 직업이었다.

 

‘복(卜)’은 점치는 사람이라 이해하면 쉽다. 하지만 청동기시대이전까지 무정제식(武丁祭式)이라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를 주관하는 직책이 복관(卜官)이다. 현재로 비유하자면 박수무당이라고나 할까. 모두 신을 부르거나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직업군이었다.

 

그렇다면 분화되기 이전에 ‘유(儒)’는 무엇을 하는 직업군이었을까? 죽음이란 인류의 모든 관념을 지배하는 개념이다. 옛 중원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해 주의하였고 ‘상장(丧葬)’ 예의를 중시하였다. 이것을 관리하는 직책이 바로 ‘유(儒)’였다. 중국고대사회에 있어 은(殷)대까지 전문적으로 상장(丧葬)을 관리하던 신직(神職)이 그것이다. ‘술사(術士)’라 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중국역사상 통치자들은 미신관(종교관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만큼)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천사귀신(敬天事鬼神)’에서 비롯되어 ‘호도신불(好道信佛)’까지 중국고대사회에서 귀신을 믿는 풍조의 역사는 유구하다. 중국 전통적 관념에 있어 지식인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유(儒)’ 조차도 신화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후대에 개념의 분화는 있었지만.

 

아무튼 자신은 믿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다. 자신은 믿으면서 타인에게 믿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귀신의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고 싶지 않은(혹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 말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기에

 

계로가 귀신 섬김을 묻자, 공자께서 “산 사람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하셨다.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하자, 공자께서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하셨다.(季路問事鬼神,子曰:未能事人,焉能事鬼.敢問死,曰:未知生,焉知死)(『先進』)

 

라고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공자가 말하는 것은 바로 ‘삶’의 철학이요, ‘생’에 대한 사상이다. 그리고 결코 ‘죽음’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죽음이란 삶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삶’은 가까이 있기에 스스로 해쳐나갈 수 있지만 ‘죽음’은 우리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것이라 우리 의지대로 풀어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죽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죽음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 않는가. 공자의 생명관의 기틀은 ‘삶’, 곧 ‘(生)’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공자는 ‘하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숙고했으면서도 표현을 안 했을 수도 있다. 너무 관념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삶’을 얘기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공자의 여러 가지 언행에 미루어 보면 자신을 알아주는 이 없음에 탄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하늘만이 자신을 알아준다고 탄식(知我者其天乎!)할 정도였다. 심지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등 인물 이상은 높은 것을 말해줄 수 있으나 중인 이하는 높은 것을 말해줄 수 없다.”(子曰:中人以上,可以語上也.中人以下,不可以语上也)(雍也)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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