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제주 하논 분화구를 복원·보전하는 방안이 담긴 발의안을 채택하면서 복원에 대한 논의가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IUCN은 12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WCC(세계자연보전총회) 제6차 회원총회를 열고 '제주 하논분화구 복원·보전'과 '제주도 유네스코 국제보호지역 통합관리 체계 구축' 발의안을 재석한 회원 과반의 지지로 채택했다.
하논 분화구 관련 발의안은 정부기구 찬성 110표·반대 3표·기권 35표, NGO 찬성 494표·반대 9표·기권 37표로 가결됐다.
복원 논의는 제주도와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뤄져 왔으나 서귀포시 호근동 분화구 토지가 대부분 사유재산인데다 1천억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해 어려움을 겪어 왔다.
평범한 분지 같지만 '하논'은 한반도 유일의 마르형(maar) 분화구다.
통상 분화구로 알려져 있는 백두산의 천지 등은 사실은 분화구가 아닌 칼데라 지형이다. 칼데라는 화산 폭발 후 함몰에 의해 생긴 땅이어서 화산이 직접 분출된 분화구와는 엄연히 다르다. 하논 분화구는 마그마와 지하수층이 만나 폭발적인 분출을 일으킨 뒤 생긴 깊은 호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물이 차 있을 때 호수 안에 4개의 작은 언덕이 섬처럼 물 위로 솟아올라 매우 희귀한 경관을 자랑하지만 500여년 전부터 물을 빼버리고 논밭으로 쓰고 있다.
복원이 시작된다면 하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질유산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하논분화구복원범국민추진위원회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하논은 동북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지질유산임에도, 원형이 훼손된 채 오랜 세월 방치되어 왔다"며 "하논 분화구의 복원·보전이야말로 IUCN 등 국제환경기구가 요구하는 지구환경, 기후변화,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기본정신과 ‘자연의 회복력’을 주제로 한 제주WCC 정신에 부합되는 주제다"라며 자연복원과 생태계 보전의 세계적인 시범사례로 복원돼야 한다고 했다.
‘하논 분화구’를 복원시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키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서귀포시와 하논분화구복원범국민추진위원회가 지난 7일 마련한 ‘하논 분화구 복원·보전 및 활용’을 주제로 한 워크숍에서 양영철 제주대 교수(행정학과)는 △하논 분화구 복원에 대한 지원 조례 제정 △하논 복원으로 인해 손해를 입게 되는 토지주 등과의 합의 △12월 대선에 대비한 아젠다(의제) 설정 등을 단기과제로 제시했다.
양 교수는 “이번 WCC를 통해 하논 분화구 복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이를 기반으로 삼아 중·장기 방안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 것”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본의 요시노리 야수다 교수는 “하논 마르를 시추한 결과 950m 깊이에서 다양한 광물과 생물활동 퇴적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마르 퇴적물은 제주도 자연유산 역사뿐만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 지역의 환경역사에 대한 훌륭한 아카이브”라고 평가했다. 야수다 교수는 마르 최적물의 고생태학적 연구를 진행해온 학자다.
폴란드의 미로슬로브 마코호니엔코 교수 역시 “하논 마르는 육지와 담수 생태계 모두 정체되지 않고 시간에 따라 진화한다는 원칙을 잘 나타내고 있다”며 “지질학적 정보는 동아시아지역의 자연 역사 참고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