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인데도 곶자왈 숲은 선선했다. 새 울음소리와 벌레소리, 그리고 고즈넉한 바람 결만 뺨을 스치고 지나갈 뿐 인적이 없다. 그래서 더 고요하고 신비롭다. 숲은 스산하고 오싹할 정도다.
곶자왈이 오히려 취재진의 인기척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제주자연 상태 그 대로의 원시성이 오롯이 살아 숨쉬고 있기에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고 싶지 않은 듯 하다. 그래서인가? 가시나무가 자꾸만 옷자락을 붙잡는다. 영화 '아바타' 의 정글에 들어왔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지난 4일 제주도 곶자왈 도립공원 1호로 지정된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구억·신평 일대 곶자왈을 찾았다.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에 입지하고 있어 인근 청수·산양·저지 곶자왈과 이어져 있다. 숲 마니아들만 찾는다는 제주올레 14-1코스도 이 일대를 지난다. 우마로를 따라 곶자왈 숲길이 나 있다. 탐방하기엔 안성맞춤이다. 곶자왈에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주변 오름 경관이 빼어나다.
숲길에서 벗어나 곶자왈 속으로 들어갔다.
여느 곶자왈처럼 수풀이 우거지고,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클어져 있다. 제주 고유의 천연바위동굴인 '궤'의 흔적도 엿 볼 수 있다. 숲과 습지, 한대와 열대식물이 공존한다.
키가 20m쯤 되는 개가시나무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이다.
참가시나무와 종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와 팽나무, 애덕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분포하고 있다.
고사리도 널려 있다. 그 중 '늦고사리'는 생식엽이 여름철에 나와 '여름꽃 고사리삼'이라고도 한다. 특이한 점은 국내에서는 강원.경기 등 중부지방에 주로 분포하는 온대림 식물이지만 한라산 온대림에선 자생하지 않는다. 유독 곶자왈에만 자라는 특성이 있다.
잣성·숯가마터 등 역사문화 스토리텔링 탐방로로 제격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곶자왈 일대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로는 개가시나무 외에도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조롱이가 서식한다.
천연기념물 323호 황조롱이도 둥지를 틀고 있다. 제주도에만 자생하는 희귀식물인 방울란도 볼 수 있다.
동물류로는 제주도룡뇽, 무당개구리, 참개구리, 유혈목이 등 양서류 4과 5종과 파충류 4과 6종에도 노루, 오소리, 제주족제비, 제주등줄쥐, 관박쥐 등 포유류 4목 4과 6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조류는 직박구리, 뻐꾸기, 멧비둘기, 까마귀, 박새 등 18종이 222개체가 서식한다. 곤충류는 잠자리과와 사마귀과, 귀뚜라미과, 여치과 등 49종이 있다.
과연 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화산지형의 독특한 지질자원도 다수 분포하고 있다.
'숨골'과 '씽크홀' '답답빌레' '봉근물'이 그 것이다.
신평 곶자왈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씽크홀'은 용암이 흐르면서 생성되 동굴이 붕괴돼 만들어진 원형의 함몰지형을 말한다. 둘레 약 20~30m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나와 풍혈 기능을 한다. 숨골 기능을 갖고 있어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지형이다.
'봉근물' 역시 곶자왈 지질 특성으로 인해 많은 양의 강수를 빠른 시간 내에 지하로 이동시키는 숨골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용암이 굳으면서 지면 위로 돌출하거나 연장돼 넓게 분포한 '답답빌레'도 화산지형의 독특한 지질자원이다.
이 곶자왈 일대엔 생태계와 지질자원만 있는 게 아니다.
역사가 담긴 문화경관도 엿볼 수 있다.
구억리 일대엔 4.3유적지도 남아 있다. 4.3 당시 대정면과 한경면 주민들의 은신처 등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철창과 죽창 제조 흔적이 발견돼 아픈 역사를 일깨우게 한다.
제주 돌담으로 쌓은 '잣성'이 원형을 유지한 채 곳곳에 남아 있다.
제주의 잣성은 제주의 선조들이 옛 목마장에 경계용으로 쌓았던 석축이다. 일종의 공간 분할선이자 우마가 넘나들지 못하도록 만든 목축문화유산이다. 외담과 곁담으로 축조돼 있다. 검은 현무암으로 투박하면서도 꾸밈없는 제주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1~1.5m 높이의 잣성에 엉겨붙은 이끼와 빛바랜 색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구억리 곶자왈엔 숯가마터 1기가 원형을 고스란이 간직한 채 남아 있다.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다. 겨울철 숯을 생산하기 위한 장소로 '숯굽궤'라고도 한다.
다리도 발견됐다. 신평리와 인향동 마을 사이에 사람들이 마을과 마을을 왕래하고자 물이 고여 있는 곳에 돌을 넣어서 만든 다리로 '고린달'이라고 불린다.
식물학적 가치와 경관적 가치를 지닌 바로 이 곳,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구억·신평 일대 곶자왈 154만6757㎡(46만7893평)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자연공원은 제주권의 경우 한라산 국립공원, 제주조각·마라해양·성산일출해양·서귀포시립해양·추자·우도해양 도립공원 등 7곳이 지정돼 있다.
보성·구억·신평 일대 곶자왈은 도내 자연공원으로는 8번째, 도립공원으로는 7번째다. 곶자왈 도립공원으로는 1호다. 제주도와 국토해양부 산하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곶자왈공유화재단은 2010년 12월 업무협약을 맺은데 이어 제주곶자왈도립공원 기본계획 수립, 주민공람 및 공청회 개최, 영산강유역환경청 사전환경성검토 협의, 도립공원지정 위한 환경부 협의, 도립공원위원회 심의 등을 추진해 왔다.
곶자왈 보호를 위해 전체 면적의 92.9%를 공원자연보전지구로 지정하고 7.1%는 공원자연환경지구로 지정했다.
도립공원 지정과 함께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다. JDC가 제주국제자유도시 전략프로젝트인 생태공원조성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위한 다양한 사업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관광·개발지향적 사업 중심에서 자연자원 보전을 위한 제주도 자연자원을 활용한 공익적 개발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JDC, 내년까지 탐방로·전망대·스카이워크 등 생태공원 조성
곶자왈생태 도립공원 내에는 기존 우마길과 훼손지를 활용해 탐방로, 휴게쉼터, 탐방 안내소, 곶자왈 전망대, 스카이워크, 주차장을 갖추게 된다.
제주도·JDC·사단법인 곶자왈공유화재단은 2014년까지 65억원을 들여 곶자왈 도립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1단계로 연말까지 곶자왈을 체험하는 길이 6㎞의 탐방로와 쉼터 5개소를 만든다. 내년에는 2단계로 곶자왈 전체 생태경관을 조망하면서 삼림욕을 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와 전망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생태탐방프로그램은 곶자왈공유화재단이 맡는다.
탐방로는 전망대를 출발해 오찬이길~빌레길을 따라 전망대로 돌아오는 A코스(3.5㎞, 70분)와 전망대~오찬이길~한수기길~테우리길~전망대를 순환하는 B코스(3.9㎞, 80분), 전망대~테우리길~빌레길~한수기길~가시낭길~전망대 C 코스(4.9㎞, 100분)로 계획하고 있다. 모든 코스가 곶자왈 숲과 자연학습, 설화와 전설이 깃든 스토리텔링 탐방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A코스의 '오찬이길'은 기존 신평.무릉 올레길과 연계해 신평리 공동목장 관리를 위해 만든 길이다. 개가시나무,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조롱이 등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분포해 있다. '빌레길'은 목장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길이다. 곶자왈에서만 볼 수있는 문화유산인 숯을 구웠던 '숯굽궤'와 우마 급수장이 있는 생태 문화 코스다.
B코스는 생태와 지질을 학습하고 치유명상을 누릴 수 있는 탐방로다. '한수기길'은 한수기오름 입구에서 우마급수장으로 이어진다. '테우리길'은 말테우리가 다니던 잣성을 따라 바람욕과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C코스의 A, B코스를 포함한다. '테우리길'과 '빌레길', '한수기길' 외에 '가시낭길'은 원형 그대로의 곶자왈 특이 지형을 탐방한다. 가시나무가 많아 험난하다. 치유명상·문화유산·생태·지질 학습을 더한 전문가 코스라고 볼 수 있다.
탐방로 모든 코스에 대한 공식 개장은 오는 12월로 예정돼 있다.
주변에 신화역사공원과 항공우주박물관, 영어교육도시가 인접해 있다. 관광지로는 산방산과 오설록 녹차박물관, 유리의성, 가마오름 평화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도 있어 생태공원 입지로는 그만이다.
현재 조성사업을 진행하는 제주곶자왈 도립공원은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WCC)' 개막 2일째인 7일부터 폐막일인 15일까지 일시 개방된다.
JDC는 WCC에 참가하는 전 세계의 환경지도자들에게 제주 곶자왈의 생태·환경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이 기간에 공원 입장을 허용한다.
JDC는 참가자들이 편의를 위해 매일 오후 2시 WCC 주행사장인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공원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탐방 안내도 한다.
도민과 관광객을 위한 곶자왈 탐방 해설은 매일 오전 10시, 오후 2시 2차례 진행한다. 입장료는 무료다.
▲찾아가는 길
평화로~소인국테마파크~동광오거리~오설록녹차박물관~유리의성~신화역사공원 항공우주박물관~평화동~평화박물관 진입로 입구~청수곶자왈 입구~산양곶자왈 입구~저지 서광 면도 개설 구간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凹凸)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숲을 이룬 곳을 이르는 제주 고유어다. 제주만의 지형으로 자연림과 덩굴류가 섞여 식생하는 자연의 보고다. 대정지역에선 '곶', 제주시 지역은 '고지·골밧', 애월지역에선 '수덕·자왈', 남원지역에선 '자월·자왈', 조천지역에선 '숨벌·섬벌', 한림지역에선 '곶자왈' 등으로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식물과 한대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독특한 숲이다. 좁은 지역 내에 다양한 미기후가 발달해 만주 압록강 지역에서 나타나는 북방계 식물뿐만 아니라 서귀포 천지연 등의 난대림에서도 볼 수 있는 남방계 식물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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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공원은?
자연생태계와 수려한 자연경관, 문화유적 등을 보호하고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자연환경의 보전, 국민 여가와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을 기하기 위해 지정한 구역이다.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으로 분류된다. 도립공원으로 지정하려는 경우에는 지정대상 지역의 자연생태계, 생물자원, 경관의 현황·특성, 지형, 토지 이용상황 등 그 지정에 필요한 사항을 조사하는 자연생태계 조사를 시행토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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