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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66) 옛날과 지금의 구걸 양태 ⑩

말을 마치자마자 주머니에서 풀잎을 꺼내 입속에 넣고 씹으면서 두 팔을 벌려 혼자서 동굴 앞을 막아섰다.

 

동굴 속의 바람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윽고 황색 머리에 푸른 몸, 머리에는 짧은 뿔, 사람 넓적다리만한 커다란 뱀이 바람과 함께 동굴 밖으로 나와서는 거지 두목을 보자마자 몸을 휘감았다. 머리를 곧추세우고 숨을 내뿜으니 윙윙 울렸다.

 

거지 두목은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눈을 감고 계속해서 입속에 넣고 씹고 있던 풀의 즙을 내뿜으며 막아섰다. 거대한 뱀은 머리는 밑으로 내렸지만 둘둘 감은 몸에 힘을 더했다.

 

다른 거지들이 풀잎을 건네자 거지 두목은 풀잎을 씹으면서 뱀에게 수결을 해보였다. 거대한 뱀은 다시 머리를 쳐들고 힘을 더 냈으나 거지 두목은 풀의 즙을 내뿜으면서 아랑곳 않고 막아섰다. 뱀은 지쳤는지 다시 머리를 내렸다.

 

그렇게 세 차례를 반복하자 거대한 뱀은 견디지 못하고서 거지 두목의 몸에서 떨어져 꿈틀꿈틀 기어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지 두목과 사왕이 악전고투를 하는 사이에 다른 거지들은 남아있던 뱀들을 모조리 잡아 바구니에 담았다.

 

모두가 기뻐하며 사찰 앞까지 돌아왔을 때 거지 두목의 얼굴이 점점 부어오르더니 얼마 없어 귀와 눈, 입, 코 모두 평평해졌다. 급히 다른 거지들을 불러 한꺼번에 풀잎을 씹어 즙을 얼굴에 뿜게 하였다. 풀의 즙을 뿜으니 얼굴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거지 두목에게 어째서 커다란 뱀은 잡지 않고 동굴 속으로 돌려보냈느냐고 물으니, 별일 아닌 듯 답했다.

 

“뱀의 왕, 사왕이오. 내가 만약 사왕을 죽이면 사방의 사왕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오. 그러면 나 또한 온전치 못하게 되오. 내가 어제 여기에 와서 주술로 뱀을 모았소. 그래서 남산의 뱀들이 오늘 여기에 다 모인 것이오. 이번에 뱀을 모두 잡았으니 이후에 주변 5리 이내에는 5년 동안 뱀의 우환은 없을 것이오. 하지만 나도 몇 년 동안은 여기에 오지 못할 거요. 사왕이 복수하려 할 테니까.”

 

남병(南屛) 효종(曉鐘) 비정(碑亭)의 오른쪽 돌계단에 사람이 앉으려고만 하면 얼굴이 붉게 부어오르고 뼛속까지 농이 앉았다. 거지 두목을 청하여 살펴보게 하였다. 거지 두목이 찬찬히 살펴본 후 말했다.

 

“그 아래 돌 사이에 끼어서 나오지 못하는 독사가 있을 거요. 나오지 못하니 틈새로 독을 뿜어대는 거요. 사람이 그때에 마침 그곳에 앉으니 중독되는 것이오.”

 

돌을 치워서 살펴보니 과연 돌 틈 사이에 뱀 한 마리가 끼어있었다. 다시 돌을 치우니 큰 붕어마냥 돌에 눌려 뱀이 납작하게 되어있었다. 거지 두목이 말했다.

 

“그것은 살무사요. 그곳에서 몸이 나오지 못하고 동굴로 돌아가지도 못했던 거요.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잡혔겠지요.”

 

말을 마치자마자 뱀을 잡아 바구니에 넣었다.

 

사람들이 독사를 잡아 무엇에 쓸 거냐고 물으니 약방에 판다고 답했다. 여러 가지 뱀은 각기 다른 약용 가치가 있었다. 독성이 쌘 뱀일수록 약효도 좋았고 가격도 높았다. 돈 때문에 그렇게 모험하는 것이었다. 사찰 앞에 주민들 모두 거지가 뱀을 잡아주는 은덕에 감격하였다. 돈을 모아 술을 마련해 대접하니 여러 거지들이 환호하며 실컷 마셨다. 그러고서 주머니에서 풀잎을 꺼내 주인에게 사례로 건네면서 말했다.

 

“이 풀로 해독할 수 있소. 뱀에게 물리거나 벌에게 쏘이거나, 심한 정저(疔疽), 독창에 씹어서 바르면 얼마 없어 완쾌되오. 하지만 아무렇게나 남용하지는 마시오.”

 

말을 끝내고서는 뱀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돌아갔다.

 

상술한 부류의 거지는 강호에서 뱀을 부리며 기예를 팔거나 뱀약을 팔면서 구걸하는 거지와는 다른, 실질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부류다. 뱀을 잡아 돈으로 바꿔 생계를 유지하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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