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미2리 경로당 파크 골프 동호회 연습장의 전경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520/art_17471144072568_0d7472.jpg)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를 품은 '올레길 5코스'는 도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표 도보 여행길이다. 남원포구에서 시작해 검은 현무암 절벽과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쇠소깍 다리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제주의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명소로 손꼽힌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길 위에 최근 갈등과 논란의 중심이 된 공간이 있다.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연습장. 바닥에는 정갈하게 깔린 잔디 위로 골프공이 굴러가고, 천막과 철제 펜스가 공의 방향을 막는다. 주변엔 그늘막과 간이 의자도 놓여 있어 운동 후 쉴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한켠엔 '위미2리 경로당 Park Golf 동호회 연습장'이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걸려 있다. 얼핏 보면 마을 공동체가 정식으로 운영하는 체육시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연습장이 놓인 부지는 엄연한 국유지다. '대한민국' 명의로 등기된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1727-1번지, 공유수면·보존녹지지역·매각제한재산 등 중첩된 행위 제한이 적용되는 곳이다.
이 땅을 관리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광주전남지역본부는 <제이누리>의 질의에 "해당 부지에 대한 사용 승인이나 대부계약은 체결된 적 없다"고 공식 답변했다.
결국 이 연습장은 아무런 행정 절차 없이 수년째 국가 땅을 무단 점유해 온 셈이다.
![해당 부지 한켠에는 국유재산을 알리는 표지판과 파크골프장을 알리는 표지판이 같이 설치돼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520/art_17471144093754_09579d.jpg)
현직 위미2리 이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임 이장이 원희룡 전 도지사 시절 마을 행사에서 '노인 복지를 위해 도가 땅을 매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이후 도의회에서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제이누리>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등 관련 기관을 두루 확인한 결과, 그 어떤 행정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 말뿐인 이야기였다.
제주도 체육진흥과 관계자는 "서귀포시 체육진흥과와 공유지 조성 여부를 확인했지만 담당자 모두 '처음 듣는 일'이라고 답했다"며 "현재 부서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팀장님도 해당 사실은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서귀포시 체육진흥과 역시 "행정적으로 예산이 투입된 바도 없고, 관련 협의나 보고가 이뤄진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남원읍 주민자치팀은 "예전부터 시설물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행정 절차로 들어 선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며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즉, 이장이 주장한 '도 매입 추진설'은 사실무근이다. 행정 어디에서도 이 사안이 알려지거나 다뤄진 적조차 없다.
현재 위미2리 경로당을 관리하는 노인회장 A씨도 "지난해부터 회장을 맡아 전임 회장이 조성한 걸 그대로 이어받았을 뿐"이라며 "공식 허가나 신청 절차는 없었고, 도에서 매입한다는 말도 전해 들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요즘은 하루에도 50명 가까운 어르신들이 오신다. 매일 이곳에서 공을 치며 운동하고, 서로 얼굴도 보고 건강도 챙기고 있다. 그런데 최근 캠코에서 원상복구 얘기가 나오고, 민원까지 들어왔다니까 당황스럽다"고 답했다.
![해당 부지 한켠에는 파크골프장 이용객들이 쉴수 있는 그늘막이 설치돼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520/art_17471144066373_445d49.jpg)
연습장을 이용 중인 고령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격앙돼 있다.
한 파크골프 이용자는 "실내 파크골프장은 갑갑해서 못 간다. 여기는 바다도 보고 바람도 맞고, 진짜 기분 좋아진다. 이걸 없앤다는 건 너무하지 않나. 여기가 북한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이용자는 "우리가 매일 쓰니까 풀도 깎고, 바닥도 정리하고 깔끔하게 유지하고 있다"며 "정작 국유지를 맡고 있는 캠코는 그동안 뭐 했나. 수풀만 무성하게 방치돼 있던 걸 우리가 이렇게 가꿨다"고 반박했다.
이곳이 논란의 중심이 된 배경엔 올레길 5코스가 자리한다. 공식 코스는 원래 해안을 따라 곧장 이어지는 경로지만 연습장이 조성되며 이용자들이 우회로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골프장 이용객들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불편하다며 사유지를 통해 돌아가게 안내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었다.
올레길을 걷던 도민 정모씨(33)는 "원래 이 길은 제주에서 바다 풍경이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길"이라며 "지금은 천막과 철망에 다 가려져 있고, 길도 중간에 막혀 있다. 정식 도보길 위에 아무나 시설을 무단으로 설치해도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서울에서 온 관광객 김모씨(22)는 "올레길은 바다를 보며 걷는 게 매력인데 여기만 오면 시야가 가려진다. 국유재산 안내 표지판과 파크골프장 표지판이 혼용돼 있어서 정식 시설인지도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마을 파크골프장 입구에는 올레길을 알리는 리본이 묶여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520/art_17471144117008_efec49.jpg)
파크골프는 제주 고령층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운동이다. 그러나 최근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공공재산 위에 무단으로 설치되는 '사적 연습장' 형태가 늘고 있다.
경남 창원시 내서읍의 한 완충녹지에는 창원시파크골프협회 소속 동호인들이 무단으로 파크골프장을 조성해 5년 넘게 사용해왔다. 이들은 한국도로공사가 관리하는 국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었다.
해당 부지는 체육시설 설치가 불가능한 '완충녹지'로 지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창원시는 이곳에 천연 잔디를 깔아주는 등 지원을 했고, 지역 국회의원은 도로공사와 협의를 통해 사용을 도왔다.
캠코 관계자는 "이 땅은 사적으로 매입하거나 거래할 수 없는 국유지다"며 "마을이 도에서 '사준다'거나 '매입해준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해당 부지는 오로지 공공 목적에 따라 제한적 허가 또는 대부만 가능한 재산이다"고 밝혔다.
'도에서 매입해주겠다', '도지사와 얘기했다', '도의회에서 논의 중이다'라는 말들은 있었지만 그 어떤 주장도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제주도 공유재산심의회 회의록, 서귀포시 예산 편성 문서, 도의회 회의 자료, 캠코 협의서 모두에서 관련 내용은 단 한 줄도 확인되지 않았다.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위한 공간, 고령자의 여가 활동, 지역의 커뮤니티 시설은 분명 소중하다. 그러나 그 어떤 공익도 '절차 없는 점유'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방치된 국유지보다 주민이 쓴 게 낫다'는 인식은 모든 공공질서를 허무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1727-1번지에 설치됀 한국자산관리공사 광주전남지역본부의 표지 국유재산 알림 표지판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520/art_17471144085153_d4358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