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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돈 룩 업(11) 모두 정치 참여하는 민주주의
자칫 중우정치로 변질할 우려 ... 플라톤 2500년 전 이미 예견
정권에 권력 준 건 결국 국민 ... 정부 수준, 결국 국민 나름일까

영화 속에서 지구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는 직경 10㎞ 초거대혜성 ‘디비아스키’를 둘러싸고 미국사회는 양분되고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국론이 분열할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도 디비아스키 못지않은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둘러싸고도 국론이 일치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미국도 중국 두들겨 패고 이슬람 테러리스트 때려잡는 일에만 국론 일치가 되는 나라다.

 

 

직경 10㎞짜리 혜성이라면 8000만년 전 지구에 내리꽂혀 공룡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 80%를 절멸시켰다는 그 전설적인 혜성의 크기다. 이번에도 바퀴벌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끝장날 것이 확실한데, 무지·무능·무도의 화신과 같은 미국의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에 따른 ‘수작질’로 일관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자유민주주의 카멜롯(Camelot)’이라는 미국의 시민들이 저렇게 황당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 궁금증은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서서히 바뀐다. 당연히 많은 시민은 혜성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올린 대통령의 ‘수작질’에 넘어가지 말자는 ‘룩 업(Look Up)’파가 된다. 

그런데 또 다른 상당수는 올린 대통령이 총지휘하는 수작질에 넘어갔는지 혜성 위기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돈 룩 업(Don’t Look Up)’파가 돼 올린 대통령에게 묻지마 지지를 보내면서 룩 업파를 조롱하고 비난한다. 거리투쟁에서 밀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세력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그것이 미국 국민들 모습이라면 올린이라는 해괴망측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옹립할 만도 하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미국 멸망 책임의 가장 큰 지분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진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나라에 어떤 문제가 생기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란 말이 ‘밈’으로 나돌던 때가 있었다.

고스톱 치다가 돈을 잃어도, 연예인이 사고를 쳐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했으니 혜성 위기를 극복 못하고 미국이 끝장났으면 당연히 ‘이게 다 올린 때문’이라고 해야 마땅할 텐데 혹시 올린 대통령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린을 옹립하고 지지했던 국민들의 책임은 정말 전혀 없었던 걸까.
 

 

서구 정치학의 ‘대부’ 격인 플라톤 이래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정치’의 주체인 ‘국민’을 의심하는 관점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다. 플라톤은 모두가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정치는 자칫 ‘중우정치(衆愚政治, mobocracy)’로 변질할 수 있음을 경계했다. ‘mob’이란 떼거리나 폭도(暴徒)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 듯하다. 오늘날 휘청대는 ‘민주국가’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이미 2500년 전에 예견한 플라톤의 예지력이 놀랍다.

영국의 총리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처칠 총리는 무려 12권짜리 방대한 「2차세계대전 회고록(The Second World War)」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을 만큼 문재(文才)도 뛰어나서인지 촌철살인도 남다르다.

전후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에서 처칠은 자격에 상관없이 모두 선거에서 1인1표를 행사하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정치가 히틀러와의 전쟁보다 오히려 더 힘겨웠던 모양인지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자에게 민주정치의 뼈를 때리는 어록을 남겼다고 한다. “일반적인 유권자와 5분만 대화해보면 민주주의라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The best argument against democracy is a five-minute conversation with the average voter).” 

처칠도 ‘중우정치’의 폐단을 실감한 모양이다. 이 정도는 그래도 점잖다. 아예 ‘무식한 유권자’를 개 취급했던 연설도 있다. “나를 보고 짖어대는 개를 볼 때마다 멈춰 서서 돌멩이를 집어 그 개들한테 던지다보면 절대 목적지까지 갈 수 없다(You will never reach your destination if you stop and throw stones at every dog that barks).” 

혹시 처칠이 이 영화를 봤다면 미국 멸망의 책임 역시 올린 대통령보다는 무지막지한 미국 국민들에게 물었을 것 같다. 플라톤과 처칠 사이에 1700년대 샤르데나 왕국의 이탈리아 근대 철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1753~1821년)라는 인물도 있다.

“모든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된다(Toute nation a le gourvernment qu’elle mérite)”는 묵시록의 한 구절처럼 으스스한 그 유명한 말을 남긴 인물이다. 처칠 역시 메스트르의 경구를 즐겨 인용했다고 한다.

메스트르의 ‘국민수준 결정론(people determinism)’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모든 정부는 그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들의 수준을 반영한다. 국민보다 수준이 높은 정부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국민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지게 마련이다. 한 나라의 국격은 마치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물의 높낮이가 결정되듯이 국민 수준에 따라 법체계와 정부의 모습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수준 높은 국민이라면 수준 높게 다스려질 것이고, 무지하고 부패한 국민이라면 부패한 정부에 의해 무지막지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플라톤에서 메스트르, 그리고 처칠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나라에 망조(亡兆)가 들면 그 용의선상에 정치인들보다는 우선 국민을 올려놓는 듯하니, 정치인들을 ‘욕받이’로 삼고 싶은 국민들이 듣기 좋을 리 없다. 

당연히 이들을 ‘보수적’이라거나 심한 경우는 ‘수구꼴통’ 혹은 ‘반동적’이라고 매도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기분은 고약하지만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간단히 제압하기도 어려운 주장들이다. 집안이 망하면 ‘머슴들’보다 주인 책임인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언제 위기 아니었던 적이 있었냐”라면서 퉁쳐 버리면 그만일 수도 있겠지만, 나라 안팎으로 형편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생각에 따라 각자 전 정권을 탓하기도 하고 현 정권을 탓하기도 하는데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그 정권들을 만든 것은 결국 국민들일 수밖에 없겠으니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모두 메스트르의 말처럼 ‘우리 수준에 맞는 정부’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일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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