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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기획] 전국 유일 흙 거푸집 주조 기술 남아 … 제주 대표 문화
시대·세대 변화하며 위기마다 마을주민들 합심해 전통 계승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는 '솥 굽는 마을'로 유명하다.

 

주철로 각종 생활도구와 농기구를 만드는 제주의 전통 기술 '불미공예' 덕분이다.

 

오랜 세월 이어온 덕수리의 전통문화는 마을을 넘어 제주도를 대표하는 무형문화재가 됐다.

 

◇ 덕수리 불미공예의 기원은 '흙'

 

"덕수리가 '흙'이 좋습니다. 불그스름한 게 풀기가 좋아서 이 흙으로 만들어야…."

 

지난 13일 덕수리 마을박물관에서 만난 윤문수(90) 불미공예 명예보유자는 덕수리가 '솥 굽는 마을'이 된 배경을 이같이 말했다.

 

윤 명예보유자는 "예전에는 낙천리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흙 때문에 덕수리로 옮겨졌다. 여기(덕수리)로 온 지가 한 350여년 됐다"고 설명했다.

 

덕수리 불미공예는 주철로 솥과 같은 생활필수품이나 농기구를 만드는 제주 전통 기술이다.

 

도자기를 빚는 것도 아닌데 불미공예에 왜 흙이 중요한 재료가 되는지 언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면 이렇다.

 

철광석을 제련해 철제도구를 만들려면 약 1천500도 정도의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둑'(용광로)에 불을 피워 열 손실을 줄이고 동시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야 하는데 그 도구가 '풀무'다.

 

풀무질이 잘 돼야만 고온에서 질 좋은 쇳물이 나오고 결국 상등급의 제품이 만들어진다.

 

불미공예라는 말은 바로 '풀무'를 뜻하는 제주말 '불미'에서 비롯됐다.

 

화산섬 제주는 지리적 특성상 예로부터 본토와 교역이 불편했기 때문에 생활필수품을 대부분 자급자족 해야했다.

 

처음에는 칼이나 호미 등 크기가 작은 도구를 소규모로 생산해왔으나 점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정마다 쓰던 무쇠솥은 물론 쟁기와 보습과 같은 농기구 등 다양한 크기의 도구를 대규모로 생산하게 됐다.

 

제주도 전체 수요를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에서 감당했다고 할 정도로 이 지역에서 불미공예가 발달했다.

 

바로 '흙' 때문이다.

 

제주 불미공예의 가장 큰 특징은 주물용 틀인 모래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제작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흙 거푸집(제주어로 '바슴')으로 작업한다는 점이다.

 

 

흙 거푸집을 만들 때 사용하는 흙은 강한 불에도 변형 없이 견디고 공기가 잘 통해야 하는데 이러한 흙을 덕수리 일대에서 구할 수 있다.

 

과거 삼국시대 당시 흙 거푸집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으나 현재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흙 거푸집 기술이 실제로 전승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제주 불미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철기시대부터 행해 온 철 주조기술을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불미공예 과정을 보면 우선 진흙을 채취하고 반죽한 뒤 흙 거푸집을 만든다.

 

이후 거푸집 굽기, 질먹(흑연 가루+황토물) 입히기, 쇳물 작업, 쇳물 붓기, 마지막으로 흙 거푸집을 깨고 그 안의 완성품을 꺼내 다듬는 순서로 진행된다.

 

간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흙을 고르고 물기를 빼 말린 뒤 흙거푸집을 만드는 과정만 1∼2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또 불을 때 철을 녹이고, 거푸집에 쇳물을 붓는 작업은 언제나 사고 위험이 도사릴 뿐만 아니라 오랜 경험을 쌓은 숙련자만 할 수 있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 세대 이어 불미공예 전통 계승

 

한때 도내에서 주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성했던 덕수리 불미공예는 근대 이후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무쇠솥 대신 양은 냄비와 양은솥의 등장, 쟁기 대신 경운기·트랙터가 나오면서 그 필요성이 점차 사라져 버린 것이다.

 

주력 산업이 쇠락하자 마을은 침체해 갔고, 주민 공동체 역시 약화했다.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린 것은 마을 주민들이었다.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고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지켜내고자 주민들이 합심해 1977년 불미공예를 공연 문화로 만들었다.

 

당시 탐라문화제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마을에 주민들로 구성된 민속보존회가 설립됐고, 불미공예를 비롯한 마을의 여러 전통자원을 발굴하고 보전시켜나갔다.

 

결국 1986년 4월 10일 불미공예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는 성과를 이뤄낸다.

 

초대 보유자는 고(故) 송영화 선생이며, 2008년 12월 3일 윤문수 선생이 그 뒤를 이었다.

 

덕수리 마을은 1991년부터 매년 전통 민속 재현 행사를 열어 덕수리 불미공예를 시연하며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윤문수 선생이 건강이 나빠져 2017년 명예보유자로 물러나면서 또다시 마을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명예보유자는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고령 또는 건강상의 이유로 전수교육 등을 정상적으로 실시하기 어려운 경우 그간의 업적을 고려해 인정하는 제도다.

 

불미공예 전승의 중심체인 보유자 자리가 비자 사실상 전수교육과 전승활동의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이때 팔을 걷어붙인 건 청년들이었다.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기로 결심, 과거 시연과정에서 어깨너머로 봤던 기억을 되살리며 퍼즐 조각을 맞추듯 불미기술을 익혀나갔다.

 

청년들은 생업이 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6년간 노력한 결과 시행착오 끝에 결실을 이뤄냈다.

 

올해 40대 중심으로 이뤄진 청년들이 '덕수리마을회' 이름으로 불미공예 보유단체로 인정받았다.

 

덕수리마을회는 심사과정에서 전승에 필요한 기량과 기반 등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고, 전승에 참여하는 주된 구성원이 젊고 전승 의지가 매우 높은 것으로 인정받았다.

 

다행히 윤문수 명예보유자의 건강도 거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됐다.

 

송이철 덕수리마을회 불미공예 팀장은 "불미공예는 마을이 활력을 띠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큰 의미를 띤다"며 "윤문수 어르신으로부터 더 배우고 도움을 받아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하고, 전통을 보전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덕수리 마을은 '솥 굽는 마을'이란 이름으로 마을을 브랜드화하면서 불미공예를 마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마을 창고를 개보수해 만든 마을 박물관은 아직 전시실 등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전시·공연·체험·휴식을 아우르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송태환 덕수리장은 "1년에 한두 번 하던 불미공예 시연을 한 달에 한차례 상설공연화하는 등 마을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든 전통문화를 문화자원화 하고, 관광자원화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 이 기사는 '토제 거푸집 무쇠솥 주조와 불미기술 연구'(윤용현·도정만·정영상), '제주 민구류를 응용한 도자표현 연구'(백승자) 등 책자와 논문을 참고해 현장 취재를 거쳐 제주 덕수리 불미공예를 소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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