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하고 두달여가 지난 1950년 8월 20일.
제주도 남제주군(당시) 대정읍 송악산 부근 섯알오름엔 영문도 모른 132명의 주민이 끌려갔다.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붙잡혀간 그들은 재판도, 조사도, 심문도 없는 한마디로 아무런 절차도 없이 총부리에 목숨을 내놓아야만 했다.
숨진 이들은 그저 구덩이 속에 파묻혔고 유족들은 서슬 퍼런 정권의 굴레에 갇혀 시신을 수습할 수도 없었다. 수년이 지나 유족들은 뒤엉켜 숨진 사체들을 한데 모아 묘역을 만들었다. 이름은 백조일손(百祖一孫) 묘역.
“숨진 다수의 조상이지만 자손은 하나”란 뜻이었다.
억울하게 숨진 이들의 넋을 기리는 섯알오름 희생자영령 명예회복 진혼비 제막 및 제65주기 합동위령제가 20일 학살터 현장에서 열렸다.
백조일손유족회와 만벵디유족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 합동위령제에는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 현을생 서귀포시장, 이문교 4·3평화재단 이사장과 유족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해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백조일손유족회와 만벵디유족회 각각 위령제를 봉행하다가 진상 규명 결정을 계기로 2008년부터 합동으로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백조일손 묘역과 별개로 제주시 한림읍 '겟거리오름' 남쪽 1㎞ 지점엔 '만벵디' 공동묘역이 있다. 섯알오름과 같은 사연으로 63위가 모셔져 있다.
이날 위령제에 앞서 거행된 명예회복 진혼비 제막식은 5년여 간 이어진 섯알오름사건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한 후여서 의미를 더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최근 제주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유족 300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는 이들 유족에게 총 94억40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제주 예비검속 사건은 1950년 전쟁 발발 직후 군과 경찰이 상부의 지시를 받아 사전에 작성된 명부를 바탕으로 4·3사건 연루 혐의자 등 200여 명을 남제주군 섯알오름 인근 폐탄약고 등으로 끌고 가 총살한 사건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11월 이 사건을 '국가에 의한 불법 집단 학살'로 규명했고, 이에 유족들은 2010년 11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