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의 약속, 잊지 않았던 10년 전을 상기하며 다시 100년을 향해 갑니다.”
오현고 출신이 주축인 제주의 산악인들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40년 전 밟았던 제주섬 동서 종주횡단 길에 다시 나선다. 조국광복 30년인 1975년 마음속에 다졌던 통일조국의 의지를 다시금 다지기 위해서다.
‘타임캡슐’이란 이름도 생소할 때 당시 종주 출발점이었던 성산일출봉에 묻어둔 ‘기억의 유리병’에 담았던 의지를 되새기는 자리다.
주인공은 오현고 산악부 출신으로 구성된 오현등고회 멤버들과 현역 오현고 산악부원들이다.
이들에겐 무엇보다 1975년 선배의 기억의 지금도 또렷하다. 조국광복을 기념, 선배산악인이 걸어간 동서종주의 기억이다.
당시 주인공은 서봉준(63)ㆍ임시영(60)씨와 59살 동갑내기인 김창영ㆍ이용진ㆍ현대수씨 등 5명. 그 시절 고교를 갓 졸업한 대학생 또는 대입준비생으로 제주의 오현고 산악부 출신 모임인 ‘등고회 ’멤버들이다.
20대 중심인 등고회가 종주를 나서도록 제주산악연맹이 특명(?)을 내렸고, 여명이 밝아오던 1975년 8월15일 아침 이들과 제주산악계 인사 등 50여명은 제주 동쪽 끝 성산일출봉 분화구에 모였다.
조국광복을 기념 만세삼창을 한 이들은 독립을 갈망한 선인들처럼 태극기에 통일염원을 써 내려갔고, 30년 뒤 이곳을 다시 찾겠다는 약속 끝에 그 의지를 ‘기억의 병’에 담아 성산일출봉 분화구 한 켠에 묻었다. 1970년대 산악인의 등반기록 등 메모도 함께 땅에 묻었다.
이어 이들은 일출봉을 떠나 국토남단 최고봉 한라산으로 향하는 50여㎞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길다운 길이래야 제주를 남북으로 잇는 5ㆍ16도로가 유일한 때 이들은 길조차 나지 않은 제주의 중산간 지대를 뚫고 원시밀림지대인 ‘곶자왈’ 숲을 헤쳐 가며 쉬지 않고 걸었다.
4박5일 뒤 한라산 정상을 오른 종주는 다음해 8월15일 다시 한라산 정상에서 3박4일을 걸어 제주도의 서쪽 끝인 북제주군(현 제주시) 한경면 고산 수월봉에 도착하면서 마무리됐다. 주먹밥과 빵조각으로 끼니를 때우고 개울물로 목을 축이며 2년에 걸쳐 걸어간 100㎞ 행군이었다.
꼭 30년만에 이들의 장정은 2005년 8월12일 다시 시작됐다. 15일까지 3박4일간 일출봉∼한라산∼수월봉 100㎞를 걸어갔다.
세월의 무게만큼 그들도 이제 약관의 청년에서 머리칼도 희끗한 장년이 됐다. 당시 만 23세 나이로 최연장자의 대학생이던 서씨와 갓 고교를 졸업,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막내 김씨는 제주에서 건설업계 주역으로 성장했고, 임씨는 제주산악연맹 부회장을 거쳐 ‘관심’(?)에 맞게 등산용품점을 하고 있다.
김씨와 동갑내기로 고교를 졸업, 산에 푹 빠져 있었던 이씨와 현씨 역시 각각 여행사와 자영업을 하는 등 사회의 중추로 성장했다. 물론 모두가 한라산만해도 200∼300차례, 국내 유수의 산은 가보지 않은 데가 없는 현역 산악인인데다 김씨는 1985년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도 등반했다.
그들이 ‘30년 전의 약속’을 외치며 걸어간 길을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다시 후배들이 걷는다. 8월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간이다.
‘40년 전의 약속, 그 약속을 잇다’란 슬로건을 내세웠다. 산악계와 고교 후배인 김남수씨가 종주대장을 맡았고 오현고 산악부 출신인 오창현(49) 제주관광공사 융복합사업처장 등 15명이 대열에 합류했다. 오현고에 재학중인 산악부 학생 5명도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과 보조를 맞춘다.
40년 만의 동서종주엔 1975년의 주역인 임시영씨가 줄곧 동행한다. 그 외 나머지 5명도 비록 노쇠(?)한 몸이지만 구간별로 동서종주 대열에 참가, 후배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이번 광복 70주년 동서종주의 총괄팀장인 오현등고회 이정훈(52) 회장은 “40년 전 첫 제주도 동서종주의 역사를 이어나가고 당시 제주산악인들의 기개와 얼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한라산과 제주의 자연을 더욱 소중히 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현고 산악부 2학년 김재현 군은 “첫 종주여서 힘들 것으로 생각되지만 제주의 산하를 이렇게 경험한다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며 “산악인의 약속을 지키고자 광복 100주년까지 ‘동서종주의 약속’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